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을 가르치는 남자들의 문화가 있을까

페미니즘이 남성혐오를 하지 않고 오로지 성평등을 내세울 뿐이라는 이들의 말을 듣다보면, 종종 헛웃음을 유발시키는 주장들이 나온다.

  1. 여성을 혐오하는 것이 사회 전반의 보편적 문화라는 주장
  2. 대부분의 남자들이 여자를 섹스 인형으로 여긴다는 주장
  3. 남자들 사이에서는 강간을 가르치는 문화가 존재한다는 은하선의 주장

주장 1에 대한 내용은 필자가 이전 칼럼 <여성은 진짜로 ‘타자화’됐을까>에서 ‘여성혐오’를 여성에 대한 ‘타자화’로 바꾸어, 그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주장이며,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주체와 타자, 가해자와 피해자 따위가 아닌 쌍무적이고 상호보완적 관계였다는 걸 설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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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주장 2와 3은 주장 1의 연장선상으로 이어진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믿고 있는 이들에겐 굳이 반박의 가치가 있을지 의문이 들 법한 터무니없는 주장이지만, 두 가지의 주장 모두 유명한 페미니즘 이론 ‘강간문화(Rape culture)’의 하위 항목들이어 필자의 입장에선 충분히 반론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됐다. 강간문화 이론은 페미니스트들이 남성들의 사회와 남성성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부족한지 알려주는 좋은 예시이기도 하다.

1900년대 뉴욕 래디컬 페미니스트 집단 NYRF(New York Radical Feminists)의 임원인 수잔 브라운밀러는 남성이 사회를 통제하고 여성을 지배하기 위한 주요 수단이 강간이라 말한 바 있다. 리베카 솔닛은 자신의 책 <맨스플레인>에서 강간문화를 ‘강간이 만연한 환경, 미디어와 대중문화가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규범화하고 용인하는 환경’이라고 정의했다. 또한 페미위키의 ‘강간문화’ 파트에선 “모든 여성은 강간의 피해자”라며 아래와 같은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출처 페미위키

여기에서도 강간을 ‘성폭력을 규범화하고 용인하는 환경’, ‘모든 남성이 모든 여성을 공포 상태로 몰아넣는 의식적 과정’이라는 식으로 사회적으로 공인된 어휘의 의미를 자의적으로 재정의해 사용하는 나쁜 언어습관을 볼 수 있다.

먼저 ‘강간’은 간음을 기준으로 하는 법률 용어이고,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폭행 또는 협박 따위의 불법적인 수단으로 사람을 간음함”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내가 강간을 당한 것과 같이 느꼈다”는 식의 주장을 펼친다고 해서 그것이 강간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그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까지 아예 헛소리로 치부하려는 건 아니다. 역사적으로나 현대 사회를 보더라도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욱 정절이 요구되는 건 엄연한 사실이고, 학교나 가정에서 하는 밤길 조심(강간 조심)하라는 조언 따위가 여성들의 공포감을 유발시키고 그것이 은연중에 여성들을 수동적으로 사회화하지 않는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강간을 조장하는 문화로 연결되는 주장은 터무니없을 정도의 지나친 논리적 비약이지만 그 안에는 분명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논리 비슷한 것이 있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이들의 주장을 한 번 정리해보겠다. 일단 강간의 대상이 여성이라면 강간의 주체는 당연히 남성이 될 것이다. 모든 여성을 강간 피해자로 만들어 버리는 그 환경의 주체가 여성들은 아닐 테니 말이다.

그리고 여성을 섹스 인형으로 보고, 강간 대상으로 본다는 주장들은 기본적으로 남성이 성적으로 문란하고 폭력적이라는 걸 전제한다. 덧붙여서 남성‘중심’사회의 전반적 풍토가 강간을 규범화 시키고 있다고 하니, 이를 다시 말하면 남성‘중심’사회의 남자들은 어려서부터 같은 남자들로부터 문란함과 폭력성을 터득하며 자란다는 말이 성립된다.

즉, 이들의 주장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강간을 부추기는 메커니즘을 남자들이 끊임없이 학습하고 재생산하며 하나의 강고한 사회구조로 자리 잡게 만든다는 것이다.

강간문화를 언급한 은하선(출처 EBS 까칠남녀)

하지만 생각해보자. 과연 여태까지 인류가 단 한 번이라도 강간이나 성범죄를 옹호했던 적이 있던가? 여성을 강간하거나 강간과 관련된 농담을 하는 남자들이 ‘상남자’였는가? 더군다나 여성의 정절을 침해하는 행위가 예나 지금이나 씻을 수 없는 반인륜적 범죄였다는 사실은 초역사적 상식과도 같다.

무엇보다 이들은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놓치고 있다. 정절을 강요받고 수동적인 사회성이 요구되는 게 ‘규범화된 여성성’이 가지는 특징이라면, 바로 ‘규범화된 남성성’이 가지는 특징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대부분의 페미니스트는 여기서 사고가 정지되거나 자신들의 이론을 끼워 맞추기 위한 상상으로 대충 매듭짓고 넘어가는데, 안타깝게도 ‘강간’을 용인하고 조장하는 문화는 ‘규범화된 남성성’과 거리가 한참 멀다.

