공부에도 순서가 있다

조선시대 천재 성리학자이자 문신이었던 율곡 이이(1536~1584)는 격몽요결(擊蒙要訣) 서문 첫 구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학문이 아니고서 사람이 될 수 없다.

즉 사람이 한평생 살면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논어의 맨 처음도 공부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배우고 그것을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

도대체 공자가 말하는 공부는 무엇이기에 공부하는 것이 이렇게 즐겁고 재미있다고 하는가? 과연 그 공부란 무엇인가?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공부란 기질변화(氣質變化)의 공부를 말한다. 동양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심리체계에서 중요한 것은 이성보다 감정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를 통해 기질을 변화시키려면 수양(修養)공부는 반드시 필요하다.

유가의 대표 경전인 논어·맹자·대학·중용도 전부 수양을 말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학문은 주로 서양의 학문과 시스템으로서 지식 쌓기에 중점을 둔다. 그 지식이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지식이다. 즉 욕심 채우기 공부이다.

동양에서의 학문은 욕심을 제거하고 천리를 보전해 진리(가치)를 추구하는 공부이다. 이것은 모두 공부를 자기반성의 기제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유불도 삼교(三敎)가 말하는 공통적인 문제도 모두 마음이다. 유가의 정좌(靜坐) 공부나 불가의 지관(止觀) 공부, 도가의 내단(內丹) 공부 등 모두 사욕을 제거하고 정신이 고요함과 청명한 가운데 깊은 내면의 본질로 들어가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핵심은 정신통일 공부이다. 공부가 깊어져서 정신을 깊이 몰입하면 굉장히 높은 경지가 된다. 하지만 이러한 수양공부에도 순서가 있다. 논어에 보면 공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들어가서는 효도하고 나와서는 공손하며, (행실을) 삼가고 (말을) 성실하게 하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인(仁)한 사람을 친근히 해야 하니, 이것을 행하고도 여력이 있으면 (그때) 학문을 해야 한다.

공부하기 전에 먼저 기본적인 인간관계와 자신의 직분 및 행실을 충실히 한 연후에 학문에 몰입하라는 이야기이다.

율곡이 “이른바 학문이라고 하는 것은 정상에서 벗어나거나 (일상생활과 벗어나) 별도로 존재하는 일이 아니다”라고 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율곡 이이

공부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기본적인 일상생활에서 내가 해야 할 도리를 하는 것이 모두 공부이다. 즉 내 주변의 사람들 특히 부모, 형제와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상태에서 도를 닦아 봤자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또한, 공부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옛날 배우는 자들은 자신을 위해 (공부)하였는데, 지금에 배우는 자들은 남을 위하여 (공부) 한다.

진정한 공부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고 하여 자신의 몸과 마음을 수양하기 위해 하는 학문을 말한다. 요즘 시험 위주의 스펙 쌓기식 공부는 남에게 인정받고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 하는 학문으로서 위인지학(爲人之學)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위기지학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얼마나 순수하냐가 중요하다.

입시(출처 한국대학신문)

유학의 이런 높은 정신의 경지는 어떤 심오한 철학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한 원리를 담고 있다.

공부에 관한 논어 학이(學而)편 마지막에 공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는다.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못함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

진정한 위기지학공부는 남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수양공부이기 때문에 남이 알아주지 못함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 때문에 옛 성현들은 자기 자신의 존재 문제로 들어가 자신의 실존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끊임없이 고민하고 공부했다. 진정한 마음공부를 통해 나 자신은 물론 남도 잘 되게 한다면 진정한 위기지학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