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모메 식당, ‘언뜻 보면’ 사소하지만 ‘자세히 보면’ 중요한 삶의 조각들

[리뷰] 영화 <카모메 식당>

안녕하세요. 글 쓰는 ‘서연’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서서히 휴가 떠날 채비를 하는 요즘인데요, 겨울 추위보다는 여름 더위가 더 견딜만한 필자는 그래서 딱히 물을 찾아 멀리 가는 편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여름 휴가를 어디로 떠나고 싶냐고 물어보면 한결같이 답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핀란드인데요. 북유럽, 세상의 끝, 여름의 백야와 겨울의 설경으로 온통 세상이 하얀 곳이라는 이미지로 박혀있습니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도 북유럽이지만, 또 핀란드의 수도인 헬싱키의 첫 글자 ‘헬’(hell)이 물론 영어단어로서 지옥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프로이트가 말했던 말실수의 현상처럼 깊은 무의식이 발현된, 일상을 탈출하는 여행처럼 극단적인 끝을 지향하고픈 욕망 때문에 떠나고픈 1순위 나라로 꼽는 것이 같습니다.

영화 <카모메 식당>

<카모메 식당>은 그런 갈망을 충분히 적셔주고도 남는 영화인데요, 주인공인 일본인 사치에와 미도리, 그리고 마사코 외 현지인인 핀란드인 리사와 마티, 그리고 토미의 (언뜻 보면) 사소하지만 (자세히 보면) 아무것이 아닐 수 없는 사건들을 담고 있어요.

거대 얼룩 고양이를 키우다 살이 너무 쪄버려 이별했던 기억을 가진 사치에는 살찐 동물에 약한데요, 그래서 핀란드에 도착해 만난 첫 동물인 뚱뚱한 갈매기를 보고 운영하려는 식당 이름을 카모메로 지어요.

작은 체구의 동양인을 식당 밖에서 의아하게만 바라보는 중년의 3인조 여성들이 있을 뿐 안은 휑한데 첫 손님 토미가 등장해요. 그는 일본에 아주 관심이 많은 청년으로 독수리 오형제 주제곡의 가사를 궁금해하죠.

사치에는 어느 날 서점에 들렀다가 미도리을 발견하고는 노래 가사를 물어봐요. 그것이 만남의 계기가 됩니다. 미도리가 핀란드로 온 것은 손가락으로 찍어서가 그 이유입니다.

어디든 떠나고 싶었는데요. 세계지도를 펼친 다음 눈을 감고 아무데나 찍은 곳이 바로 핀란드였어요.

둘은 사치에의 집에 가 함께 음식을 먹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가게에서까지 함께 일하게 돼요. 여러 날이 지나도 손님 수가 늘지 않자 미도리는 사치에에게 안내서에 광고를 내보자는 제안을 하는데요, 사치에는 반대합니다.

여긴 레스토랑이 아니고 동네 식당이에요. 근처를 지나다가 가볍게 들어와 허기를 채우는 곳이죠.

다음 날 식당의 전 주인이었던 마티가 손님으로 들어와 원두분쇄기에 대해 궁금해하더니 ‘코피루왁’이라는 주문을 외고 맛있는 커피를 내려줘요.

커피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준 게 더 맛있는 법이죠.

사진=핀란드 헬싱키

이어 서너 번째 인물이 순서대로 등장하는데요, 어딘가 모르게 심술궂어 보이는 핀란드인 리사와 공항에서 여행가방을 잃어버린 일본인 마사코에요. 리사는 한참을 노려만 보다가 떠나는데, 마사코는 가게 안으로 들어와 자신의 얘기를 들려줘요. 짐을 잃어버렸다고, 중요한 물건일 거라며 걱정하는 사치에와는 달리 그것이 무엇인지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고요.

그러던 어느 날 리사가 드디어 가게 안으로 들어와 술을 주문해요. 그러고는 단숨에 들이키고 쓰러지죠. 토미의 통역으로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는데 그곳은 도심에서 떨어져 숲이 우거진, 그야말로 힐링의 공간처럼 보입니다.

조용하지만 친절하고 언제나 여유로운 사람들. 핀란드 사람들은 다 그런 줄 알았어요. 근데 그게 아니네요.

어디에 가든 슬픈 사람도 있고 외로운 사람도 있는 법 아니겠어요?

마사코는 오랫동안 부모님을 간호했던 실력으로 리사를 돌보고 그녀의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게 돼요. 신기한 건 통역해 줄 토미마저 없는데 핀란드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마사코 가리사의 언어를 알아듣고 위로해줬다는 것입니다.

