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손예진·공효진 수억원대 출연료와 컵라면, 진짜 ‘투쟁’과 ‘억압’이란?

이번에는 영화계다.

웹툰계와 게임계에서 시작한 대중문화계 여혐논쟁이 영화계까지 옮겨붙을 기세다. 적어도 <여성신문>에서 의미를 붙이는 것을 보면 그렇다.

메갈리아를 ‘젊은 여성들의 페미니즘 선언’이라며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고 반기던 <여성신문>이 몇몇 여성영화인과 여배우들이 영화촬영 현장에서 겪는 고충과 불만을 근거로 ‘영화계에 여혐이 전염병처럼 퍼져있었고 그것에 반기를 든 것이 반갑다’라는 기사를 쓴 것이다.

“영화 촬영 현장은 투쟁의 현장이다. 그래서 페미니즘을 발동해 독립투사처럼 싸워야 했다”
“여성 감독이 만든 여성중심의 이야기도 재미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 배우 공효진의 발언

“현재 남성 중심의 시나리오가 많은데, 이것도 어떻게 보면 여배우들에게 일종의 억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 중심의 영화를 찍고 싶다”

-<jtbc> 뉴스룸 출연한 배우 손예진의 발언

평소 친분이 두텁기로 유명한 두 여배우가 영화작업 현장에서 느끼는 불편과 고충을 솔직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이 발언은 분명 긍정적인 면이 있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의아스러운 구석이 눈에 뜨인다.

출처
출처 <jtbc> 갈무리

과연, 두 배우가 ‘투쟁’과 ‘억압’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생존을 위협받을 정도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냐는 합리적인 의문이다.

연예매체를 통해 알려진 공효진과 손예진의 영화 출연료는 편당 수억원에 달한다.

그중 손예진은 최근 자신이 출연한 모 영화에 평소 영화 출연료의 2배에 달하는 10억원을 투자했다고 밝혔듯이 편당 5억원을 받는 초대형 스타다.

그런 그녀들에게 수십 편의 시나리오가 날아오고 그들 중 자신이 원하는 시나리오에 출연하는 것은 당연할 터.

자신이 출연하고 싶은 영화에 대한 선택과 그에 따른 합당한 대우와 발언권이 보장되는 그녀들에게 극한 삶의 현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 치기 위한 마지막 표현으로써의 ‘투쟁’과 ‘억압’이라는 단어가 적합 하냐는 말이다.

그들이 설령 주관적인 이유로 그렇게 느끼고 그들의 처지를 절박하게 설명하려 노력한다고 해도 그들은 결코 사회적 약자일 수가 없다. 오히려 그들은 약자보다는 강자에 가깝다.

출처 갈무리
출처 <여성신문> 갈무리

누리꾼들의 반응 역시 비슷하다.

두 배우가 공통으로 ‘투쟁’과 ‘억압’이라는 단어를 들어서 영화현장의 분위기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 반응이 과하다는 평가다.

물론, 편당 5억원씩 출연료를 받는 배우들이라고 해도 촬영현장에서 불만을 가질 수는 있다.

개인마다 ‘억압’이라고 느낄 수 있는 상황들은 다르며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다소 과장 되었더라도 이것 역시도 가능하다.

차라리 그것은 본능에 가까운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민주적인 국가에서 개인 의사 표현을 막을 방법도 이유도 없다.

하지만 그것이 언론사 기사로 실릴 때는 분명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사려 깊지 못하고 개인의 입장만 강조된 담론은 심각한 여론 왜곡 현상과 사회적 갈등만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여성신문>이라는 언론사에 한쪽의 입장만 강조되어 실리는 발언들은 이 같은 이유로 곤란하다.

어쩌면 <여성신문>의 그간 스탠스로 볼 때, 그들은 사회적 갈등을 유도하기 위해 두 여배우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는지도 모르겠다.

손예진 배우가 <jtbc>와 인터뷰하기 한 달 전.

