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편의 폭력’과 희생자

‘4·3 소설가’가 ‘4·3 보고서’를 비판하게 된 이유는?

현길언 소설가의 몇 달 전 조선일보 인터뷰가 페이스북에서 비판받는 것을 보았다.(6월2일자 “‘4·3 보고서’는 진상 규명 외면한 정치 문서”)

인터뷰 내용은 그의 신간 <정치권력과 역사 왜곡>을 소개하는 것으로, 책의 요지는 참여정부 시절인 2003년 완성돼 발표한 ‘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가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었다.

현길언 교수(출처 조선일보)
현길언 교수(출처 조선일보)

페이스북의 식자들은 그의 인터뷰를 원색적으로 욕했고, 몇 명은 그의 ‘변절’을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사 내용을 유심히 보니 그리 단순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의 주장의 합리적 핵심을 추리면 민주정부 시절 정부 조사와 발표가 ‘남로당의 폭력’ 부분을 은폐했다는 것이었다.

잠깐 그의 이력을 검색해보았다. 1940년생 제주 태생으로 1980년대에 제주도에서 일어난 비극에 대한 소설을 다수 쓴 사람이었다.

사실 현씨 성을 쓰는 나이든 이가 4·3사건에 대해 발언을 한다면, 그가 4·3사건에 대해 어떠한 기억을 가지고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누군가는 그의 과거 소설을 ‘진보적’인 것으로 보았고, 그랬기에 현재의 ‘보수적’ 행보를 규탄하며 ‘변절’ 운운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좀 더 알아보니 그는 지난 십여 년간 민주정부에서 만들어진 보고서의 문제에 대해 꾸준히 발언했고, 보고서의 왜곡 문제를 다룬 소설까지 집필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 대해 그가 ‘진보’에서 ‘보수’가 되었다고, 정치적 태도가 변했다고 단언할 수 있는 일일까.

어쩌면 제주도에서 자라난 그는 보수정부의 편향과는 다르게 구부러진 민주정부 역사해석의 역편향을 견디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그의 사관에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고, 그의 사실 기술에도 어떠한 오해나 착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거기서 대화나 토의 없이 그가 보수파에 투항했다고 ‘욕’을 하는 풍토는 지극히 한국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악투쟁 서사, 그리고 본질주의적 접근

서사적 인식에서 우리는 세상사의 투쟁을 ‘옳은 편’과 ‘그른 편’의 것으로 이해한다. 그렇게 정의하면 당연히 누구나 ‘옳은 편’에 서고 싶어 한다.

서사적 인식의 결이 중첩되면 그에겐 이 구분이 너무나 명증해서, 반대편에 있는 이는 단지 다른 서사를 따르고 있을 뿐이라는 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역사해석에서 자신의 서사적 인식을 고수하려는 이들은 ‘본질’이란 말을 많이 쓴다. 그래서 난 그것을 ‘본질주의적 해석’이라고 부르곤 했다.

이를테면 현길언을 비판할 이들의 입장에서 4·3사건의 ‘본질’은 ‘국가폭력에 의한 민간인학살 사건’이다.

제주 4·3 평화 기념관
제주 4·3 평화 기념관

그들에게 “왜 남로당의 폭력은 빼셨어요?”라고 묻는다면 그들은 보나 마나 이렇게 답할 것이다.

“일단 빼지 않았고요. (엄청 짧은 서술 한 두 개를 가리키면서)여기 이렇게 적었고요. 그리고 그건 이 문제의 본질이 아닙니다. 4·3사건의 핵심은 국가폭력에 의한 민간인학살 사건이고, 지금껏 그걸 인정하지 못했던 국가권력의 문제고, 그걸 그대로 드러내고 국가기구에 자신의 죄상을 인정시키는 것이 우리 역할이잖아요.”

물론 나로선 대략 동의할 수 있는 얘기다. 그러나 여기서 다른 서사적 인식의 편에 서면 문제가 이렇게 된다.

“문제의 본질은 남로당이 봉기를 일으켰고 대한민국이 이를 간신히 진압했다는 겁니다. 그 와중에 민간인 몇 명이 죽었다는 건 부차적인 문제이고요. 실제로 군인이 죽였는지 빨갱이가 죽였는지 분명하지도 않습니다. 저런 식으로 역사를 서술하려는 건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거예요.”

서사적 인식의 바깥

노파심에서 말하자면, 내 역사 인식은 당연히 후자보다는 전자에 가깝다. 그러나 전자의 서술에도 찜찜한 구석이 있다.

현길언 교수의 인터뷰 기사에는 위원회에 참석한 강만길 교수가 “4·3사건은 먼 역사적 관점에서는 최초의 통일 시도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발언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비판하는 이의 전언이라 확실하지는 않으나, 사실이라면 의아하다. 그렇게 치면 김일성이 일으킨 6·25전쟁은 “먼 역사적 관점에서는 두 번째 통일 시도”가 되고 긍정할 만한 일이 되는 걸까?

강만길 교수의 저 발언에선 ‘통일 시도’란 것이 긍정적이란 함의가 깔렸는데, 저 세계관을 믿는 이들은 이승만이나 맥아더의 호전성도 ‘통일 시도’란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선악이 뚜렷하게 구별되는 단정한 서사에선 이런 종류의 질문이 생략되곤 한다.

현재 한국 사회의 논의 수준은 이러한 서사들이 충돌할 때 어느 한 편을 들어 줄다리기해야 ‘옳은 편’이 이기고 세상이 발전한다고 선동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올바른’ 역사교육이 아니라고 믿는다.

