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폭등은 ‘하이퍼 디플레이션’?

아직 대다수 국민은 비트코인 하나쯤 사보지도 않았을 것이지만, 비트코인의 경제학이 사뭇 흥미롭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이건 투자자로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취미 경제학도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이야기다. 하이퍼 디플레이션이라는 놈을 구경하게 생겼다.

비트코인이 진짜 의미 있는 화폐라고 해보자. 최소한 투기적 요인을 떠나더라도 ‘화폐’를 지향하고 있는 물체임은 사실이니까. 아니, 비트코인이라는 대상에 섞인 여러 사람의 복잡한 질투 시기심 혹은 애착에서 자유롭게 이야기하려면 새로운 가상의 화폐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실제 저런 돌을 화폐로 쓰는 섬도 있다고 한다. 화폐는 결국 상호 간의 약속이 담긴 어떤 가상의 가치다

어느 섬에서 새로운 화폐 ‘전복 껍질’을 도입한 이야기라고 시작해보자. 어느 날 섬 주민들의 일부가 ‘전복 껍질’의 화폐적 가치에 환호하기 시작했다고 해보자. 화폐라는 것이 의례 그렇지만, 남들이 가치를 인정하면 실제 교환가치와 투자가치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주민의 10%가 갑자기 전복 껍질로 모든 물물 교환을 시작했고, 시장에 있는 몇 안 되는 전복 껍질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 시작했다고 해보자.

전복 껍질의 효용성에 관해서 이야기하자면 이 섬 주민들의 불만을 정확히 이해해야 하는데, 일전에 섬의 주인은 화폐를 ‘새우 대가리’로 공식 인정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섬의 주인이 새우잡이를 통제하고, 새우가 많이 잡히는 곳을 독점하더니 어느 순간 새우 대가리를 마구 가지고 와서 주민들의 물건을 사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물가 상승이 발생했다. 새우 대가리 하나를 가지고 밥 한 끼를 사 먹을 수 있었는데, 어느 순간 보니 새우 대가리 열 개가 있어야 밥을 먹을 수 있고, 얼마 후에는 스무 개가 필요하고, 그런 식이었다.

그러니 성실히 일해 새우 대가리로 저축을 한 사람들은 불안했다. 저축을 해봤자 새우 대가리의 가치가 떨어지고, 나머지 물가는 올라가는 이런 ‘물가 상승’에 짜증이 났다. 섬의 주인이 새우 대가리의 물량을 마음대로 조정하면서 계속 늘려가는 것도 신뢰가 가지 않았다. 무엇보다 새우 대가리의 공급량이 이론적으로 무한에 가까웠다.

그런데 전복 껍데기는 오로지 수십 미터를 잠수해서 자연산 전복을 직접 캐는 노고를 한 사람만이 공급량을 하나씩 늘릴 수 있는 구조였다. 인근 해안의 전복을 캐면 캘수록 전복은 캐기 어려워졌으므로, 이론적으로 전복의 채취량은 매우 제한적이다. 이 부분에서 주민들은 환호했다. 제한적이기만 하다면, 화폐 가치가 널 뛰고 주민들의 행복이 복불복에 의존해야 할 일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사진=전복 껍데기

그런데 전복 껍데기의 재밌는 습성은 작게 쪼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쪼갤 수 있다 보니 단위가 의미가 없어졌다. ‘만분의 일 전복 껍데기’도 만들 수 있었고 ‘일억분의 일 전복 껍데기’도 만들 수 있었다.

사람들의 환호에 따라 전복 껍데기 하나의 가격은 폭주했다. 단위가 쪼개지다 보니 아무리 비싸져도 비싸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가진 물건을 팔아 전복 껍데기의 만분의 일이라도 사기만 하면 가격이 오르기 때문이었다. 1000만원어치 사면 그것이 1100만원이 됐고, 1억원어치 사면 그것이 1억1000만원이 됐고, 100원어치 사면 110원이 됐다.

