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신의 잡설만담] 김성근 야구 몰락에서 한국 정치 변혁을 읽다

역대 최고의 흥행인 800만 관중 시대를 열어젖힌 2016 KBO 리그가 대단원의 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번 시즌은 역대 최다승을 올린 두산의 독주와 주축 선수의 대거 이탈로 하위권 추락이 예상됐던 넥센의 약진, 엘지·롯데·기아 연합으로 묶였던 하위 세 팀 중 엘지와 기아의 중상위권 도약, 삼성과 한화의 추락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그중 지난 시즌 스토브리그부터 숱한 화제와 관심을 끌면서 시즌 전 우승 후보로까지 꼽혔던 김성근 감독의 한화 이글스의 추락은 여러 가지 면에서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점이 크다.

한때 야신(野神·야구의 신)으로까지 불렸던 김성근 감독의 전 근대적인 야구가 더는 KBO에서 통용되지 않음은 물론이고 그가 여태껏 쌓아왔던 리더십도 상당 부분 미화되고 가공된 것임을 이번 시즌을 통해 낱낱이 까발려진 것이다.

잘못된 만남?(출처 YTN)
잘못된 만남?(출처 YTN)

3김 시대보다 훨씬 길었던 KBO 5김 시대

3김시대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서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이 정치의 전면에 나섰던 시대를 의미한다.

이미 고인이 된 김대중, 김영삼 두 전직 대통령과 여러 차례 총리를 역임한 김종필씨까지 세 사람은 각각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를 기반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정치만큼 우리 생활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아니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도 3김 못지않은 5김이 3김보다 더 긴 세월을 좌지우지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2년 OB 베어스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던 김영덕 감독을 필두로, 해태 타이거즈를 한국의 양키스로 만들고 삼성에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안겨준 김응룡 감독, 두산 베어스로 2차례 우승하고 WBC 4강과 준우승, 프리미엄 12 우승까지 일궈낸 김인식 감독,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한국시리즈에서 4차례 우승하며 현대 왕조를 이끌었던 김재박 감독, 그리고 잡초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며 OB, 삼성, 태평양, 쌍방울을 전전하다 2000년대 후반 SK 왕조를 만들었던 김성근 감독까지 다섯 명의 김씨 감독이 KBO의 역사를 만들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3김으로 불린 김태형 김경문 김성근 감독(출처 노컷뉴스)
3김으로 불린 김태형 김경문 김성근 감독(출처 노컷뉴스)

물론 코리안 시리즈 우승은 못 했지만 준우승만 세 번 하며 두산의 화수분 야구 시스템을 만들고 신생팀 NC를 강팀의 반열에 올림은 물론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김경문 감독과 지난해 두산의 한국 시리즈 우승과 올해 정규 리그 최다승 우승을 끌어낸 김태형 감독도 같은 김씨로서 이름을 올릴 만하지만, 현역 감독으로서 계속 활동을 할 감독들이고 운영 스타일에서도 많은 차이점이 있기에 빼도록 하겠다.

어쨌든 이들 5김 감독이 올린 한국시리즈 우승만 해도 20번이고, 김영덕 감독의 삼성이 전후기 리그 통합 우승을 한 1985년까지 포함하면 총 21번으로, 34년 KBO 역사의 절반을 훌쩍 뛰어넘는 횟수이다.

하지만 그 5김 시대도 김성근 감독이 이번 시즌 한화 이글스 감독에서 경질되거나 다음 해에 김성근 감독과 한화 이글스의 계약이 해지됨으로써 드디어 막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구시대 야구의 종말과 한국 사회에 던지는 화두

이 5김의 야구의 특징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엄청난 훈련량과 혹사에 가까운 경기 출장, 감독 중심의 작전 야구를 꼽을 수 있겠다.

물론 상대적으로 자유분방하면서도 정도를 지켰던 김응룡 감독, 김인식, 김재박 감독은 억울할 수도 있겠으나 정도의 차이이지 세 감독도 이른바 쌍팔년도 스타일 야구에서 벗어난다고 하기는 어렵다.

하기야 코리안 시리즈에서 김영덕, 김성근 감독을 연달아 이기며 V10의 신화를 쓴 김응룡 감독이나 숱한 국제대회에서 전 세계 야구 선진국들을 KO 시켰던 김인식 감독은 KBO 역대 감독 순위 1, 2위에 오를 정도의 명감독이기에 다른 김씨 감독 세 사람과 같은 반열에 올리는 것은 무리일 수 있겠다.

고 김대중, 김영삼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리
고 김대중, 김영삼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리

하지만 DJ와 YS가 JP와 한데 엮인다고 억울해하지 않듯이 동시대를 풍미한 다섯 감독을 오김으로 묶는다 하여 두 감독이 크게 억울해할 일은 아닐 듯하다.

