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새누리당 지지층이야!

지난 1일 게재한 칼럼에서 나는 “지난달 26일 아침이 밝았을 때, 세상은 어제와 같을 수 없었다”라고 썼다.

나는 “애초 ‘최순실 게이트’는 ‘대통령 절친의 호가호위형 축재 폭로’에서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 의혹’으로 번져나갔다. 하지만 끝내는 ‘박근혜라는 정치인이 허깨비였다는 폭로’에 이르게 되었다”라고 썼다.

그리고 이 폭로의 충격파는 박근혜의 정치적 적대자가 아닌 애초 ‘30% 콘크리트 지지층’이라 불리던 그 지지층에 직격된 것이라 분석했다. 내 생각에, 이것은 별다른 예측이나 통찰이 아니었고, 그저 주변 사람들을 부지런히 관찰하기만 하면 알 수 있는 것이었다.

South Korean President Park Geun-hye bows after releasing a statement of apology during a news conference at the presidential Blue House in Seoul this week. (Yonhap/Reuters)
South Korean President Park Geun-hye bows after releasing a statement of apology during a news conference at the presidential Blue House in Seoul this week. (Yonhap/Reuters)

청와대는 스스로 수렁에 빠졌다

하지만 정치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확실히, 며칠 전까지 굳건한 실체로 존재하던 것이 하루아침에 허물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어렵다. 그렇지만 그 현실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더욱 수렁으로 빠지기에 십상이다.

지난 며칠간 청와대의 태도는 그렇게 수렁으로 빠져드는 모습이었다. 그들의 통치 기조는 ‘30% 콘크리트 지지층’이 존재하던 그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김병준 총리임용 등 ‘깜짝 개각’의 뒤에 깔린 속셈이 그렇다.

박근혜 정부는 그간 정치인 박근혜를 사모하는 ‘30% 콘크리트 지지층’을 바탕으로, 야당의 거센 비판을 유도하여 지지층을 결집하는 방식으로 정치적 위기를 돌파해왔다.

무리한 정책강행으로 다소 지지율이 떨어졌을 때, 그 정책이나 강행방식을 재고하는 게 아니라, 야당의 강경한 비판을 유도한 후, “어떻게 대통령(=박근혜)님에게 저렇게 대할 수 있느냐!”라고 외치면서 지지층을 회복해왔다.

이는 지지층의 박근혜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이 아니면 작동할 수 없는 통치양식이었다. 박근혜는 그간 새누리당 지지층에게 다른 보수정치인과도 전혀 다른 존재였다. 운동세력은 이명박 때와도 다르게, 거리에서 대통령의 퇴진을 외쳤다는 이유만으로 지나가던 노인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는 경험을 하곤 했다.

그렇기에 박근혜 정부의 위기에 대응하는 자세는 상식에서 어긋났지만, 그동안은 매우 큰 효과를 얻었다. 야권은 정치적 공세를 가하다가도 결집한 여권 지지층과 그들을 믿고 전혀 타협하지 않는 정부 앞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지금 ‘박근혜란 허깨비’ 뒤에 누가 숨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청와대는 이번에도 그런 그림을 그렸다.

최순실+박근혜 '40년 우정' 동영상 갈무리(출처 뉴스타파)
최순실+박근혜 ’40년 우정’ 동영상 갈무리(출처 뉴스타파)

박근혜 정부 위기 돌파술, 이번에는 안 먹힌다

‘여권 지지층에겐 그럭저럭 납득이 가지만 야권 지지층에겐 분개가 갈 어떤 카드’를 제시한다. 야권이 반발하며 원색적인 비난을 한다. 사랑하는 이가 비난을 받는 것에 분개한 여권 지지층이 결집한다. 그러면 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

이번에는 김병준 총리임명 결정 발표가 그러하다. “야당과 협의가 없었던 ‘깜짝 인사’란 점에서 반대파들을 자극한다. 하지만 참여정부 사람이란 점에서 여권 지지층은 납득한다.” 청와대는 아마도 그리될 거라 보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야권이 반발해서 박 대통령 하야라도 요구하면 “우리의 사랑하는 박근혜 대통령님이 비록 실책이 있다 한들 너희 잡것들이 하야를 요구할 수 있느냐!”라면서 지지층이 다시 결집하는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주말 시위에 3만 명밖에 나오지 않은 것을 보고, 국민의 분노가 언론보도만큼 크지 않다고 오판했는지도 모른다.

미망이다. 그들은 현재 자신들의 위기가 정치적 적대자가 아닌 새누리당 지지층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시위대가 3만이든 20만이든 새누리당 지지층이 굳건하면 버텨낼 수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 지지층이 붕괴해버리면 박근혜라는 정치인, 그리고 그 정치인을 활용해 권력을 장악한 보수정당의 프로젝트는 더는 존립할 수 없다.

그들은 그 사실을 아직 인정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자신을 짝사랑하는 상대를 호구로 삼아 제 배를 불리던 바람둥이가, 사랑이 완전히 깨져버린 이를 여전히 호구로 잡기 위해 눈을 쳐다보며 “나 아직도 사랑하는 거지?”라고 묻는 격이다. 추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오후 청와대에서 북한의 5차 핵실험에 따른 한반도 위기 상황과 관련한 해법을 모색기위해 여·야 3당대표와 회동, 새누리당 이정현 당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순장조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새누리당 지지층 붕괴’가 사태의 핵심이다

지난번 글에도 적었듯, 그들이 사랑하는 대상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설 수 있다면 조금은 더 효과를 봤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질의응답은커녕 생방송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다. 지금은 청와대 깊숙이 숨어버렸다.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나듯이, 새누리당 지지층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주었던 맹목적인 지지를 빠르게 거두어들이고 있다. 그리고 사태의 성격을 생각해본다면 이는 결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대통령님이 피해자”라며 코스프레 해봐야 더는 소용없다. 지지층이 그 사람을 사랑할 때 먹히던 말이다. 사랑하던 대상이 허깨비 혹은 꼭두각시였단 것, 그러니까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분개하는 사람들이다. 더는 그런 말이 의미 없다.

