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러운 정국,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2016년 10월 말, 한국 사회에서 현직 대통령의 권위는 붕괴했다. 사실은 권력도 붕괴했다. 경복궁 차 벽 너머 청와대에 존재하는 것은 절차와 제도, 그리고 그것을 통해 간신히 유지되는 약간의 폭력이다.

지금, 권력은 어디에 있는가? 뭘 원하나?

폭력도 약간일 뿐이다.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 권력, 공허를 견디지 못하고 군대를 동원하려고 한다면 군대가 불복할 것이다. 경찰도 시위를 강하게 진압할 의사가 없다.

폭력과 권력을 구별하고 대립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한나 아렌트식 논의를 끌어들인다면, 지금의 권력은 청와대가 아니라 광장(상징적인 의미에서)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혹은 더 비관적으로 쓴다면, 청와대 속에서 빠져나와 흩어져 버렸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와중에 관료제도는 별도로 굴러가면서 우리 삶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부조리한 상황이다. 해소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권력이 차 벽을 넘어서 그 ‘약간의 폭력’을 이겨내면 되는 걸까? 그렇게 보기도 어렵다. 권력이 청와대가 아니라 광화문 광장에 있다고 말한다면, 거기 모인 수많은 시민의 열망이 어디쯤 수렴되는지를 살펴야 한다. 현시점에서 권력은 그걸 원하지 않는 것 같다.

단순 투박하게 요약하자면 그들은 ‘쪽팔려서’ 일어났다. 대의민주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이해하는 민주주의를 정상화하기 위해 일어났다. 그 판단이 현명한지 아닌지와는 별개로, 지금은 대략 그러한 입장이 권력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거부한다. 6공화국을 거부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제 정치세력들이 현명한 판단을 내리면 그 길까지 국민을 인도할 수는 있을 것이다.

공화국 자체를 거부하는가?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 달라고 말하고 있고, 그들이 생각하는 ‘제대로 된 나라’에 가장 가까운 것이 아마 ‘제대로 된 공화국’일 것이다. 그 이상은 아직 그들의 상상력 바깥이다.

South Korean President Park Geun-hye bows after releasing a statement of apology during a news conference at the presidential Blue House in Seoul this week. (Yonhap/Reuters)
South Korean President Park Geun-hye bows after releasing a statement of apology during a news conference at the presidential Blue House in Seoul this week. (Yonhap/Reuters)

따라서 나는 “버티면 이 상황을 지나칠 수 있다”는 보수파의 생각과 “주저하는 인민을 봉기시켜야 한다”는 일부 운동세력의 생각이 둘 다 오류라고 본다.

많은 사람은 청와대 권력을 교체하길 바란다. 그러므로, 그리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사람들은 예상보다 중기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공화국에 살고 있고 현직 대통령이 이를 이탈했다고 생각하므로, 공화국 내부에 존재하는 여러 제도를 무시할 생각이 없다.

검찰이, 언론이, 야당이 자신들의 열망을 대변하여 권력을 교체하는지를 일단은 볼 것이다. 그 모든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그때 가서야 봉기할지 말지를 결정할 것이다. 그 전에 시민들의 희생을 감내하면서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은 없다.

나는 그들이 현시점에서 어지간한 정치평론가들보다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지금 이 정국을 주도하는 어지간한 주체들이 시민들만큼 현명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시민들의 의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혼란의 원인은 바로 그것이다.

지금 청와대의 ‘조종간’은 누가 쥐고 있나? 무슨 생각인가?

많은 사람이 궁금해할 부분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극적으로 폭로된 이후, 현직 대통령이 스스로 정치적 기획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이는 아무도 없다.

다만 그가 단순한 꼭두각시라기보다, 단지 권력욕만을 가지고 그걸 충족시켜줄 수 있는 이들을 적당히 활용해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길에서 그의 텅 빈 자아를 가장 잘 충족시켜준 이가 최태민의 딸 최순실이었고 그 과정에 무속적 믿음이 동원되었던 것 같다.

