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유럽 학자들 여럿이 <거대한 후퇴>라는 책을 냈다. 테러가 터지고, 난민이 쏟아지고, 없는 사람이 살기는 더 힘들어지고, ‘이대로는 안 됩니다!’하고 (대중이) 어떻게든 소리는 질러보고 싶고, 그래서 포퓰리즘(기회주의) 정치가 판치게 된 세상에 대해 요란하게 ‘비상벨’을 울리고 싶다는 얘기다.
근현대 사회를 규율해온 지배이념(곧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에 큰 균열이 생겼다. 지금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 무르익고 있으니 이것이 단순히 ‘정치적·문화적 후퇴’로 끝날 것 같지도 않다. 게다가 인류의 생태계 착취에 따른 결과가 머지않아 닥칠 것이고 보면 세상을 크게 돌아보고 문제를 짚는 지혜가 점점 간절해질 것 같다.
그래서 이 글은 (여러 생각거리 가운데) ‘종교’라는 놈을 잠깐 돌아본다. 세상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만 살필 일이 아니라, 그 세상과 맞닥뜨리는 사람 주체의 ‘대응 태세’도 헤아릴 일이라서다. 물론 십인십색, 다들 콩켸팥켸 떠들기 마련인 ‘종교’에 대해 (가방끈이 짧은) 필자가 무슨 명쾌한 진단을 해낼 수는 없다. 그저 “그놈에 관해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 봐야 할지”를 이것저것 짚어본다.
지금은 종교를 닦아세울 때가 아니다
먼저 신이 있냐, 없냐에 대해서! 처세 격언이 하나 있단다.
누가 신이 있냐, 하고 묻거든 없다고 답하라. 그런데 그 답을 듣고 상대의 낯빛이 싸늘해진다 싶으면 서둘러 번복하라. 아니 있어, 라고.
순서가 뒤바뀔 수도 있다.
신은 있지. (중략) 아니, 사실상은 없는 셈이지.
요점은 괜히 그런 사변적인 논쟁에 휘말려 남들과 얼굴 붉히지 말라는 얘기다.
그런데 꼭 처세술로서만 그런 태도를 취할 것도 아니다. 동아시아의 ‘하늘 천(天)’ 개념은 기독교의 인격신과 거리가 멀지만 ‘민심이 천심’이라는 표현에서는 또 인격신에 가까워지기도 한다.
거꾸로, 스피노자의 신은 천지창조의 주재자이기보다 자연 그 자체를 뜻하므로 무신론과 가깝다. 불교는 또 어떤가. ‘색즉시공’의 교리를 들여다보면 도무지 신의 숨결을 느낄 수 없지만, 대웅전 부처님 앞에서 108배를 올리는 불교도의 모습은 성모 마리아한테 기도 올리는 가톨릭교도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신은 있다고도, 없다고도 볼 수 있다.
신은 있되, (아프리카의 살벌한 내전 현장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이방인 관찰자처럼) 참 나약한 존재로 있다.
고 생각하는 사람은 무신론자들과 학문을 놓고 별로 다툴 일이 없다.
이런 싱거운 얘기를 굳이 꺼내는 까닭은 지금은 종교를 타박할 때가, 그 타박을 1순위로 삼을 때가 아니라고 여겨서다. 아시다시피 19세기에 니체는 ‘신이 죽었다’고 대못을 박았다. 최근에도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가 기독교 신앙을 비판하는 묵직한 책을 썼다(<만들어진 신>).
니체 말마따나 기독교의 도덕이 ‘약자의 도덕인지’는 논란거리이겠지만 기독교 비판은 필요했다. 근대 유럽에서 종교를 둘러싼(또는 종교를 핑계 삼은) 전쟁이 오죽 심했는가. 또 과학의 관점에서 ‘창조론’이 사정없이 비판되는 것도 당연하다. 특히 미국에서 활개 치는 기독교 근본주의 신앙에 메스를 댈 필요가 크다. 하지만 그렇게 하여 ‘종교(기독교) 패배!’를 선언하는 것으로 족한가?
19세기에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사람들이 참 많았다. (‘사회학의 아버지’라는) 오귀스트 콩트는 종교가 어린애나 인류의 유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우화’에 불과하다고 깎아내렸다.
