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아일랜드 운동’과 정의당 탈당 76% 2~30대 청년

정의당 김효진 당원이 지난달  26일 당원 게시판에 ‘청년 정의당’은 진보정치의 재앙이 될 것이라는 글로 청년 당원들의 교만함을 비판했다.

누군가 제게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이 누구냐 묻는다면, 전 19세기 아일랜드의 ‘대니얼 오코넬(Daniel O’Connell)’을 꼽습니다.

대니얼 오코넬(출처 위키백과)
대니얼 오코넬(출처 위키백과)

그는 아일랜드가 영국에 의해 병합된 뒤, 법적으로 의회에 진출할 자격이 박탈당한 가톨릭 교도였음에도 수많은 아일랜드인을 조직해 결국 가톨릭 해방을 이루고 의회에 진출한 위대한 정치인이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오코넬의 정신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그는 모든 절차를 존중하고 법을 지켜가며 아일랜드인의 목소리를 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오코넬의 가장 큰 한계이기도 했습니다. 아일랜드의 인구수가 약 800만명이던 1843년, 약 80만명의 민중이 타라(Tara)에 모여 영국과의 합병을 철회하자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물론 이 자리 또한 오코넬이 주도한 집회답게 단 한 차례의 소요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그저 아일랜드인의 조직 자체를 두려워했고, 민중들이 모이는 것 자체를 우려하여 법적으로 금지했습니다.

오코넬은 의회 정치인은 당연히 법을 지켜야 한다 생각해 정부의 조치를 따랐고, 그대로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청년들이 나섰습니다. 유럽 전체가 혁명의 목소리로 흔들리던 1848년, 아일랜드에서도 과거 오코넬을 따르던 청년들이 일어서려 했습니다.

‘청년 아일랜드 운동(Young Ireland movement)’이라 불리는 이 운동은 결국 1845년부터 48년까지 이어진 감자 대기근으로 인해 철저하게 실패했지만, 그 청년들의 정신은 결코 잊히지 않았습니다.

청년 아일랜드 운동(출처 The Irish Story)
청년 아일랜드 운동(출처 The Irish Story)

민족과 종교로 구별하지 않고 ‘아일랜드인’으로 뭉쳐야 한다는 외침, 무력으로 쟁취하는 투쟁, 토지를 기반으로 하여 민중과 함께 나아가고자 하는 전략까지, 아일랜드 청년들의 행동은 실패했을지언정 그들의 정신은 현대 아일랜드 공화국의 뼈대를 이뤄 지금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그들은 결국 성공한 셈입니다.

이처럼 ‘청년들의 정치’는 아주 큰 의미가 있습니다. 기성 정치인들이 한계를 보였을 때, 참신한 생각과 폭넓은 시야로 연대의 새 바람을 이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청년 정치인이라 불리는 이들은 선배 정치인들의 엉덩이 뒤에 숨어 꿀물을 핥기보다 낡은 목소리에 공감하지 못하는 지지자들에게 다가가야만 합니다.

20년 뒤, 청년들의 연대는 사회의 주류가 되어 지금과 같은 현실의 문제점을 바꿀 힘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청년 정치가 갖는 의의입니다.

하지만 정의당의 청년들은 어떨까요? 정의당의 청년들은 기성 정치인들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혹은 이 사회의 잔혹한 구조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청년 유권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올 수 있을까요? 궁극적으로, 지금의 정의당 청년들은 20년 뒤의 대한민국에서 연대의 깃발을 자랑스럽게 들어 올릴 가능성이 있을까요?

아닙니다. 작금의 정의당은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이 당의 청년 정치인들에게 희망을 거는 것은 재앙입니다.

지난 7월 20일 논평부터 지난달 26일에 이르기까지, 이 당의 청년들은 대한민국의 유권자들에게 절망의 메시지만을 던졌습니다.

