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영 변호사와 함께 기다리는 28일

대한민국은 합리성을 견지하려는 정치평론가에게 테러집단이나 다름없다. 나는 대략 4년 반 전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사찰 전모가 드러날 때도 비슷한 심정을 토로했지만, 이번엔 규모가 우주적이었다.

어제 게재한 칼럼은 온 우주의 힘을 모은 테러에 혼비백산할 지경에서 일주일 전부터 쓰던 글을 최대한 고쳤으나, 결국 시의성을 잃었다. 끝까지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보다는 ‘대통령 절친의 호가호위’가 실상에 가깝다고 생각했던 이의 분석은 설 자리를 잃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국회에서 2017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출처 청와대)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국회에서 2017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출처 청와대)

향후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공화국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란 문제를 처음부터 안고 출발해야 할 것이다. 오늘은 그 ‘미친 대한민국’을 구성하던 한 요소에 저항해온 사람에 대해 얘기를 하고 싶다.

오는 28일 오전 재심 선고를 앞둔 전북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 사건은 검경의 부실·조작수사 논란으로 지난해 3월 재심청구가 들어간 사건이다. 그 중심엔 변호사 박준영이 있었다. 해당 사건은 2014년 9월 20일에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집중 조명되었는데, 이 방송서 박 변호사는 국가권력에 의해 피해를 받은 3명에게 재심청구 의사를 확인한다.

참조: 2014년 9월 20일 ‘TV리포트’ 기사

몇 년 전부터 알음알음 매체에 등장하기 시작한 박 변호사는 ‘한국 최고 재심 전문 변호사’라고 소개된다. 어쩌면 최초인지도 모른다. 재심이란 이미 재판이 끝나서 형이 확정된 사건 가운데 판결에 중대한 하자가 있는 경우 다시 재판하는 제도다. 약자들에 대한 재심을 도와줄 수 있는 국가기관 하나 없는 현실에서, 박 변호사는 돈이 되지 않는 공익활동에 힘쓰고 있다.

박준영 변호사(출처 다음 스토리펀딩)
박준영 변호사(출처 다음 스토리펀딩)

참조: 2015년 12월 19일 한겨레 [토요판] 이진숙의 열림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그러나 소금 같은 변호사 박준영>

그는 주로 “가난하고, 못 배웠으며, 지적 장애가 있거나, 자기표현을 잘 못 하는, 게다가 살인누명까지 쓴 사람들”을 의뢰인으로 받아 재심을 받아왔다. ‘재심시리즈 3부작’으로 스토리펀딩으로 소개됐고, 좋은 결과를 일구어냈다. 그러다 파산 위기에 처하자 아예 그의 활동 전반을 후원하는 ‘박준영 시민 변호사 만들기’ 스토리펀딩이 진행돼 놀라운 반향을 끌어내고 있다.

참조: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 스토리펀딩

박 변호사의 공익활동 시작은 국선변호사로서 우연히 맡게 된 한 사건 때문이었다. 이른바 ‘수원 노숙 소녀 살인 사건’(2007)이다. 당시 박준영은 굴곡진 삶을 겪고 늦깎이로 사시에 합격한 고졸 출신 변호사로 건당 20만원씩 하는 국선 변호를 한 달에 70~100건 맡아 하던 속칭 ‘국선 재벌’이었다.

그러나 10대 소녀의 죽음에 대해 검경이 20대 노숙인 2명과 10대 가출청소년 5명 등 총 7명을 범인으로 지목한 이 사건을 박 변호사가 접하게 되면서 인생의 변곡점이 온다. 기소된 아이가 쓴 한 통의 편지를 보고 흔들린 박 변호사는 사건을 다시 추적하고, 가출청소년 5명의 무죄를 끌어냄은 물론 이미 형을 살던 20대 노숙인 2명에 대해서도 재심청구 및 무죄판결을 이끌어낸다.

참조: 2012년 9월 6일 한겨레 <[무죄의 재구성 – 노숙 소녀 살인사건] 7명이 거짓 자백을 했다, 왜?

이어서 그는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허위자백 문제’에 비상한 관심을 지니고 유죄판결을 받은 이들의 사건을 검토하게 된다. 재심사건을 다룬 그는 민변 변호사들이 관련했던 사건에서 그들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재심이 어려워진 경우도 겪는다. 그래서 그는 민변에 비판적인 입장으로, 가입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한국 사회의 ‘허위자백 사건’의 큰 줄기인 ‘간첩 조작 사건’을 만나서 경험의 지평을 넓히게 된다.

참조: 2014년 11월 17일 오마이뉴스 <“차라리 잘됐다, 검찰은 빨리 나를 기소하라” – [인터뷰] ‘수사기록 유출 혐의’로 수사받고 있는 박준영 변호사

박 변호사는 말하자면 ‘우리 시대의 변호인’이다. 그는 영화 <변호인>의 배경이 된 1981년으로부터 한국 사회가 얼마나 진전된 것인지를 뼈아프게 묻는다.

부림 사건을 다룬 영화
부림 사건을 다룬 영화 <변호인>

민주화 이후의 국가기관이 과거처럼 대학생과 노동자에서 허위자백을 유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탈북자나 가출청소년, 정신지체아 등 자신의 권리를 잘 모르고 방어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해 허위자백 사건을 만들어내면서 치안을 지켰다고 자부한다.

그는 평등하지 못한 세상의 사회적 정의를 묻는다. 십대 후반의 나이로 살인범으로 몰렸고, 그 형량을 모두 마치고 나오고 나서야 국가기관의 실책을 깨닫고 항의를 시작한 3명의 청구인과 함께 무죄판결을 기다린다. 가난한 청춘을 구겨버린 이들에 대항해 투쟁하는 그는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대변하는 서글픈 양심이다.

한윤형

혼자 쓴 책으로 ‘뉴라이트 사용후기’(2009), ‘안티조선 운동사’(2010),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2013). 함께 쓴 책으로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2011),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2011).
매체비평지 미디어스에서 3년(2012~2014) 간 정치·신문비평 등을 담당했다.
a_hrima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