지금은 다소 다른 집단이 조종간을 쥐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합리적일 것 같다. 그들이 최순실 세력과 협력한 적은 있겠지만 말이다. 그들이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다. 뭘 의도하는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지금까지 행보를 보면 그리 현명해 보이지 않는다.

최순실+박근혜 '40년 우정' 동영상 갈무리(출처 뉴스타파)
최순실+박근혜 ’40년 우정’ 동영상 갈무리(출처 뉴스타파)

목적이 박근혜의 신상보위인지 보수세력의 타격 최소화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박근혜를 제대로 보위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특검 합의에서 너무 무력했다. 보수세력의 타격 최소화를 의도하고 있다고 보기엔 대통령 권력에 너무 집착한다.

제도적 권력을 조금씩, 조금씩만 내놓고 있다. 버티면 지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미망이다. 현명한 전략도 아니다. 전격적으로 양보했으면 달랐을 수 있는 민심이, 단지 한 걸음씩만 빼고 있으니 ‘장난하나’라는 반응으로 돌아온다.

어쨌든 그들은 야당이, 촛불 시민이, 정치적 적대자들이 무리한 행동을 하면 자신들에게도 다시 한 번 민심이 돌아올 수 있다고 여기고 있다. ‘콘크리트 30% 지지층’만 관리하며 통치했던 방식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그렇게 하루하루 버틸수록 새누리당과 범보수 정치세력이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여기서 물어야 할 건 다음과 같다. 지금 키를 쥐고 있는 건 더는 최순실 일당이 아니다. ‘보수 본류’에 가깝다. 그런데 그들이 왜 이러나?

그들의 ‘보수’는 대체 뭔가?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무슨 가치가 주도적으로 실현되어야 한다고 믿는가? 국가안보인가? 반공주의인가? 시장경제인가? 그 무엇을 대입해 봐도 답이 잘 안 나온다.

그저 ‘보수라 불리는 우리 친한 사람들이 권력을 잡아야 한다’에 불과한 게 아닌가? 사람들은 지금 그걸 의심하고 있다. 하루하루 버틸수록 손해를 본다는 것이 그 얘기다.

그나마 선의가 있어 보이는 김용갑의 고백만으로도 황당하다. 그들이 ‘정치인 박근혜’를 신뢰한 이유를 들어보면 국민이 <무릎팍도사> 한 편 보고 ‘안철수 신드롬’이 일어나는 것과 다를 바도 없다.

왜 그렇게 자신이 넘치나? 대한민국 정도 규모의 나라를 운영하는데 최고 권력자 검증을 그 수준에서 해도 되나? 본인들 조언만 제대로 이행하면 훌륭한 정치인이 될 수 있다 믿었는가? 그럼 지난 4년은 최순실이 망쳤다 치고 지금 그 조언그룹은 어디 있나? 당신들이 지지하고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는 도대체 뭔가?

‘정치인 박근혜 프로젝트’가 어떤 비즈니스였는지 파헤치면서 우리가 한국의 보수 세력에게 던져야 할 물음이다. 그들은 2004년 뉴라이트 운동을 능가하는 혁신운동, 정체성 운동의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새누리당은 왜 저러고 있는가?

먼저 친박을 보자. 관찰한바 그들은 아직 친박세력이 한국 사회에서 존립할 수 있고, 정권 재창출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물론 미망이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그렇게 믿는다.

이정현 대표가 2월에 조기 전대를 하겠다고 선언한 건 사실상 반기문의 UN사무총장 임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년 초에도 정권 지지율이 이따위면 반기문이 친박의 등에 업히려고 할 리가 없다. 아마 그때쯤 ‘멘붕’이 일어나고 각자도생하지 않을까 싶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10월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제1회의실에서 최고위원회의를 개최했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10월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제1회의실에서 최고위원회의를 개최했다

다음으로 비박을 보자. 그들은 뭘 원하나? 대통령이 탈당하고 친박이 따라가기를 바란다. 친박보단 나은 그림이다. 그런데 친박이 미망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거부한다.

