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에 직면한 페미니즘

<포비아 페미니즘> 리뷰

박가분이 쓴 <포비아 페미니즘>은 전작 <혐오의 미러링>, <일베의 사상>과 더불어 넷카시즘 분석 3부작이라고 부르고 싶다.

포비아 페미니즘(박가분 지음 / 인간사랑 출판)

최근 3~4년 동안 폭발적으로 일어난 페미니즘 열풍에 대해 어떤 이들은 ‘페미나치’라는 용어를 써가며 페미니스트를 비난하고 조롱했다. 극단적인 용어로 반대자를 공격하는 행위는 진영을 막론하고 해악이다. 하지만 그런 용어까지 등장할 정도로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의 행위에 대한 비난 여론이 존재하는 현상은 부인할 수 없다.

페미나치라는 말이 등장했을 때 필자는 행위자에 대한 혐오조장보다는 현상에 대한 명명을 위해 (어디에 쓴 적은 없지만) 이를 ‘페카시즘’이라고 불렀다.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선언으로 페미니즘 열풍이 시작될 때 어떤 페미니스트들은 선언에 동참하지 않는 남성들을 공격하고 비난했다.

미러링이라는 방식을 반대하거나 우려를 표해도, 페미니스트들이 규정한 여성혐오 표현이나 상황에 동의하지 않아도 여혐으로 매도됐다. 대중문화를 여성혐오라는 잣대로 분석하면서 여혐물은 늘어갔고, 이에 대해 반대하거나 비판적인 의견을 내는 사람은 젠더감성 ‘빻은’ 여혐러가 됐다.

이 모든 일은 필자가 보기에 매우 불안정하고 때론 상식적이지 않았다. 반대자를 공격하는 방식, 반대의견을 억압하기 위해 낙인찍고 조리돌려 처형하는 방식들은 우리가 매카시즘이라 부르는 그것과 매우 닮아있었다. 그리고 필자는 이 분위기가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생각한다.

미소지니와 여성혐오(여혐), 미러링 등이 등장하면서 세상은 말 그대로 혐오의 도가니가 됐다. 넷세상은 (필자가 느끼기에) 이전과 비교하면 몇 배나 혐오가 넘쳤다. <포비아 페미니즘>의 저자 박가분은 넷상에서 불기 시작한 이런 분위기를 전작 <혐오의 미러링>에서 분석하고 진단한 바 있다.

혐오의 미러링(박가분 지음 / 바다출판사 출판)

이번 책에서는 한 발 더 들어가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운동이 정체성 정치의 폐해를 어떻게 만들어 내고 있는지 진보진영의 문제를 미국정치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들의 현실운동 과정의 문제를 단순히 비판하는 게 아니라, 그 운동이 가져올 수 있는 결과, 사회에 대한 전망까지 함께 설명하고 있어 의미가 있다.

트럼프가 당선된 대선에 집중한 분석만으로는 이를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은 갸우뚱. 1장의 일부 내용은 좀 더 섬세한 접근과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독자에게 페미니즘에 대한 비난서가 아닌 사회현상을 대하는 연구자로서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태도로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어서 의미가 있다.

특히 이번 책에서 볼 만 한 내용은 3장. 젠더이슈에 대한 팩트체크다. 통계를 왜곡하거나 취사선택해서 주장을 펴는 운동가와 미디어의 사례들을 잘 짚고 있다. 이는 비단 페미니스트들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모든 운동가(진영)는 그런 유혹을 받는다.

그래도 자신의 주장을 설득하기 위해 활동하는 운동가라면, 넘지 말아야 할 선, 지켜야 할 윤리성과 책임감에 민감해야 한다. 저자는 왜곡되거나 잘못 알려진 사실들에 대해 사실관계를 제시하며 비판한다.

다른 장의 내용도 흥미롭다. 포비아 페미니즘의 개념에 대해 설명하고, 그러한 성향의 운동이 가져온 결과들에 대해서도 사건의 예를 들어 설명하면서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모든 장이 골고루 재미있다.

  • 1장 정치적 올바름은 정말로 올바를까
  • 2장 포비아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
  • 3장 멈춰서 생각하기: 젠더이슈에 대한 팩트체크
  • 4장 포비아 페미니즘의 결과
  • 5장 페미니즘의 통념에 도전하기

이 책의 미덕은 성실하게 사건과 사실관계들을 기술한다는 점이다. 전작인 <혐오의 미러링>도 웹커뮤니티에 대한 이해 없이 해석하고 진단하는 글을 쓰는 이른바 진보진영의 필자들과 차별성이 돋보였다. 자신도 유저라는 장점을 십분 발휘해서 웹커뮤니티 문화와 변화지점, 흐름을 잘 파악한 기반 위에서 쓰인 저작이다. 미러링 현상에 대해 비판 없이 수용하고 지지했던 진보진영과 매체들이 꼭 보기를 바란다.

저자에 대한 인신공격성 조롱이 무색할 만큼 이 책은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기술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국내 저자가 본격적으로 페미니즘을 비판한 책은 필자가 알기로 처음이다. 페미니즘 관련 서적이 베스트셀러 상위를 휩쓸고 있지만, 비판서는 번역서로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귀한 책인데도, 그리고 읽어보면 내용도 의미 있는 지점들을 잘 짚고 있는데도, 진보매체 가운데 어느 곳에서도 이 책을 소개한 기사는 없다. 기울어진 운동장 맞다. 운동이든 학문이든 페미니즘의 발전을 위해서도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서가 나와 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예전의 페미니즘은 기존의 권위와 질서에 도전하는 주체였으나 이제 페미니즘은 도전받는 주체가 됐다. 약자, 피해자, 질문자, 책임과 변화를 요구하는 주체로서의 위상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그(녀)들이 던졌던 질문이 그(녀)들을 향해 돌아오고 있다. 이 현상을 백래쉬와 구분해서 다루는 일이 필요하다.

<포비아 페미니즘>의 본문 가운데 영국의 방송인인 조나단 파이의 영상이 등장한다.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을 조롱하는 좌파진영에 대한 비판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이념(비단 페미니즘뿐만 아니라)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제시하거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 정치적 반대자들을 조롱하고 모욕을 주는 문화가 자리 잡은 오늘 우리 모두 새겨들을 말이다. 정치적 반대파에 대한 모욕주기 관행은 결국 사회 다수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지금 트럼프가 백악관에 들어갔는데 이 사건의 전말이 무엇인지 아는가? 이제 진보좌파의 (상대방을 차별주의자로 몰아가는) 프레임 씌우기는 안 통한다는 것이다. 정말로 변화를 원한다면 ‘대화’를 통해 그 사람을 공감하게 만들라. 너와 다른 생각을 가지면 죄다 악마화 하고, 못 배운 사람 취급하고, 차별주의자 낙인을 찍는 일을 그만 두라. 그만두기 싫다고? 그렇다면 도널드 트럼프 당선이라는 결과를 받아들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