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 속고 산 박근혜는 왜 억울할까?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라는 의문

스캔들적 요소가 짙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는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흥미로운 질문을 던질 것이다. 사람들은 현란한 가십들을 소비하다가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를 거듭 물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그래도 박근혜 같은 정치인이 한국 사회 권력자의 표준적 모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권력 지형이 저와 같은 사기극이 충분히 먹힐 수 있는 환경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향후 드러나는 사실들을 통해 그 풍경을 되도록 날 것 그대로 상세하게 묘사하면서, 그와 같은 일들이 불가능한 환경으로 바꾸어나갈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국회 탄핵 소추위원단이 지난 18일 공개하고 19일부터 널리 보도된 박근혜 대통령 측이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답변서를 보면 박 대통령은 본인은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 답변서는 9일 탄핵안 가결 이후 헌재가 16일까지 제출을 요구해 해당 날짜에 제출됐다.

수차례 기자회견과 답변서에 나온 그분의 일관된 주장은 “나는 온전히 공적인 인생을 살았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만큼은 전혀 거짓말이나 변명이 아니라고 본다. 다만 그의 공사 구분 감각이 우리와 다르다고 본다.

박근혜는 자기 재산을 관리하지 않았다

사실을 돌이켜보면 이 사람의 인생에선 사적인 것이 없었던 것 같다. 공사 구분은 즉물적인 영역에선 사적인 영역이 먼저 있고 이에 대비한 공적인 영역을 상정할 때 가능하다.

지금까지 보도된바, 나는 박근혜씨에게 자기 이름으로 개설된 통장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새누리당 이혜훈 의원은 스캔들 이후 방송에서 “박 대통령에겐 지갑도 없었다. 쇼핑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증언한 바 있다.

박근혜씨가 시장에서 정치적 퍼포먼스를 할 때 그만 지갑이 없어서 근처에서 지갑을 구하느라 애를 먹은 적이 있다고 이혜훈 의원의 증언했다. 또한 비행기 시간이 남아서 기다렸을 때 쇼핑을 제안했으나 거절당했고 그런 걸 해본 적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한편으로 최태민씨의 아들이라는 최재석씨는 아버지의 독살설을 제기하면서 “부친이 돌아가시기 6개월 전쯤 사우나로 불러내 ‘아무래도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는 여기까지인 것 같다’고 말했다”면서 “아버지가 1000억원대 부동산과 골드바 등 전 재산을 박근혜씨에게 되돌려 주겠다고 했는데, 이를 눈치챈 누군가에 의해 독살된 것 같다”고 주장한 바 있다.

출처 유튜브 영상 갈무리
출처 유튜브 영상 갈무리

독살설의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최태민씨는 실제로 본인이 박근혜씨의 재산을 도맡아 관리했다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러나 박근혜씨가 그 재산 관리를 전혀 감독하지 않았기에, 최태민 일가는 그 재산을 자신들의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최순실씨가 혹시 통장 몇 개는 박근혜씨 이름으로 개설해줬을지도 모른다. 그래야 더 자연스러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순실씨가 꺼내 드는 숱한 통장 중 어느 통장이 자기 이름으로 되어 있는지, 거기 들어 있는 돈이 얼마인지 박근혜씨는 전혀 모를 거란 게 내 추측이다.

실제로 ‘정치인 박근혜’의 재산목록을 보면 강남의 집 한 채와 자동차 등으로 이루어진 20억원대 재산이다. 금액이 적지는 않지만 계속 그 정도 수준에서 머물러 있었다.

아마도 실제로 자기 이름으로 된 건 그것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이 재산은 최씨 일가 전체 재산의 빙산의 일각이었고 정치자금은 그곳에서 조달 가능했기에 줄어들 일도 없었다.

박근혜의 삶에선 공사 구분이 어려웠다

정리하자면 박근혜씨는 처음부터 공사 구분의 관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재산을 직접 관리해야 내 통장 잔액이 늘어나는 일은 ‘사적인 일’이라 인지할 수 있다. 박씨에겐 그게 불가능했다.

그 삶이 어린 시절과 달랐다면 박근혜씨 역시 최태민 일가가 제 권리를 압류했다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청와대에서 박근혜씨는 권력이나 재산의 증감은 전혀 관리하지 않은 채 의전과 행사만을 주관하는 존재로 살았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3차 대국민담화. 출처
박근혜 대통령 3차 대국민담화. 출처 MBN

정말이지 어떤 중세 귀족 여성 같은 삶이었다. 그리고 청와대에서 밀려난 이후에는 의전과 행사의 규모만 줄어들었을 뿐 이전과 같은 삶의 양태를 최태민씨가 유지해줬다.

