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헌법과 선거법 개혁안은? 1

연역과 귀납을 통한 개혁안 도출

임혁백(고려대 명예교수·광주과기원 석좌교수) 칼럼 ’촛불헌법’의 권력구조에서, 개헌의 핵심 쟁점인 권력구조 문제에 대해 경청할만한 제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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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교수 주장은 “개헌의 3대 쟁점은 기본권, 지방분권, 권력구조”인데 “기본권과 지방분권에 관해서는 초당적인 합의가 형성”되어 있으나 권력구조에 관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임교수가 제안하는 권력구조 개혁 방안은 다음과 같다.

제임스 매디슨

임교수는 미국 헌법(권력구조)의 주요한 설계자이자, 미국 4대 대통령(1809~1817년)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 1751년 3월 16일~1836년 6월 28일)이 제안한 “혼합정체 원형을 모델로 하여 행정권, 입법권, 사법권의 분리를 더욱 명확히 하고, 제왕적 대통령으로 통합되고 집중되었던 의회권력과 사법권력을 3권분립의 원리에 맞게 제자리에 되돌려 놓아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이 가진 정부법률 제안권, 예산권, 회계검사권 등을 국회에 돌려주고, 국회의 조약비준 동의권, 국정조사권, 인사청문회 권한을 강화하여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감시와 견제를 강화하고, 선출직 부통령제를 도입하여 행정부 내에서 대통령과 권력을 분점하게 해야 하고, 인권위원회, 선거관리위원회 등 독립적 헌법기관의 대통령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강화하면서 검찰, 경찰, 국정원 등 권력기관을 정치적으로 중립화한다.

고정된 임기를 보장하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요건 완화를 통해 임기 중이라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장치를 강화하며 지역을 대표하는 상원을 신설하여 국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동시에 의회권력 내부에 견제와 균형 시스템을 구축하고, 권력통합적 성격이 있는 국회의원의 국무위원 겸직과 국무총리직을 폐지한다.

사법부의 독립을 강화하되 국민참여재판 제도를 확대하여 사법부 내부에 견제장치를 마련하며 고위 판사직을 선출직으로 전환하여 국민이 선거로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권력구조 개혁 안을 이렇게 짧은 글에 집약해 놓은 글을 거의 본 적이 없다. 몇 번이고 읽을 가치가 있는 혜안이지만, 이런 글에서 항상 느끼는 아쉬움이 몇 개 있다.

1. 시스템(권력구조)의 문제와 리더십및 집권세력이 공유하는 사상이념의 문제에 대한 균형적인 시각이다. 같은 헌법을 가지고도 노무현 스타일로 권력을 운용할 수도 있고,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스타일로 권력을 운용할 수도 있다.

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국정에 책임을 안지는 국회(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비토권이 얼마나 강한지 실감할 수 있었다. 김병준, 변양균 등 노무현 정부에서 정책을 주도한 인사들은 현행 헌법과 국회운영 방식은 “내가 원하는 것을 관철할 수 없지만, 남이 원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힘”은 있고, 그로 인한 혼란에 대해서는 책임도 안지는 모순(비토권의 이상 비대)을 매우 주요하게 거론한다.

이로부터 정치(정당과 국회 등)의 생산적 경쟁과 대승적 협력을 원활하게 하는 체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튼튼한 정당(공심과 국정비전과 노하우와 리더십 등)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게 됐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시기에는 대통령의 권한과 행태가 얼마나 제왕적인지를 절감하고 있다. 지금 후자의 문제가 부각돼 있지만, 전자의 문제도 여간 심각하지 않다. 임혁백의 제안은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의 모순을 해결하는 방식임은 분명하지만, 노무현의 모순을 해결하는 방식은 아니다.

대통령 권한의 분산과 치밀한 견제감시 장치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정당과 국회에 대해 책임을 철저하게 묻는 제도가 필요하다. 요컨대 생산적 경쟁체제=생산적 다당체제를 담보하는 선거·정당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사실 기본권, 지방분권, 권력구조보다 선거제도가 더 중요하다.

2. 권력을 운용하는 리더십과 사상이념의 부실 문제도 의외로 심각하다. 이는 권력구조에 책임을 돌릴 수 없다.

