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나쁜 대통령’의 36계 줄행랑···시간 끌기

이틀 전 점심에 소식 하나가 들어왔다.

“박근혜 대통령 오후 2시 대국민담화, 퇴진 언급”

여의도 금융가에서 이른바 찌라시가 돌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실 확인을 위해서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춘추관장과 대변인이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야는 아닐 것, 질의응답은 안 받겠다. 내려놓는 입장으로서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는 마지막 말씀입니다.”

약간 의아했다. 찌라시에는 퇴진이 언급되어있고, 나중에는 하야는 아닐 것이라니?

이후 2시 반 진짜 시작한 대국민담화를 지켜보던 나는 “18년 정치생활, 사익 추구한 적 없다”를 듣자마자 의표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퇴진을 모두 무책임하게 국회로 던져놓고, 그럴싸한 퇴진 이야기를 꺼냈던 것이었다.

출처 MBN
출처 MBN

게다가 임기 단축이라니? 대통령의 임기는 헌법에서 규정한 사항인데 국회가 탄핵 외의 임기 단축을 하자는 말은 개헌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담화문은 ‘그럴싸한 수사’로 범벅이었지만 사실상 국민과 국회에 그 어떤 알맹이도 없는 쭉정이만 뿌린 셈이었다. 임오군란 당시 모래가 든 쌀가마니를 받아든 구식 군인들이 이런 기분이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30분 만에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일부 비박계 의원들은 이걸 명분으로 탄핵 재검토를 외친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있다. 대통령이 말한 절차대로 국회가 합의한 일정을 정하면 기본적으로 수개월이 걸린다. 야당이 아닌 새누리당이 참여하는 합의가 제대로 진척될 리가 없다.

즉, 대통령은 갈등과 긴장국면에서 싸움판을 하나 꺼내놓고 도망간 것이었다.

사실 범죄자들에게 가장 효과적은 상책은 ‘36계 줄행랑’이다. 피의자인 대통령은 이미 본능적으로 범죄자의 잔머리가 움직이고 있다.

어쨌거나 국회는 헌법이 정하는 절차가 더 복잡해지는 1월 31일(박한철 헌법재판소장 임기 만료) 이내에 탄핵안을 헌재에 넘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이후에는 박 대통령 스스로가 헌법재판소 재판관 지명 혹은 임명을 지연시켜서 탄핵 심판 성립 자체를 망칠 수 있다. 게다가 권한대행이 되는 국무총리도 이젠 쟁점이 될 것이고, 권한대행이 재판관을 임명할 수 있는지도 논쟁거리이다.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은 일관된 전략을 쓰고 있다. 시간벌기이다.

이 시간을 통해 피의자로서 대통령은 36계 줄행랑이 가능해진다. 어차피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유리한 변수가 발생할 수 있는 여지를 계속 남기는 것이 전략적이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대통령 자신이 뱉은 말을 돌려줄 차례이다.

“참으로 나쁜 대통령”이다.

출처 한겨레
출처 한겨레

박 대통령 본인은 지금 이 정국을 스스로 통제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알고 있을까? 사실 처음 야당이 제안한 대로 국회 추천 ‘거국내각 책임총리’가 받아들여졌다면 최소한 탄핵 이야기가 이렇게 강경하진 않았을 것이다.

현재 수많은 국민은 대통령의 36계 시간 끌기 전략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권한대행과 탄핵 후 정국까지도 고려하지 않는 무조건 탄핵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시간 끌기 전략이 동조하는 모든 시도를 부정하고 있다.

그야말로 촛불이 횃불로 바뀔 시점인 셈이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루이 16세는 입헌군주국의 상징 국왕이 될 기회가 있었다. 많은 혁명가는 처음에는 부르봉 왕가를 없애는 것에 불필요성을 느꼈다. 이웃 나라 영국의 모델도 있었기에 말이다.

하지만 루이 16세는 망명을 시도하려다가 잡혔고,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반프랑스 동맹군을 끌어들였다는 혐의를 받게 되면서 운명의 발걸음은 기요틴으로 향하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예외가 될 수 있을까?

국민의 분노는 더 이상의 타협을 원치 않는 듯하다.

임형찬

임형찬

'정치하지마라' 저자
bucuresti@naver.com
임형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