재미있는 것은 5김 중 김재박 감독을 제외한 4명의 김씨 감독이 모두 마지막 팀으로 한화 이글스를 택했다는 점이다. 한화 그룹 특유의 보스 한 사람에 의해 결정되는 기업 분위기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강산이 세 번 반 바뀔 세월을 거쳐 한국 사회는 많이 변했고 프로야구는 더 많이 변했다. 무엇보다도 일본프로야구보다 한 경기 더 많은 팀당 144경기를 치르다 보니 과거의 주먹구구식 마구잡이 운영이 더는 통하지 않게 됐다.

김성근 감독이 강조하는 ‘프로는 한 경기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가 아닌 포기할 경기는 깨끗이 포기하고 다음 경기를 대비하는 운영의 묘가 훨씬 중요해졌다.

또한, 두산 베어스의 역대 최다승 우승에서 보듯이 선발 투수가 얼마나 중요한가는 더는 논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 또한 불펜 야구를 중요시하는 김성근 야구가 시대와는 맞지 않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물론 최근 KBO의 트렌드인 극단적인 타고투저와 한화 이글스의 빈약한 투수 전력이 더욱 김성근 야구를 현실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과거 SK의 전성기처럼 번트를 통해 기회를 만들어서 한두 점 리드하고 막강 불펜으로 틀어막는 야구는 더는 추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살들이 엄청 많네요(출처 jtbc)
보살들이 엄청 많네요(출처 jtbc)

물론 김성근 야구가 5김 야구를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다. 김성근 야구는 5김 야구 중 가장 부정적이고 지저분한 야구다.

퀵후크를 남발하고, 좌우 속설을 신봉하며, 한번 실수로 교체하고, 번트를 비롯한 어설픈 작전으로 자멸하는 후진 야구다.

5김 중에서도 SK를 맡기 전까지는 2002년에 LG로 한 차례 한국 시리즈에 진출한 것 말고는 정규리그 우승은커녕 한국시리즈 진출도 없던 플레이오프가 한계여서 거둔 성과가 제일 적은 감독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김성근의 SK 야구가 한때 KBO를 지배했던 야구이고, 김성근 감독이 한화를 구원할 유일한 감독으로 꼽히면서 이 시대의 이상적인 지도자로 추앙받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허상이 낱낱이 까발려진 지금, 이제는 김성근 초빙 운동을 했던 한화 이글스 팬들 사에서 김성근 퇴진 운동이 일어날 조짐이다.

이렇게 급변한 프로야구처럼 한국 정치도 격변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한국 사회도 이제 박근혜 대통령 시대가 딱 1년하고도 2개월 남았다.

박근혜 대통령(출처 청와대)
하다하다 북한한테 “드루와~”하는 박근혜 대통령(출처 청와대)

애초 아버지 박정희의 후광과 새누리당이라는 배경,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메리트로 집권한 박근혜 정권은 김성근 감독의 한화 감독 부임과 그 후 행보에서 많은 부분이 닮았다.

시대에 맞지 않는 정신력의 강조, 본인의 잘못보다는 남 탓을 하는 어법, 일부 열광적인 팬덤의 존재 등의 공통점이 있는 두 사람의 사고방식은 대한민국 중장년층의 사고방식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넘어 우려를 낳게 한다.

그래도 이제 한화 구단은 포스트 김성근, 대한민국은 포스트 박근혜 시대를 준비하면서 어떻게 하면 과거의 아픔과 후유증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약을 모색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시기다.

특히나 대한민국에 차기 대선은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니라 케케묵은 지역감정과 새로이 불거지는 세대대립, 소득 불평등이라는 한국 사회의 고질병을 치유하는 해원의 장이 되어야 하는 당위성이 있다.

이 시기를 놓치면 영영 잘못을 바로 잡을 기회를 얻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절박함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3김 시대와 그 후예인 노무현, 이명박근혜 시대를 거쳐 새로운 세대의 정치를 시작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김성근 감독은 얼마 전 혹사 논란에 대해 ‘한화가 혹사면 대한민국 전체가 혹사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본인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겠지만, 그의 말대로 대한민국은 지금 수많은 사람이 혹사 중이거나 강제 휴식 중이다.

한화 구단이 김성근 이후에 참신한 감독을 뽑음으로써 다시금 재건에 성공할 수 있느냐 여부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고 궁금한 대한민국의 박근혜 이후의 시대. 대한민국은 다시 희망을 노래할 수 있을까?

권혁신

권혁신

스포츠와 대중문화를 사랑하는 21년째 작가 지망생
온갓 잡스러운 이야기를 하는 사람
paranheasung@hanmail.net
권혁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