화폐적 입장에선 이렇게 화폐 자체의 가격이 마구 치솟는 현상은 ‘하이퍼 디플레이션(물가가 초고속으로 하락하는 현상)’이다. 하이퍼 디플레이션은 인류가 겪어본 적이 거의 없다. 화폐를 못 믿는 일은 있어도 화폐를 짧은 시간에 광신하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화폐는 대부분 중앙정부나 힘 있는 자들이 발행했다. 화폐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거나, 특정 중앙정부에 대한 신뢰가 폭발하는 일 둘 중의 하나가 발생해야 했는데 둘 다 지금껏 보기 힘든 일들이다. 한마디로 현물 화폐는 심리적 장벽이 있어 그렇게 빠르게 역가속하기 힘들다.

지난주에 만원짜리 한 장으로 너구리 열 개를 살 수 있었는데 이번 주에 만원짜리 한 장으로 너구리 쉰 개를 살 수 있게 된다면, 그 너구리의 유통 과정에 있는 모든 이들이 일종의 심리적 저항을 느낄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경제 현상이다.

예외가 있다면, ‘하이퍼 인플레이션(물가가 초고속으로 상승하는 현상)’을 겪고 있는 사회에서 달러화 등 기축통화(세상에서 제일 힘 있는 나라의 화폐)에 대해 ‘상대적’으로 엄청난 신뢰 폭주가 있었던 적이 있다.

가까이는 짐바브웨의 사례가 있겠고 멀게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에서도 발생했다.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은 독일인을 더 존중하고 더 심리적으로 가깝게 느끼는 성향이 있을지 몰라 독일의 사례를 살펴보겠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은 전쟁을 일으켜 주변국에 끼친 피해에 대해 엄청난 전쟁 손해배상을 해야 했다. 특히 독일에게 분노를 느낀 프랑스인의 정서 때문에, 독일은 물리적으로 절대로 갚을 수 없는 당시 돈 약 33조원(330억 달러에 대한 1000원 환율로 계산)을 청구받았다.

이를 갚자고 죽자고 노력했지만, 불가능함을 깨달은 독일 정부는 돈을 찍어내서 갚기 시작했다. 매일 1000억씩 찍어서 이웃국에 휙 부채를 까라고 던져준다거나 하는 식이다. 돈을 찍어서 갚아봤자 그 돈을 받은 외국인들이 다시 독일로 돈을 가지고 들어와 물건을 사재끼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환율이 약해져서 더 많은 돈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돈을 갖고 돌아오는 속도를 앞지를 수 있도록 돈을 죽기 살기로 찍어댔다. 물가는 악귀처럼 치솟았다. 아침에 우유가 1억원 하다가 오후엔 2억원 하는 식이었다. 월급을 받아 슈퍼마켓으로 달려가는 사이 우윳값이 더 올라 우유를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이 아직도 독일인들을 괴롭히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의 악몽이다.

돈이 아니라 쓰레기

이때 재밌는 이면이 있었으니, 환율이 약해지는 속도가 돈을 찍어내는 속도를 더 앞서가며, 달러를 가진 자가 엄청난 권력을 가지게 된 점이다. 예컨대 달러로 월급을 받는 주독 미군들은 달러로 독일 부동산들을 손쉽게 사들일 수 있었다. 달러 ‘대비’ 독일 부동산이 초고속으로 폭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오늘 1억원어치 달러면 집을 한 채 살 수 있는데 내일은 1억원어치 달러로 집을 두대 살 수 있는 식이었다. 혼란 속에서 아무도 제대로 된 가격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모두가 그저 일초라도 빨리 마르크를 팔고 달러로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꾸준히 달러가 들어오는 미군들은 돈을 끌어모아 계속 헐값의 자산을 사들였다.

8.9마르크가 1달러이던 시절에서, 1달러를 사기 위해 4.2조마르크가 필요하던 날까지 마르크의 단위가 줄기차게 폭등했고, 가치는 줄기차게 폭락했다. 이는 1달러 기준으로 본 것이지만 역으로 생각해보자. 10마르크가 현재의 1000원권이라고 상상해보면 조금 더 구체적인 느낌이 온다. 1000원으로 1.12 달러를 받을 수 있었는데 불과 몇 년 사이 1000원이 0.00000000000238(소수점 밑으로 0이 11개)달러가 된 것이다.

