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형찬의 리얼한 대한민국] 황교익씨 그게 무슨 말입니까?

황교익 칼럼니스트 페이스북 갈무리
황교익 칼럼니스트 페이스북 갈무리

지난 수요일 tvN의 <수요미식회>를 보다 필자는 깜짝 놀랐다. 바로 음식 칼럼니스트 황교익씨의 발언 때문이었다. 그 날의 주제는 소고기 특수 부위였는데, 황씨는 우리나라의 음식 문화에서 소의 특수부위 요리가 발달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섬세한 입맛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면에서 보면 우리가 고기가 귀했기 때문이죠. 서양에서는 소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싼 고기니까 그냥 대충 맛있을 것 같은 덩어리 고기만 먹고 대충 나머지는 그냥 처리해버리고 말았는데, 우리는 비싼 소를 한 마리 잡았으면 어떻게든 다 발라서 먹어야 하는 거죠. 뼈 그것도 그냥 버리지 못한 거죠. 뼈도 다 끓여서 푹 고아서 국물 내서 먹고요. 재료가 풍부하므로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궁핍해야 요리가 발달한다. 소를 넉넉하게 얻지 못한 그런 환경에 의해서 그런 것이다 이렇게 해석할 수 있죠”
– 8월 17일 tvN <수요미식회> 中

먼저 이야기하면 특수 부위 요리는 우리만 있는 식문화가 아니다. 독일에는 우리의 족발과 같은 ‘슈바인학세(Schweinshaxe)’가 있으며, 프랑스는 사골 요리인 ‘오싸무왈(Os a moelle)’이 있다.

슈바인학세(Schweinshaxe)
슈바인학세(Schweinshaxe)

또한, 프랑스는 가정식 요리인 ‘포토푀(Pot au Feu)’에 닭의 뼈를 고아서 국물을 내기도 한다. 심지어 유럽 각국 또한 내장 요리를 비롯한 특수 부위 요리가 많다.

소시지는 도축업자(butcher)들이 개발한 것으로 부속물과 내장을 갈아 오래 보관하기 위한 것이 기원이었다.

그리고 소고기는 유럽에서도 귀한 식재료이며, 스테이크에 필요한 부위는 더더욱 고급 식재료이다.

그렇다면 황씨의 발언은 어떻게 나온 것일까? 바로 서양 음식에 대한 이미지가 ‘스테이크’로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경양식’을 고급 외식문화로 받아들였던 경제 성장기의 사람들은 서구 요리하면 대표적으로 ‘스테이크’만 떠올렸던 탓이다.

그런데 황씨의 발언은 문화적 관점에서 대단히 위험한 발언이기도 하다. 바로 우리 문화의 ‘궁박한 처지’를 강조하고 한국 요리의 발달 관점을 우리 민족 특유의 궁핍성에서 찾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네 역사에서 소고기가 대중적인 ‘요리의 주재료’가 된 시기는 오래되지 않았다. 심지어 돼지도 그렇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사람들은 ‘소’를 음식의 주재료로 보기보다는 농업을 위한 중요 자산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기근이 들어도 ‘소’는 잡아먹지 못하게 도축을 엄격히 금했다.

두 나라 모두 금살도감(禁殺都監)이 있었는데, 금살도감은 소와 말을 잡는 것을 감시하는 관청이었다. 바로 나라의 전략 자산이었기 때문이었다.

고려 전기의 경우, 서긍의 <고려도경>에 따르면, 고려 사람들은 불심이 강해 도축과 육식을 꺼렸다고 기록되어있다. 더군다나 고기를 해체하는 방법은 서툴기 짝이 없었다고 한다.

