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일지 교수 사태와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먼저 밝혀 두지만 작가 하일지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딱 2권 읽었다. <경마장 가는 길>과 <누나>다. <우주피스 공화국>은 읽다 말았다. 그가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라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그런 그가 강단을 떠났다.

사태의 발단과 동덕여대생들의 격렬한 항의, 교수직 사임을 발표하는 회견장에서 150여명이 난입해 보여주는 난장판은 한 편의 코미디였다. 훗날에도 이 사태는 두고두고 잊히지 않을 것이다.

큰 사건이 터지면 파편이 여기저기로 튄다. 더러 온당치 않게 파편에 맞기도 하고, 파편에 맞아 중상을 입기도 한다.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입 다물고, 절대로 다른 의견을 말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만의 관점이 옳다고 사로잡힌 이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납작 엎드려 광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게 현명한 처신일 터. 하지만 일은 언제나 예기치 않게 발생한다.

최근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1학년 ‘소설이란 무엇인가’ 수업에서 하일지 교수는 김유정의 <동백꽃> 작품을 다뤘다. 김유정의 <동백꽃>은 우리가 아는 붉디붉은 동백꽃이 아니라 생강꽃을 말한다. 강원도는 생강꽃을 동백꽃으로 부른다. <동백꽃>은 아주 짧은 단편으로 농촌 일상에서 벌어지는 삶을 김유정식 뭉근한 해학과, 웅숭깊은 희화화한 단편문학 중 걸작으로 꼽힌다.

김유정 대표작 ‘동백꽃'(출처 아이세움)

<동백꽃>에 나오는 점순이는 필자가 읽었던 한국 단편 소설 중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로 다른 여자 주인공 이름은 다 잊어버려도 점순이는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다. 김유정의 또 다른 단편소설 <봄봄>의 작중 인물에도 점순이가 나온다.

<동백꽃>은 농촌의 이제 막 성년기로 접어든 남녀가 닭싸움을 매개로 싸우다 어느 순간 정분이 트는 이야기다. 소작인 아들 ‘나’와 마름의 딸 점순이가 닭싸움을 서로 붙인다. 물론 점순이가 먼저 시비를 건다. 계급적 측면에서 보면 소작인보다 마름이 상층계급이다. 소작인을 지주 대신 관리하는 이가 마름이다.

그래서인지 점순이는 ‘나’를 만만하게 굴지만, 불쑥 숨겨둔 삶은 감자를 먹으라고 들이댄다. “니 감자는 묵어 봤나?” 요즘 식의 강원도 정서다. 스물스물 피어나는 정분을 감추기 위해서인가? ‘나’의 닭이 점순이 수탉에게 패배하자 연신 약을 올려대는 점순이가 미워 ‘나’는 점순이 수탉을 막대기로 패서 죽여 버린다. 그런 소동에도 점순이 볼은 얼핏 붉어지고······.

<동백꽃>의 종막은 이렇다. 산기슭 바위 사위로 동백꽃잎이 깔려있다. 갑자기 점순이가 나의 어깨를 떠밀고 앞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몸이 서로 겹쳐진다. ‘나’는 동백꽃의 알싸한 향과 뭔지 모르는 아뜩함이 몰려와 정신이 혼미해진다.

잠시 후, 아랫동네에서 점순이 어미가 “점순아! 이년이 바느질하다 말고 어디 갔어.” 불러댄다. 화들짝 놀란 점순이는 “너 말 마라” 다짐을 놓는다. 점순이는 아랫동네로 ‘나’는 산 위로 기어서 내뺀다.

여기서 소설은 끝난다. 여운을 남기며 그 무엇을 상상하게 하는 김유정 <동백꽃>이다. 점순이는 지금도 괜히 웃음이 나오는 오래도록 기억되는 소설 속 인물이다.