그들 스스로가 기성 정치인들을 대체할 참신한 인재들이 아닌, 그들보다 부패할 수 있는 비루하기 짝이 없는 이들이란 것을 보인 겁니다.

오만방자한 정의당 청년들

‘청년 아일랜드 운동’의 모두를 소개해 드리기엔 자리도 적절치 않고 지면도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단 한 명만큼은 아주 간략하게라도 소개해야만 합니다. 제임스 핀턴 랄로(James Fintan Lalor)라는 인물입니다.

제임스 핀턴 랄로(출처 위키원드)
제임스 핀턴 랄로(출처 위키원드)

그는 다른 나라의 혁명가들처럼 매력적인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해방된 가톨릭 교도 중 최초로 국회에 입성한 인물 중 한 명이지만, 농장에서 양이나 키우던 소작농에 가까운 인물이라 합니다.

제임스 또한 다리에 불편을 겪는 등, 현재의 기준으로도 ‘매력 넘치는 혁명가’라 불리던 인물이라 볼 순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불멸의 이름을 남겼습니다. 그가 격동기 아일랜드에서 신문을 통해 외친 목소리는 하나였습니다. 토지, 토지! 당장 그의 집안이 귀족이 아닌 농가의 집안이었기에, 민중들이 아일랜드의 독립을 위해 같이 움직이려면 토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외쳐온 것입니다.

그는 결코 민중들에게 거들먹거리지 않았습니다. ‘너흰 민족 감수성이 있니? 당장 합병 철회나 외쳐야지, 배고픈 게 대수야?’라던지, ‘민중들이 공부가 부족하다. 정치인의 역할은 너희들에게 밥 주는 게 아니다. 정당은 단호한 목소릴 낼 수 없다, 그러니까 공부해라!’ 따위의 오만방자한 목소릴 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영국의 명문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들을 향하여 민중들과 함께 나아가야만 한다고 외쳤던 인물입니다.

그 결과, 훗날 아일랜드의 가장 위대한 정치인 중 한 명인 찰스 스튜어트 파넬(Charles Stewart Parnell)의 시기에 ‘토지 전쟁(Land War)’이라는 민중과 독립운동가가 하나 된 시기를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절대 거들먹거리지 않았던 겁니다.

2016년 대한민국, 정의당의 청년들은 어떨는지요? 지난 7월 20일 문화예술위원회의 논평 이후로, 이 당의 수많은 청년 당원들과 청년 정치인들이 떠나가는 당원들을 향해 외친 말은 간단했습니다.

‘공부하라, 아니면 떠나라! 너희들은 틀린 놈들이기 때문이다!’ 논평 사태 이전엔 ‘혐오를 하지 말자!’라 외친 당원을 향하여 ‘진보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동 제소의 격문을 붙였고, 이젠 ‘아저씨들은 공부가 부족하다’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태도를 보입니다.

평범한 당원들이라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중엔 특정 위원회의 책임자나 대의원, 혹은 전국위원을 맡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정치인입니다.

어엿한 청년 정치인이 당원들을 향해, 그리고 유권자들을 향해 ‘너희가 부족하니 공부하라’라고 역정을 내는 꼴을 보노라면, 이들이 과연 20년 뒤엔 어떤 모습일지 예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선거 전으로 돌아가 봅시다. 20대 총선도 좋고, 19대 총선도 좋습니다. 당시 우리 유권자들은 몇몇 정치인들의 추태를 어렵지 않게 목격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라고 외치는 정치인들이 광화문에서 큰절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국회에 입성하였을 땐 어땠던가요? 국회의 청소 노동자들, 세월호 유가족들이 그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새누리당 김태흠이나 조원진의 유명한 말처럼, 그들은 그저 싸늘한 목소리로 ‘나가세요! 가만히 있으세요!’라고 뿌리칠 뿐이었습니다.

