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추정의 원칙과 증명책임은 누구 몫인가

국가권력의 남용으로 백성의 삶이 파괴되는 경우가 역사적으로 허다하다. <춘향전>에서 춘향이가 변사또의 수청을 거절하자 옥에 갇힌 상황을 생각해보자. 변사또의 수청하라는 명령은 입법작용, 집행은 행정작용, 이를 거부하자 춘향이를 옥에 가두라는 결정은 사법작용인 셈이다. 이처럼 입법권과 행정권, 사법권이 한 기관에 집중됐던 시기에는 변사또처럼 국가권력이 권력을 사유화해서 횡포를 부리는 일이 많았다.

현대사회에서는 국회가 입법작용을 하고, 그 법률에 근거해 행정부가 국가 사무를 집행하고, 사법부가 잘못된 행정작용에 대해서 판결을 내린다. 이는 전직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헌법재판소의 탄핵결정과 연이은 법원들의 판결을 피할 수 없는 모습을 통해 일반 시민은 이러한 권력 분립을 당연시한다. 인권의 발달과정과 함께 권력분립과 죄형법정주의, 그리고 그에 파생돼 무죄추정의 원칙 성립과 인권의 발달 과정을 모르는 시민도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원칙들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7년 3월 31일 오전 서울구치소에 수감되기 위해 검찰차량을 타고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그 중 무죄추정의 원칙은 ‘의심스러울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라는 한 문장으로 설명 가능하다. 범죄 수사의 영역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라 완벽하지 않을 수 있고, 범죄 상황을 정확하게 역추적할 수 없기 때문에 무고한 희생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또한 수사기관은 실적을 위해서 혹은 기타 이유로 죄 없는 일반 시민을 누명 씌워 감옥에 넣는 일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가 확실히 자리잡기 이전인 군부 독재시절이 그렇다.

공산주의자가 아니냐

빨갱이가 아니냐

라는 혐의만으로 민주화를 부르짖는 대학생들을 탄압한 역사가 존재한다.

이러한 일들을 방지하기 위해 피고인이 범인이라는 증거가 없다면 법원은 ‘무죄’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심증이 있어도 물증이 없다면 한 사람을 옥에 가두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누가 보아도 범인이 확실한 경우라 할지라도 한사람을 ‘유죄’판결을 내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이는 정의롭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발생한다.

수사기관이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그러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거대한 경찰과 검찰은 막대한 국가 예산을 지원받아 대한민국의 치안을 유지하는 동시에 일반 시민의 인권을 수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범죄가 발생했을 때는 증거를 수집하고 범인을 밝혀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범죄가 발생했을 때 증거을 수집하고 법원에 제출할 의무는 전적으로 수사기관에 있다. 권력을 등에 업고 피의자 피고인을 강압적으로 수사한다는 의미가 절대 아니다.

즉, 수사기관은 무고한 시민의 삶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범죄의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는 중대한 임무를 맡고 있음을 자각해야한다.

박유천 성폭력사건 피해자에 대한 무고 및 명예훼손죄 무죄 판결 기자회견 ⓒ 한국여성민우회

그렇다면 최근 검찰이 ‘성폭력 수사매뉴얼’을 개정한 것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사실 성폭력 수사 매뉴얼 개정과 상관없이, 이전부터 성범죄 수사는 피해 여성의 일관된 진술만으로 남성에게 ‘유죄’판결을 내릴 수 있었다.

즉, ‘의심스러울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원칙이 예외가 된 것이다. 이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아니라 유죄추정의 원칙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가령, 폭행죄의 경우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자가 폭행을 당했다고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만으로 절대 피고인이 유죄판결을 받을 수 없다. 폭행한 영상이나, 상해진단서 등을 증거로 제출해야 한다. 따라서, 여성의 일관된 진술만으로 피고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한다.

물론 성범죄는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견해도 많다. 성폭력이라는 범죄는 다른 범죄와는 다른 특수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범죄를 결정하는 ‘성적 수치심’은 주관적 요소가 강하기 때문에 이 또한 성범죄 요건이 되기 위한 완벽한 잣대는 아니라고 본다.

검찰의 성폭력 수사매뉴얼 개정과는 무관하게 범죄의 증명책임 혹은 거증책임, 입증책임은 전적으로 수사기관에 있다. 무고한 시민을 옥에 가두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인권을 수호함과 동시에 범죄피해자가 억울하지 않도록 증거를 수집하고 법원에 제출하는 일은 수사기관 본연의 역할인 것이다. 막대한 예산 투입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를 망각하고 수사 업무를 쉽게 하기 위해 증명책임을 회피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