물론 여전히 박근혜의 실체를 믿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5%, 어쩌면 10%가 남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30%는 아니다. 콘크리트는 깨졌다. 10%의 열성적 지지자와 50%의 안티가 존재하는 정치인이라면 어떤 선거에서도 사용가치가 없다.

TV를 보며 “너희들이 뭔데 박통에게 하야하라고 그러냐!”라며 소리를 지르는 할배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전과는 달리, 친구들과 싸워야 한다.

친구 중 하나는 “정신 차려 이 친구야! 저건 박정희 딸 아니야! 무당에게 홀린 꼭두각시 X이라고!”라며 소리 지를 것이다. 그렇게 갈등 겪다 보면 점점 더 소리를 덜 지르게 된다. 주변화된다.

물론 세대/지역/성별에 따라 차이가 있다. ‘최순실 게이트’의 어느 부분에 주목했는지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를 상세하게 기술하려면 FGI(포커스 그룹 인터뷰)와 같은 작업이 필요하겠지만, 대략의 흐름은 보인다.

젊은 층과 중노년 여성이 ‘이화여대 특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새누리 지지 성향의 중노년 남성일수록 최태민 일가의 전횡과 종교적 성격에 집중한다.

혼란스러운 정국이 닥쳐올 것이다

새누리 지지층의 본진이라 할 TK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대구에서도 술집에서 중노년 남성들이 뉴스를 보며 분개를 터트리는 걸 봤다는 증언이 있다. 대통령을 불쌍히 여기는 이들을 만나려면 TK의 교외로 가야 했다고 한다.

‘신천지’가 연상되는 그 이름을 시급히 바꿔야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새누리당은 제 지지층에 민감한 집단이다. ‘불통’은 상대 당파와 그 지지층에 대한 태도일 뿐이다.

박근혜가 지지층을 규합하는 보증수표가 더는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된다면 새누리당의 태도도 빠르게 바뀔 것이다. 언제 깨닫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새누리당이 싫은 이들은 되도록 늦게 깨닫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어쨌든 바람은 그렇게 불어가고 있다. 바람의 방향이 극적으로 바뀌었으므로 파도가 어떻게 변할지를 말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되었다. 지극히 혼란스러운 정국이 될 거라는 예측만이 정론이다.

박 대통령은 모든 책임을 통감하며 대통령의 모든 권한을 내어놓겠다는 취지의 기자회견을 했어야 했다. 이어서 청와대 주요 인사 교체를 발표하고, 새누리당은 지도부 총사퇴 후 야당과 협의하여 총리를 세우고 ‘최순실 게이트’ 수사에 협조한다고 말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혼란을 최소화하며 임기를 채울 가망이 보였을 것이다.

이제는 임기를 채우든 못 채우든 간에 엄청난 혼란이 초래될 것이다. 그리고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깨달음이 늦는다면 그들은 참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사실은 야권과 운동세력 역시 아직은 ‘콘크리트 지지층’의 몰락을 믿지 못하며 주저하고 있다. 그들이 그것을 확신하게 된다면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처참하게 유린당할 수도 있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10월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제1회의실에서 최고위원회의를 개최했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10월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제1회의실에서 최고위원회의를 개최했다

새누리당 지지층을 분석하는 정치평론이 필요하다

새누리당 지지층을 분석하는 정치평론이 필요하다. 그들은 균일하지 않다. 균일하지 않은 그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마지막 정치적 상징이 박근혜였다. 그래서 보수세력이 사교 집단과 사실상 동맹을 맺으면서까지 정치인 박근혜를 만들어낸 것이다.

새누리당 지지층의 이해관계는 다양하며, 그렇기에 야권이 정치적으로 현명하게 처신한다면 그들을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순혈주의에 빠진 야권 지지층은 “새누리당 지지층은 고정상수이며 변하지 않는다”라고 말해왔다. 스스로 필패의 길로 들어서며 잘난 척을 했다.

가령 문재인이 어떠한 이유로 새누리당에 실망하여 이탈할 준비가 되어 있는 지지층에게도 ‘죽어도 찍을 수 없는 대상’이 되었다면, 문재인이 그 이유를 넘어설 수 있는 처신을 하거나, 아니면 후보를 교체해야 한다.

친문세력은 그러한 요구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새누리당 지지층은 고정상수이며 변하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야권지지층 다수를 대변하는 정치평론가들도 그렇게 말하면서 ‘새누리당 지지층’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지금의 사태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게 되었다. 실은 그간 그럴 듯해 보였던 그 정치평론도 반쪽짜리였을 뿐이다.

추구하는 가치나 성향이 다소 다를지언정, 대한민국을 바꾸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새누리당 지지층에게도 폭넓게 존재한다.

향후 한국 정치가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려면 새누리당 지지층, 중도층, 야권 지지층으로만 사람들을 분절해서는 안 된다. 다양한 이슈를 던져 찬반을 나누고, 그들을 잘게 구획하고 지지층을 최대한 넓히려는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이 혼란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교훈 중 하나다.

한윤형

한윤형

혼자 쓴 책으로 ‘뉴라이트 사용후기’(2009), ‘안티조선 운동사’(2010),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2013). 함께 쓴 책으로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2011),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2011).
매체비평지 미디어스에서 3년(2012~2014) 간 정치·신문비평 등을 담당했다.
a_hriman@hotmail.com
한윤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