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탄핵,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정치권은 완연한 탄핵정국이다. 친박계 새누리당 의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의회 구성원들은 탄핵안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오단결 속에 각자의 생각은 다른 듯하다.

필자는 탄핵 찬성파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를 ‘부역자’로 언급한 추미애 대표의 발언을 듣고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상황은 한 명이라도 탄핵 찬성파를 늘이는 게 중요하지 않은가?’

심지어 양향자 최고위원은 같은 우군인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를 비난하기까지 했다. 참으로 엉뚱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양향자 최고위원(더불어민주당)
양향자 최고위원(더불어민주당)

이쯤에서 역사적 교훈을 하나 꺼내야겠다. 바로 후삼국 시대 고려와 후백제 사이의 아자개란 인물과 신라의 역할이었다.

통일신라는 당시의 구체제(앙시앵 레짐)였다. 당연히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고 새 시대를 열겠다는 대호족과 6두품 관료들은 신라를 붕괴시킴으로써 안티 테제를 천명할 수 있었다.

고려 왕건과 후백제 견훤은 공통으로 신라 정벌에 공을 들였다. 그러나 둘 사이의 방법은 매우 달랐다. 왕건은 비록 구체제였지만 유화적 제스처와 우방으로서의 신뢰를 쌓으려 했던 반면, 견훤은 파괴와 약탈이라는 분노의 앙갚음으로 일관했다.

심지어 여기에 교두보가 되는 상주의 아자개란 인물과의 두 나라 사이는 더욱 재미있다. 아자개는 견훤의 부친이다. 즉, 후백제의 편이 될 가능성이 높은 호족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아자개는 고려에 귀부한다.

바로 견훤의 강경한 태도 때문이었다. 왕건은 정치적 상황에 따라 강경책과 온건책을 번갈아 썼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자신의 자존심을 굽히기도 했다. 바로 견훤을 우대하거나 중소 호족들의 수장들을 극진히 모신 일화들이 그러했다.

반면 견훤은 자신이 싫어하는 상대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내쳤다. 결국, 견훤은 경주를 점령한 후 경애왕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왕비와 비첩, 궁녀들을 능욕했다. 서라벌을 약탈했고, 파괴하고 돌아갔다.

그 민심은 견훤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반면 친애하는 장군이 죽는 한이 있어도 신라와의 의리를 지킨 왕건에 대한 경주의 민심은 결국 무혈 정복이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경순왕 김부가 자발적으로 귀부를 해온 탓이었다.

아자개에 대해서도 왕건은 적의 아버지이지만 상부로 받들며 우대했다. 반면 친아들인 견훤은 전략적으로 상주가 중요함에도 과거의 문제 때문에 도외시했다. 그 결과 후백제는 매번 신라를 공격할 때마다 구미 일대에 대한 전선 점검부터 해야 하고, 군사력이 나누어지는 출혈을 감내해야 했다.

분명 견훤의 태도는 구체제에 시달린 삼한의 백성들에게는 속칭 ‘사이다’와 같은 정의로움이었다. 과거 백제 땅과 고구려 땅에 살아가던 백성들에게는 피복속민이라는 설움을 날려버리는 사건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삼국을 통일하고, 새로운 시대를 새로 세우는 일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바로 그 호불호의 강함, 티끌의 잘못이 있어도 뒤돌아보지 않는 강경함 때문이었다. 왕건은 결국 백성들에게는 구체제인 신라왕과 귀족들을 포섭했다. 어찌 보면 백성들을 도탄에 빠트린 신라 체제의 부역자들에 대한 징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셈이었다.

그러나 동서고금 어디에 살펴봐도 구체제에서 티끌만큼의 권력을 잡았다고 모두 숙청한 사례는 없다. 바로 역사의 연속성과 통치의 연속성 때문이다.

