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과 정권교체, 서로 상충하는 가치 아니다

2007년 1월 9일.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특별 기자 회견을 했다.

“87년 개헌과정에서 장기집권을 제도적으로 막고자 마련된 대통령 5년 단임제는 이제 그 사명을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선거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비약적으로 제고되고 국민의 민주적 역량이 성숙한 오늘의 대한민국 현실에서 단임제가 추구했던 장기집권의 우려는 이미 사라졌고, 오히려 많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단임제는 무엇보다 대통령의 책임정치를 훼손합니다. 대통령의 국정 수행이 다음 선거를 통해 평가받지 못하고, 또한 국가적 전략과제나 미래과제들이 일관성과 연속성을 갖고 추진되기 어렵습니다. 특히 임기 후반기에는 책임 있는 국정운영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심하면 국가적 위기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중략)

그래서 저는 오늘 국민 여러분에게 이 제안을 드립니다. 저는 지금부터 국민 여러분과 여야 정치권의 의견을 들을 것입니다. 찬반 의견뿐만 아니라, 4년 연임제의 범위 안에서도 바람직한 개헌의 내용에 관해서도 의견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에게 주어진 권한과 의무를 행사하지 않아야 할 뚜렷한 사유가 없는 한, 너무 늦지 않은 시기에 헌법이 부여한 개헌 발의권을 행사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개헌 담화문을 들은 여당의 유력 대선주자 이명박 전 대통령은 “개헌은 차기 정부 임기 초기에 논의되어야 할 사안”으로 선을 그었으며, 박근혜 현 대통령 직무정지인은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반응과 달리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임기 중 개헌 의제에 소극적이었다. 또한, 박근혜 현 대통령 직무정지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유사한 내용의 개헌을 2012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임기 중 회피하다 <jtbc>의 박근혜 게이트 보도 이전에 개헌 카드를 꺼냈다. 그야말로 국면 전환용으로 쓴 것이었다.

사실 5년 단임제에서 개헌은 대통령의 레임덕에서만 논의될 수 있다. 바로 권력자의 속성 때문이다. 5년 단임제에서 개헌이란 4년 중임제, 4년 연임제 혹은 내각제가 되거나 국민투표 부의와 총선 일정과 계산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이 때문에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희생을 각오하고 임기 초기에 논의하거나 레임덕 시기에 논의를 시작하게 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87년 이후 언제나 지역주의 청산과 선거구제 개편 등의 개헌론자였다. 하지만 그 또한 대통령에 당선되고 임기 초기에 개헌 드라이브를 걸 수 없었다. 바로 권력이란 온전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유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전임 대통령들이 개헌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많은 국민과 지식인, 언론은 ‘적기’에 대한 부정적 반응을 보이곤 했다. 그러나 사실 분명한 것은 87년 헌법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대로 ‘수명’을 다했고, 노 전 대통령이 담화를 한 지 10년이 되어가는 지금 대한민국은 5년 단임제 대통령의 탄핵 심판을 앞두고 있다.

최근 많은 사람은 개헌을 ‘정략적’이라고 표현한다. 분명 맞는 말이다. 개헌은 그 자체가 본디 ‘정략적’이다. 바로 국가의 근본적 시스템을 재편(reform)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노예제도와 수정헌법을 두고, 정당사의 변화와 남북 전쟁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리고 수많은 국가는 개헌이라는 의제를 두고 홍역을 앓았다.

물론 많은 국민의 우려를 알고 있다. 박근혜 정부와 최순실의 부역자들이 개헌 의제 속에서 ‘생존’하는 일과 그들이 정권 재창출을 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일 것이다. 그러나 단지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이란 당파적 이해를 떠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권력자를 견제하고, 더 효과적인 통치 체계를 갖춘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손해가 되는 일이 아니다. 오로지 기득권만 손해인 논의이다.

또한, 혹자는 개헌은 곧 내각제라고 생각해서 ‘내각제’를 통한 기득권의 영구집권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개헌은 ‘국민투표’를 통해 확정되며, 조기 대선이 예상되는 현 정국에서 국민투표를 통해 내각제가 가까운 시일 내에 현실화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게다가 많은 국민이 내각제보다는 ‘4년 중임제’나 ‘이원집정부제’를 선호하므로 내각제가 국민투표에서 다수의 의견이 될 가능성도 작다. 설사 내각제가 채택되더라도 그 내각제가 시행되는 것은 2020년 총선 이후가 될 수밖에 없다. 확실한 것은 개헌이 ‘국민투표’라는 절차가 있으므로 어떤 결과가 나오든 그것은 국민 다수의 선택이므로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측면이 있다. 결과론적으로 생각해보면 말이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많은 대선 주자가 ‘차기 정부’에서 논의를 한다는 입장의 공허함 때문이다. 지금까지 많은 대권 주자는 개헌을 공약으로 약속했지만, 그 누구도 지키지 않았다. 그리고 끊임없이 5년 단임제의 폐단은 지속해서 국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지금의 개헌론은 분명 여당의 카드이다. 바로 새누리당 비박계는 개헌을 통해 제3 지대를 구성하고, 국민의당과 연합해 정권 재창출을 노릴 것이다. 그렇다고 더불어민주당이 ‘개헌’이 아닌 ‘호헌’의 입장에 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바로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이라면 분명 국민의당과 연합해 진일보된 개헌 로드맵과 더불어 정권교체까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전 의원과 김부겸 의원
문재인 전 의원과 김부겸 의원

이념적 선명성과 차별성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2012년 새누리당을 생각해보자. 당시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새누리당은 복지 의제가 다수가 되자 재빨리 복지 공약을 내세워서 총선 승리와 대선 승리를 끌어냈다. 바로 정책적 차별성을 줄여, 상대의 강점을 약화시켰다.

지금 개헌론이 비록 새누리당 비박에게 살길을 마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그들을 살리는 것은 그들과의 선명성을 위해 더불어민주당이 개헌에 소극적인 경우가 될 것이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은 40%에 육박한다. 그러나 제1 대권 주자의 지지율과의 차이와 새누리당에서 이탈한 사람들의 광범위한 무당층은 위험요소 그 자체이다. 결국, 개헌 의제를 통해 비박계와 제3 지대의 형성을 막아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새누리당 비박계가 개헌 의제로 살길을 도모한다더라도 그들의 생사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개헌 의제가 아니라 3년 뒤의 총선이 된다. 본격적으로 개헌에 대한 국민투표가 진행될 수 있는 적기이기도 하다.

그때까지는 야권은 오로지 개헌과 정권교체를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진일보된 통치 체계와 수권 전략이야말로 부역자들을 정치적으로 응징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사실 적기는 뚜렷하지 않다. 의지의 문제였을 뿐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5년 단임제 대통령의 임기 초기 권력자는 개헌 의지가 거의 없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개헌 의제를 선점하고, 최대한 합의될 수 있는 개헌 의제를 야권 대권 주자들이 합의하여 공동 전선을 구성하는 데 있다. 그것이 바로 제3 지대의 출현을 막고, 야권 공조를 통해 ‘87년 야권 분열’로 미완의 혁명에 머물렀던 87년 체제를 극복하는 방법이다. 개헌과 정권교체는 서로 상충하는 가치가 아니다.

임형찬

헬조선 개청년
'정치하지마라' 저자
bucurest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