오히려 페미니스트들의 상식과는 정반대로 사회가 규범화시켜온 남성성이라 함은 대부분의 경우 여자를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데에서 발현된다. 사사키 마사노리 외 3명의 <남성학과 남성운동>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가부장제라고 불리는 사회적 구조 하에서 남성에게 규범적으로 강요되어 온 남성성은

  1. 여성을 보호해야한다는 것
  2.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말 것
  3. 강해야 할 것

으로 정리될 수 있다. 규범화시켜왔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그 사회의 ‘정상’을 구분하는 기준이다.

따라서 여성의 정절을 침해하는 강간은 절대로 ‘정상’이라는 범주에 포함될 수 없는,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을 행위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은하선이 말한 것처럼 남성들은 강간을 가르치기보단 정반대로 강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보는 것이 훨씬 상식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을 보호하지 않고 강간 내지는 성적 소비 대상으로 취급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적대세력’내지는 ‘적국’을 묘사하는 선동문구로 사용되곤 했다.

박형지(연세대 교수), 설혜심(연세대 교수)의 <제국주의와 남성성>에 따르면, 1857년 세포이항쟁 당시 영국은 원주민 폭도들에 의해 영국 여성이 성적으로 유린당하는 것을 선전함으로써 항쟁으로 인해 죽어간 영국 남성들의 이미지로부터 사회적 관심을 돌려놓았다고 한다. 또한 이옥순 인도문화연구원장의 저서 <여성적인 동양이 남성적인 서양을 만났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영국은 ‘인도인들이 고귀한 영국 여인들을 성폭행한다’는 보도를 연이어 올렸다고 한다.

이러한 서사는 강간의 대상으로 영국 여성이 유린당하는 것과, 폭동의 대상으로 제국주의가 유린당하는 것을 교묘하게 동일시했고, 여성을 제국주의 자체를 상징하는 표상으로 만들어 놓았다. 세포이항쟁은 독립을 염원하는 인도인들의 반제국주의적 투쟁이 아닌, 영국의 여성성에 대한 공격이자 영국적인 정체성의 핵심 가치를 공격하는 행위로 그려지게 됐다.

1857년 발발한 세포이항쟁

물론 세포이항쟁 당시 인도인들의 영국 여성에 대한 폭행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보다 훨씬 심했던 영국의 잔혹성을 감추고 적군을 더욱 악랄하게 묘사하기 위한 용도로 젠더 이데올로기를 이용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당시 여성의 희생이 부각된 반면 남성의 희생은 지워졌거나 의도적으로 묻혔다는 것이다. 강해야한다는 남성성이 부각됐다고 볼 수도 있으나, ‘남성의 희생’은 ‘적군에 의해 정절을 침해당한 여성’에 비해 사람들의 분노를 유발시키는 자극제로서 부족했다는 근거는 충분히 가능하다.

또한 이건 약간 성격이 다른 예시지만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시민 측에서

계엄군이 여대생의 국부를 찌르고 유방을 대검으로 도려냈다.
계엄군이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를 끄집어내어 길가에 뿌렸다.

는 유언비어가 돌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적 근거 확인 후 실제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여대생의 유방을 칼로 도려냈다는 말은 허위성이 있으며, 가슴이 헤쳐진 걸 봤다는 목격자의 증언만이 존재했다. 또한 이어진 분석에선 대검의 기능상 절단은 불가능했다고 한다.

최종적인 검토 결과 여대생의 유방을 도려냈다는 말은 계엄군에 대한 투쟁의식을 유발키 위해서 의도적으로 유포된 것으로 판단됐다.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를 길가에 뿌렸다는 내용 또한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다(이는 필자가 5·18 재단으로부터 직접 받은 근거자료다). 필자는 여기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이끈 시민들의 정신을 희석시키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적에 의한 여성의 희생 내지는 피해’가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만약 페미니스트들이 말하는 ‘강간문화’의 의미대로 사회가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규범화시켰다면 분노를 자극시킬 수도 없었을 뿐더러 그런 젠더이데올로기가 무기로 쓰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세포이항쟁의 경우엔 젠더이데올로기가 자신들의 죄악을 가리기 위한 용도로 쓰였다면, 광주 항쟁에선 신군부정권에 대항하기 위한 시민들의 투쟁의식을 더욱 강화시키기 위한 자극제로 쓰인 셈이다.

이러한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여성의 정절을 해치는 행위는 사회적으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죄악이었으며, 남성성과도 거리가 멀었다. 만약 여성을 보호해야하며, 감정을 드러내지 말고, 강해야만 한다는 남성성이 강간을 초래한다는 어떤 타당한 인과관계를 누군가 설득력 있게 설명해준다면 필자도 납득을 하겠다.

물론, 더 이상 “도깨비가 지나가자 불이 났다”는 식의 논리적 비약이 가득한 말은 듣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