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하루하루가 막장 드라마보다 더 다이나믹한 대한민국의 정국이라지만 이 정도로 막 갈지는 몰랐다. 독재자의 딸이 사이비 종교의 교주에게 20년 가까이 몸과 마음을 지배당했고, 그 후엔 그 딸에게 모든 것을 의탁하다가, 대통령이 된 후엔 그 딸이 국정까지 마음대로 전횡했다는, ‘세상에 이런 일’에나 나올 일이 이 땅에서 펼쳐지다니… 대다수 국민은 분노와 충격을 넘어 자괴감과 허탈감을 느끼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데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라는 칼 마르크스의 말대로 이전에도 희귀하지만 비슷한 사례는 있었다.

South Korean President Park Geun-hye bows after releasing a statement of apology during a news conference at the presidential Blue House in Seoul this week. (Yonhap/Reuters)
South Korean President Park Geun-hye bows after releasing a statement of apology during a news conference at the presidential Blue House in Seoul this week. (Yonhap/Reuters)

중국사와 한국사의 혼군들
물론 한 나라 권력의 정점에 오른 이가 이토록 백치 수준으로 어리석은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몇몇 봉건 시대에 선례가 없던 것은 아니다.

삼국지연의로 잘 알려진 중국의 삼국시대를 통일한 진 황조의 2대 황제 사마충은 지능이 떨어져서 천하에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리자 “어찌하여 고기 죽을 먹지 않느냐”는 물었을 정도였다. 이렇게 어리석은 그가 황제가 된 비결은 당시 권신이던 가충의 딸 가남풍이 부인이었던 덕이었다. 가남풍은 갖가지 계교로 진의 초대 황제 무제 사마염이 내린 시험을 사마충이 통과할 수 있도록 도왔고 결국 사마염 사후 사마충은 황위에 올랐다.

하지만 가남풍이 전횡과 부정을 일삼으며 황태자까지 죽이자 조왕 사마륜 등이 들고일어나 가남풍 외 가씨 일족을 몰살한다. 이후 진은 사마 씨 일족 간의 끝없는 집안싸움으로 국력이 크게 약해진 상황에서 이민족의 침략을 받아 멸망하고 중국은 역사상 최악의 혼란기인 5호 16국 시대로 접어든다.

박근혜 대통령을 사마충에, 최순실을 가남풍에 대입하면 당시의 진나라와 지금 대한민국이 매우 유사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녹록지 않은 경제 상황과 대외 여건까지 고려하면 이후 대한민국도 5호 16국 이상의 혼란기를 겪지 말란 법이 없다.

국내 역사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유사한 인물로는 우선 신라를 멸망으로 이끈 진성여왕을 들 수 있다. 신라의 3여왕 중 마지막 여왕인 진성여왕은 신라의 쇠망기에 즉위하여 초기엔 민심 수습을 위해 노력했으나 숙부이자 남편인 위홍이 죽고 난 이후 국정은 혼란해졌고 여왕 본인도 젊은 남자들과 놀아나는 등 황음에 빠졌다. 결국, 견훤과 궁예 등이 반란을 일으켜 나라를 세움으로써 후삼국 시대가 시작되고 신라는 고작 경주 부근만 지배하는 소국으로 전락하고 만다.

또 사교에 빠져 국정을 망친 거로는 고려의 공민왕과도 비교할 수 있다. 공민왕은 대륙의 원명 교체기에 즉위해 국정 전반을 개혁함으로써 고려의 중흥을 꾀하며 성군으로까지 불렸지만, 부인 노국공주가 죽자 실의에 빠져 국사를 신돈에 맡김으로써 고려를 멸망으로 이끌고 만다.

고려 공민왕
고려 공민왕

이후 신돈이 실정을 거듭하자 공민왕은 그를 귀양 보내 죽이지만(신돈이 개혁을 추진하다가 반대파에 모함을 당해 죽임을 당했다는 설도 있다.) 자신마저 자제위 홍륜 일파에 암살당함으로써 비참한 최후를 마치고, 이후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기 전까지 한반도는 외침과 내홍으로 신음한다.

이렇게 중국과 한국의 세 암군은 세 통일 왕조를 끝장내고 본인도 비참하게 삶을 마쳤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는 민주 공화정이기에 박근혜 대통령이 죽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이 나라가 더는 갈라질 여지는 없다는 것이다.

한국 현대사, 좌절의 반복을 넘어
세 암군의 긍정적인 역할을 억지로라도 찾아본다면, 진 혜제는 서진을 멸망시킴으로써 동진이 강남을 개발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했고, 진성여왕과 공민왕은 고려와 조선이라는 새 왕조가 들어설 여건을 조성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건더기라도 있지 당시엔 너무나 암울하고 고통스러운 시대였을 것이다.

이번 최순실 게이트도 너무나 황당하고 어이없는 사건이지만 부패한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된다면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하지만 지난 한국 현대사의 반복된 좌절들은 희망보다는 우려를 던져준다.

분명히 이 땅엔 어둡고 추악한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기회가 몇 번이고 있었다. 1960년 4·19 시민혁명과 1980년 5월 서울의 봄, 1987년 6월 항쟁과 1997년 IMF 직후 정권 교체, 2004년 탄핵 역풍까지 적어도 다섯 번은 과거 청산의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민주 세력이 어설프게 타협하고 자만하며 분열한 결과 다시금 기득권 세력에게 정권이 돌아갔고 과거 청산은 번번이 무산됐다.

이제 다시 한 번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 기회가 오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과거의 오류를 반복한다면 더는 희망은 없다. 지난 8년간 폭정과 부정부패를 일삼았던 이명박근혜 정부의 부역자를 처단하는 것은 물론이고, 해방 이후 끈덕지게 이어지고 있는 친일파 후손들의 기득권을 박탈하고, 역대 최대인 소득불균형을 바로 잡아야 한다.

이명박근혜 정부의 부역자 중 최고는 역시 이 사람
이명박근혜 정부의 부역자 중 최고는 역시 이 사람

더는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는 20~30대에게 희망과 일자리를 줘야 하고, 역대 최악인 남북 관계를 개선하여 평화 통일의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불행히도 경제지표는 1997년 IMF 직전과 유사할 정도로 최악이며, 그에 따라 자살률도 OECD 1위를 질주하고 있다.

주변 국가 중 북한은 연일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진행하며 긴장감을 높이고 있고, 일본은 평화헌법을 개정하며 유사시 한반도 진출을 꾀하려 하고, 중국은 사드 배치를 기화로 대대적 무역 보복을 공언하고 있다. 그야말로 내우외환이 겹친 상황에서 무당의 말에 휘둘리는 꼭두각시 대통령이 엉터리 정책으로 국정을 말아먹고 있는 형국이다.

이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꼭두각시를 끌어내리는 것보다도 끌어내리든 말든 이후 어떻게 정국을 이끌어 가느냐이다. 어차피 1년 4개월 후면 끝날 정권이다. 탄핵이든, 하야든, 거국내각이든 결과는 그다지 다르지 않을 수 있다.

그보다는 이후에 어떻게 집권하고 어떻게 부역자들을 처단하며 어떻게 국정을 쇄신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시점이다. 이때 과거의 사례를 돌아보며 반면교사로 삼지 않는다면 또다시 대한민국은 실패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꼭두각시 박근혜 정권을 끝내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이후를 준비하지 않는다면 한반도는 또다시 불행한 좌절의 역사를 반복할 것이다. 오래전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 지금 바로 우리가 역사로 배우지 못한다면 미래는 없다. 우리 모두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