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형찬의 리얼한 대한민국] 아역 배우는 노예인가?

아역 배우의 권리를 인정한 쿠건법

얼마 전 TV 프로그램에서는 재미있는 장면이 하나 방영됐다. 바로 사회자 김구라씨의 아들 김동현 군의 재산 내용에 관한 것이었다. 황당하게도 김동현군이 연예 활동을 하면서 벌어들인 수입을 엄마가 모두 빼내어 가져간 장면이었다.

1921년 찰리 채플린 감독 영화 <The Kids>에 출연한 아역 배우가 한 명 있다. 재키 쿠건(Jackie Coogan 1914.10.26~ 1984.3.1)이라는 아역 배우였다. 당시 4살이었던 쿠건은 일약 스타가 되어 상당한 수입을 올렸다. 하지만 그 재산을 관리하던 부모의 갈등과 낭비로 거액의 수입은 쿠건이 쥐어보지도 못한 채 다 탕진하고 말았다.

그래서 1939년 그의 이름을 딴 쿠건법(Coogan Act)가 제정되고, 아역 배우의 수입은 신탁 관리하에 성인이 될 때까지 보호된다. 이 법의 의미는 부모가 자녀의 양육권을 가지지만 그 노동에 대한 수입을 임의대로 사용할 수 없음과 함께 노동자로서의 자녀는 독립된 개인으로 간주한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이러한 법 때문에 우리가 아는 맥컬리 컬킨(Macaulay Culkin)은 성년이 되기 전 가정불화와 마약 사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엄청난 부(약 1500만 달러)를 소유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아역 배우는 여전히 부모의 소유물(?)로서 간주하는 듯하다. 그리고 한 인간과 개인의 생애로서 존중받지도 못하고 있다. 지난 9일에 필자는 TV 프로그램을 보며 아직도 우리나라의 낮은 인식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자정이 넘어서 생방송에 출연하는 아역 배우

지난 9일에는 CJ E&M의 한 채널인 tvN 시상식이 개최되었다. 개국 10주년을 맞아 콘텐츠와 출연자들에 대한 시상식을 한 것이다. 그런데 끝나갈 무렵 필자는 기이한 장면을 보게 됐다. 바로 <응답하라 1988>에 출연한 김설(진주 役)양이 등장한 것이다.

그 시각은 이미 자정을 넘긴 시작이었다. 사회자는 김설 양에게 “잠이 안 와요?”라는 질문을 던졌고, 김설 양은 “괜찮다”는 대답을 했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사회자는 김설 양에게 “잠이 안 와요?”라는 질문을 던졌고, 김설 양은 “괜찮다”는 대답을 했다.
사회자는 김설 양에게 “잠이 안 와요?”라는 질문을 던졌고, 김설 양은 “괜찮다”는 대답을 했다.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해리포터> 시리즈는 아역 배우가 많이 나오는 영화였다. 그래서 노동법 규제를 많이 받은 작품이기도 했다. 당시 제작자 데이비드 헤이먼은 “영국 노동법상 16세 이하 연기자는 오전 9시 30분에서 오후 7시까지만 연기할 수 있다”라고 밝힌 적이 있었다.

심지어 이웃 국가인 일본에서도 미성년자 연예인은 법의 규제를 받는다. 우리나라의 아이돌 ‘카라’의 강지영 씨는 일본 활동 당시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노동 시간 규제를 받았다. 그래서 카라 콘서트임에도 강지영씨가 빠진 채로 진행되기도 했다.

영화의 메카인 할리우드의 경우에는 캘리포니아 주법으로 아동 배우법(Child Actor Bill)이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연령대에 따라 조명 노출 시간과 촬영 시간을 구체적으로 규정해두고 있다. 게다가 학습권도 중요하기 때문에 교육 감독 기관이 아역 배우의 학력을 검증하여 미달할 경우에는 제작자는 처벌을 받는다.

바로 미성년자라는 특수한 지위의 노동자가 결정하거나 주체적으로 행사할 수 없는 ‘재정권’과 ‘교육권’, ‘건강권’에 대한 권리를 국가가 나서서 보호해주는 것이다.

자녀를 소유물로 보는 부모와 아역배우를 소모품으로 보는 제작자

우리나라의 제도는 매우 원시적이라고 볼 수 있다. 앞서 김구라·김동현 부자의 이야기에 대해서 그 누구도 입법 의제로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연예면 언론 기자들도 단지 가십성으로 처리하고 말았다. 과거 가수 장윤정씨의 사례만 보아도 성인 자녀에 대한 부모의 인식도 꽤 문제였었다.

즉, 성인인 가족 사이에서도 재정권의 보호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니 아역 배우나 여타 미성년자 연예인의 경우에는 더 할 말도 없다. 제도보다는 오로지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그 마음 하나로 해당 연예인의 미래를 점쳐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제작자도 마찬가지이다.

2013년 개봉한 영화 <소원>도 아동 성폭행 피해자 역을 맡은 이레(소원 役) 양은 심리 상담만 받았다고 하며, 연출자였던 이준익 감독의 인터뷰와 달리 당시 언론의 취재 결과 그 상담 사실도 확인할 수 없었다. 법적으로 실제 피해자는 아니었기 때문에 정신과 치료에 대한 지원도 못 받았다.

이준익 감독 영화 소원
이준익 감독 영화 소원

이런 문제들은 어른들의 잣대로 생각하면 안 되는 사안이다. 비록 현재에는 해당 아동이 별문제 없이 배역을 소화하고, 정상적인 활동을 하지만 또래의 아동에 비해 모자란 수면 시간과 학습량, 그리고 활동상에서 나타나지 않았던 정신적 학대는 매우 장기적인 관찰이 필요하다.

하지만 제작자들은 일시적으로 아역 배우가 필요하니 그때까지만 관리하며, 부모는 아이의 미래를 빙자해, 오히려 학대의 구조에 몰아넣기도 한다. 게다가 아동들은 학대를 잘 못 느낀다. 그것을 놀이처럼 받아들이면 말이다.

최근 김영란법이 시행되며, 연예계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즉, 학교 측에 공문을 보내는 것이 부정청탁이 된다는 것이다. 아역 배우나 미성년자 연예인들의 활동에 지장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연예인 활동이 중요한가? 한 아이의 인생이 중요한가? 학습권과 건강권, 재정권까지 보호해주지 못할 요량이라면,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 어른들의 추악한 이기심임을 하루빨리 깨닫길 바랄 뿐이다.

임형찬

헬조선 개청년
'정치하지마라' 저자
bucurest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