하기는 어린이들의 도덕성을 키우는 데는 종교가 도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인류 문화가 성숙해 간다면 언젠가는 종교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거라고 그는 낙관했다. 프로이트도 종교(기독교)를 극복 대상으로 삼았다.
과학(기술문명) 비판이 먼저다
하지만 문제는 종교를 때려눕힐 때 누가 승리자가 되냐는 게다. 부르주아 문명이 진취성을 얼마쯤 띠었을 때(곧 19세기)는 “과학이 세상을 이끌 것”이라는 다짐이 그럴싸하기도 했다. 콩트는 ‘실증주의 과학’이 미래를 떠맡을 거라고 장담했다. 그런데 방향타도 불분명한 가운데 과학기술 문명이 눈먼 내닫기에 여념 없는 요즘도 “과학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는 소박한 믿음을 견지할 수 있을까.
‘과학’은 기계신(데우스 엑스 마키나 ; 이야기를 매듭짓는 어떤 신)이 아니다. 콩트만 해도 ‘실증주의 교리문답’을 내세워 자기의 실증 과학을 뒷받침했다. 사람들은 콩트도 ‘인류교’라고 일컬을 만한 새 종교에 빠졌고 마르크스주의도 또 다른 종교가 돼 버렸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이렇게 종교 비슷한 것을 죄다 ‘종교’라 일컬으면 학문의 입씨름이 뒤죽박죽이 돼 버린다. 알랭 쉬피오를 따라 다음과 같이 간추려 보자(그가 쓴 <법률적 인간의 출현>).
인류 사상 유산에는 과학뿐 아니라 그것에 앞서는 어떤 교조(dogma)가 있다. 이 둘을 세심하게 분별하고 그 교조를 사회의 방향타로서 존중할 때라야 과학이 빗나가지 않는다. 과학만 갖고서 상징계를 항해할 생각일랑 말아라.
옛 보편종교들에는 그 합리적 핵심으로 ‘어떤 교조’가 들어 있었다. 우리가 ‘종교냐, 과학이냐’ 하는 단순한 2분법을 벗어나야 하는 까닭은 그래서다. 현실 종교의 구태를 비판한다면서 목욕통 속에 들어 있는 아기(=계승해야 할 교조)까지 내버리지 않으려면 말이다. 그럴 경우, 세상이 어찌 될지는 ‘프랑켄슈타인’ 이야기가 일찌감치(200년 전) 예견해 주지 않았는가.
근대 사회의 교조로는 프랑스대혁명이 배출한 ‘인권선언’이 있겠다. 그런데 유럽에서 법의 토대는 신법(神法)이다. 기독교가 2000년 전에 내건 ‘이웃사랑’의 윤리는 지금도 전혀 낡지 않았고, ‘인권선언’은 그 개정판이라 해야 한다. 근대 주류 경제학자들 가운데는 이 ‘인권선언’에 눈 흘기는 작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아는가(신자유주의자 하이에크!). 고리타분한 신앙인들(근본주의 종교)보다 이들 현대적 과학자들(!)이 더 위험한 존재가 아닐까. 확성기로 거리에서 요란하게 떠들지는 않지만 자본-국가 지배체제의 한복판에 들어앉아 실질적으로 그 체제를 주물러온 그들이!
현실의 정치 지형은 간단하지 않다. 옛 종교(곧 미국의 근본주의 기독교)가 새 과학과 연합해(또는 적대적으로 공생하며) 눈먼 자본 팽창의 세계를 이끄는가 하면, 옛 종교가 전 지구적 민주주의 실현의 근거지가 돼 주기도 한다. 현실의 이슬람교는 교리를 따지자면 꽉 막힌 근본주의라 하겠지만, 제가 놓여 있는 역사적 상황 덕분에 전 지구적 자본주의에 맞서는 저항의 표상이 돼 주기도 한다. 좀 엉성한 저항이지만 말이다.
지구촌에 우리가 설 자리도 있어! 이슬람은 우리의 자존심이야!
