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저널리스트를 신뢰하지 마라”

“절대 저널리스트를 신뢰하지 마라! 저널리스트가 한 어떠한 약속도 직업윤리 따위로 지켜진다는 보장은 절대 없다.”

미국 언론계에서 30년간 고위직, 논설위원, 편집장을 한 저자의 리얼한 경험담이 흥미진진하게 담겨 있다.

언론 종사자보다 독자에게 도움이 되는 <어느 언론인의 고백(Confessions of an American Media Man)>. 톰 플레이트 지음.

취재하고, 취재하고, 또 취재하라!

이 책을 읽은 후 가장 머릿속에 남는 말이다.

지은이 톰 플레이트는 30년간 미국 언론계 고위직인 논설위원, 편집장, 칼럼니스트를 지낸 유명 저널리스트다. 현재는 UCLA 상근으로 연구와 강의를 하며 지낸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통제할 수 없는 미국 언론계에서 보낸 지난날의 삶에 관한 이야기로 이 책의 모든 내용은 전부 사실이며 아무것도 꾸미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어느 언론인의 고백>을 읽는 내내 한국 언론, 특히 메이저 신문사들과 한국의 각종 언론 매체를 비교하고 이들과 대비시켰다.

보수언론 조중동
보수언론 조중동

책은 제법 두꺼운 분량으로 425페이지에 달한다. 매우 흥미진진해서 열심히 읽고 서평을 쓰고 싶다는 어떤 의무감이 들었다.

한국 언론계의 현실은 늘 기대 이하이며 정치 풍향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며 언론이 가진 고유의 본질을 위배하는 경향이 팽배해 있다.

톰 플레이트는 30년간 자신이 몸담았던 미디어 산업인 신문사, 잡지사에 대해 쉴 새 없는 수다를 풀어 놓았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가볍게 읽기에는 너무나 생생하고 신랄한 언론계 비판, 언론계 내부 조직 메커니즘에 대한 이야기였다.

저자는 <타임> 편집장, <뉴욕>·<뉴스데이> 필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등 고위직을 하면서 특히 정치 외교 문제 칼럼니스트로 맹활약했다. 친아시아적인 인물로 아시아 여러 신문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썼다.

세계 각국 정상들과 단독 인터뷰를 수차례 한 경험을 이 책에 소개했다. 김영상·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터뷰 일화가 있으며, 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모 의원과의 인연과 청와대에 대한 인상도 짤막하게 담았다.

톰은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이자 유명한 보수 논객 윌리엄 새파이어의 충고를 가슴에 담고 실천하고자 노력했던 저널리스트였다. 새파이어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톰, 자네가 어떤 문제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것만큼만 알고 있으면 사람들은 자네 생각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걸세. 그들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찾아내서 취재하고, 취재하고, 또 취재해야지. 사람들에게 읽히고 영향력을 미치는 기사를 쓰고 싶다면 집요하게 파고들도록!”

한국의 언론계는 어떤가? 그들은 얼마나 진실과 사실에 충실한 기사를 위해 취재하였던가?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계속 이들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메갈리아 오보 보도한 jtbc 손석희 앵커.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

톰에게 있어 저널리스트라는 직업은 숙명이고 가장 잘할 수 있는, 또한 영광스런 일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언론사의 정치 분야에서 일하면서 수많은 정치인을 만나고 취재하는 일을 즐겼다. 저자는 인정하자고 말한다.

미국 정치는 본질적으로 난장판이고 더럽다고. 선거운동 시스템은 천사 같다기보다는 악마 같다고.

미국이든 한국이든 모든 나라의 정치는 다 그럴진대, 이들과 직접적 부대끼는 저널리스트에 대해 신뢰는 하지 않는 게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정치인들은 항상 저널리스트들에게 기대려고 한다. 그리고 우리 저널리스트들은 항상 그들을 이용해먹나 노출시키고 난 후 속인 다음 버린다. 그것은 미국이 잘 돌아가게 하는 것과는 거의 관계가 없는 어리석은 게임이다.”

저자는 저널리스트들이 미덕의 표본인 양 행동하는 것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저널리스트들 역시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진흙탕에서 헤엄치며 저널리즘이라는 시궁창 같은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진정한 지성인인 저널리스트도 많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대단히 흥미롭고 재미있다. 미국 최고의 신문사와 잡지사의 인간관계, 조직구성 등에 대해 적나라하게 나와 있으며, 언론계에서 인종주의자보다 성차별주의자들이 더 많음을 날카롭게 꼬집었다.

