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연결된 너는 타인이 아니라 자아의 또 다른 모습

[리뷰] 미치 앨봄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안녕하세요. 글 쓰는 ‘서연’입니다.

30도를 웃도는 기온에 요즘 많이들 지치셨을 텐데요, 개인적으로는 기온의 변화보다는 시간의 변화가, 육체의 지침보다는 마음의 지침이 더 괴로웠습니다. 그럴 때마다 평정을 유지하려 책을 뒤적입니다.

즐겨 읽던 책 속에서 시간의 흐름과 본성,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의 흔적이 묻어나는 문장들을 곱씹고 나면 나를 뒤흔들었던 일상의 표면적인 문제들과 그에 곁 따라오는 감정들이 실은 아무것도 아니며 삶의 궁극적인 고민들과 그에 대한 성찰만이 지금 내가 안아야 할 모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시간이 빠르다는 사실에 대한 조급함은 멀리 보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기에 이번 주에는 죽음과 관련해 오래 전 재미있게 읽었던 책 한 권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미치 앨봄의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입니다.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미치 앨봄 지음 / 세종서적 출판)

여든 세 살의 에디는 놀이공원의 기구를 정비하는 백발의 할아버지입니다. 일찍이 아내와 사별하고 좋아하던 사람들을 모두 잃은, 그래서 남은 여생을 체념 속에서 살아가던 그는 어느 날 놀이기구의 고장 때문에 그가 좋아하던 사람들의 뒤를 따라 저 세상으로 가게 됩니다. 그때 위험에 처한 한 소녀의 손을 잡았던 감각의 기억을 안고 말이죠.

처음 정신이 들었을 때 평소에 앓던 다리의 통증이 죄다 씻겨나가고 하늘을 나는 듯 가볍다는 것을 느끼는데요,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입니다. 에디가 만난 첫 번째 사람은 파란 사내인데요, 천국에서 다섯 사람을 만날 것이며 그들은 서로의 삶에 엮인 인연들이라는 것, 그리고 천국은 지상에서 일어났던 일을 이해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드라마 중 에디가 만난 첫 번째 사람인 파란 사내

그들이 만난 사유는 어린 에디가 그가 몰고 있던 차로 뛰어들고, 그 여파로 그가 심장마비로 죽게 된 때문입니다. 여든 세 해를 사는 동안 전혀 짐작할 수 없었던 사건 앞에 에디는 죄를 사하려고 하지만 파란 사내는 우연한 행위란 없으며 우리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타인이란 아직 미처 만나지 못한 가족일 뿐이에요.

두 번째 사람은 전쟁 당시 그가 속한 부대의 직속상관인 대위님입니다. 포로가 되어 적군들로부터 당했던 인간 이하의 취급이 계속 되던 어느 날 반대로 기회를 잡게 된 그들은 적군 넷을 태워버립니다. 수류탄을 던지고 오두막에 불이 붙고 석탄 광산이 폭발하는 엄청난 광경 속에서 에디는 불타는 헛간 안에 작은 사람의 윤곽을 보는 듯합니다.

그 누군가를 구하려는 순간 다리에 통증이 느낀 그는 화상을 입은 채 널브러지고 자신의 목숨조차 겨우 구할 수 있었을 뿐입니다. 그가 지상에서 다리의 통증을 느끼고 절룩거리던 이유가 바로 전쟁에서의 상처였던 것인데요, 이제와 만난 대위는 그것이 자신의 짓이라고 고백합니다.

반쯤 정신 나간 에디가 대위에게 대들자 그는 에디의 다리를 가져간 것은 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답합니다. 그 윤곽은 환영이었으며 그 후 대위는 부하들을 대신해 지뢰의 폭발에 죽음을 당했던 것이죠.

때로 소중한 것을 희생하면, 사실은 그걸 잃는 게 아니기도 해. 잃어버리는 게 아니라 그걸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것이지.

에디가 만난 세 번째 사람은 그가 일하던 놀이 공원을 처음 만든 에밀의 부인, 루비였습니다. 지상에서 그들은 서로 만난 적이 없는 사이인데요, 그럼에도 천국에서 만날 만큼 귀한 인연인 까닭은 루비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나기 전에 일어난 일의 영향을 받게 마련입니다. 앞서 산 사람들이 영향을 미치기도 하구요. (중략) 에밀이 없었으면 난 남편이 없었을 거에요. 우리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루비 가든(놀이공원)은 없었을 테지요. 가든이 없었다면 당신이 거기서 일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일도 없었을 거고요.