그러면 본인들이 먼저 탈당하면 될 일 아닌가? 그렇게는 하지 않는다. 탈당하면 당의 재산이 남아 있는 이들 것이 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선도 탈당으로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자산’보다 당에 남아 있는 물질적 재산이 더 아까운 상태다. 물론 친박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날수록 정치적 손익계산을 다시 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만 생각하면 너무 한심하다. 다른 문화적 요인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라고 ‘정치인 박근혜’가 끝났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거다. 자신들의 이권을 지켜줄 보스는 더는 없다.

그런데도 왜 ‘이른 배신’을 못하는가? 어쩌면 한국 사회의 조직문화 때문인지 모른다. 이러나저러나 여기서 먼저 ‘배신’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는, 보스를 갈아타더라도 그 보스에게서 신임받지 못할 거라는 계산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의 여기저기가 다 그렇듯이.

그래도 정치계나 예체능계는 일반회사보다는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대중의 사랑이 더 중요한 영역이지만, 특히 보수정당은 여러 예능인이 설치는 민주당에 비해서도 상대적으로 일반회사에 더 가깝다고 그들은 보는 모양이다.

그들이 그렇게 본다면, 아마 그게 맞을 것이다. 슬프다. 한국 사회의 후진 정치문화가 새누리당의 빠른 대응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한편으로는 안 슬프다. 그들이 사라져야 할 정치세력이라고 보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민주당은 뭘 하고 싶어 하는가?

파악하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민주당은 새누리당만큼 위계서열과 영이 살아 있는 조직이 아니므로, 여러 가지 욕망이 결합하고 경합한다. 그래서 행동에 일관성이 없다. 애초에 뭘 하고 싶어 하는지 파악하기가 어렵다.

지금은 당이 최대계파를 중심으로 정돈된 상황인데도 그렇다. 아마 본인들의 노력 여부와 상관없이 턱밑에 닥쳐온 ‘미래권력에 대한 기대’ 때문에 정상적인 판단이 힘든 상황일 것으로 추론된다.

사람들이 맹비난하는 것만큼 이 정국을 망치고 있지는 않다. 조심스러워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슈퍼 특검법’ 합의로 실리도 챙겼다. 이것 때문에 정부는 임기를 채우기 어려울 것이다.

영수회담을 결정했다고 취소한 것은 분명히 당 지도력의 혼선이 드러난 사례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청와대에 더 곤혹스럽게 되었다. 제1야당이 청와대와 협상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기타 야당과 시민사회 세력의 규탄을 당해 그걸 포기해야 하는 상황, 청와대는 자신들이 처한 상황의 엄혹함을 한 번 더 깨닫게 됐다.

다만 이런 부분은 있다. 조심스러운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그와 별개로 민주당은 현 질서에 너무 안주한다. 시민들의 열망을 잘 대변하면 새누리를 역사 속에서 퇴장시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별로 그걸 바라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

지금 드러난 것만으로 단정하고 비난할 수는 없다. 그래도 추정만으로도 문제는 된다.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진보주의자나 좌익들과 경쟁하는 세상을 만들기를 저어하며, 극우 보수세력과 권력을 경합하는 상황에 안주한다면 어찌 봐야 하나?

그들이 말하는 ‘자유’나 ‘민주’가 무엇인지를 물어야 하지 않을까? 새누리당처럼 적나라하게 실체가 드러난 건 아니다. 하지만 새누리당도 저 정도로 파탄 난 실체가 드러나기 전에 정돈했어야 했다.

한국의 제 정치세력 모두 시민사회의 엄중한 질문을 받게 됐다. 당신들이 말하는 공동체는 무엇인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가? 정말 그 가치를 위해 행동하는 게 맞는가?

