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세라비의 인문학 내러티브] 인문학의 보고 ‘슈테판 츠바이크’ 전기문학

그가 쓴 14인의 평전에 대한 작품 해설을 시작하며

현 시기 인문학은 망한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문학의 상아탑이 됐어야 할 대학교는 취업준비 전당이 됐다. 대학교는 취업을 준비하는 교육 기관이 아니라, 교양 교육을 통해 합리적이고 지성적인 사고와 모든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는 곳이다. 대학 교육은 인문학을 통해 글을 쓰고, 생각하고, 말하는 법을 배워 장차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인문학은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든, 미래에 어떤 분야로 진출하든, 어떤 직업을 갖든 가장 기초가 되는 학문이다. 문학, 철학, 역사, 심리학, 문화예술 범주가 인문학이다.

광범위하고 깊은 사유를 필요로 하는 인문학에 있어 맬컴 글래드웰의 ‘1만 시간의 법칙’은 유효하다. 꾸준한 노력보다, 예술분야에 있어서는 선천적 재능이 후천적 재능을 능가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1만 시간의 법칙’은 틀릴지라도, 적어도 인문학에 있어서는 1만 시간, 즉 10년의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 인문학이다.

하지만 대학교에서 인문학이 퇴조한지는 이미 오래 됐고, 미국 대학 역시 전통적으로 인문학의 토대가 탄탄했지만 지금은 그쪽도 망했다는 소리가 나오는 실정이다.

취업 사관학교가 된 대학

인문학의 어원은 라틴어 ‘후마니타스’에서 나왔다. 인문학은 휴머니즘이요, 인본주의이다. 인문학은 평생을 걸쳐 인간 정신의 근원을 탐구하고, 인간 정신에서 뻗어나간 철학, 문학, 예술, 사상, 역사를 다원적, 다층적으로 학습해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사고를 가진 지성인, 교양인이 되는 과정이다. 장기간에 걸쳐 학문이 침전물처럼 쌓이는 축적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우리나라는 6~7년 전에 인문학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여기서도 인문학, 저기서도 인문학, 너도나도 인문학, 대기업 CEO 조찬 인문학, 온갖 명칭을 단 인문학 콘텐츠, 인문학 스타강사 강연 열풍이 있었다. 인문학이 한때의 유행처럼 휘몰아치더니 이제는 인문학이란 단어를 말하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애초 인문학이 패션처럼 소비돼 버린 것도 어불성설이다.

인문학 아이돌이라 불리던 스타강사의 강연을 쫓아다니고, 때마침 시류에 맞춰 출판된 인문학 서적이라는 얄팍한 책 몇 권 읽는 것으로 인문학에 대한 지적 만족을 채웠으니 수명이 짧을 수밖에.

인문학(?) 스타강사 최진기(출처 tvN <어쩌다 어른>)

열풍을 몰고 온 인문학 스타강사에게서 어떤 것을 얻었으며 그는 인문학의 발전에 무슨 족적을 남겼을지 의문이다. 스타강사에게 의존해 떠먹여주는 대중 인문학, 정작 본인들은 평소 인문학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인문학 강좌 몇 번 간 것으로 만족감을 채우는 일이 무슨 지적 고양으로 연결될까.

인문학이라 함은 자칫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흔히 우리가 접하는 동서양고전, 한국고전, 문학작품, 다양한 철학사상, 역사, 예술, 음악 등을 꾸준히 심도 있게 즐기듯 하다보면 시야가 넓어지고 사물을 판단함에 있어 다양한 관점으로 종합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 일시적인 유행으로서의 인문학, 일부 스타강사가 전파하는 협소할 수밖에 없는 인문학에 기대지 않고 자신이 평생을 통해 생각하고, 읽고 쓰면서 스스로 찾아나가야 한다.

광범위한 인문학을 어디서부터 읽어야 할까. 그렇다고 인문학의 뿌리이자 기초인 서양고전 중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시작해야 할까. 인문학의 뿌리가 고전이긴 해도 반드시 고전부터 시작해야하는 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고전만 읽다 자칫 고전으로 끝나 인문학의 진도가 나가지 않을 수 있다.

슈테판 츠바이크

독보적인 평전문학가, 슈테판 츠바이크(1881~1942)

인문학을 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소개하고 싶다. 그건 바로 ‘슈테판 츠바이크‘ 작품을 읽는 것이다. 츠바이크의 매혹적인 문장에 빠져 그가 쓴 평전을 한 권, 한 권 읽다보니 어느덧 열네 명의 인물들과 조우했다.

장편 평전인 △발자크 △메리 스튜어트 △마리 앙투아네트 △에라스무스 △프로이트 △카스텔리오 각각 세 편을 묶어서 발표한 △도스토예프스키 △디킨스 △횔덜린 △클라이스트 △니체 △카사노바 △톨스토이 △스탕달 △발자크를 만났다. 츠바이크는 발자크 평전을 두 권을 집필했는데, 짧은 분량의 발자크와 장편 발자크다. 츠바이크는 이를 두고 작은 발자크, 큰 발자크로 불렀다고 한다.

츠바이크는 세계 문학사 최고의 평전 작가이지만,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희곡을 출간했다. 츠바이크는 1920~1940년까지 유럽·영미권 최고의 작가였다. 또한 비운의 작가이기도 하다. 전 생애 동안 유럽의 대격변기 제1·2차 세계대전을 겪었던 인물로 자신 또한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합스부르크왕조 시대에 태어났다. 합스부르크 왕조의 멸망, 제1차 세계대전에 이어 오스트리아가 히틀러에 의해 점령돼 망명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운명이었다. 히틀러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유럽 전체를 전쟁터로 만들어 승리해 나갈 무렵 츠바이크는 스위스, 미국, 영국을 떠돌며 글을 썼다.