지난 5월 28일. 20살 청년이 컵라면 하나 먹을 시간도 없어서 서둘러 스크린 도어 설치 작업을 하다가 전동차에 깔려 죽는 비극적인 사고가 터졌다.

시민의 안전을 위한 스크린도어가 고장나니까 핏덩이 청년 하나 보내 수리케 하다가 변을 당하게 하더니, 시민들이 고인을 추모하는 포스트잇을 달자 직원 3명이 와서 떼냐? 박원순 시장이 온다니까 다시 붙이고? 이 중 한명만이라도 같이 나와 있었어도 그분 그렇게 비명횡사는 안했다. 와~~ 정말 철밥통, 자본의 왕왕이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니들은 요금 적다고 지랄말고, 야근 많다고 투정마라. 그정도도 안하면 헬조선에서 어떻게 살려고. 추모 포스트잇 철거라는 특급 작전에 직원 3명이 투입되는 졸라 효율적인 조직. 이런 거나 구조조정해야 하는데 -서울메트로 페이스북에 한 시민이 단 댓글과 시진
시민의 안전을 위한 스크린도어가 고장나니까 핏덩이 청년 하나 보내 수리케 하다가 변을 당하게 하더니, 시민들이 고인을 추모하는 포스트잇을 달자 직원 3명이 와서 떼냐? 박원순 시장이 온다니까 다시 붙이고? 이 중 한명만이라도 같이 나와 있었어도 그분 그렇게 비명횡사는 안했다. 와~~ 정말 철밥통, 자본의 왕왕이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니들은 요금 적다고 지랄말고, 야근 많다고 투정마라. 그정도도 안하면 헬조선에서 어떻게 살려고. 추모 포스트잇 철거라는 특급 작전에 직원 3명이 투입되는 졸라 효율적인 조직. 이런 거나 구조조정해야 하는데
-서울메트로 페이스북에 한 시민이 단 댓글과 시진

2015년 강남역에서는 29살 청년이 사망. 2013년 성수역에서는 37살 청년이 비슷한 이유로 사망했다.

<여성신문>이 두 여배우의 입을 빌려 말하고 싶었던 ‘투쟁’과 ‘억압’이라는 단어들은 차라리 저 상황에 더 적합하지 않았을까?

영화 현장에는 공효진과 손예진 같은 슈퍼스타만 있는 게 아니다.

하루 단역 7만원으로 일하고 있는 ‘남성·여성 단역 노동자’와 임금체불과 열악한 계약조건에도 가족과 꿈을 위해 촬영현장을 지키고 있는 촬영 스텝들도 있다.

진짜 생존을 위협받는 이들이 어떤 ‘억압’을 받는지 왜 ‘투쟁’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고찰과 여론 환기는 뒷전에 두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두 배우를 전면에 세워 프로파간다로써의 선전도구로 이용하는 것은 문제가 크다.

진짜 ‘투쟁’과 ‘억압’이 갖는 단어의 함의를 담기에는 <여성신문>의 이 기사는 너무나 가볍고 조잡하다.

<여성신문>은 그간 선동과 왜곡 편파적인 주장으로 수많은 누리꾼으로부터 지탄을 받고 신문이라는 매체의 공적 가치를 무너뜨린 전례가 무척이나 많다.

<여성신문>이 ‘억압’과 ‘투쟁’을 전면에 내세워 양성평등과 한국사회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는 언론사가 맞다면 피상적이고 자극적인 보도로 기사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진짜 ‘억압’과 ‘투쟁’이 무엇인지, 누가 무엇에 저항하여 왜 투쟁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찰부터 다시 해보기 바란다.

물론 그런 능력과 통찰력이 <여성신문> 내부 구성원들에게 있을지는 여태까지의 보도로 보아 가능한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리얼뉴스>는 유사진보를 대체할 진보 매체로써 여성신문의 행보를 지켜볼 것이다.

건투를 빈다.

김서영

리얼뉴스 편집·청소년보호정책 책임자
vang127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