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하일지 “인격 살해당했지만 새로운 소설 쓰겠다” 2

하일지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가 강단을 떠나 작가의 길로 되돌아가기로 한 지 석달이 지났다. 올해 3월 14일 동덕여대 1학년 전공필수 강의 ‘소설이란 무엇인가’ 수업의 자료로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과 때마침 불붙은 ‘미투운동’을 연관지어 발언한 것이 논쟁의 발단이 됐다. 수업 시간 중 작품 해설이 원인이 돼 끝내 강단을 떠나게 됐다.

게다가 2년 전 재학생을 성추행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지며 더 큰 논란이 됐다. 19일 동덕여대 백주년기념관에서 하 교수는 기자회견을 끝으로 소설가로 돌아갔다. 기자회견장에 몰려든 학생들은 고성과 야유로 응수하며 하 교수의 공개사과를 요구했으나 그는 단호히 거부했다.

하 교수는 1990년 당시 문제적 장편소설이라는 평을 얻은 작품 <경마장 가는 길>로 등단한 지 올해로 28년째를 맞았다. 그동안 꾸준히 소설과 시집, 소설 이론서 등을 발표했으나, 그는 현재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단을 떠난 하일지 작가를 만나 그의 말을 들어보기로 한다. 인터뷰는 지난달 8일 이메일로 진행됐다. 인터뷰어 주

-안녕하십니까? 라고 묻기에 조금 민망하지만, 근황이 궁금합니다. 어떻게 지내십니까? 작가의 길로 되돌아가겠다고 선언했는데 혹시 작품이라도 집필 중이신가요?

아직은 집필에 착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언론과 학생들의 난데없는 비난에 정신적 충격이 좀 컸습니다. 문화혁명 당시 느닷없이 들이닥친 홍위병들에 의해 온갖 수난을 당했던 중국의 노학자나 문인들의 심정이 저와 비슷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왜 그런 비난을 받아야 했는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비난 받아 마땅한 짓을 한 적이 없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그동안 저에게 닥친 상황을 정리하느라 집필에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외국에서 손님들이 오셔서 손님맞이로 경황이 없습니다. 손님들이 돌아가시면 집필에 착수할 예정입니다.

-문예창작과 수업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20년 가까이 강의를 하셨다. 그런 문예창작과에서 가르치는 학생들, 더구나 수업 시간 강의 자료로 활용한 문학작품이 발단돼 결국 강단에서 물러났는데, 동덕여대 사표 수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학교 측의 진상조사위원회 진행 상황도 함께 말해 주십시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강의 자료로 활용한 문학작품이 발단’이 된 것은 아닙니다. 소설 구성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미투운동에 심취한 몇몇 학생들이 제 강의의 진의는 듣지 않고 몇몇 부분을 악의적으로 발췌한 후 왜곡 편집해 퍼트린 것이 발단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언론이 철없는 학생들이 퍼트린 것을 생각 없이 받아 무슨 경천동지할 일이 일어난 것처럼 떠들어댄 게 사건의 전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론과 학생들은 사과를 요구했고, 저는 단호히 거절했는데, 이것이 위기라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제가 기자회견을 열어 강단을 떠난다고 선언한 것이 절정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렇다면 이 이야기의 대단원은 무엇일까요?

훗날 사람들은 한 문학 교수가 강의실에서 한 발언이 미투운동가들의 심기를 건드려 결국 강단에서 물러난 사태를 두고 한국사회에서 일어난 가장 아이러니하고도 코믹한 사회·문화적 사태 중 하나로 오랫동안 이야기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바로 이것이 대단원입니다.

사표 수리 문제를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 저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 학교에서 현명한 결정을 내리라고 믿을 뿐입니다.

3월 19일 하일지 전 동덕여대 교수의 기자회견

-3월 19일 기자회견장에서 이런 말을 하셨다. “내가 가르치는 과목은 사회학이나 정치학이 아니라 소설 과목이다. 나는 소설을 가르친다. 소설에서는 때때로 자신의 이념과 다른 것들도 있을 수 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대한 김지은씨의 성폭행 폭로를 두고 질투심에 의한 것이라는 발언이 미투 비하, 2차 가해라는 거센 항의로 이어졌다.