문재인의 리더십과 문재인 정권은 현행 헌법에서도 엄청나게 많은 것을 개혁할 수 있다. 단언컨대 1987년 이후 7명의 대통령 중에서 가장 거침없이 개혁할 수 있는 천혜의 정치지형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의 리더십과 사상이념이 1980년대 운동권 수준에서 그리 많이 벗어나지 않았기에, 이 황금 같은 기회를 날려버리고 있다. 오히려 한국 사회의 치명적인 문제 즉 불평등, 양극화, 저성장, 저출산, 일자리, 재정의 지속가능성, 사회적 유인보상체계, 한미 관계와 한일 관계 등을 대체로 악화시키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세 정권의 공통된 치명적인 문제는 정권의 공심과 경세방략의 부실이다. 이는 야당도 비껴가지 않는다.

3. 기본권과 지방분권조차 초당적인 합의가 형성된 것은 아니다. 그냥 선언적인 수준이라면 몰라도, 현실의 법 제도를 크게 바꾸는 수준의 합의는 전혀 아니다. 무엇보다도 기본권(권리, 이익, 혜택)은 상향시키려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책임, 의무, 부담에 대해서는 눈을 질끈 감기 때문이다.

분권도 마찬가지다. 분권은 단순히 권력의 분산이 아니라, 분권에 따른 권한과 책임의 재설정, 견제와 균형의 재설정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대체로 권한은 행사하되(나눠 가지되) 책임은 안지는 방식으로 제도를 설계해왔다. 사실 지금의 지자체장들이 부르짖는 지방분권도 그럴 소지가 크다. 이렇게 되면 비토권만 강해지거나, 주나라 왕실 붕괴 후 도래한 춘추전국시대와 비슷한 양상이 벌어질 수 있다.

지방 분권은 주민 자치와 지방 균형발전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데, 현재의 지방분권담론에는 이 개념이 흐릿하다. 대체로 지방분권만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지방자치는 지방공무원과 토호의 자치로 전락할 수 있다.

4. 미국 헌법과 메디슨의 혼합정체의 뿌리가 되는 미국의 정치·경제·사회구조와 이를 통할하는 사상과 문화를 제대로 천착하지 않았다. 이것을 모르면 미국 토양에서 잘 자라는 식물을 뽑아다가 한국에 심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메디슨이 설계한 미국 사회는 토크빌이 관찰한 1830~1835년 당시의 미국과 흡사하다. 이 당시 미국과 현재 미국의 타운과 스위스의 게마인드는 본질에서 같다. 1830년 매사추세츠주는 305개의 타운에 61만14명의 주민이 거주, 1개 타운당 평균 인구 약 2000명이었다.

토크빌

토크빌은 이렇게 말했다.

뉴잉글랜드의 정치생활은 타운에 기원을 두고 있는데, 타운은 하나하나는 본래 독립국가를 이루고 있었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뒷날 영국 왕들이 지배권을 주장했을 때도 국가의 중앙권력을 떠맡는 데 만족했다. 타운들은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타운들은 그 권력을 중앙권위(the central authority)로부터 받은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자기네들의 자주성 일부를 주에게 양보했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한 특색이고 독자들이 언제나 염두에 주어야 할 사항이다.

연방과 주, 주와 카운티·타운의 관계는 철저히 계약 관계고, 보충성 원칙이 관통한다. 그런데 한국 헌법에는 이 두 개념이 실종 상태다. 온통 국가의 보호, 보장, 진흥, 육성, 창달, 계도 정신이 한국 헌법을 관통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 사회는 성리학 이념(삼강오륜 등)을 등에 업고 국가권력이 시장과 사회(공동체)와 개인 및 가족에 깊숙이 관여, 개입해온 조선 사회와 플랫폼을 공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민자치 수준, 특히 공공서비스 인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 수준이 너무 다르다. 조선과 대한민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공공부문의 지대추구와 특권·특혜가 있을 수 없다.

행정권 대부분은 ‘행정위원(select-men)’이라는 매년 선출되는 몇 사람에게 부여된다. 작은 타운에서는 3명, 큰 타운에서는 9명이 임명된다. (중략) 어느 학교를 세우려 한다면 행정위원들은 지정된 날 지정된 장소에서 투표자회의를 소집한다. (중략) 이들은 사업을 성취할 방법,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 비용, 가장 알맞아 보이는 장소 등을 알린다. (중략) 회의는 원칙을 정하고, 부지를 확정하고, 세금을 투표로 결정한다. 타운집회는 행정위원 또는 10명의 주민이 소집할 수 있다. 타운집회에서 행정위원은 사회권만 가진다.

한국 정치의 최대 문제는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 제왕적 국가권력 자체다. 국가가 지방은 물론이고 시장, 사회, 개인을 멋대로 쥐락펴락하는 것이다. 국가권력의 과잉·집중과 저열(혼미, 무능, 사익추구)이다. 대통령은 한시적으로 그 국가를 지휘통제하기에 제왕적으로 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