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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9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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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사무와 국정 사무는 반드시 분리하여 서로 뒤섞이는 것을 금한다.
이 문장은 1884년 갑신정변 당시 홍범 14조의 한 강령이다. 즉, 조선 시대 말기 개화파 선비들이 근대화의 조건으로 내세운 것 중 하나는 바로 조세 법정주의와 더불어 왕실과 국가 사무를 분리하는 것이었다.
2016년. 불행하게도 현대 국가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132년 전의 조상들의 고민을 다시 하게 된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대통령의 사생활과 관련된 세금 문제가 그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측 유영하 변호인은 ‘대통령의 사생활’을 이야기했다. 혹자는 이 스캔들로 불거진 사생활과 관련된 비용이 박근혜 대통령의 특별한 사건으로 여기겠지만, 이 문제는 사실 전직 대통령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출처 YTN지금까지 청와대의 주인이 된 대통령들은 생활비를 대체로 국가 세금으로 지원을 받아왔다. 즉, 대통령의 세비가 있지만 여러 생활비는 청와대의 국가 예산 속에서 집행되었고, 국회 운영위원회의 감사를 받는 형태였다.
필자는 2014년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국정감사를 경험한 일이 있었다. 당시 민주당 최민희 전 의원은 지금 더욱 화제가 된 윤전추 청와대 제2부속실 행정관의 신분을 밝히면서 고가의 필라테스 장비 구입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일이 있었다.
지나치게 고가의 물품들. 당시 목록만 보면 쓰레기통 하나에도 몇십만 원의 물품이 있을 정도로 청와대는 그야말로 다른 세상이기도 했다.
출처 JTBC 썰전참여정부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탄핵과 관련된 변호 비용을 ‘사비’로 처리해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미담’에 가깝고, 현실의 제도는 박근혜 대통령처럼 거의 모든 비용을 ‘청와대 예산’으로 해도 불법이 아니다.
즉, 현실의 청와대와 대통령은 사적 사무와 공적 사무가 전혀 구분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132년 전 김옥균과 갑신정변의 주역들이 가진 문제의식조차도 없었던 셈이었다.
사실 부패의 시발점은 여기서부터였는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 대통령과 청와대가 미국 백악관처럼 ‘사적 비용’은 자신의 월급으로 처리한다면, 몇 발 양보해서 사용 명세를 국회의 감사를 통해 적절한 부분만 환급받는 형태의 절차만 있었더라도 비리의 씨앗은 좀 덜 했을지도 모른다.
혹자는 대통령의 미용 및 운동, 의료에 관한 문제를 정말 사생활로 인지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비용이 대통령의 월급이 아닌 청와대의 예산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대통령이 국가 예산을 사적 업무에 쓴 것은 그 스스로 ‘대표자’라기보다 국가의 국체라는 인식이 강하게 투영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생각해본다. 과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특이한 한 집단의 돌발적 비리일까? 아니면 국가 시스템의 전근대성으로 탄생한 비리일까? 흔히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한다.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을 넘어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해서 의문을 가져볼 시기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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