미국 언론계에 재능 있는 여성들이 상당히 많이 있음에도 남성 편집장들의 기득권 방어는 심하다고 밝힌다.

현재는 여건이 좋아져서 여성들이 두각을 내며 큰 활약을 보여주고 있지만 아래 내용은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에서는 강력한 대도시 신문의 공격적인 지지 없이는 어떤 개혁도 사실상 성공하기가 힘들다. 시장이든 시 경찰국장이든 자치 개혁 위원회 위원장이든 가능한 한 많은 동지가 필요할 것이며, 개혁 항해에 바람을 실어주는 데는 뉴스 취재와 사설의 지위 모두에서 진지한 신문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주요 신문의 무관심이나 반대에는 불구하고 성공한 개혁 노력의 예가 아마 한두 개쯤은 있겠지만, 내가 아는 바로는 없다.”

이 대목은 참으로 아픈 대목이다.

노무현 참여정부, 그 어떤 언론도 호의적이지 않았다. 조중동 보수 메이저 언론, 심지어 진보언론 모두 가세하여 공격과 비판을 퍼부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저자는 절망하는 개혁가들을 많이 접하면서 그 역시도 저널리스트로서의 본질, 신문사들의 사명에 대한 많은 복잡한 심경을 적었다.

“신문사는 지역사회 자산으로 여겨질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신문사가 그들이 존재하는 환경 밖에 있는 기관이라는 생각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신문사가 자신들의 영향력을 공익을 위해 사용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도덕적 의무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부분을 읽으면 한국 언론계, 특히 보수신문사들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흔히 언론을 제4의 권력이라 부르지만 이건 옛말이다. 한국에서 언론은 제1의 권력이다. 신문시장의 70%를 독점하고 있는 조중동 보수신문을 보더라도 말이다.

거짓말하면 시사인. 오른쪽 시계 밑에 문제의 태극기+욱일기 소품이 걸려 있다(수정 전)
거짓말하면 시사인. 오른쪽 시계 밑에 문제의 태극기+욱일기 소품이 걸려 있다(수정 전)

신문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저자는 강조한다.

“신문이 거짓말하는 정치인을 맹공격하는 것은 괜찮지만, 인쇄판이든 아니든 신문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저자가 세계적인 미국 잡지계에 일했던 경험을 풀어놓은 부분 또한 재미있다. 잡지계의 조직, 종사자들의 인간관계, 그들의 성격 등이 솔직하고 대담하게 쓰여 있다.

잡지계에서 일한다면 꼭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다. <뉴욕> 잡지 편집장 시절 경험담은 이 책의 백미다.

잡지는 문화적 스냅 샷, 순간의 고정된 그림, 그 시대 문화적 정수 한 부분을 포착이라고 간결하게 정의한다. 그러면서 잡지계의 현실을 솔직하게 말한다.

“잡지는 살아남기 위해 상업적 기반을 가져야 하고 그 기반을 제공하는 광고주들을 모욕할 수 없는 게 잡지계의 현실이다. 절대 저널리스트를 신뢰하지 마라! 저널리스트가 한 어떠한 약속도 직업윤리 따위로 지켜진다는 보장은 절대 없다.”

이 책은 정말이지 흥미로움으로 가득하다. 신문 부문 퓰리처상 선정과 관련된 숨겨진 이야기를 하면서 선정과정의 순수하지 못함에 대해서도 꼬집는다. 때때로 윤리적이지도 못하고 부패했다고 말한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을 비롯한 막강한 파워 신문사에 의해 막판 뒤집기가 일어난다고, 퓰리처상이 부정 조작된 TV 게임 프로그램과 뭐가 다르겠는가? 라고 저자는 되묻는다

<어느 언론인의 고백> 끝부분에 톰 플레이트는 ‘오늘날 저널리즘의 10대 죄악’에 대해 썼지만, 이 부분은 내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30년간 저널리스트 직업을 가진 저자의 경험과 언론계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내용은 값진 소득이었고, 소중한 지침이 될 것이다.

나는 한국의 저널리즘 관계자들에게 묻는다.

미국 언론계가 실상이 이렇다면 도대체 한국 언론계는 어떤가?

그들은 결코 이 책을 읽지 않을 것이다. 낯이 뜨거워질 테니까. 아마도 읽게 된다면 숨어서 몰래 읽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