그녀가 핀란드에 오게 된 이유는 재작년에 부모님께서 돌아가시자 발목을 조였던 족쇄가 풀린 기분이 들었는데 언젠가 TV에서 에어 기타 대회를 보고는 반해버린 것 때문이었어요.

그거 말고도 부인 업고 달리기, 핸드폰 멀리 던지기, 사우나에서 오래 참기, 그런 거에 열 올리는 사람들이 좋아 보이더라고요. 어딘지 여유가 있어 보이고 쓸데없는 일에 얽매이지도 않고 느긋하게 사는 인생. 그래서 오게 됐지요.

사진=핀란드

그러다 핀란드인들이 그렇게 여유 있어 보이는 이유가 숲 때문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마사코는 숲으로 달려가요. 열심히 버섯을 따는 데 오는 길에 다 흘려버려요. 그러고는 오니기리를 처음으로 주문해 먹어요. 그 후 마사코 역시 식당에서 함께 일하게 되고 리사는 그녀들의 친구가 됩니다.

하루는 그렇게 네 명의 여성들이 가게 문을 닫고 야외로 나갔다가 돌아오는데 강도가 들었습니다. 미도리의 괴성과 사치에의 합기도(아이키도)로 그를 잡았는데 그는 다름 아닌 ‘코피루왁’의 주문을 가르쳐주었던 전 주인 마티에요. 리사가 그에게 아는 체를 하자 그는 시선을 돌려요. 다름 아니라 그에게는 슬픈 가정사가 있었거든요.

저마다 사연이 다 있네요.

다 모인 자리에서 그들은 처음으로 함께 오니기리를 먹습니다. 다음 날 잘 팔리지도 않는 오니기리를 주메뉴로 내세운 이유에 대해 사치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먹밥은 일본인에게 고향의 맛이니까요. 엄마를 일찍 여의고 집안일은 다 제 몫이었는데요. 일년에 딱 두 번 아빠가 주먹밥을 만들어주셨어요. 운동회하고 소풍 때요. 주먹밥은 다른 사람이 만들어준 게 훨씬 맛있다고요.

마티의 커피와 같습니다. 그 뒤로 찾게 된 마사코의 가방 안에는 잃어버린 버섯들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무레요코가 쓴 원작 소설에는 사치에가 핀란드에 오기 전 복권에 당첨된 이야기, 미사코가 버섯을 따 먹다 입이 돌아간 이야기, 마사코와 마티의 삶의 뒷배경이 더 실려있어요.

그래서 영화와 책을 동시에 보면 놓칠 수 있는 의미들을 찾아낼 수 있는데요, 마사코에게 버섯은 핀란드에 오기 전까지 그녀를 묶었던 일상의 족쇄들, 그 족쇄의 감정들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잃어버린 가방과 마비돼 버린 입 때문에 그녀는 핀란드와는 궁합이 잘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잃은 줄 알았던 가방과 버섯, 잠시 돌아갔던 입이 무사히 돌아왔듯이, 또 정작 숲에서는 숲을 즐기는 대신 버섯 따기에만 몰입해있었듯이 내가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행복을 찾을 수 없다면 낯선 타지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메시지가 읽혔습니다.

사진=핀란드

그것은 멀리서야 찾게 된 지금의 그녀는 어느 곳에서든 족쇄를 풀고 삶이라는 가방 안에 버섯보다 더 노란 빛의 행복한 하루들로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마침 그녀는 영화 중간중간에 등장했던 부둣가의 할아버지로부터 고양이 한 마리를 얼결에 받아요. 그리고는 이 고양이 때문에라도 헬싱키의 카모메 식당에 머무르게 되는데요, 이 고양이는 사치에와 이별했던 기억 속의 그 고양이를 상징하는 것 같았어요.

모든 것이 변하지만 기억을 어떻게 간직하느냐에 따라 삶은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연결된다고, 끝인 줄 알았던 곳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시작된다고,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음식과 한없이 기다려주는 공간에서 우리의 (언뜻 보면) 사소하지만 (자세히 보면) 아무것이 아닐 수 없는 우리의 사연들이 태어난다고요.

마음의 1순위 휴가지였던 핀란드가 상징하는 바는 세상의 끝이 아니라 내 삶의 시작이라는 것을, 내가 찾는 것은 극단성이 아니라 극단의 유사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1순위 여행지는 어디인가요? 나 자신이 조금 더 익을 때까지 그 세상과 만나는 시간을 조금 미뤄 아껴오고 있는 ‘서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