문제는 청와대 밖으로 나온 이후였다. 양태가 비슷했다 한들 권력양상도 비슷할 리는 없다. 자기 재산을 스스로 관리하지 않는 귀족 여성이라면 부친이나 남편, 혹은 그들의 가계 친척의 통제 안에 있다. 청와대 안에서 박근혜씨가 그랬듯이 말이다.

최태민씨는 그 비슷한 관계를 연기했지만, 본질적인 층위에선 달랐다. 귀족 가계는 귀족 여성을 통해 권력과 부를 추구하지 않는다. 가계의 부는 토지와 그에 딸린 농노의 노동에서 나온다. 귀족 여성이 재산으로써 활용되는 경우는 결혼계약 때뿐이었다.

최태민씨에 의탁한 박근혜씨의 처지는 거의 정반대였다. 가계의 부의 근원이 그녀였다. 청와대 시절부터 ‘빨대’를 꽂아 부를 축적했고 박근혜씨 입장에선 ‘모든 것을 상실한 채 쫓겨난 이후’에도 육영재단이 있었다. 그렇기에 최씨 일가는 결코 박근혜씨를 어딘가로 시집보낼 수 없었다.

나는 10월 말 JTBC 태블릿PC 폭로의 여파를 분석한 이후 이미 11월 1일에 ‘박근혜는 최태민 일가의 인질’이었다 단언한 바 있다. 다만 드러난 추가적인 맥락을 따른다면 ‘인질인 줄 모르는 인질’, ‘본인이 섬김받는 주인인 줄 아는 인질’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최재석씨 증언에 일말의 진실이 있다면, 최태민씨는 적어도 본인이 ‘박근혜씨의 가신’이란 인지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비록 박근혜씨를 재산형성의 원천으로 활용했으나, 그 자산이 원래는 박근혜씨 것이고 ‘대통령 만들기’에 실패한다면 돌려줘야 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역할놀이’가 다소간 진심인 측면도 있었다.

‘시녀’와 ‘가부장’의 간극, 최순실은 박근혜에게 무엇?

문제는 최순실씨다. 11월 1일 자 글에서 내가 분석한 바대로, 최순실씨는 박근혜씨에 대한 아버지 최태민씨의 영향력을 세습했다. 또한, 박근혜씨는 아버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산업화세대의 맹목적인 사랑을 세습했다. 그리하여 ‘정치인 박근혜 프로젝트’가 가능해졌다.

최태민씨가 박근혜씨를 통해 축적한 재산은 일가의 자녀들이 나눠 가졌다. 최태민씨의 복잡한 가족관계와 사업의 추잡함 때문에 몇몇은 상속에서 배제되었고 오늘날 내부고발자들이 되었다. 박근혜씨는 최순실씨가 주로 관리했다.

박근혜씨는 오늘날 억울함을 토로하면서 ‘최순실은 내게는 시녀 같은 이였다. 그런 이가 그러고 다닐 줄 누가 알았겠느냐’라고 말한다.

한편 검찰수사에선 최순실씨가 박근혜씨에게 거의 ‘가부장적 남편’과 같은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묘사한다. 최순실씨가 국정운영에 대해, 그러니까 인사나 정책에 대해 ‘이래라저래라’고 하면 박근혜씨가 그대로 따르는 구조였다는 것이다.

정반대의 역할놀이, 심지어 정반대의 성별, 시녀와 가부장적 남편의 현기증 나는 간극, 이 관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야 할까. 나는 두 묘사가 모두 사실이라고 본다.

최순실씨는 시녀처럼 굴었다. 그게 박근혜씨를 충족시키는 역할놀이였고, 그 놀이가 최씨 일가 부의 원천이었으니까. 그러면서 그는 박근혜씨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귀찮은 일을 대신 처리해줬다.

박근혜씨가 좋아하는 시리얼을 해외에서 공수해주고, 최순득씨 김치를 갖다 주며, 미용 주사 놓을 사람 섭외해주고, 박씨에게 익숙한 화장실 구조를 움직이는 곳마다 복제하며, 재산을 관리하고 선거를 주관했다.