그러므로 일률적으로 “종교 일반은 이렇게 처리해야 돼.”하고 도매금에 넘겨서는 안 된다. Religion은 원래 ‘관계 맺다’는 뜻의 낱말이었으니 초심으로, 종교의 걸음마 시절로 돌아갈 필요도 있지 않을까.
흐리멍덩한 교과서
제주에 온 예멘 난민을 둘러싸고 한국 사회가 시끄러웠다. 우리 사회에 민주주의의 가치가 살아있는지 시금석이 될 만한 사건인데, 필자는 이와 관련해 학교가 윤리를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지 문득 둘러보게 된다. 교과서에 ‘다문화’ 얘기는 있지만 ‘난민’ 얘기는 없다. (고교) 교과서가 레비나스의 ‘타자의 윤리학’을 소개하지만 “타자 어쩌구...”만 짤막하고 서투르게 읊었을 뿐, 그것이 유대인 학살 범죄의 한복판을 겪으며 생겨난 사상이고, 유대교에 토대를 두었다는 자상한 설명은 없다.
사마리아의 의인 얘기는 꺼내 들지만 예수가 ‘낯선 사람을 환대하라!’고 전투적으로 부르짖었다고 덧붙이지 않았다. 그게 기독교 사상의 가장 살아있는 부분인데! 데리다의 실천철학=환대론도 기실 예수 얘기를 자세히 풀이한 것이거늘! 옛 종교를 먼지 쌓인 박물관에 모셔 놓고서 학생들이 윤리적인 시민으로 클 거라고 과연 기대할 수 있을까.
교과서는 불교도 박물관으로 떠나보냈다. “사람은 탐진치, 곧 탐욕과 증오와 어리석음에 휩싸이는 탓에 번뇌에 시달린다”는 얘기가 불교의 핵심인 양 소개할 뿐(‘수능’에 단골로 출제된다), 막상 색즉시공의 교리는 서술하지 않는다. 인간 본성론이야 현대 철학과 심리학이 불교보다 더 자상하게 밝혀 놨으니 굳이 ‘탐진치’를 교과서에 들여올 것 없고, 현대 학문과도 통하는 ‘색즉시공’ 얘기야말로 친절하게 들려줘야 옳은데 말이다.
교과서 제작진은 종교와 관련해, 어떤 고집스러운 두려움을 품고 있는 듯하다. 교리 서술을 길게 했다가는 정교분리의 시대에 시민들이 짜증 내지 않겠냐는 두려움! 그런데 종교와 과학과 세상일을 둘러싼 온갖 헷갈리는 얘기들이 세상에 난무하는 까닭은 종교가 전해주는 사상적 유산을 너무 건성으로 취급해서 사태가 더 악화한 것이 아닐까. 몇백 년 전만 해도 성서나 코란, 유교 경전 읽기가 학문의 전부였고 거기서 근대 학문도 샘솟은 것인데 말이다.
고교 교과서는 ‘이웃 사랑’의 자상한 서술 말고도 성부·성자·성령의 관계를 친절하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 그리스정교와 가톨릭과 개신교가 저마다 이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으며(각각 사상 스펙트럼의 오른쪽, 중간, 왼쪽을 차지한다), 근대 철학자들(가령 헤겔)은 성육신을 어떻게 풀이하는지까지. 성육신을 제대로 이해하면 유신론과 무신론이 그렇게 ‘먼 사이’가 아님을 알게 된다. 본래 유일신 개념은 기존의 신앙(이데올로기)들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됐다.
우리 사회의 크리스천들
사람들을 떠올려야 역사의 흐름을 쉽게 안다. 에피소드부터 꺼낸다. 필자가 대학생 시절에 서울 시내 유서 깊은 교회에 몇 달 구경 나간 적 있다. 예배당이 아니라 대학생회가 노는 공간에! 거기 대학생회가 활기차다는 소문을 듣고! 사실 필자는 신도였던 적이 없다. 거기를 금세 관둔 까닭도 불교·유교 문화에 젖어 살아온 사람이라 누구한테 기도 올리는 것이 영 어색해서였다.
거기 대학생들은 대부분 평범한(얌전한) 청년들이었지만 일부 주도층은 민주화 운동에 관여했다. 필자가 기웃거렸을 때는 최고참 선배가 민청학련 사건(1974년)으로 붙들려 가서 옥살이하고 있었다. 히틀러 치하의 독일 저항교회들처럼 경건한 분위기가 대학생회를 감돌았다.