“고려의 정치는 매우 어질어 부처를 좋아하고, 살생을 경계한다. 따라서 국왕이나 재상이 아니면 양과 돼지고기를 먹지 못 한다. 또한 도살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다만 사신이 방문하게 되면 미리 양과 돼지를 기른다. (중략) 따라서 국이나 구이를 만들더라도 고약한 냄새가 없어지지 않으니 그 졸렬함이 이와 같다”
– <선화봉사고려도경> 권23 풍속 편 中

출처 EBS
출처 EBS

특히 조선시대의 경우에는 상업을 억제하고 자급자족 중심의 농업 경제를 기반으로 했으므로 고려시대보다 더 엄격했다. 나라에서는 ‘병들어 죽은 소’, ‘사고로 죽은 소’, ‘나이 들어 죽은 소’만 도축허가를 했다.

물론 왕 중에는 소고기를 즐겨 먹은 사람도 있으나 일반적이지 않았고, 밀도축에 대한 기록이나 명절마다 사람들이 소고기를 먹다가 적발되는 기록이 있었지만, 그것은 실록에 기록될 만큼 특별한 일이었다.

즉, 조선시대 때 소는 ‘식용 도축’이 아닌 ‘농사용 가축’으로서 귀했던 자산이었고, 단백질 공급원으로서는 다른 종이 채택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개’와 ‘닭’, ‘염소’, ‘꿩’, ‘오리’였다.

돼지 또한 크기보다 비용이 많이 들었다. 1927년 조선총독부의 <권업모범장 성적요람> 기록에 따르면 “조선의 재래돈은 성숙이 늦고, 비만성이 결핍 (중략) 개량이 필요”라고 조사됐고, 이후 신품종인 요크셔 품종으로 대량 대체됐다.

그래서 식용 도축을 위한 최적의 종이 다름 아닌 ‘개’나 ‘닭’이였고, 그래서 우리 식문화에서 ‘개장국(보신탕)’이라는 것이 서민을 위한 고기 요리로 등장하게 된 것이었다. 그 외에는 꿩, 염소 요리가 있었다.

그러나 고려시대 때부터 주로 고기는 주로 ‘사냥’을 통해 공급되었지 도축을 통해 공급되는 양은 미미했다.

백정 계급에 의해 주로 도축 당한 가축은 돼지였다. 돼지의 가죽은 방패나 갑주의 재료로 활용되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부속물을 구이로 만들어 먹거나 뼈를 고아 먹는 풍습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기를 쉽게 접할 수 없는 계급들의 음식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즉, 오늘날 전래하는 부속물 구이나 뼈를 고아 먹는 다양한 탕들은 당대에서는 ‘개고기’나 ‘닭고기’ 섭취도 힘든 계층의 문화였다는 말이다.

출처 EBS
출처 EBS

‘경신대기근’이라는 역사가 생소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현종 시대였던 1670년 ‘경’술년과 1671년 ‘신’해년에 있었던 대기근이었다. 그 시기에 조선 정부는 이례적으로 식용 소 도축을 허가했다.

그 당시 조선 민중은 처음으로 소고기를 대량으로 도축했다. 돼지 또한 마찬가지였다. 일단 살아야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일시적이었고, 이내 금지됐다.

“고을에서 소를 잡아 파는 것은 법에 어긋난 짓인데다 더구나 지금 우역으로 소가 거의 다 죽었으니, 기근 끝에 백성이 경작할 희망이 없습니다. 도신(道臣)이 계청(啓請)하여 점포를 설치한 것은 본디 진휼거리를 위해서이지만, 폐단이 점점 더 퍼져 도살을 마구 하고 있으므로 남아 있는 소도 다 푸주로 끌려갑니다. 사소한 이익은 한갓 아전들의 주머니로 들어가고, 그 미치는 해악은 비루하니 경기 각 고을의 점포를 낱낱이 금지하소서”
– 1671년 <현종개수실록> 24권 대사간 이익상의 상소

사실 우리네 민족은 육식을 다양하게 즐기는 민족 자체가 아니었다. 즉, 복날이라고 특별히 ‘육식을 통한 단백질 공급일’을 따지는 것도 그렇다.