한때 여의도 정계 업무는 남편인 정윤회씨에게 총괄시켜 대행했다. 정윤회씨는 박근혜씨의 보좌관 4인방을 천거했다고 한다. 한 명은 사고로 죽었고, 오늘날의 문고리 3인방이다.

놀랍게도 청와대에선 가방을 드는 이와 운전을 하는 이와 연설문을 고치는 이의 권력이 동등했다. 박 대통령이 원하는 건 자신 앞에서 아랫사람으로 구는 것뿐이었고, 그것만 지켜주면 가방을 드는 이나 연설문을 고치는 이가 같은 수준의 전횡을 할 수 있었다.

박관천 전 경정의 청와대 서열 폭로
박관천 전 경정의 청와대 서열 폭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어차피 의사결정은 최순실씨가 내렸다. ‘4인방’이니 ‘3인방’이니 하면 의견 그룹 참모로 적절한 숫자로 보이지만, 그보다는 최순실씨의 지시를 박근혜씨에게 수월하게 전달하는 사지에 가까웠다.

정윤회씨가 지시를 내릴 때도 있었지만, 이마저 박근혜씨에 대한 최순실씨의 영향력을 잠깐 정윤회씨에게 빌려준 상황이었다. 그렇게 ‘공주님을 받드는 시녀’는 ‘집안 대소사를 모두 결정하는 가부장적 남편’이 되었다.

박근혜는 몰랐다. 그래서 억울했다

박근혜씨는 이게 뭐가 문제가 되는지 정말로 몰랐던 것 같다. 박근혜씨에겐 가방 모찌와 운전사와 연설문 비서관이 구별이 안 되었던 것처럼, 시리얼과 연설문과 재단설립 및 기업에 대한 자금출연 요구가 다 같이 소소한 일이었을 수 있다.

그는 한 번도 그런 것의 중요도를 구분하는 인생을 살지 못했다. 환경이 조금 바뀌는 것과 같은 작은 일을 참고 견디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런 법을 배우면 의존도가 떨어져’인질’에서 벗어날 수 있으므로 최씨 일가에서 일부러 더 완벽하게 복제된 환경을 제공하며 의존성을 키웠을 것이다.

큰일을 완수하지 못하거나 망칠 경우 작은 일에 비해 훨씬 감당하기 어려운 후폭풍이 온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그런 법을 알게 되면 본인을 ‘인질’로 잡아두고 최씨 일가가 얻게 되는 사적 이익이 얼마나 큰지 깨달을 수 있으므로 역시 기를 쓰고 막았을 것이다.

그 결과가 만들어낸 것이 바로 세월호 참사라는 국가적 참사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 하던 대로 본인의 모습을 꾸미고 국가와 국민이라는 ‘시녀’ 앞에 나타나 사건의 잘못된 처리를 꾸짖는 광경을 연기한 그 사람이었다.

출처 YTN
출처 YTN

애초 그 사람에게 권력이란 그런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박정희의 후계자’가 아니다. 그는 박정희가 휘둘러 봤던 그 권력에 접근한 적이 없었다. 그가 경험한 권력은 ‘박정희의 딸’로서 획득한 그 퍼스트레이디의 권력, ‘권력을 연기하기만 해도 대우해주는 그 권력’이었다.

그는 그 권력의 위치로 돌아가기 위해 살았다. 그에겐 자신이 본래의 신분적 위치로 돌아가는 일이 뒤집힌 우주를 바로잡는 길, ‘비정상의 정상화’였다. 말라버린 세계수를 푸르른 생명의 나무로 탈바꿈하는 작업이었다.

박근혜에겐 그 상징적인, 혹은 신화적인, 또는 주술적인 그 회귀의 과정만이 공적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주관적으로는 온전히 공적 헌신성에 모든 것을 바친 인생이었다. 그를 위해 필요한 것들, 나머지 사적인 것들은 최씨 일가가 대행했다. 그의 세계에서 바라본 공사 구분의 모습은 그랬다.

국정이나 정책에 관심 없었지만, ‘통일은 대박’이란 말이나 국정교과서 추진 등은 진심이었을지 모른다. 본인이 계승한 ‘아버지’의 상징성을 정결히 하고 그 영역을 넓히는 것이 그녀의 목표였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통일을 위해 뭘 해야 하는지는 몰랐다. 국정교과서에 뭐가 들어가야 하는지도 몰랐다. 아버지에게 온정적인 애매한 서술만이 남았다.

