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거래 보도, ‘조선일보’의 나홀로 행보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의 행보가 눈에 띈다. 바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거래’ 와 관련한 보도에서다.

본지는 지난달 31일자 ‘재판거래’ 양승태, 보수와 진보언론은 어떻게 볼까 기사에서 양 전 대법원장의 재판거래에 대한 보수와 진보언론 양측의 보도 논조를 분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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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거래’ 양승태, 보수와 진보언론은 어떻게 볼까

당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연합뉴스> 등은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재판을 청와대와 협상카드로 활용하려 했다는 문건이 드러남에 있어 양 전 대법원장을 질타하기는커녕 사태 수습에 나선 김명수 현 대법원장의 조처를 비난하고 나섰다.

일주일이 흐른 지금, 재판거래와 관련한 문건이 98개 추가 공개됐고, 이중 세월호와 청와대의 관련 재판이 포함됐다는 보도에 보수 언론의 시각은 어떨지 살펴봤다.

<조선일보>는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논조다. 한 사회부 기자가 쓴 칼럼에서는 “이 상황은 기본적으로 김 현 대법원장이 자초한 것”이라며 “김 현 대법원장이 ‘사법 포퓰리즘’에 빠졌다”고 해석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 상황은 기본적으로 김명수 대법원장이 자초한 것이다.

판사는 법률과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하는 사람이다. 드러난 사실에 입각해 편견이나 왜곡 없이 법리 판단을 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이자 기본자세다. 고발 여부에 대한 판단도 다를 게 없다. 그런데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이 ‘각계 의견’을 들어 고발 여부를 정하겠다며 책임을 미루고 있다. “판결도 각계 의견 듣고 하는 것이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율곡 이이는 시중에 근거 없이 떠돌아다니는 ‘부의(浮議)’를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다수 의견인 ‘중론(衆論)’과 이치에 맞는 ‘정론(正論)’은 다르다. 드러난 사실을 놓고 올바르게 판단하는 것이 판사다. 그런데 지금 사법부는 이른바 ‘사법 포퓰리즘’에 빠진 듯하다. 김 대법원장은 작년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31년간 재판만 해온 사람의 수준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 수준이 지금의 수준이라면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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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각] 대법원장의 ‘사법 포퓰리즘’

<조선일보>가 최근 내놓고 있는 기사들의 제목만 봐도 이러한 시점을 알 수 있다. 일선 판사들의 의견을 실었는데 주로 김 현 대법원장의 조처에 반대한다는 내용이다.

  1. [기자의 시각] 대법원장의 ‘사법 포퓰리즘’
  2. 高法 부장판사들 “말 뒤집는 대법원장 못 믿겠다”
  3. ‘재판거래’ 의혹 형사고발 두고 갈린 법원···내일 법원장회의 주목
  4. [사설] 두 쪽으로 갈라진 법원, 어디까지 추락할 건가
  5. 서울지법 판사회의 주최측은 ‘수사해야 할 이유’ 이메일 돌려
  6. 대법원, 고법부장회의 직전에 ‘98개 문건’ 전문 공개
  7. 검찰이 법원 내부 문제를 수사하는 건 사상 초유
  8. 대법원장이 자초한 ‘사법의 亂’
  9. ‘재판거래 의혹’ 등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파일 원문 공개
  10. 일선판사들 “양승태 행정처 수사를”, 고법판사회의 “수사하는 건 반대”

관련 내용을 살펴봤다. 수사를 촉구하는 판사에 대해서는 정치적 성향을 언급하며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일부 판사’라고 일부 판사의 의견임을 강조했고, 수사 촉구에 반대하는 판사에 대해서는 ‘판사 경력 15년 차 이상인 서울고법 판사’라고 굳이 다르게 설명했다. 또한 ‘권위주의 정권의 인사로 법원을 장악하려 할 때 이런 사법 파동을 겪었다’고 덧붙였다.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들이 5일 회의를 갖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및 ‘재판 거래’ 의혹을 검찰에 고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 사안을 두고 법원은 둘로 쪼개지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인천지법·의정부지법의 소장 판사들인 단독·배석 판사들은 최근 이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일부 판사는 “국민과 함께 고발하겠다”고 했다. 반면 판사 경력 15년 차 이상인 서울고법 판사들은 지난 4일 회의를 갖고 수사 촉구에 반대했다. 판사들이 이념 성향, 세대, 직급별로 갈라져 내홍을 빚고 있는 것이다.

과거 법원은 이른바 ‘사법 파동’을 여러 차례 겪었다. 대부분은 권위주의 정권이 인사로 법원을 장악하려 하거나 재판 독립을 해치려 할 때 발생했다. 하지만 최근의 양상은 다르다. 한 원로 법관은 “대법원장을 포함한 판사들이 법원 내부 문제로 서로 갈려 충돌하는 새로운 형태의 법란(法亂)”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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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이 자초한 ‘사법의 亂’

다른 보수언론인 <중앙일보>, <연합뉴스> 역시 이번 재판거래에 대해 많은 보도를 내놓았다. 제목을 자극적으로 한 매체는 <조선일보>말고도 있었지만 적어도 내용에서는 양 측의 의견을 모두 실었다. 물론 양 측의 입장을 살펴보는 데에 있어 온도차는 있었지만 스트레이트 기사 조차 <조선일보>만큼 치우친 매체는 찾아보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