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윤형의 시사잡상] 박근혜 ‘폭망’, 야권의 축복일까

 

콘크리트가 흔들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임기 최저치를 향해 나아간다. 지지했던 이들의 민심 이반이 심각하다는 얘기가 들린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의 힘이다.

개헌으로 덮어 보려 했지만, 개헌 논의의 필요성과는 별개로 JTBC ‘연설문 첨삭’ 보도가 그 효과를 잠재웠다.

진정한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에 대한 보도가 터지기 시작했다. 조선일보 지면에 ‘하야’란 한자어 해설이 등장하고, 중앙일보 페북지기가 이 해설을 해설한다. 아무도 이 상황을 막을 수 없다.

최순실(개명한 이름은 최서원이라지만)의 전횡은 처음 추적될 때는 가장 큰 규모의 사회악이라 보기 어려웠다. 국가권력을 활용해 장사하고 정산을 정확히 끝낸 이들, 취지와 어긋나게 작동하는 개혁정책을 입안하는 이들의 문제가 더 커 보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건에 처음부터 확실하게 반응했다. 지저분하기 때문이다. 국책사업이나 개혁정책과 달리 아전인수성 옹호조차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정윤회 게이트’ 때부터의 학습효과로, 현 정부가 꼬리 자르기조차 하지 않으리란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또한 ‘이화여대 졸업장’과 같은 것은 그 가치가 엄청나지는 않을지라도 서민들에게 와 닿을 수 있는 재화였다. 정유라씨를 둘러싼 특혜의 정황이 공분을 일으킨 것도 그 때문이었다. 청년층이 경험하는 사회적 현상을 표현한 ‘수저론’에 그야말로 맞아떨어지는 상황이었다.

원래라면 반대로 정유연 선수와 함께 단체전 금메달을 땄던 동료들이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야 한다.
원래라면 반대로 정유연 선수와 함께 단체전 금메달을 땄던 동료들이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야 한다.

“후보만 되면 된다”는 야권 후보들

헌데, 박근혜 정부의 ‘폭망’ 예감에 고무된 이들이 있다. 야권의 각 대선후보 진영 사람들이다. “후보만 되면 된다”란 말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다고 한다.

이와 같은 말이 문재인 주변에서 나왔다면 이해할 만하다. 백번 양보해 안철수 주변에서 나왔다 해도 이해해볼 여지는 있다. 그러나 이에 더해서 현 정부에 대한 민심이반을 두고 야권의 각 후보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면 어찌 될까.

물론 지금의 상황은 2012년에 비해서도 괜찮다. 당시 새누리당은 이명박 정부가 ‘친이후보’를 내세우는 것을 결국 포기한 이후 박근혜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단결해 있었다. 2012년 총선에서 야권연대가 과반수를 얻는데 실패한 이후로는 박근혜가 줄곧 가장 앞서 나가는 주자였다.

그런 식으로 당을 추스를 수 있었던 것도, 박근혜란 정치인이 모든 계층, 모든 지역, 모든 연령에서 10% 이상의 기본적 지지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러한 지분이 박근혜 개인의 역량 때문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 지분을 중심으로 한 권력획득 연합이 가능할 수 있었다.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크게 두 가지 면에서 그렇다.

먼저 여권에도 뚜렷한 주자가 없다. ‘반기문 대망론’이 나오지만, 여의도 정치 내부에서의 조직적 실체는 없다. ‘반기문 대망론’은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의 지지율과 새누리당 통제력이 의미 있게 유지될 때 작동할 수 있는 공식이다. 지금의 상황이 지속하면 반기문은 등판 자체가 어렵거나, 등판하더라도 어려운 싸움을 치러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국회에서 2017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출처 청와대)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국회에서 2017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출처 청와대)

박근혜 정부의 통치행태는 어째서 외면받는가

인기가 떨어진 박근혜 정부의 권위적 통치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여권에 부담이 되고 있다. 레임덕이 쉽게 오지 않는 상황이 보수 세력에게 ‘정권교체가 현실화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주는 웃기는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의 통치전략은 1) 국정원-검찰을 중심으로 한 공안통치 2) 여당인 새누리당에 대한 엄격한 통제를 통한 의회 견제 무력화 3) 콘크리트 지지율 유지로 요약해볼 수 있다. 세 영역이 서로를 지지하면서 ‘87년 체제에서 보수 정권이 반대파 신경 안 쓰고 통치하는 최적화 비법’을 완성했다.

민심 이반의 근본 원인은 이 통치방식 자체는 아니다. 콘크리트 지지층은 정치적 반대파를 몰아내는 이 방식에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문제는 박 정부가 이런 식으로 확대한 막대한 권력을 쓸 줄을 몰랐다는 것이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기구의 역할이나 공동체의 안녕에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아버지를 정점으로 한 위계서열 구조를 복귀시키는 것을 ‘애국’이라 지칭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무언가를 할 마음이 없으니 정책이 요동친다. 국가권력은 ‘대통령 절친’이 재벌에게서 삥이나 뜯는 도구로 전락했다.

이른바 ‘정윤회 비선 실세’ 논란이 일어났을 때 어떤 정치부 기자들은 “차라리 정윤회가 비선 실세이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정윤회는 제법 합리적인 사람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권력을 가지기만 하고 행사할 줄은 모르는 정부에서 ‘대통령 절친’이 호가호위하고 있단 게 사태의 본질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이 부분을 깨닫고 있다. 권력이 포악하기만 하지 자신들을 위해서는 행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민심이반이 일어나고 있다. 세 영역 중 3) 지지율이 흔들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국회에서 2017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친 뒤 퇴장하고 있다.(출처 청와대)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국회에서 2017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친 뒤 퇴장하고 있다.(출처 청와대)

보수세력이 박근혜 정부를 불안해하는 까닭?

