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형찬의 리얼한 대한민국]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 그리고 인간의 사회

흔히 사람들은 야생을 ‘각자도생’으로 생각한다.

즉, 개체 간의 신뢰는 얕고 언제든 약육강식의 법칙에 따라 생존이 결정되는 형태를 의미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늑대 무리의 사회를 보면 생각을 달리할지도 모른다.

학자들은 늑대 무리의 지도자를 ‘알파 늑대’라고 부른다. 가장 힘이 쎈 늑대로 보이겠지만 사실 알파 늑대의 조건은 매우 까다롭다. 용맹함과 지혜를 갖춰야 한다.

사람은 흔히 난봉질과 패악질을 하는 인간을 ‘개 같다’라고 비하한다. 그러나 같은 갯과 동물임에도 늑대는 ‘일부일처제’에 철저한 신뢰사회를 구현하고 있다.

대형 고양잇과 동물인 사자는 대체로 군림을 한다. 사냥과 양육 대부분은 암사자의 몫이고, 수사자는 같은 수사자 혹은 위협적인 대형 포유동물로부터 무리를 지키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늑대는 이 알파 늑대가 간혹 양육을 담당하기도 하며, 사냥할 때에는 최전선에 나서고, 위기에는 가장 끝까지 무리를 지키다가 가장 먼저 전사한다.

이러한 알파 늑대의 조건은 인간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바로 책임과 권한이라는 측면에서 말이다.

출처 게리 모스 작가
출처 게리 모스 작가

알파 늑대와 반려자인 암컷 늑대는 사실상 수평적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다가 알파 늑대가 죽으면 때로는 알파 늑대의 짝이었던 암컷 늑대가 무리를 지휘하는 경우도 있다.

늑대 무리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바로 수직적 구조에서의 구성원들 반응이다. 알파 늑대가 서열 1위라고 하면 다른 수컷 늑대들은 별도의 서열이 존재한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서열 2위 늑대가 알파 늑대에게 반란을 일으키면 가장 먼저 반란을 진압하는 무리가 서열 3위 이하의 나머지 늑대들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점은 늑대 무리가 힘과 용맹만으로 서열을 정해두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서열 2위란 서열 1위인 알파 늑대로부터 부여받은 우위일 뿐이라는 것을 나머지 늑대들이 알고 있다.

그러니까 알파 늑대에게 항거한다는 것은 스스로 그 권위를 무너뜨리는 것이 되고, 나머지 늑대들이 서열 2위인 늑대를 공격할 명분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인간 사회의 권력 구조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알파 늑대는 힘과 용맹만으로는 안정적인 무리 생활을 끌어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자신의 권위와 힘에 대한 반대급부로 구성원에게 신뢰를 얻는 방식으로 진화를 해왔다.

대표적으로 고양잇과 무리 동물들과 달리 새로운 알파 늑대는 새끼 숙청 과정이 없다. 비록 알파 늑대가 죽고 난 뒤에 새롭게 등장한 알파 늑대라고 할지언정 전임 알파 늑대의 새끼들은 물어 죽이지 않고, 입양한다.

사자와 곰이 새롭게 암컷을 차지하거나 영역을 차지하면 다른 수컷의 새끼들을 물어 죽이는 습성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다.

아래의 사진은 늑대 무리가 이동할 때의 사진이다.

출처 게리 모스 작가
출처 게리 모스 작가

노란 동그라미 안이 병들고 늙은 늑대들이고, 빨간 네모 안이 전투 집단 수컷 늑대들, 파란 화살표가 바로 리더인 알파 늑대이다. 이러한 이동 장면은 늑대 무리의 공동체적 신뢰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늑대 무리 중 가장 허약한 집단을 선두에 세워 이동 속도를 맞추고, 암컷과 새끼들을 강한 수컷 늑대 전사들과 알파 늑대 사이에 위치시켜서 보호한다.

알파 늑대는 가장 후미를 지키고, 그것도 떨어져서 이동하면서 혹시 모를 습격에 준비한다. 만약 재규어나 곰, 퓨마가 등장하면 알파 늑대가 저지하면서 나머지 무리를 위험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것은 나머지 수컷 늑대가 호응하러 올 때까지 시간을 끄는 역할을 리더가 하는 셈이다. 최종 책임을 ‘알파 늑대’가 짊어진다는 것이다.

알파 늑대는 또한 외교력도 갖추고 있다. 많은 동물학자가 늑대 무리를 연구했을 때 느꼈던 특이한 점은 바로 ‘영역의 공백지’가 있다는 것이다.

즉, 특정 무리 집단과 다른 무리 집단 사이에는 풍부한 먹잇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충 지대를 설정해두었다는 것이었다. 일종의 비무장지대와 같은 영역이 존재했다.

심지어 다른 종과의 대결에서도 이러한 점이 보이는데, 알래스카 등지나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목격된 알파 늑대들은 무리를 이끌고 사냥을 함에도 절대적인 궁핍 상태가 아니면 곰이나 다른 개체와 전면 교전을 하지 않는 장면이 관찰되기도 했다.

즉, 곰이 먹이를 먹고 있을 때, 위협적이 않게 지나친다거나 공격성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불필요한 교전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또한 힘의 우위에 따라 먹이를 두고 완전히 쟁취할 수 있지만 다른 종이 결사적으로 나설 기미가 있으면 일정 부분 양보하고 퇴각시키는 면모도 보여준다.

즉, 알파 늑대의 습성은 철저히 무리 집단의 안전과 이익이지 힘의 무차별적 투영이 아닌 셈이었다.

실제 로보 사진. 당연히 덫에 잡힌 걸 찍었다.
실제 로보 사진. 당연히 덫에 잡힌 걸 찍었다.

이러한 늑대 무리의 통제력과 알파 늑대의 지혜는 <시튼동물기>에 기록된 늑대왕 로보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1890년대 미국 뉴멕시코 주에서 커럼포우의 왕이라 불린 늙은 늑대 로보(Lobo)는 인간 사냥꾼들이 설치한 각종 덫과 미끼를 조롱하며 피해 다녔던 실존 알파 늑대이기도 했다.

오늘날 젠더 갈등과 빈부 갈등과 같은 갈등 요소가 점점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불신 사회와 각자도생 사회라고 한다.

한 번쯤은 우리 사회가 한때 짐승이라고 생각했던, 그래서 하루 중 빛과 어둠이 바뀌는 시간을 더러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이라고 불렀던 편견에서 벗어나 진짜 늑대 사회의 참모습을 성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임형찬

임형찬

'정치하지마라' 저자
bucuresti@naver.com
임형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