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나의 집, 너의 앉은 자리가 꽃자리

[서평] 공지영 <즐거운 나의 집>

안녕하세요. 글 쓰는 ‘서연’입니다.

가정의 달, 5월인데요. 어린이날·어버이날 모두 거리, 식당 곳곳마다 인산인해로 빼곡해 움직이기 어려웠지만 그 북적거림 속에서 꽃의 기지개처럼 활짝 피어나는 사람들의 웃음을 보고는 그래도 나오길 잘했다 싶었습니다. 아마도 행복이었을 그 풍경을 가슴 속에 저장하며 저는 또 한번 행복이라는 것이 아주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닌, 내 곁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라는 진실을, 또 그 진실을 알아차리는 인식은 내 안에서만 시작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함께 각인시켜 두었습니다.

<즐거운 나의 집>(공지영 지음 / 푸른숲 출판)

해서 이번 주 독자 여러분과 나눌 책은 공지영 작가의 <즐거운 나의 집>입니다. 여담이지만 ‘즐거운 우리집’이어야 마땅했을 제목이 ‘즐거운 나의 집’이 된 이유를 언젠가 어느 책에서 평생 미혼으로 산 작사가의 이야기를 읽으며 확인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라는 이름이 가장 어색하지 않게 붙는 관계, 아무리 가족들이라 하더라도 함께 산다는 일의 어려움은 배려와 이해, 존중과 희생이 뒤따르지 않으면 극복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잠깐 했었는데요.

열여덟 살 ‘위녕’은 아빠로부터 엄마에게로 생활의 터전을 옮겨 성이 다른 두 남동생과 동거하게 되면서 갖가지 좌충우돌을 겪게 됩니다. 엄마가 세 번이나 이혼했거든요. 그 사실이 세 아이들에게는 흠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둘째 둥빈의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위녕과 제제가 함께 장례식장에 동행했던 것처럼 앞으로 남은 두 번의 경우에도 함께 해야 하는 것은 그들이 엄마의 딸, 아들인 한 변함없는 약속이거든요.

위녕은 아빠를 버리고 떠나온 것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의 감정 이면에 새엄마와의 사이에서 느꼈던 섭섭함과 배신감의 감정을 아직 정리하지 못한 채 엄마에게 왔는데요, 엄마에겐 자유인 것이 아빠에겐 탈락이며 무책임인, 그 확연한 사고와 생활방식의 차이를 느끼고는 복잡한 감정들을 정리하고 두 분의 사정도 차츰차츰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는 동안 사랑에 질려 더는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사랑의 편에 서는 엄마를 관찰하며 그렇게 스스로 행복한 엄마의 모습을 닮아가겠다고도 결심합니다.

사진=고양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사건들 중 인상적인 것 중 하나는 주워온 고양이가 죽었던 일인데요, 비록 슬픈 결말이지만 위녕의 내면에 존재했던 사랑의 결핍은 채워짐으로써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 줌으로써 치유됩니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 참 흐뭇했었습니다. 마침 읽고 있는 심리·철학서에서 진정한 사랑, 성숙한 사랑은 받는 사랑이 아니라 주는 사랑이며 줌으로써 도로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랑의 신비를 알려주었거든요. 그래서 좋은 엄마, 아빠를 두었음에도 상처를 받게 되는 ‘위녕’이 두 분을 이해하게 되고 다른 존재에게 사랑을 줌으로써 성숙하고 참된 사랑을 할 수 있게 되는 장면이 참 다행이고 따뜻했었습니다.

이어진 둘째 둥빈 아빠의 죽음 후에 엄마는 성경 속 다윗과 솔로몬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아이가 죽었는데 곡을 하고 재를 뒤집어 쓰는 게 아니라 잔치를 열었던 것에 대해 다윗은 이제 그 아이가 이 곳으로 다시 올 수는 없으니 자신은 자신의 삶을 그냥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는 거죠. 그 후 태어난 아이가 세상의 온갖 지혜를 지닌 솔로몬이었다는 것. 이런 이야기들을 가슴에 채워두면 살면서 겪게 되는 슬픈 이별 앞에서 조금이나마 덜 휘청거릴 수 있고 대처할 삶의 교훈을 미리 얻을 수 있습니다.

과거의 불행도 억울한데 오늘마저 불행하면 그건 정말 내 책임이라며 어제가 오늘을 침범하지 않게 안간힘을 쓰는 엄마의 인생 철학에서 위녕이 위기의 고3 생활을 현명하게 넘어갔듯이 저 역시 책장 사이사이에서 작가의 지혜를 엿보고 덜컹거리는 하루하루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었는데요, 소설은 이제 막 성인이 되는 ‘위녕’을 통해 결국 모든 인생은 누구의 무엇(딸·아들·남편·아내)이 아니라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되는 과정임을 말하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세상 모든 타인들 중에서 그래도 분명히 말할 수 있는 나의 편인 가족

위녕이 진로를 스스로의 선택으로 결정하고 가족을 떠나 대학생활을 하게 되는 마지막 장면에는 그러나 위녕을 지켜주는 가족들이 뒤에 서 있었어요. 언제가 다시 돌아올 베이스캠프 같은 곳의 ‘나의 사람들’이요. 아마 제목을 ‘즐거운 우리 집’으로 바꾸지 않아도 될 이유는 이것이지 않을까요. 세상 모든 타인들 중에서 그래도 분명히 말할 수 있는 나의 편인 나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주고 받을 수밖에 없는 상처가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위로와 사랑이 있기 때문에.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즐거운 나의 집> 중 인용된 시 ‘꽃자리’의 일부

아직 다 가지 않은 5월입니다. 혹시 전하지 못한 마음이 있다면 상처와 고통 때문에 깊숙하게 가려져 보이지 않을 뿐 분명히 살아 숨쉬고 있는 감정을 꺼내보는 건 어떨까요? 어렵겠지만 사랑은 상처를 허락하는 것, 삶은 고통 없이 성숙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망설이고만 있는, 그 작은 용기를 앞에 세우시기를 바랍니다. 그 노력이 인간을 인간이게, 사람을 사랑하게,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이게 만들 테니까요.

여러분의 사랑을, 성숙을, 행복을, 꽃자리를 그리하여 삶을 응원하는 ‘서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