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수영장, 대박인생장

[리뷰] 안녕달 <수박 수영장>

안녕하세요, 글 쓰는 ‘서연’입니다.

바쁜 업무, 더운 날씨에 정신 챙길 여유가 없었는데 며칠 전 저녁 식사를 하던 중 엄마가 ‘드르륵’ 달력 찢는 소리에 6월이 온 것을 알았습니다. 초여름인 것이죠. 단지 시간이 흘러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으로 성큼 들어선 기분이 들었습니다.

추위를 심하게 타는 체질 탓에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여름인 필자는 그래서인지 제일 좋아하는 과일도 수박인데요, 마침 그날 냉장고 안에는 두 쪽으로 갈라놓은 선홍빛 수박이 들어있었거든요. 보고만 있어도 시원해지는 수박을 보면서 또 다시 내게 온 한 계절을, 나의 생의 일부인 이 여름을 잘 보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면 조금 우스울까요?

바빠도, 더워도, 불쾌지수가 높아져도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을 귀하게 여기고 아껴 살면 어차피 막을 수 없이 가는 시간을 가장 잘 보내주는 삶의 태도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수박 수영장>(안녕달 지음 / 창비 출판)

그래서 오늘 나눌 책은 <수박 수영장>이라는 제목의 그림책입니다.

안녕달 작가는 특유의 둥글고 사랑스러운 그림체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데요. 수박 수영장에서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녹인 스토리와의 시너지로 더욱 그 효과가 부각되는 것 같았습니다.

여름 해가 내리쬐는 시간, 그 빛을 다 받아 딱 좋게 익은 수박이 쩍 벌어지면 올해의 수박 수영장이 개장합니다. 아이들은 허리에 튜브를 끼고 ‘다다다다’ 잰걸음으로 동네친구들과 수영장에 도착하는데요, 높고 커다란 수박 수영장에 사다리를 설치해 오릅니다.

그리고는 수영장 안에 ‘철퍽’ 발을 담그면 차가운 수박이 뭉개지면서 붉은 물이 고여요. 이제 아이들은 씨를 피해 수박물 안에서 수영을 합니다. 정신 없이 놀다 보면 어느새 해가 머리 꼭대기에 다다른 한낮인데요, 볕이 따가울 정도로 무더운 이 시간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구름장수인데요, 구름 양산과 먹구름 샤워로 사람들의 열을 식혀주는 고마운 존재죠.

구름 양산으로 차양을 하고 수박물 위에 튜브를 띄우고 두둥실 드러누운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이런 상상이 단지 어린이들만의 것은 아니니까요.

수박 수영장의 한 장면

필자만해도 수박을 두드릴 때 통통 울리는 소리와 수박을 가를 때 느껴지는 서걱거림에서 통쾌함을 느끼기도 하고, 수박의 둥근 모양을 헤치지 않고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숟가락으로 수박을 파먹고 난 후 껍질을 모자처럼 쓰거나 화채 그릇으로 이용할 때 재미를 느끼기도 하거든요.

실제로 여름 시즌 한정 메뉴를 고려해야 하는 카페에서는 수박 껍질을 여러모로 활용하는 이색 아이디어를 선보여 소비자들에게 웃음을 선물하기도 하죠. 같은 맥락에서 요즘은 그림책이 어린이들만을 위한 창작서가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치유서라는 인식도 널리 퍼져있는 것 같습니다.

이어 다음 장면에서는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위해 수박 껍질을 활용해 미끄럼틀을 만들어주는데요, 그렇게 미끄러져 다른 칸으로 이동하고 헤엄치고 이동하고 헤엄치다 보면 어느새 해가 집니다. 이제 집에 갈 시간이에요. 작가는 해가 지는 장면의 전환을 나뭇잎이 떨어지는 가을로, 수영장 안에 세워진 수박 눈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는데요, 그런 디테일함이 웃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수박 수영장의 한 장면

책의 마지막 장면은 텅 빈 수박 껍질 안에 남은 숟가락 몇 개와 검은 씨들뿐이에요.

하지만 괜찮아요. 수박 수영장은 내년에도 열릴 테니까요.

그래요, 괜찮아요. 벌써 절반이 지난 올해의 목표가 아직 빛을 발하지 못했더라도, 맛있는 수박을 실컷 맛보지 못했더라도, 어느덧 해가 저버려 어두운 밤이 되었더라도, 그 어떤 시간, 계절 속에서도 삶은 계속 진행 중이며 나 자신이 나인 것만은 변함없는 진실일 테니까요. 내 마음에 품은 별 하나만 확실히 있다면 어둠 속에서도 그 빛은 제 몫을 톡톡히 할 테니까요.

꼭 깊은 사유만이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인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때로는 옳아서가 아니라 좋아서 하는 일도 필요한 법이죠. 편안한 여유와 자연스러운 유머, 내 안에 별을 향한 긍정으로 점점 더워지는 이 계절을 맞이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햇살의 열기만큼 높은 열정과 수박의 물기만큼 시원한 마음만 있다면

정말로 괜찮아요. 대박인생장은 우리에게 열릴 테니까요.

끝으로 김훈 작가의 수박에 관한 에세이의 한 구절로 이번 원고를 마칠까 합니다.

수박의 경이로움은 식물학자들도 설명할 수 없고 인간의 언어로 바꾸어놓을 수 없는 것이므로 이 축복에 동참하려면 입과 코를 깊숙이 박고 몸속으로 빨아들이는 것 이외에는 달리 아무런 방법이 없다.
<라면을 끓으며>(김훈 지음 / 문학동네 출판)

이 축복에 기꺼이 동참하려 입과 코를 깊숙이 박고 수박을 먹었던 ‘서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