저는 미투를 비하할 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김지은씨라는 분을 2차 가해나 할 만큼 그이와 무슨 원한 관계에 있지도 않습니다. 저는 다만 소설 강의시간에 학생들에게, 언표된 감정과 실제 감정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일깨우고 싶었습니다. 자기 자신도 믿지 못하고 실천하지 않는 원리주의적 정의감, 순혈주의적 윤리관에 따라 글을 쓴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저의 젊은 시절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중 앞에 인격 살해를 당했다, 문학 교수로서 자존심 깊이 상처를 입었다고 하셨는데요.

사실 지난 20년 동안 저는 나름 애정을 가지고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쳐왔습니다.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언론 덕분에 저의 강의 <소설이란 무엇인가>가 시정잡배들이나 하는 잡설 수준으로 사람들은 오해하게 됐는데, 그 점이 저에게는 가장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데, 강의를 귀담아 들은 학생들 중에는 그 강의를 통해 많은 것을 깨우치게 됐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강의에 대한 역대 강의평가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3월 14일 수업이 있은 직후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학생들이 교내 ‘하일지 망언 대자보’가 붙었어요. 동백꽃 점순이 이야기부터 예를 드는 문학작품도 여성들은 희롱의 대상이고 부수적인 존재다 등 온갖 말들이 쓰여 있었는데 할 말이 있으실 거 같아요.

이것은 분명히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에 해당합니다. 그들이 대자보에 올린 글 중 대부분은 내가 한 말이 아니며, 어떤 것은 학생들이 발표하는 소설작품의 여러 국면들에 대하여 학생들과 합평하는 시간에 오고간 이야기를 앞뒤 거두절미하고 악의적으로 왜곡해 만든 말들입니다. 그런 허위사실 유포야말로 가장 잔인한 인격살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7일 동덕여대 성폭력 비상대책위원회의 ‘동덕인의 인권은 죽었다’는 학생 인권 장례식

-문예창작과는 상상력, 감성, 사회적인 문제의식과 비판 정신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수업 시간의 작품 하나로 시작된 문제를 토론과 비판, 논쟁으로 해결할 수는 없었을까? 개인적으로도 상당히 안타깝습니다. 하 교수님이 생각하는 문예창작의 현실, 문학적 탐구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요?

역대로 토론과 논쟁이 비교적 활발했습니다. 수업 분위기는 비교적 활기찼고, 웃음이 그치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올해에는 가벼운 농담도 농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게 이상했습니다. 미투라는 이념이 학생들을 경직시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역시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작가가 되는 것도 다 학생 개개인의 운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이 아무리 애써도 안 되는 사람은 안 되고, 그냥 둬도 될 사람은 되는 것 같습니다. 교육 현장에 오래 있다 보니 나 자신도 모르게 운명론자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의혹 중 하나가 2년 전, A씨라 불리는 재학생이 성추행 당했다고 미투 고발을 했어요. 이에 하 교수는 최근 A씨를 ‘허위사실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및 협박’으로 고소했다고 알려졌는데 진실은 무엇인가요?

그 문제에 대해서는 검경의 조사 중이니 말을 절제하는 게 옳겠습니다. 한 가지만 말하면, 소위 A씨의 고백 역시 언표된 것과 진실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저는 증거들을 통해 입증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저는 저 자신의 결백을 믿습니다.

-최근 A씨는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서를 접수했던데요?

그렇게 들었습니다. A씨가 저를 경찰에 고소해주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끝내 그렇게 하지 않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다고 합니다. 그가 정말 저한테 피해를 입었다면 고소를 하는 게 마땅할 텐데 말입니다. 인권 문제라면 제가 그로부터 침해를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하 교수 정도의 문학 커리어와 문단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감안하면, 현재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고 자조할 정도로 힘든 상황에 처해있는 하 교수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문학계 전반에 걸쳐 아무런 반응이 없어요. 몸조심인지, 아니면 침묵의 카르텔인지? 오랫동안 한국문학을 읽어 온 독자 입장인 필자로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저는 본래 문단이라는 것에 소속된 적도, 어떤 조직에 봉사한 적도 없지만, 굳이 문단이 나설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단순히 문학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이영희 선생님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나서서 저를 편 들지 못하는 것도 미투 광풍이 워낙 무서워서 다들 몸을 사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저를 지지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그런 분들이 나서서 제가 못다 한 말씀들을 하시겠지요.

