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형찬의 리얼한 대한민국] 폭로의 시대, 공익은 어디까지?

지난해 진보 언론사 출신 A씨는 데이트폭력의 당사자로 화제가 됐다. 평소 A씨가 썼던 글의 진보적 견해와 달리 가부장적 행태를 보였다며 여러 사람은 그를 비난했다. 그는 당분간 글쓰기를 그만둬야만 했다.

1년이 지난 후, A씨의 전 여자친구는 데이트폭력 건 폭로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100만원의 벌금과 선고 유예 판결을 받았다.

즉, 전과가 없고, 재범 가능성이 작아 법원이 선고를 유예한 것이지 유죄였다.

하지만 A씨의 전 여자 친구는 자신의 행동이 여성이 겪는 데이트폭력의 중대함을 알림으로서 공익에 기여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당사자의 방어적 변명에 불과하다. 데이트폭력의 형태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것도 아니며, 그녀가 A씨의 행위를 알린다고 데이트 폭력을 방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즉, 공익적 효과란 없었다.

혹여 공익에 기여할 수 있는 전제란 A씨가 고위 공직 후보자 신분쯤 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 효과란 그저 A씨가 가진 기자로서의 명예와 신뢰도를 훼손함으로써 ‘밥줄 끊기’와 다름 아니었다. 법적으로 이야기하면 그녀는 ‘SNS’를 통해 자력구제를 시도한 셈이었다.

출처 경찰청
출처 경찰청

인터넷 시민기자인 B씨는 최근 논란이 된 ‘메갈리아’와 관련한 책을 쓸 계획을 알리며, 페이스북에 공개적으로 펀딩을 요청했다.

그러자 또 다른 페이스북 논객이자 자유기고가인 C씨는 B씨의 저술 능력 부족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공개적인 비판을 했다.

C씨는 B씨의 저술 능력이 현저히 부족함을 자신과의 대화 내용을 통해 확인했다며, 대화록을 공개했다. B씨의 펀딩에 동참하지 말 것을 호소했다.

C씨는 B씨의 펀딩을 막는 것이 ‘공익’에 부합한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은 자신이 느꼈던 B씨와의 불쾌한 일화를 이용한 사적 보복에 가까웠다.

만약 C씨가 공익적 목적으로 사적 대화를 폭로하는 것이 정당하려면 B씨가 펀딩을 통해 고의로 횡령 등의 행위를 한다거나 펀딩 참가자들이 기대하는 저서가 발간되지 못함을 객관적으로 알고 있을 때가 되어야 한다.

설사 시민기자 B씨의 저술 능력이 부족해 보이더라도 저술 작업을 할 의지와 계획이 분명하다면 그 결과물의 수준을 두고 펀딩을 방해할 권리는 없다.

또한, 그 근거로 제시한 ‘사적 대화’의 폭로는 공익적 목적이 아니라 실정법 위반에 불과한 것이 되어버린다.

폭로하면 이 아저씨. 에드워드 스노든.
폭로하면 이 아저씨. 에드워드 스노든.

최근에는 수도권의 D대학의 수강생이 페이스북에 인권법 교수의 행태를 비난하는 게시글을 올렸다.

인권법 수업에서 교수가 장애인과 일반인으로 분류상 정의를 하자 수강생인 E씨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으로 분류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라며, 논쟁했다.

그 과정에서 교수가 E씨에게 다른 강의로 변경할 것을 종용했다는 것이었다.

E씨의 폭로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도 있고, E씨의 폭로와 달리 E씨의 논쟁으로 수업이 지연되었음을 증언하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일단 내용적 측면에서 E씨의 폭로는 진실 공방의 여지가 있으나, 확실한 것은 교수가 아무리 강의 변경을 요청해도 E씨의 자유의지에 반해서 학교가 임의로 변경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이 말뜻은 교수가 E씨에게 수업 변경을 종용한 그 자체만으로 ‘압력’으로 간주할 수 있을지언정 실질적인 E씨의 권리를 무단으로 침해한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즉, 학과 내 절차로서 이의를 제기하거나 학교 본부 측에 항의하는 수단이 있으며, 학생회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E씨는 자신이 받은 객관적 불이익은 거의 없는 반면, 그에 비해 과도한 폭로를 하고 말았다.

최근 SNS에서는 폭로전이 일상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 폭로전의 양상은 초기 상황과 진실이 뒤바뀌어서 후유증도 상당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이것은 대체로 SNS를 익숙하게 사용하는 현 상황의 문제도 있지만, 사실은 ‘절차’나 ‘공권력’에 대한 불신도 한몫한다.

그러나 명백한 것은 객관적으로 볼 때 자신의 이익에 불과하지만, 그것을 공익적 사유로 덮어씌우거나 혹은 상대방의 명예를 고의로 훼손하는 보복성 사유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SNS와 언론의 특성상 초기에 타격을 입은 피해자의 경우 명예의 피해가 거의 회복되지 않는다는 측면이 있다.

마치 오보는 크게 보도되지만, 정정보도는 아주 작게 보도되는 것처럼 말이다.

대부분은 SNS를 자력구제의 수단으로 삼는 경우가 있어서 이러한 일은 더더욱 위험하다.

과연 자신이 제기하는 문제가 정말로 ‘공익’과 관련이 있는지 분노를 표출하고, 사적 보복을 한 후 그럴싸한 명분을 넣은 것은 아닐지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문제는 이러한 일이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들의 행동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출처 TV조선
출처 TV조선

최근 사람들이 일간베스트와 워마드의 행동에 대해 공통된 불안감과 위협을 느낀 것은 바로 SNS와 사적 보복이 결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부분은 “과연 분쟁은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있는가?” 그리고 “정의는 어떻게 객관적으로 증명되는가?”에 대한 고민 없이 자신의 주관적 불쾌감과 복수심만으로 ‘정의’와 ‘선악’을 판단해왔다.

그리고는 SNS를 통해 마녀사냥과 조리돌림을 하고, 그 위에 ‘정의’와 ‘선악 구도’를 덧씌운 형태이다.

분노가 곧 정의는 아니다. 불쾌감을 줬다고 그 사람이 곧 ‘악’이거나 ‘불의’를 자명하게 증명한 것은 아니다.

SNS에 익숙한 것도 좋지만, 보복은 결국 가해자와 피해자에게 커다란 후유증을 남긴다.

오늘날 SNS와 인터넷을 통한 ‘사회적 운동’이 일반화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보편적 인권’과 ‘권리’를 이야기하며 이러한 사적 보복과 자력 구제에 대해서는 둔감하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자신의 이상과 운동의 방향성마저 왜곡되는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다. 바야흐로 폭로의 시대를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정정합니다. A씨는 애초 전 여자친구에게 고소를 당한 바가 없으며, A씨의 전 여자친구는 무고죄가 아닌 명예훼손으로 기소되었습니다. 또한, 검찰의 기소유예가 아닌 법원의 선고유예로서 사실관계를 정정합니다.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임형찬

임형찬

헬조선 개청년
'정치하지마라' 저자
bucuresti@naver.com
임형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