새누리당 조원진(출처 서울신문)
새누리당 조원진(출처 서울신문)

그들이 보수 정당이기에 그런 걸까요? 붉은 점퍼를 입었기 때문에 그랬던 걸까요? 아닙니다. 이것은 진보 정당에서도, 노란 점퍼를 입은 부류들도 다를 게 없습니다.

당장 대한민국의 유권자들이 아닌, 같은 정당의 진성당원들을 향해서도 똑같은 태도를 보입니다. ‘청년 정치인’이라 불리는 이들은 그저 ‘당은 흔들지 마세요! 가만히 있어요!’, 혹은 ‘너희들이 공부가 부족한 거니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던가!’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의 정의당에서 ‘청년 정치인’이라 불리는 부류들은 언젠가 금배지를 달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목적은 ‘민중과 함께 나아가는 진보정치’가 아닙니다.

그들에게 민중은 교화의 대상이며, 자신들을 거부하는 민중들은 닥치거나 떠나야만 하는 겁니다. 2016년의 정의당의 청년 정치인들이 보여주는 태도는 이렇습니다.

2036년에도 정의당이 존재한다면, 그들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요? 이 당의 청년 정치인들은 제임스 랄로가 아니라 예비 김태흠, 예비 조원진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부류들인 셈입니다.

‘여성혐오’라는 무기를 휘두르는 ‘아재혐오자’

정의당은 이상하게도 ‘고결한 활동가’ 대신 ‘찌질한 활동가’들을 더욱 많이 만날 수 있는 정당입니다. 모든 활동가가 고결할 필요는 없지요. 하지만, 최소한의 자기모순은 보이지 말아야 합니다.

‘찌질한 활동가’라 불리는 부류들은 행동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습니다. 자기모순과 이중잣대들이 그들의 지적 수준을 평가하기 쉽게 만들어 주는 겁니다.

지난 7월, 문화예술위원회의 전국위원회조차 무시한 채 중앙당의 용인 아래 발표된 논평은 크나큰 논란을 만들었습니다. 혐오주의에 대한 찬반이라는 절박한 논쟁 속에서, 이른바 청년당원이라 불리는 이들이 외치는 목소리는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혐하지마, 이 개저씨들아!’

혐오에는 수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이 단락에서 ‘메갈리아-워마드’라는 혐오주의 조직들에 대해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겁니다. 대신 ‘개저씨 혐오’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정의당의 청년당원들이 가진 뿌리 깊은 혐오 말입니다.

‘개저씨’라는 말은 꼰대를 다르게 이르는 표현이라 합니다. 제게 이 단어를 알려줬던 것도 정의당의 한 청년당원이었습니다. 그들은 당의 ‘다른 의견’을 지닌 이들을 ‘개저씨’라 부르고, 세대 갈등으로 묶어 ‘청년들과 개저씨’의 대립 구도를 형성해왔습니다.

이것이 단순한 기성세대에 대한 증오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정말 악독한 ‘꼰대’에 대한 적대감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상당히 뿌리 깊은 갈등으로 보였습니다.

제3기 청년학생위원회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던 당시, 정의당 당원 게시판에 큰 이슈가 있었습니다. 주제 자체가 정확히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강령에 사회민주주의를 넣느냐 마느냐 옥신각신하던 차에 배준호 현 정의당 부대표를 위시한 연서명이 있던 겁니다.

‘이런 차에 사민주의 논쟁은 잠시 무르고 당이나 신경 써라’라는 내용으로 기억하는데, 천호선 당시 당대표 조차 브리핑룸을 통해 연서명을 철회해달라는 방송을 했다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연서명에 이름을 올렸던 그 친구는 천호선 전 대표의 팬이어서 그런지 굉장히 씁쓸해하더군요. 여하튼 청년들의 이름으로 기성세대를 겨냥한 연서명이 올랐을 때 반응은 상당히 뜨거웠고, 이에 대해 알지 못했던 전 청학위 지도부의 입장을 물었습니다.