그러나 1) 공안통치 전략은 여론이나 의회와 상관없이 작동한다. 힘이 쉽게 꺾이질 않는다. 보통의 경우라면 3) 지지율이 흔들리면 2) 의회통제력이 약화하고 그러면서 1) 역시 허물어져야 한다.

그런데 총선을 이미 치렀다. 87년 이후 대통령과 의원은 임기가 다르기에 총선이 임기 중 언제 올지는 ‘운’의 영역인데 박 정부는 운이 좋았다.

임기 후반기를 대비하여 ‘박근혜 충성파들’을 잔뜩 공천해도 과반이 될 수 있단 생각으로 치렀다. 과반 획득은 실패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친박으로 가득 찼다.

역설적으로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다수당이 아니라도 의회 무력화가 가능하다. 싫어하는 걸 막을 수 있다. 대신하고 싶은 것도 못한다. 통제라기보단 무력화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 정부의 존재 방식은 권력을 손아귀에 움켜쥐기만 할 뿐 그걸 쓰는 데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국회는 작동하지 않아도 된다. 국회가 작동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안 한다고 침이나 뱉으면 된다.

그렇기에 보수세력은 불안하다. 인기가 떨어진 정부의 통제력이 여전히 건재한 상황, 민심이반이 가속화되고 정권교체가 필연으로 바뀔 수 있는 상황이다. 멀리 떨어진 필부에게도 이리 보인다면, 정치권 사람들에게 어찌 다가올지는 뻔하다. 그래서 야권 사람들은 흥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만사는 새옹지마다. ‘박근혜 정부의 강고함’이 보수 세력에게 악몽이라는 역설처럼, ‘박근혜 정부 폭망’이 야권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유승민의 ‘관운’에 주목하라

아마 총선이 내년쯤 치러지는 상황이었다면 새누리당 의원들은 벌써 박근혜를 벗어나고 있었을 것이다. 총선을 올해 치렀기 때문에 아직은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상황은 달라진다. ‘여당 의원’이 되느냐 ‘야당 의원’이 되느냐의 갈림길이다. 차이가 크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권력에 민감한 사람들이므로, 이 차이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보수세력 전체가 정권교체의 불안감에 흔들리고 새누리당 의원들이 보신에 신경 쓰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 ‘박근혜 정부의 후계자’가 아닌 ‘보수세력의 승리 최적화 후보’를 찾아 나선다.

몇 달 전까지 유승민은 새누리당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버티는 처지였다. 하지만 콘크리트가 깨져나가면 그의 운신의 폭은 넓어진다. 아마도 각자의 관운을 재는 기계가 있다면 지난 몇 주간 ‘유승민 대통령’의 가능성은 몇 퍼센트포인트 정도 상승했다고 보고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2월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유승민 의원과 박근혜 대통령 관계가 파탄나기 전(출처 청와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2월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유승민 의원과 박근혜 대통령 관계가 파탄나기 전(출처 청와대)

야권의 상황은 어떠한가. (진보정당은 빼더라도) 정당은 분열되어 있고, 분열된 두 정당이 내년 혹은 내후년까지 지속할 거란 전망이 확실하지도 않다. ‘제3지대’나 ‘중간지대’ 따위의 말이 나오는 이유다. 결국, 후보를 어떻게 선정해야 하는지 아닌지도 각 당의 경선룰 너머의 영역에 있으며 불확실하다.

“후보가 되면 이긴다”는 말 이면에는 “그런데 이번에는 후보를 어떻게 뽑는 거야? 아직 다들 잘 모르지? 그러니까 내게도 기회가 있어”라는 판단이 숨어 있다. 이 판단이 깃든 현실은 야당의 모든 야망 있는 사람들을 호출하는 데엔 유용할지언정, 공익적이진 않다.

야권, 정권교체에 절실해야 한다

정권교체가 절실하지만, 야권은 절실하지 않아 보인다. ‘승리 최적화 후보’를 내야 한다는 여론적 압박도 보수진영보다 덜하다. 각 후보를 지지하는 야권 지지자 중 상당수가 이미 패권적이고, 그런 종류의 목소리를 내는 언론을 린치하기 때문이다.

정권교체의 절실함을 조목조목 영역별로 설명하는 자세도 부족해 보인다. 이른바 중간지대를 말하는 도전자들도 ‘여의도 정치’ 내부의 계파적 합종연횡을 ‘새 판짜기’라고 말하는 것 이상의 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공허하다. 야권 지지자와 중도파의 마음에선 천불이 나는데,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지르는 언술이 없다.

“후보만 되면 된다”라는 말 뒤에 숨은 안이함이 걱정이다. 이 안이함과 저 안이함이 만나, 진흙탕 싸움을 보여줄 때, 위기를 강하게 느낀 새누리당이 지금까지 보여준 강한 권력의지로 ‘승리 최적화 후보’를 내세우게 될까 봐 걱정이다.

그렇게 된다면 2017년 대선은 훨씬 더 좋은 조건에서도 2012년 대선과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다. 그리고 그리된다면 사후적으로 이 정국을 바라본 논평가는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는 야권에 양날의 검이었는데, 그만 거기에 야권이 베이고 말았다, 고 말이다.

한윤형

한윤형

혼자 쓴 책으로 ‘뉴라이트 사용후기’(2009), ‘안티조선 운동사’(2010),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2013). 함께 쓴 책으로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2011),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2011).
매체비평지 미디어스에서 3년(2012~2014) 간 정치·신문비평 등을 담당했다.
a_hriman@hotmail.com
한윤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