1조원 현금을 들고 있던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달러를 받으려고 하니까 0.25 달러 밖에 못 받는 상황이 된 셈이다. 길거리에서 담배 한 개비 사서 필 수 있는 수준일까. 그러니 1달러를 가진 사람은 이제 독일에서 이재용의 전 재산을 사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당시 독일인들은 ‘달러’ 대비 하이퍼 디플레이션을 겪은 셈이다. 모든 물가가 달러 기준으로 폭락하고 있었다. 새로운 화폐를 가진 자는 팔자를 고치고, 새로운 화폐가 없는 사람은 무서운 속도로 자산이 사라져갔다. 특히나 옛날의 화폐를 가지고 있다면 일초라도 빨리 처분하는 것이 답이었던 시절이다.

사진=기축통화 달러

다시 비트코인으로 돌아와 보자. 비트코인이 새로운 화폐로서의 가능성 때문인지 폭등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가 일찍이 본 적이 없는 하이퍼 디플레이션과 흡사하다. 현물이 폭등하거나 화폐의 가치가 하락하는 것은 익숙하지만, 화폐 자체가 다른 것 대비 상대적으로 폭등하고 나머지 모든 것의 가격이 그 화폐 대비 폭락하는 현상을 겪은 적은 정말이지 없었다.

몇 년 전에는 집 한 채의 가격이 예컨대 1억 비트코인이었다면, 지금은 30 비트코인으로 폭락했다. 얼마 후에 3 비트코인으로, 그 후에 0.3 비트코인으로, 그 후에 0.03 비트코인으로 하락하는 세상을 상상해보자. 0.03 비트코인이 있어야 집을 살 수 있는데 월급은 0.00003 비트코인 밖에 안돼 살 수가 없다고 해보자. 모든 것의 물가가 비트코인 대비 폭락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비트코인 애호가들에겐 비트코인을 사는 것만이 생존의 길일 수 있겠다. 그런 이유로 투기는 이어지는 것이겠지만.

그러나 첫째 그런 사회가 세상에 이로울 리 없고 둘째는 그런 현상이 생뚱맞게 지속할 수도 없다. 만일 그렇다 한다면 인류는 지옥을 겪게 될 것이다. 어쨌든 경제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하이퍼 디플레이션이라는 인류 최초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기도 하고 오싹하게 하기도 한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아무도 비트코인을 단위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비트코인의 화폐적 유통량은 거의 무한해졌다는 점이 재밌다. 원래는 화폐의 유통을 권력자가 조작하는 것이 싫어서 만들어진 것이 암호화폐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정작 이제 비트코인의 총유통량이 1조원일 수도 있고 10조원일 수도 있고 100조원일 수도 있고 1000조원일 수도 있고 1경일 수도 있고, 시장이 정하기 나름이 되어버렸다.

시장에 동참하지 않은 사람은 모두 바보로 만들거나 거지로 만들 참일까. 비트코인 참여자만 떼부자가 되고 정확히 그만큼 나머지 모든 사람은 가난해지는, 새로운 종류의 부익부 빈익빈이 발생하려는 것일까. 그러나 매우 새로운 형태의 이런 ‘사회 전체의 자본을 날로 뺏어 신인류에게 분배한다는 현상’이 그 근본은 아주 많이 반복돼 온 현상임을 생각하면 씁쓸하다.

투기 참여자들이 부자가 될지 거지가 될지는 이 글의 주제가 아니지만, 최소한 나머지 인류들은 모두 몇 비트코인어치 더 불행해지게 생겼다. 필자가 매일 바뀌기를 소망하는 더 긍정적인 사회에서 우리를 백보 이상 멀어뜨리는 신종 자해인 것만 같아 아프다. 95%는 훌쩍 더 가난해지고 어딘가의 5%는 그 돈을 받아 부자가 된다면, 그 부자가 돈을 더 벌수록 나머지는 더 고통스러워질 뿐이다. 특히나 그것이 투기에 의한 것이라면.

비트코인 폭등은 ‘하이퍼 디플레이션’?은 2018년 1월에 작성한 글입니다.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