특히 조선시대에 흉사가 생기면 ‘술’과 ‘고기’를 금했는데, 그만큼 육식은 농경 중심의 불교 및 유교 사회에서는 터부시되던 행동이었다.

그런데도 단백질 공급원은 필요한데, 대체로 ‘콩’이었다. 즉, 주 단백질 공급원은 ‘콩’이었고, 그다음이 ‘어패류’였다.

현재의 다양한 조리법을 따지자면 사실 우리는 ‘육류’보다 ‘콩’ 및 ‘어패류’를 즐겨 먹는 민족이었다고 할 수 있다. 조리법도 ‘어패류’가 훨씬 풍부하다. 젓갈 문화만 봐도 그렇다.

한 마디로 식재료가 궁핍해서 다른 문화보다 더 세밀하게 해체해서 먹었다는 것은 근거 없는 이야기이다. 대체로 육류를 먹는 것을 터부시했고, 가축 자체는 많았다. 필요한 단백질 콩을 통해 섭취했으며, 필요한 육류는 다양한 가축 통해 섭취했다.

분명 특수부위와 부속을 섭취하는 것은 궁핍성에 따른 문화가 맞다. 그러나 이건 한국 요리 문화만의 특징이 아니며, 만국 공통에 해당한다.

또한, 우리 역사에서 이러한 특수부위와 부속, 뼈를 고아서 만드는 탕반은 주로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대중화가 됐다. 그때 가장 궁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인의 입맛이 섬세하다” 혹은 “궁핍성을 이겨내고자 다양한 조리법을 발전시켜 왔다” 등은 문화적 우월성을 강조하려다 되레 조상들의 생활상을 왜곡하는 일이 되어버린다. 딱히 한국적 특수성도 없는 사안이니 말이다.

설렁탕
설렁탕

국이나 탕 문화는 우리만의 문화도 아니며, 동아시아의 공통적인 식문화이며, 육류의 특수부위나 부속을 먹는 것은 전 인류의 공통이다.

뼈를 고아서 먹는 것도 다른 문화권에서 나타나며, 되레 식재료가 풍부한 나라일수록 음식 문화가 발달한다. 우리 역사는 육류보다는 곡류와 채소류, 어패류가 더 발달한 문화였을 뿐이었다.

이러한 발언들이 유통되는 것은 사실 문화의 우월성을 ‘경제적 빈부’에서 찾으려는 시도에 있다. 육류 섭취를 많이 할 수 있으면 부유하고, 아닌 쪽은 빈곤하고, 궁핍한 역사라고 평가하는 관점이다.

즉, 고급 식재료로서 특정 육류를 상정한 후, 그를 통해 기저 문화를 평가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칫 이런 발상으로 식문화를 평가하다 보면 그 문화권이 가진 다양한 역사적 맥락은 깡그리 무시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한국인의 식문화 중 ‘개고기’에 대한 인식이 그러하다. 궁핍해서 ‘개고기’를 먹었다는 것으로 왜곡되기도 한다. 바로 식재료의 우열을 두어서 생긴 발상이다.

현재 진행형으로 보면 인도는 소가 흔해도 먹질 않는다. 과거 몽골족들은 흔하게 개와 말을 키웠지만 두 가축은 되도록 먹지 않았다.

몽골인들이 식용 도축을 금했고, 전략 자산으로 생각했던 ‘말’을 먹기 시작한 것은 인류사에서 기병이 점점 사라지는 시기였다. 개는 아직도 먹지 않는다. 왜냐하면, 목양견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소’를 즐겨 먹기 시작한 것은 더는 ‘소’로 농사를 지을 이유가 없었던 시기와 맞물린다.

이 말은 어떤 문화든 그 지역의 기후와 경제적 생산 기반에 따라 제일 손쉬운 종이 식재료로 선택된다는 뜻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