-문학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개인적으로 하일지 교수의 소설 <누나>를 가장 좋아하고 재밌게 읽었습니다. 1990년 대 초반 포스트모더니즘 경향에서 벗어나 본격 서사성을 담아낸 이야기라 소설 작풍의 변화를 느꼈습니다. 자신의 소설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들려줄 수 있는지요?

저는 지금까지 12권의 장편소설을 출판했습니다. 작가로서 저에게 항상 어려운 과제는 매 작품마다 형식적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마장 가는 길> 이후 지금까지 저는 12권의 장편소설을 발표했습니다만, 작품마다 다른 형식을 추구하는 것이 저에게는 언제나 어려운 숙제였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저는 <누나>를 탈고 했을 때 몹시 기뻤습니다. 이 작품에서 저는 또 다른 형식적 탐구를 성공리에 완수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 작품에서 이룩한 형식적 탐구란 화자의 독특한 진술에 있습니다.

사실, 소설은 독자들로 하여금 화자가 들려주는 서술을 액면 그대로 듣고 믿게끔 씌어져 있는 구조물입니다. 그런데 저는 오래 전부터 소설에 있어 화자의 진술을 우리는 왜 있는 그대로 신뢰하게끔 구성돼 있는가, 믿을 수 없는 화자의 진술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 수는 없을까 하는 데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화자의 진술로 이루어진 소설에 대한 저의 실험은 제가 최초로 발표한 단편소설 <승천>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서술은 황당하기 짝이 없는 허풍쟁이의 말이지만 독자들은 그 황당함에 매료되는 것입니다. 믿을 수 없는 화자의 서술로 이루어진 소설을 본격적으로 실험한 것은 <누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열두 살짜리 시골 소년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황당하기 짝이 없지만 그것들이 모여 신화적인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인문학의 퇴조시대라 생각됩니다. 직설적으로 말해 인문학은 망해가고 있는 게 아닐까요. 인문학의 중심인 문학 역시 날로 약화돼고 있고요. 대학은 교양교육을 통해 합리적이고 지성적인 사고와 모든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는 곳이지요. 인문학을 통해 글을 쓰고, 생각하고, 말하는 법을 배워 장차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그런 의미에서 문예창작과의 역할도 중요할 텐데, 한국 문학의 미래는 어떻습니까?

어떤 학문의 흥망성쇠는 상업주의와 궤를 같이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인문학이 망했다고들 말하는 것은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들의 취업률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지원자도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 사회를 견인하는 것은 결국 그 사회 구성원들의 인문학적 소양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인들을 놀라게 한 한국의 촛불혁명은 한국인들의 인문학적 소양이 높다는 것을 말합니다. 북한의 경우는 공대, 의대, 사범대 등은 발달됐지만 인문사회대학은 김일성종합대학을 제외하고는 없다고 들었습니다. 인문학적 소양이 낮기 때문에 독제체제를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4차 범국민행동(촛불집회)

젊은 시절 한때 저는 고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한 바 있습니다. 근무했던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을 만나 담소를 나누던 중, 교장선생님이 저에게 ‘밖에 나가보니(즉 학교를 떠나 바깥세상)’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장 중히 가르쳐야 하겠냐고 물었습니다. 이 물음에 대하여 저는, “뭐니 뭐니 해도 ‘말’을 중히 가르쳐야겠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사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학벌이 높았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분들은 말을 잘했습니다. 한 사회를 이끌어가는 것은 말이고, 말을 잘하는 사람이 그 사회의 리더입니다. 그리고 인문학은 바로 말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한국은 인문학도 급속히 발달하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한국문학도 나날이 발달해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한국문학이 해외에 번역·출판되는 것도 전에 없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문예창작과는 유망한 학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시절에 비해 오늘날 학생들은 스스로에 대한 신념이 그다지 높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문학교수법이 아직도 그다지 발달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현재 웹 소설은 성장하고, 본격 소설은 악화일로 아닐지요. 동의하실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하 교수를 본격 소설의 마지막 주자라 여기고 있습니다. 대학 강단을 떠난다고 선언했을 때 “이제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면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2014년 발표한 <누나>이후 작품이 없는데요. 향후 작품 계획은?

강단을 떠나 작가의 길로 되돌아간다고 했으니 이제 저의 직업은 전업 작가입니다. 앞으로 새로운 소설을 쓰는 것이 저의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