츠바이크는 마지막으로 브라질에 안착했으나 결국 부인과 함께 1942년 동반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저서는 <발자크 평전>이었다. 사후에 발견된 <발자크 평전>은 츠바이크가 죽음을 준비하면서 완벽한 원고로 정리돼 책상에 놓여 있었다고 한다.

아돌프 히틀러

1938년 3월 오스트리아의 나치 독일 강제 합병은 빈의 지식인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들었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히틀러가 <나의 투쟁>에서 기술했듯 히틀러에게 있어서 오스트리아와 독일은 하나의 국가이므로 두 개의 독일이 존재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빈의 지식인 츠바이크와 프로이트, 홉스봄은 영국으로, 하이에크는 미국으로 건너가 명성을 떨치게 됐다.

<프로이트 평전>을 쓴 츠바이크와 프로이트와의 연령을 초월한 우정은 널리 알려져 있다. 츠바이크 평전 문학에 흐르는 심리학, 정신분석학적 문장은 프로이트의 영향이 컸다. 츠바이크가 프로이트에게 보내는 서신에도 나와 있듯 도스토예프스키, 니체, 횔덜린 등의 전기를 쓰면서 프로이트의 조언에 감사를 보내고 있다.

츠바이크의 문장력의 묘미는 이미 상당히 오래 전 작가임에도 매우 현대적이고 세련된 문장과 풍부하고 섬세한 묘사, 때로는 격정적이면서도 말할 수 없이 서정적이고 아름다움을 풍기는 고급 문어체, 그리고 예리한 심리분석이 탁월한 작가이다. 또한 무엇보다 재미있다.

츠바이크의 문장이 어떤가 하면 마치 발자크, 도스토예프스키, 니체 등과 함께 살았던 사람으로 착각이 들 정도로 감정이입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츠바이크 자신이 23세에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을 정도로 철학, 문학은 물론, 심리학, 예술사에 능통한 뛰어난 인문 학자였다.

오스트리아 수도 빈은 츠바이크에게 있어 인문학의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빈은 츠바이크 영혼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이어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은 유럽이 송두리째 파괴되고 숱한 문화재의 파손은 유럽 문화의 종말과도 같았을 것이다. 츠바이크는 견딜 수 없었다.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세계대전으로 유럽은 파괴돼 재생 불가능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츠바이크는 세상을 떠나기 전 일 년 전 회고록 <어제의 세계>를 집필했다. 1942년 자신의 정신, 언어의 고향 유럽의 파괴 앞에 희망을 놓아버린 츠바이크는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부부 동반자살을 택한다.

그의 유서에는

내 모든 친구들에게 인사를 보낸다. 원컨대, 친구들은 이 길고 어두운 밤이 지나 마침내 동이 트는 아침을 보기 바란다. 너무나 조급한 이 사람은 먼저 떠난다. 자유의지와 맑은 정신으로!

츠바이크의 유서대로 너무 조급했다. 2년 정도만 견뎠더라면 히틀러의 몰락을 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요즘 같이 실용서, 자기계발서만 선호하고 인문학은 멸종의 시대에 츠바이크 문학을 읽고, 아니 츠바이크를 기억하고 책을 읽는 사람이 한국에 얼마나 될까. 하지만 앞으로도 츠바이크 같은 문필가를 다시는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인문학의 보고가 그의 작품 속에 가득 담겨있기 때문이다.

츠바이크가 집필한 평전은 전 작품이 국내에 번역돼 읽히고 있는 반면 츠바이크 문학에 대한 조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점은 필자 개인적으로도 무척 안타까운 심정이다. 츠바이크 전기문학에 대한 작품 해설을 시작하게 된 동기도 여기에 있다.

프로이트 평전을 읽으면서 19세기 의학이 처한 환경에서 정신분석이라는 학문으로 의학을 전복시켜 버린 프로이트, 명성에 비해 평생을 빈의 임대주택에서 살았고, 그의 제자인 융, 아들러와 절연하게 된 상황과 프로이트라는 인간을 통해 그 시대를 조망할 수 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도스토예프스키 평전을 통해 일생을 간질발작에 시달리며 작품에 몰두한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인물 탐구와 19세기 중엽 유럽과 러시아의 혼돈상태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지식을 얻게 된다.

위대한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 평전에서는 인문주의의 위대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 줌과 동시에 종교개혁의 시초를 제공하며, 종교개혁에 길을 연 인물, 하지만 마르틴 루터와의 운명적인 대결과 종교개혁의 피바람 속에 끝까지 중립을 지켰던 그 역사적 현장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정말 사치의 화신이었을까. 메리 스튜어트와 숙적 엘리자베스 여왕과의 운명적인 대결에서 엘리자베스는 왜 끝내 도끼로 메리 스튜어트의 삶을 끝장내 버렸을까.

‘슈테판 츠바이크‘의 전기문학에는 철학, 심리학, 역사, 문학, 예술이 총 망라돼 있다. 그가 쓴 인물들에게는 천재와 광기, 비극이 존재한다. 츠바이크가 쓴 14명의 인물을 통해 인문학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현 시기 인문학은 쓸모없는 학문이 아니라, 진실로 인간의 영혼을 풍부하게 만드는 쓸모 있는 학문이 바로 인문학이다.

츠바이크 전기문학 14명의 작품 해설은 격주로 연재될 예정이며 첫 번째 인물은 ‘에라스무스’다. 에라스무스는 유럽 인문학 최초의 스타 인문학자이자, 종교개혁의 광기 한 복판에서 생애 정점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