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탄생 200주년과 21세기

칼 하인리히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가 탄생한지 200주년 되는 날이다. “20세기의 세계는 마르크스 사상의 실험장이었다”라는 말이 존재할 정도로 그는 대단히 영향력 있는 사상가였던 것은 분명하다.

칼 하인리히 마르크스

20세기 지구는 냉전체제(Cold War)로 양분되어 있었다. 공산국가를 표방한 소련을 비롯해 동부 유럽과 자유주의를 표방한 미국을 비롯한 서부 유럽으로 나뉘어 있었다. 우리 한민족 역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일본제국주의로부터의 해방의 기쁨도 잠시, 이내 소련과 미국이 한반도를 양분했다. 3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칼 마르크스의 서적은 ‘불온서적으로 분류되었으며, 소지하고있는 것만으로도 국가기관에 잡혀가는 금서였다.

2005년 <BBC>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가 누구인지 여론조사를 했는데 아리스토텔레스(4.52%), 소크라테스(4.82%) 등 고대 철학자들은 물론, 현대철학의 거두들인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6.80%), 데이비드 흄(David Hume, 12.67%) 등도 물리치고 칼 마르크스가 27.93%로 1위를 차지했다. 20세기뿐만 아니라 21세기에서도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 칼 마르크스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어떤 사상이 지구인들의 마음을 흔든 것일까. 그가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은 어떤 것이 있을까. 그의 사상을 알기 위해 그의 생애를 우선 살펴볼 필요가 있다.

칼 마르크스는 1818년 5월 5일 프로이센(지금의 독일)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변호사가 되기를 바라며 베를린 대학의 법학과에 진학하도록 했으나, 칼 마르크스는 철학에 관심이 있었다.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그는 강연을 하며 살아가려 했으나 독일에서 좌파운동세력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자 프랑스 파리로 이주해 살게 되었다.

그는 자본주의가 발달한 영국 프랑스를 보면서 노동자들의 삶에 대해 공감하려고 했다.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생산성이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노동자들은 더욱더 가난해지는지 그는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었던 것이다.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Proletarier aller Länder, vereinigt euch!)”라는 공산당 선언의 유명한 문구는 그의 고민 끝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 만연해 있는 인간소외, 물신숭배 등을 없애고 인간이 더욱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들을 고심한 것이다. 부르주아 즉 자본가에게 부가 집중되고 프롤레타리아들에게 가난이 집중되는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불행해 지고 있는 사회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싶었다.

물론 그는 그의 사상으로 인하여 우리 한민족이 갈라지는 비극을 맞게 되고, 6·25전쟁으로 300만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할 지에 대해서는 상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사상으로 인해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라지게 되었다거나 그의 사상이 없었다면 한반도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분명 그는 우리 민족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우리나라 7~80년대 경제 발전은 전세계가 놀라워 할 정도로 거침없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우리나라 노동자들과 농민들의 희생이 있었다. 노동법은 지켜지지 않았고 노동자들은 열악한 지위에 놓여 있던 것이다.

이에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는 ‘이 사회에서 형식에 불과한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가지면서 자신도 불과 함께 타 들어갔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사건은 당시 우리나라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노동자들의 열악한 지위를 개선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태일 열사의 사상에 의하면 인간소외, 물신숭배, 배금주의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들어있었고, 인간이 기계의 부품처럼 소모되는 것을 경계하였다. 전태일 열사의 사상은 사실 100여년 전 마르크스의 사상이 고스란히 들어 있던 것이다.

전태일 열사 동상

21세기가 된 지금도 그의 영향력은 크다고 할 수 있다. 세계 각국의 여성운동도 어떻게 보면 마르크시즘의 일부로 파악할 수 있다. 부르주아에 의한 프롤레타리아의 탄압의 역사를 남성에 의한 여성의 탄압의 역사로 파악할 여지가 없지는 않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와 인생의 동반자였던 엥겔스의 저서인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는 ‘일부일처제’라는 혼인제도가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라고 서술한다. 혼인 후 남성과 여성이 동등해지길 바라는 현대 여성운동의 흐름을 마르크시즘에서 읽어낼 수 있다.

자본주의는 망할것이고 노동자 혁명으로 공산국가가 탄생되고 유지될거라는 그의 역사발전 이론, 그의 예언은 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가 태어난지 200년, 세상을 떠난 지, 135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그가 살았던 지역과 반대편에 있는 한반도에 미친 영향 역시 대단하다. 그가 무조건 옳다는 맹신주의는 배격해야 하지만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맞이해 그가 우리 생활에 미친 영향을 한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