제주 4·3 평화 기념관의 대통령 공식 사과
제주 4·3 평화 기념관의 대통령 공식 사과

인간과 세상사, 그리고 역사를 이해시키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층이 다양하고 결이 복잡한 일련의 사건을 서사적 인식으로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층과 결을 드러내는 것이다.

벌어졌던 싸움을 ‘대의’ vs. ‘사익’으로 치장하는 것이 아니다. 양쪽 다 대의를 말했고 그 대의를 말하는 이들이 얼마나 이타적이면서도 얼마나 추악할 수 있는지를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 판단은 보는 이들에게 맡길 수 있고, 판단의 내용도 다양해지게 된다.

이승만 정부의 공로나 역할에 대해 언급을 시작하려고만 들면 여러 종류의 민간인학살 문제를 내밀어 입을 다물게 하려는 이들이 있다.

물론 그들이 제시하는 내용은 대체로 사실이며, 추악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라면 해방정국의 좌익은 6·25전쟁을 일으켰다는 이유만으로도 그 공로를 언급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일이 생길 때 서사적 인식은 ‘우리 편의 폭력’을 정당하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그 폭력의 수위는 은폐하려고 한다.

아직도 남침유도설(단순히 말하면, 김일성의 남침이 미국의 전략에 말려든 것이라는 주장) 같은 얘기가 항간에 떠도는 것은 단지 그들이 새로 나온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라서가 아닐 것이다.

희생자의 위치, 그리고 그 바깥

전격적인 사법살인을 당한 인혁당 희생자의 가족들은 당연하게도 박정희를 증오했다고 한다.

희생자의 아내 한 명은 아무도 듣지 않는 산에 올라가 “살인마 박정희, 뒈져버려라!”고 매일같이 외쳤다고 한다. 인지상정이다.

희생자들의 입장에서 개발독재의 효용 문제 따위가 중요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나는 반대방향에서 볼 때, 현길언 선생의 ‘4·3 보고서’에 대한 분개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제주 4·3 사건을 다룬 영화
제주 4·3 사건을 다룬 영화 <지슬>

그의 입장에서 남로당은 자신들의 봉기에 제주도민을 끌고 들어가 학살의 참극을 유발한 세력일 것이다.

거기에다 대고 남로당이 그 국면에서 약자였고, 그 인원 중 누가 정치적으로 순수했다는 따위의 정당화 논리를 들이민다고 해도 씨알도 안 먹힐 것이다.

또한, 남로당이 마치 이 문제에 개입하지 않았던 것처럼 존재를 지우려고 한다면 심각한 왜곡·날조라고 여길 것이다(현길언 작가는 최근에도 ‘4.3 유족회’의 항의를 받아 4.3문제에 대한 특강이 중단되는 등의 갈등을 겪었다고 보도되었는데, 경험자끼리도 의견이 갈리는 것 역시 여러 문제에 있어 흔한 일이다).

뒤집어 말한다면, 그러한 희생자들의 인지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면서도 우리는 역사적 사건들을 달리 평가할 수 있다.

박정희식 경제정책의 공과 과도 희생자들의 정당한 분노와는 별개의 영역에서 평가내릴 수 있다. 해방정국 좌익의 정치적 신념도 단지 저러한 사건들 때문에 ‘뿔이 난 도깨비’의 그것으로 취급받아서는 안 된다.

‘우리 편의 폭력’을 드러내야만 한다

한 번도 이러한 종류의 토의를 진행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보다 훨씬 미시적인 영역에서도 서사적 인식을 하고 사태를 구성하게 됐다.

‘그른 편’이 저지른 ‘폭력’은 일상적이며 심각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하고, 내가 속해 있는 ‘옳은 편’이 저지른 ‘폭력’은 인지하지 못하거나 기껏해야 ‘되돌려주기’, ‘별것 아닌 것’으로 취급해 버린다.

그러다 보니 그 ‘옳은 편’의 희생자들은 저 서사적 인식의 구조를 역전하여 저항세력들을 규탄한다.

가령 남로당에 식량을 빼앗기고 굶어 죽을 뻔했던 농민이라면 “그냥 도둑놈들이지! 뭘 그놈들을 공산주의자라고 불러!”라고 규탄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건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면서도 남로당을 ‘공산주의자가 아닌 단순한 도둑놈’으로 평가하지 않을 수도 있다.

서사적 인식이 선악 이분법으로 존재하고 두 개로 나뉘어서 극한 대립하며 섞이지 못하는 현상은 한국 현대사와 같은 거시 담론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류근 시인(출처 KBS)
류근 시인(출처 KBS)

당장 이 지면에서 처음 다룬 소재인 류근 시인과 한국일보 황수현 기자 사건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보인다.

9월10일자 [한윤형의 시사잡상] 고발과 비평의 혼돈, 황수현 기자와 류근 시인 논란에 부쳐

류 시인의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황 기자에게 퍼부은 폭언을 인지하지 못하고, 황 기자의 지지자들은 류 시인이 인터넷에서 당한 조리돌림에는 눈을 감은 채 사태의 피해자는 황 기자일 뿐이라고 한다.

전반적인 논의 수준이 이와 같은 곳에서는 어떠한 문제를 다루던 양극단의 서사 속에 갇힐 수밖에 없다.

매사 사안을 대함에 있어 다양한 층과 복잡한 결을 감싸 안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이 늘어날 때, 우리 사회의 갈등관리와 문제 해결 능력은 높아질 것이다.

한윤형

혼자 쓴 책으로 ‘뉴라이트 사용후기’(2009), ‘안티조선 운동사’(2010),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2013). 함께 쓴 책으로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2011),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2011).
매체비평지 미디어스에서 3년(2012~2014) 간 정치·신문비평 등을 담당했다.
a_hrima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