그녀는 에디가 줄곧 오해하고만 있었던 아버지의 비밀에 대해 알려주는데요, 이로써 그는 아버지를 향해 품었던 증오를 서서히 놓게 됩니다.

그리고 네 번째 사람인 마거릿, 그의 사랑스런 아내를 만납니다. 그들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어요. 입양 계획을 갖고 있었지만 경마장에서 도박을 즐기던 에디를 말리기 위해 차를 몰고 달려오다 그만 사고가 났던 것이 계기가 되어 입양도, 행복도 멀어져 갔던 것이죠. 그 후 얼마 못 가 그녀는 뇌종양으로 세상을 먼저 떠났는데요, 다시 만난 그녀는 이곳에서 늘 그를 바라보며 사랑하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잃어버린 사랑도 여전히 사랑이에요, 여보. (중략) 감각이 약해지면 다른 게 환해지죠. 추억 말이에요. 추억이 동반자가 되는 거에요. 당신은 그걸 키우고 가꾸고 품어주고. 생명은 끝나게 마련이지만 사랑은 끝이 없어요.

마지막 다섯 번째 사람은 어린 소녀인데요, “그녀는 아저씨가 날 태워요. 불나게 해요.”라는 영문 모를 소리를 합니다. 그러니까 이 소녀는 전쟁의 불길 속에서 보았던 윤곽, 환영인 줄 알았던 실체였던 것이죠.

그는 눈물을 흘리며 소녀에게 사과를 합니다. 소녀는 에디에게 왜 슬프냐고 묻어요. 아래(지상 세계)를 손짓하며. 에디는 자신이 삶에서 뭘 해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고 답합니다. 그러자 아이가 말해요.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드라마 중 에디가 만나 다섯 번째 사람인 어린 소녀

거기에 꼭 있어야 할 사람이었는데. (중략) 어린이 때문에. 아저씨가 아이들을 안전하게 해주니까. 나한테도 잘해주니까.

점점 형체가 녹는 것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느끼며 에디는 천국에 온 이후로 줄곧 궁금해 하던 하나를 물어봅니다. 루비 가든에 있었던 어린 소녀에 대해서요. 자신이 죽는 순간, 그 애의 손을 잡았던 감각만 남았지 살렸는지는 기억나지 않았거든요. 그러자 천국의 소녀는 지상의 소녀를 안전하게 구했다고 답하는데요, 한 마디를 덧붙입니다.

그 애 손이 아니라 내 손이에요. 내가 아저씨를 천국으로 데려왔어요. 안전하게.

소설은 모든 이야기들이 하나로 엮여 삶이 되고, 모든 목소리들이 신에게서 온 한마디인 집으로 귀결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멀지 않은 곳, 내 몸과 마음이 안식하는 곳, 집이 곧 천국임을,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 없는, 나와의 화해 속에 사는 그 순간이 곧 행복임을, 나와 연결된 너는 타인이 아니라 자아의 또 다른 모습임을,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니며 죽음 너머에는 과거의 삶을 통째로 이해하기 위해 준비된 더 큰 삶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죠.

높은 기온, 빠른 시간, 그로 인한 불쾌감과 조급함이 밀려올 때 생각해야겠습니다. 내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곳이 어디인지, 무엇을 위해 이리 바쁘고 무엇 때문에 이리 치이는지. 잘 죽기 위해 사는 삶이라는 분명한 깨달음 하나를 마음 한 가운데 안고 살면 더워지는 날씨도, 흘러가는 시간도 모두 나를 성장시키는 일부분의 풍경일 뿐이라는 너그럽고 여유로운 태도를 취하게 될 것 같습니다.

넓어진 품만큼 내 사람 한 명쯤 더 안을 수 있다면, 그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을 안고 또 안으면 우리의 삶이 우주만큼 큰 삶이 될 수도 있겠지요. 진정한 자아는 자신을 벗어난 사람만이 찾을 수 있다는 말의 의미와도 맞닿은 바람인 것 같습니다.

나를 통해 당신에게, 세상에게, 우주에게 건너가고픈 ‘서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