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의 한스, 또 다시 기억하는 4월의 봄

[서평]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서>

안녕하세요. 글 쓰는 ‘서연’입니다.

언제였는지 일기를 들춰보는데 그해 4월 1일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4월은 거짓말처럼 왔다.

만우절이었던 겁니다.

혹시나 싶어 4월 30일의 마지막 문장을 확인했더니 이번에는

4월은 거짓말처럼 갔다.

였습니다.

만개한 벚꽃의 화사함에 덩달아 마음도 봄처럼 한껏 부풀었는데 바람 한번 휙 불고 비 한번 주룩 내리니 꽃이 다 져버린 겁니다. 3월은 아직이고, 5월은 바쁘고, 6월은 끝자락이니까요.

4월부터 시작하게 된 책 소개, 독자님들과의 첫 만남도 거짓말처럼 그랬으면 싶습니다. 찰나 같아 아껴보게 되는 봄 꽃처럼, 매해 다시 온다는 믿음의 기다림처럼, 순간 속에서 영원을 보고 소멸 속에서 생성을 보는, 그런 예쁘기만 한 거짓말처럼 오고 가고 또 오며 만나 뵙게 되길 바랍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첫 책은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선택했는데요,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작품들은 우리를 자아에 이르는 길로 인도합니다. 결국에는 자아를 영원히 잃어버리게 되는 주인공 한스처럼 아직은 서툴지만 그래도 봄은 늘 새로운 시작이니까, ‘한스’의 절망을 통해 절망을 넘어선 희망을 읽을 수 있으니까요.

<수레바퀴 아래서>(헤르만 헤세 지음 / 문학동네 출판)

한스는 의심할 여지 없이 재능 있는 아이였습니다. 낚시를 즐기고 토끼를 기르는 활동을 좋아했었는데 점점 학문과 시험 때문에 그런 취미 생활과는 멀어집니다. 그에게는 소년의 순수함과 신앙심 못지않게 학생의 학구열과 야심도 있었기 때문인데요. 그런 이유로 구둣방 주인인 플라이크를 불편하게 여기게 됩니다. 플라이크는 외면적 성취가 아닌 내면의 성숙을 가르치는 유일한 어른이었거든요.

아버지의 자부심이자 선생님들의 기대주였던 한스는 주변 인물들의 요구를 자신의 소망으로 착각하게 되지만 좋은 성적으로 입학한 신학교에서는 생에 처음으로 방황을 겪게 됩니다.

그 방황의 첫 번째 계기는 친구 하일러입니다. 시인이자 문예 애호가였던 하일러는 모범생이었던 한스를 성적에 목을 매는 공부벌레라고 놀려댔습니다. 그런 그가 한스에게 처음 우정의 손을 내밀었을 때는 수줍음과 두려움에 도망가기도 했습니다. 한스는 어머니 없이 자라나 융식으로 말하자면 아니마를 억눌렀던 것이지요. 아니마란 남성의 무의식 속에 사는 여성성을 일컫는데요, 아니마는 타인과 관계 맺는 능력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일러는 지식을 비웃고 자연을 즐기고 예술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는데요, 그런 하일너가 한스의 무의식을 자극한 것입니다. 자기 안에 없는 것은 절대로 자신을 자극하지 않는 법이죠. 그러니 하일너의 자유로움과 방랑적 기질이 한스 안에는 분명히 있었던 것입니다. 한스의 영혼을 물들인 하일너와의 우정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사진=소년들의 우정(픽사베이)

그러나 하일러로 인해 공부와 멀어지고 성적이 떨어져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미칠 수 없어서 내적 갈등도 매우 심하게 앓습니다. 오래 억눌러둔 무의식이 의식으로 표면화되어 건강하게 통합되어야 ‘융’이 말했던 개성화가 이루어지는데 그러기엔 너무 작았던 소년 한스는 하일러마저 퇴학을 당한 후, 신경쇠약증에 걸리고 맙니다.

낚시를 즐기고 토끼를 기르던 유년의 놀이, 동성친구와의 우정, 이성친구와의 사랑,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 같은 것들을 무의식 속에 너무 오랫동안 억눌렀던 탓에 삶을 건강하게 즐기지 못했고 친구와의 분리에 고통이 더해졌습니다. 이성 친구 엠마와의 사랑 역시 우습게 끝나버렸고요. 이 모든 것들이 방황의 또 다른 계기들이었습니다.

진정한 내면의 소리를 처음에는 듣지 못했고, 겨우 듣고 난 후에도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가운데에 만나게 되는 장애들을 건강하게 극복해내지 못한 한스는 결국 생에 비극적인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헤세의 사상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이는 플라이크는 마지막 장면에서 한스의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저기 신사분들이 가시네요. 저분들도 이 아이가 그 지경이 되는 걸 도와준 셈이지요.

사계절의 첫걸음, 봄은 그 이름이 아름다운 만큼 세상의 모든 처음이 그러하듯이 서툴러 지난 후 돌아보면 더 아련하게 마련이죠. 아직 자신의 생에 봄의 계절도 다 살지 못하고 거짓말처럼 저세상으로 떠난 한스지만 그는 이야기 속에 길이길이 남아 수많은 독자를 자아에 이르는 길로 인도합니다.

헤르만 헤세

4월은 거짓말처럼 또 가겠지만, 꼭 일년 후에는 다시 거짓말처럼 또 오겠지요. 적어도 시간은 거짓말하지 않으니까요. 그때까지 우리는 순간 속에 영원을, 소멸 속에 생성을 보며 진정한 자아에 다가가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기로 해요. 우리가 우리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기로 해요.

‘서연’에게 이르는 길 가운데에서 ‘서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