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드 여성해방이야말로 진정한 여성운동이다

<압둘라 외잘란의 정치사상: 쿠르드의 여성혁명과 민주적 연합체주의> 리뷰

지난 2월 외신이 전한 터키 소식은 경악스러웠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정당 행사에 참석해 특수부대 ‘마룬 베레’의 베레모와 군복을 입힌 6살 소녀를 놓고

만약 이 소녀가 순교한다면 터키 국기로 온몸이 덮일 겁니다. 이 아이는 이미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라고 말한 뒤 소녀에게

순교준비 됐나?

라고 묻는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그 자리에 모인 터키인들은 이를 열렬히 환호했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순교 발언(출처 MBC)

도대체 터키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가?

에르도안은 무려 10년간 총리를 지내고 현재 대통령으로 장기집권 중이다. 에르도안의 6살 소녀 순교 압박 발언은 반군으로 규정한 쿠르드족 소탕전 선전 중에 나온 것이다.

쿠르드족은 현재 어떤 상황에 처했을까. 터키는 쿠르드족을 절멸시키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다. 현재 쿠르드족이 처한 환경과 쿠르드 여성들이 전선에서 겪는 치열한 투쟁을 소개하는 서적이 국내에 나왔다.

<압둘라 외잘란의 정치사상: 쿠르드의 여성혁명과 민주적 연합체주의>(압둘라 외잘란 지음 / 정호영 옮김 / 훗 출판사)

간혹 외신을 타고 들려오는 외잘란이란 이름과 총기로 무장한 쿠르드족 여전사들의 소식에도 불구하고 필자를 비롯한 우리는 이에 무심하다.

이 책은 쿠르드 지도자 외잘란이 집필한 책이다. 외잘란은 터키 정부가 1999년 나이로비에서 납치한 뒤 19년째 터키 외딴 섬 임랄리 감옥에 갇혀 있다.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사실과 중동 정세가 어떤 역학관계에 있는지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쿠르드족이 처한 현실과 쿠르드족 여성들의 생존을 위한,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 그리고 왜 여성들이 총을 들고 무장할 수밖에 없는지 알게 된다.

터키인이기도 한 외잘란은 감옥에 수감 중이면서도 13권의 책을 썼다. 외잘란의 저서는 전 세계 20개국에서 번역됐고, 이번에 한국에서도 외잘란의 저서가 번역됐다.

터키에서 외잘란의 책은 금서다. 왜? 에르도안 정부는 외잘란은 테러리스트고 PKK(쿠르드 노동자당)는 터키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 무장 투쟁을 한다고 주장한다.

오해를 풀자. 외잘란은 ‘독립국 건설’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 쿠르드족을 포함한 다양한 공동체 즉, 민주적연합체 안에서 공존하자는 것이 그의 사상이다.

외잘란은 이 저서에서 쿠르드족 여성의 자유를 외친다. 쿠르드족 여성뿐만 아니라 다른 중동국가 여성들의 삶도 수천 년 간 착취당한다고 덧붙인다. 진정한 여성의 자유, 여성의 해방이 필요한 곳이라는 것이다.

쿠르드족 여전사들(외잘란의 책 한장면)

외잘란의 여성해방론을 이해하기 전에 이 책을 빌어 쿠르드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쿠르드 인구는 약 3300만명에 달한다. 터키 전체 인구 약 20%인 1500만명 가량이 터키 동부에 집단 거주하며, 이란, 이라크, 시리아, 독일 등 유럽에 흩어져 있다.

쿠르드족은 중동에서 가장 오래된 원주민이라고 한다. 조로아스터교 영향을 받아,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들판에서 함께 일하는 평등한 사회였다고 한다.

외잘란은 쿠르드족 여성들이 전통적으로 힘과 용기가 남다른 민족이었으나 지금의 상황은 끔찍하다고 말한다. 쿠르드족은 아랍에서 핍박받는 민족이며, 전쟁에서 가장 약자는 아이와 여성이기 때문이다.

외신을 타고 전해오는 쿠르드족 여성들은 군복을 입고 총으로 무장한 얼핏 매혹적이기까지 한 아름다운 이미지로 포장된 여전사들이다.

하지만 쿠르드족 여성들은 단호히 말한다.

쿠르드 여전사의 이미지를 소비하지 말라.

생존이 걸린 전쟁터에서 쿠르드족 여성 활동가들이 살해당하는 현실을 바로 보라는 것이다. 외잘란은 이 저서를 통해 쿠르드뿐만 아니라 전체 중동국가의 여성의 지위와 자유에 대해, 여성의 해방은 곧 사회의 해방임을 역설한다.

외잘란의 말을 옮겨보자.

중동의 모든 사회 문제에 대한 해법은 여성의 지위를 그 중심에 두어야 한다. 성평등을 달성하지 않으면 자유와 평등 또한 실현될 수 없다. 민주화의 가장 영속적이고 포괄적인 요소는 여성의 자유다.(p.223)

국가에 대한 분석 없이 사회의 심적 상태를 분석하고, 가족을 분석하지 않고 국가를 분석하고, 남성을 분석하지 않고 여성을 분석하는 것은 충분한 결과를 낼 수 없다.(p.223)

여성의 자유와 평등의 수준은 사회의 모든 부문의 자유와 평등을 결정한다.(p.231)

또한 외잘란은 쿠르드의 여성혁명은 급진적 남성혐오와 관계없다는 점을 명확히 설파한다.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이 지배적인 남성의 억압받는 여자일 뿐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여성의 현실은 단지 별개의 성이라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훨씬 더 포괄적인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차원의 것과 관계가 있다.(p.228)

이 말은 오늘날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는 급진적 남성혐오 페미니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현대 페미니즘의 근본적인 모순인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되어 있으며 피해자요 희생자’를 강조하는 것과 쿠르드 여성해방운동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분명히 한다.

쿠르드를 포함한 전체 중동 여성들의 자유와 평등은 절박한 생존의 문제인 것이다. 쿠르드족 여성들은 강인한 힘과 뛰어난 용기로 아랍 국가들의 핍박과 쿠르드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절멸시키려는 터키와 맞서 싸우고 있다.

IS와도 전투를 벌이는 쿠르드족 여전사들

쿠르드족 여성들이 처한 상황에 비추어 보면 아시아 최고 수준의 성평등 국가인 한국 여성들의 삶과 너무나 많이 대비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페미니스트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는 현실에서, 더 넓은 시야와 사회를 보는 합리적인 지성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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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여성운동이 필요한 곳과 연대하고, 세상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여성운동이 일어나기를 기원한다. 쿠르드족 여성들이 총을 내려놓고 쿠르드 땅에 평화가 찾아오기를! 진정한 자유를 쟁취하기를! 마음으로 연대한다.

다음 글은 옮긴이(정호영)의 해제의 일부, 외잘란이란 인물에 대해 압축적으로 소개하는 내용이다.

외잘란은 분리주의자가 아니다
외잘란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외잘란은 마르크스-레닌주의자가 아니다
외잘란은 아나키스트가 아니다
외잘란은 자신의 사상을 ‘민주적 사회주의’, ‘사회주의적 공동체주의’라고 부른다
외잘란 사회주의는 반자본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다
쿠르드 여성 전사의 이미지를 소비하지 말라
쿠르드 여성혁명은 급진적 남성혐오와 관계없다

한국에서 외잘란을 읽는 행동만으로도 터키에서 민주화를 바라는 모든 사람과의 연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