한나라의 소하는 한 고조 유방과 함께 진나라 수도 함양을 정벌하자 사람들의 목숨을 살려주고, 행정문서들을 수집했다. 바로 제국 통치의 청사진과 민심을 얻기 위함이었다. 과연 천하의 백성들은 진 제국의 과오에 대해 기억하지 못할까? 그렇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고조 유방과 그 참모들은 진나라와 함양을 파괴하지 않았다.

반면 항우의 초나라 군사들은 약탈과 강간을 일삼았고, 함양을 완전히 파괴했다. 결국, 이 둘 사이의 운명을 가른 것은 이러한 차이점 때문이었다.

항우는 주나라 시대로 회귀하길 주창했다. 진나라의 체제 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유방은 겉으로는 약법삼장을 발표하며 법가 체제의 가혹함을 완화하겠다고 발표를 했지만 실제로는 진나라의 통치 제도를 계승 발전시켰다.

즉, 항우는 새 시대에 대한 비전 없이 분노로 세력을 일으켰고, 유방은 새 시대에 대한 비전과 함께 분노보다는 다음 시대에 필요한 신뢰를 바탕으로 세력을 일으켰다.

현 우리나라의 정국은 탄핵정국이지만 크게 보면 구 헌법 체제와 신 헌법 체제의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시발점은 바로 정점인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그 성공으로부터 시작된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10월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제1회의실에서 최고위원회의를 개최했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10월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제1회의실에서 최고위원회의를 개최했다

비록 새누리당에는 박근혜 정권 탄생에 기여한 부역자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아자개와 신라의 경순왕처럼 스스로 과거와 배치되는 태도로 돌변한 자에게 ‘경멸’과 ‘모욕’을 해야 할까?

현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새누리당 비박계 탄핵 찬성파란 교두보가 절실하다. 즉, 이들의 도움 없이는 ‘탄핵안 가결’을 원활하게 할 수 없으며, 포스트 탄핵정국은 매우 복잡해진다. 바로 그들은 현직 의원이고, 총선은 아주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사례를 들어보겠다. 조선 세조의 계유정난 이후 공신 목록에는 성삼문을 비롯해 사육신이 포함되어 있다. 신기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들은 세조의 정난을 찬성했는가? 아니다. 대세가 기울었음에도 소극적으로 반대하거나 때로는 방관자적 태도로 저항했다.

그러나 세조가 이들을 공신록에 올린 까닭은 먼저 공동행동이라는 명분을 주고, 자신을 반대할 저항파들을 최대한 축소하려는 시도였기 때문이었다. 세조라고 이들이 비협조적이었던 사실을 몰랐을까? 과연 한명회를 비롯한 1등 공신들은 그 점이 유쾌했을까?

하지만 때로는 대업을 위해 실질적으로 필요한 세력은 규합하고, 위험성을 최소화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공과를 구분하여 보복하거나 혹은 그에 합당한 처벌을 하는 것은 그 후에 해도 늦지 않다.

25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
25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

굳이 추미애 대표와 양향자 최고위원이 ‘부역자’라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민심이 그들을 부역자로 기억한다면 권력을 잃을 것이고, 잃은 권력을 징벌하는 것은 손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부패한 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대통령과 그 핵심 부역자들이다.

무엇이 중하냐고? 헌법의 방어 테두리에서 보호받는 그들을 헌정으로 끌어내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파들이 권력을 잃게 하는 것이고, 다음 정권 혹은 국가의 시스템을 재점검해서 두 번 다시 이런 불상사가 없게 하는 일이다.

그러는 데 필요한 의견은 얼마든지 낼 수 있고, 실질 권력을 갖춘 자들이 탄핵에 동의한다면 얼마든지 포용을 해야 한다. 과거의 시비는 그다음의 일이다. 그러나 현 상황은 협력해야 할 야당들이 반목한다. 해법도 없이 말로서 서로 미워하는 것이 과연 필요한 일일까?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임형찬

임형찬

헬조선 개청년
'정치하지마라' 저자
bucuresti@naver.com
임형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