최순실씨에겐 하고자 하는 과업이 존재했을까? 그가 무언가 주술적인 이유로 통일의 실현을 강렬히 소망했던 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전시작전권이 미국으로부터 환수되지 않은 상황을 감사하게 여겨야 할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씨에게 무엇을 지시했든 상관없이 이권에나 관심이 있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어차피 전쟁을 일으킬 방법도 없었다. 전시작전권은 그가 공유 가능한 대통령의 권한이 아니었다. 그러니 북한 정권 붕괴하라고 굿이나 하고 떡이나 챙겨 먹었을 것이다.

스캔들의 핵심은 도덕성이 아닌 공허의 폭로다

최순실씨는 ‘시녀’라는 역할놀이를 수행하며,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란 과업에 열성을 보였다. 운전사는 그가 박근혜씨 총선 선거자금을 내놓기 싫어하는 자매들을 겁박해 1인당 5000만원씩 걷었다고 말한다. 안 그러면 이권을 분배해주지 않는다며 협박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종종 그 공허를 조롱했다. 앞에선 ‘시녀’ 짓 하면서도 제 어머니 앞에선 “쟤 아직도 자기가 공주인 줄 알아”라고 조롱했다고 한다. 자매들은 1000만원짜리 옷을 사 입으면서 박근혜씨에겐 몇만원짜리 옷을 사 입혔단 건 뭘 의미할까?

그것마저도 정교한 계산이었을 수 있다. 부자로 살아야만 하는 그들과는 다르게, ‘정치인 박근혜’는 일정 부분 소탈한 서민을 연기하며 살아야 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박근혜씨가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도 그렇게 행동했다는 증언도 있다. 여러모로 생각해볼 때, 그들은 앞에서는 ‘시녀’를 연기하면서도 그런 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인질’을 비웃었던 것 같다. 박근혜씨는 그것조차 몰랐다.

그러므로 이번 게이트의 핵심은 박근혜씨의 도덕성의 붕괴에 대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가 일반적인 도덕성의 지평을 넘어서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노건평이나 이상득과 최순실이 다를 게 뭐냐는 항변에 귀 기울일 필요가 없는 것도 그래서다. 도덕성을 견줄만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혀 정치적 판단을 내릴 수 없는 백치 같은 사람이 정치인인 양 사기를 치고 정치인으로서 지지를 받아 그 자리까지 올라와 있었다는 것이 진정한 문제였다. 물론 거기서 일어난 최순실씨의 모든 전횡은 그렇기에 헌법적 문제를 일으켰다.

실은 어떤 논리적 곡예를 통해 헌법적 문제를 회피하더라도 신속한 직위해제가 필요한 형국이다. 박근혜씨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답변서의 한줄 한줄이 본인이 정치적 백치였음을 자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질문은 새누리당을 향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문제로 나아가야 한다. 이 사기극엔 두 개의 동심원이 존재한다. 작은 동심원에선 최씨 일가와 박근혜씨의 관계가 문제가 된다. 이 글에서 분석된 바다.

더 큰 동심원의 영역은 새누리당이다. 요약하자면 ‘도대체 어떻게 한국 사회의 양대 축 중 하나를 지탱하던 정치세력이 그리 유능하지도 않은 이들의 역할놀이에 홀딱 속아 넘어가서 권력을 창출하고, 또한 빼앗길 지경이 되었는가?’란 질문이다.

이 질문에서 우리는 드디어 도덕성의 영역, 새누리당과 한국의 보수세력의 도덕성에 대해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박근혜씨나 최순실씨처럼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고 똑똑하고 능력 있으며 야망 있는 이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분석 뒤에 놓여야 할 분석을 만들어낼 질문은, “새누리당은 왜 억울할까?”란 질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개의 질문에 대한 답이 완성되어야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란 의문에 대해 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의문에 대한 답변은 단지 이번 한 번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 아니고 새로운 증거와 맥락을 추가하면서 보강되어야 한다. 최종적으로는 그와 같은 일이 가능한 제도적·문화적 맥락을 어떻게 떨쳐낼 수 있을 것인지를 위한 대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이제 다시는 박근혜나 최순실 같은 이들에게 농락당할 일이 없을 거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최순실의 ‘무당시대’를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윤형

한윤형

혼자 쓴 책으로 ‘뉴라이트 사용후기’(2009), ‘안티조선 운동사’(2010),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2013). 함께 쓴 책으로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2011),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2011).
매체비평지 미디어스에서 3년(2012~2014) 간 정치·신문비평 등을 담당했다.
a_hriman@hotmail.com
한윤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