그런데 좀 뜨악하게 느껴진 것은 철창 안에 갇힌 선배를 추앙하는 분위기가 너무 강렬해서였다. 영혼의 눈을 틔우는 종교 생활이 감수성을 섬세하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더라도 느낌이 어색했다. 이러구러 30년 뒤, 신문에서 그 선배 소식을 듣고 좀 놀랐다. “종북세력 때려잡자!”고 발언했다거나 ‘박사모’ 집회에 나갔다거나. 민주화 세대가 저렇게 변절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한국의 크리스천 중에는 그 선배처럼 ‘민주’와 관련 맺은 사람도 있지만, 원래부터 ‘자본’과 친했던 사람들의 기세가 더 컸다. 손꼽을 사람으로 순복음교회 조용기. “하나님 믿어서 부자 되고 건강해지고 영혼이 평안해지소서”라는 삼박자 구원론! 그들은 박정희 시절에 한국의 자본과 보폭을 맞추어 고도성장에 나섰다.
김영삼 정권 시절 이후, ‘빨갱이 때려잡는’ 궂은일에는 나서기를 꺼리는 좀 점잖은 ‘교회 성장론자(이른바 웰빙 우파)’들도 생겨났지만, 아무튼 그들이 한국 지배층 연합의 든든한 한 몫을 차지했다. 이명박 시절의 소망교회와 박근혜 시절의 사랑교회! 그들은 한국 사회를 몽땅 하나님 성전에 봉헌하고 싶어 했다.
그렇다면 ‘금수저·흙수저’라는 낱말이 일상어가 돼 버린 요즘, 우리는 잿빛 앞날에 기가 죽은 청년들더러 누구를 본받으며 살아가라고 해야 할까. 이름난 당대의 크리스천들 가운데는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좀 거슬러 올라가면 함석헌과 장기려가 눈에 띈다. 이승만 박정희와 대차게 맞서 ‘씨알의 소리’를 전파한 함석헌과 헐벗은 이웃들한테 정성을 다해 인술을 베푼 장기려! 그런데 함석헌의 반골과 장기려의 일편단심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10대 나이에 함석헌은 3·1운동에 동참했다(한용운은 동학운동에 동참). 거대 권력에 젊어서 맞선 사람은 안일해지고 싶은 노년에도 계속 싸운다. 크리스천 장기려는 ‘성서의 권위’만을 믿었다. ‘교회가 가까워질수록 신에게서 멀어진다.’지 않았던가. 젊어서부터 교회 권력을 멀리한 덕분에 참삶을 살았고 민중이 감동했다.
민청학련(1974) 때 붙들려간 교회 선배는 87민중항쟁 끝자락에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을 창립했다. 그 시민단체가 ‘친자본’이었음은 불과 이태 뒤 김영삼 정권 때 드러났다. 그는 사실 (박사모가 되어) 변절한 것이 아니었다. 경실련과 박사모는 한 끗발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와 달리, 같은 교회의 내 또래는 산업선교회로, 친노동의 길로 갔다. 그는 선배만큼 유명해지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한 알의 밀알로 살아간다. 교회 동네를 확 휘어잡을 힘은 없고, 그래서 청년들 눈에 띄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아직 교회에는 세상 고민을 함께 나눌 사람들이 꽤 있다.
기독교는 세상의 끝(=목적)을, 심판의 날을 말한다. 그 날은 인류사에 단 한 번만 찾아오는 것이 아닐 게다. 어느 때, 소소한 심판 사건이 터지고, 한참 어둠 속 나날을 겪고 난 어느 날, 이번에는 또 다른 굵직한 심판 사건이 일어나고... 바울이 ‘심판 사건’이라 일컬은 것을 후대의 우리는 ‘혁명’이라 일컫는다. 어둠 속을 살아가는 우리의 심정을 김수영 시인은 다음과 같이 읊조렸다.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이 어둠을 밝히려면 우선 술동무가 돼줄 벗이라도 찾아 나서야겠다.
어디 사람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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