하일지 교수 사태는 현재 벌어지는 ‘미투’ 현상에서 보면 수업 주제 선택에 있어 불운한 것인지, 하 교수가 의도적으로 <동백꽃>을 선정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점순이는 소작인 아들 ‘나’를 분명히 먼저 덮친 거다. 물론 ‘나’도 싫지 않았다. 열일곱 살 춘정발동기 나이니 누가 먼저냐 따지는 것은 좀 우습다.

하 교수는 이 작품을 해설하며 강의 중에 “동네 처녀가 총각 따먹는 이야기지. 총각을 갖다가 성폭행, 강간하는 이야기지. 말하자면 그런 거지. 이 총각은 ‘미투’해야 되겠다” 이런 발언이 결국 문제가 됐다.

하지만 이어 “소설이란 도덕적 관점에서 누가 좋다, 나쁘다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이렇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라고 부연 설명을 했다.

‘미투’ 현상에 한껏 고무된 대학생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여기에 성추문을 일으킨 전 충남도지사 안희정과 비서 김지은의 이야기가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되어 버렸다.

“여러 유추를 할 수 있지. 그중 하나는 질투심 때문이었을 수도 있어. 안희정이 그 사람하고 결혼을 하겠다고 했다면 안 그랬을 거야. 한 사람만 한결같이 좋아했다면 안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이건 유추야. 이건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니야.”

하 교수는 유추, 즉 유사성을 근거로 추리할 수 있다는 유추라고 했지만 결국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동덕여대 학생들의 관점은 하 교수의 교수 사직 기자회견장에서의 집단 구호였던 ‘미투’ 비하!, 2차 가해!다.

동덕여대 하일지 교수 사태(출처 연합뉴스)

이 두 가지 프레임으로 소설 <동백꽃>을 해석하는 관점, 하 교수의 다른 의견을 말할 권리는 다 묻혔다. 수업 시간에 작품 하나를 두고 시작한 소동이 결국 강단을 떠나게 되는 사태까지 일으켰다. 게다가 2년 전 재학생을 성추행했다는 사건까지 불거졌다. 여기에 대해서도 하 교수의 입장은 단호했다. “‘미투’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무례하고도 비이성적인 도발”이라 반박했다.

지난 2006년 경희대 서정범 국문과 교수의 무고 사건도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서 교수의 죽음을 불렀다. 서 교수의 파면을 주도한 여학생은 국문과 학생이었고, 총여학생회 소속이었다. 하일지 교수의 규탄을 주도한 여학생도 자신이 가르치는 문예창작과 학생이었다. 문예창작은 상상력, 감성, 사회적인 문제의식, 비판 정신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하일지 교수의 발언을 두고 반박하고 토론하며 수업으로 끝낼 수는 없었던 것인가.

유행처럼 번지는 ‘미투’에 다른 의견, 다른 시각을 제시하면 ‘미투’ 비하이고 조롱이고 그게 지탄받을 일인가? 또 다른 분석, 사실관계 여부를 말하면 2차 가해인가? 피해자 중심주의, 피해자 보호주의 다 좋다. 피해자 vs. 가해자 이 두 종류만 존재해서 모든 것을 재단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미투’ 광풍에 묻지 않을 수 없다.

‘미투 운동’ 창설자 ‘타라나 버크’의 말이다.

“미투는 성폭력을 겪은 모두를 위한 것이지 여성운동이 아니다. 남자들은 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는 매우 구체적이고 신중해야 하며, 실명과 얼굴을 드러내고 당당해야 한다. 당신이 어떤 것이 폭력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법적인 의미와 파문을 불러올 수도 있다.”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벌어진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문은 정작 발생지 미국은 오히려 잠잠하다. ‘미투’가 나비효과를 일으킨 곳은 한국이다. 귤화위지 ‘미투’ 현상이라고 할 수밖에. 변질된 페미니즘에 이어 ‘미투’ 현상은 남녀분리주의를 더욱 가속화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