그 당시 청년학생위원회 회의에서 이에 대해 질문을 했을 때, ‘청년 정치인’이라 불리던 이들의 발언은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당게 보지마. 거기 꼰대들만 난리 치는 데라 볼 필요 없어’. 당내 청년 간부들의 문제 인식이 이럴진대, 여타 청년당원들이야 오죽했겠습니까? ‘개저씨’란 말들도 이러한 증오에서 비롯된 것이었겠지요.

그리고 2016년 현재, 청년당원들의 기성세대에 대한 혐오는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당개아재’라는 필명의 혐오주의적인 발언입니다. ‘개저씨들은 공부가 부족하다. 너희 같은 꼰대 때문에 여성당원들이 떠나고 있다. 너희 아재들만 난리 치지, 다른 사람들은 메갈리아에 관심도 없다.’라는 많은 청년당원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바로 여기에서 이들이 ‘찌질한 활동가’로 간주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드러납니다. 그들은 ‘메갈리아-워마드’라는 극단적인 혐오주의 조직을 옹호하며 ‘이 사회엔 뿌리 깊은 여혐이 있어···이들의 부동액과 전태일 열사에 대한 능욕은 배경이 있으니 이해를 해야 해···’라고 외칩니다.

전태일 열사 동상
전태일 열사 동상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들의 ‘뿌리 깊은 기성세대에 대한 증오’도 동시에 보입니다. ‘당개아재’로 대표되는 그들의 인식, 결국 청년 활동가들은 전부 여성주의의 편이고 이를 배척하는 이들은 아재라는 인식 말입니다.

우스꽝스럽게도, 현재 메갈리아에 대항하여 맞서 싸우는 이들의 대다수는 청년들입니다. 사회적으로 성적 기득권이던, 물질적인 기득권이던 쥐어본 적도 없는 나약한 청년들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에 대하여 ‘여성주의’를 스스로 칭하는 비겁한 진보계열 지식인들은 ‘찌질한 남성들이 모인 것’이라는 망언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새누리당과 독재를 옹호하는 부류들이 광화문에 시민들을 향해 ‘찌질한 빨갱이들이 모인 것’이라 외치듯, 혐오주의의 피해자들을 향하여 ‘찌질한 남성’이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여기에 한술 더 뜬 것이 바로 정의당의 청년당원들입니다. 다만 그들은 ‘찌질한 남성’을 공격하는 구도 대신, 정의당의 뿌리 깊은 ‘청년 대 기성세대’의 대립구도를 이용하여 ‘찌질한 당게 아재들’을 공격해 정치적 입지를 늘리고자 시도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들이 고의로 무시하는 점이 있습니다. 지난달 4일 사무총장이 발표한 탈당자 관련 자료에 따르면, 정작 떠나간 당원들의 76%는 2~30대 청년들이었습니다.

결국, 지금 남아있는 ‘주류’ 청년당원이야말로 가장 ‘기성화’ 된, ‘기득권화된’ 존재들이며, 그들이 그토록 증오해 마지않는 ‘개저씨’에 가장 가까운 존재들이란 모순입니다.

결국 ‘여성 혐오’라는 혐오를 배척한답시고 떠드는 청년들의 목소리가 ‘아재 혐오’라는 새로운 혐오에 휩쓸려 모순을 야기하고 있고, ‘아재’를 공격하기 위해 옹호하는 세력이 ‘메갈리아-워마드’라는 혐오주의 집단이라는 하나의 코미디를 이루고 있는 셈입니다.

우습게도, 이런 당내 갈등을 지켜보는 유권자들의 대다수는 청년들이며,정의당의 지지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자, 이런 청년들이 미래의 정치인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기대되는 일일까요?

유권자들과의 연대가 얼마나 잘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차라리 새누리당이 진보개혁 정당으로 돌아서는 쪽의 가능성이 더 커 보이는 건 비단 저만의 생각이 아닐 겁니다.

김서영 기자

김서영 기자

리얼뉴스 청소년보호정책 책임자
vang1277@gmail.com
김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