꼭 민주당이 못해서가 아니라, 이러한 검증이 상시로 일어나야 정치세력의 질이 높아질 것이다.

촛불시위는 의미가 있을까?

당연히 의미가 있다. 물론 청와대는 애써 외면할 것이다. 그런데 거기엔 이미 권력이 없다.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게 큰 의미가 없단 것이다.

검찰, 언론, 경찰, 정치인 및 제 정치세력이 모두 영향을 받는다. 권력의 향방을 확인했으므로, 권력을 획득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달리 움직인다. 성과다.

출처 CNN
출처 CNN

박근혜 정부는 적대자의 질과 양을 너무 크게 키웠다. ‘30% 콘크리트 지지층’만 믿고 정치를 한 결과다. 유일한 자산이 붕괴하면 험한 꼴 볼 수 있다고 임기 초엔 진보언론이, 임기 중반부턴 보수언론도 조언했는데도 말을 안 들었다.

그 결과 정부를 극심하게 증오하는 사람의 숫자도 꽤 되고, 대략 싫어하는 사람들의 총량도 너무 많다. 새누리당 지지층의 민심이반이 결정적이다.

다만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고려하면, 단지 광화문 광장에 집결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수 있다. 이를테면 영남의 각 지역에서 지역구 시민들을 조직하여 해당 지역구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압력을 넣는다면, 권력교체는 훨씬 더 신속하게 일어날 수도 있다. 시민사회에서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대통령은 버틸 수 있을까?

없다. 단기적으로는 가능하겠지만, 모든 권력을 이양하고 임기를 채우거나, 임기를 못 채우는 길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와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 이명박 정부는 ‘비즈니스맨’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비리를 저질렀을지라도, 서류상 문제가 없게 하였고 협력자들에게 정산을 잘했다.

또한, 이명박 정부는 비록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긴 했지만, 대한민국의 시민들이 공유하는 정서 위에서 놀았다. “억울하면 출세해라”가 그것이다. 그것이 마지막 선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그것을 겁 없이 넘었다.

그냥 ‘비선’인 게 문제가 아니라, ‘무당’인 게 문제다. 이권을 나눈 게 문제가 아니라, 이권을 그 엉뚱한 몇 사람의 주머니에만 넣었다는 게 문제다. 4대강처럼 건설업체엔 도움을 줬다든지 그런 이해의 여지도 없다.

박근혜 하야 시위
박근혜 하야 시위

게다가 지금 언론은 거세게 달라붙었다. 먼저 달라붙지 않은 이들이 소외되지 않기 위해 따라서 열심히 하고 있다. 당분간 이런 경쟁이 계속될 것이다.

언론이 달라붙어서 그리되는 수준인데 검찰이 그냥 놔둘 리는 없다. 검찰이 여기서 뭔가를 보여주지 않으면 정권이 바뀐 후 어떤 식의 수술을 당하게 될지 모른다. 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덧붙여 특검도 예정되어 있다. 달아날 여지가 없다. 새누리당이 청와대의 정보를 많이 공유하지 못한 것도 문제다. 그들은 어디에서 뭘 지켜야 할지를 잘 모른다. 그렇게 많은 것이 드러나면, 결국 버텨도 탄핵이란 절차가 작동하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정이 더 나빠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조선일보가 ‘하야’ 사인 보낼 때 하야할 걸 그랬다고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보수세력에서도 이해관계에 무관한 이들부터 이 사실을 깨닫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더 많은 이들이 깨달을 것이다. 그럴수록 현 정부의 운명은 처참해질 것이다.

버틸 수 없다.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정치적 기회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열려 있다.

한윤형

한윤형

혼자 쓴 책으로 ‘뉴라이트 사용후기’(2009), ‘안티조선 운동사’(2010),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2013). 함께 쓴 책으로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2011),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2011).
매체비평지 미디어스에서 3년(2012~2014) 간 정치·신문비평 등을 담당했다.
a_hriman@hotmail.com
한윤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