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군과 자선단체, 추악한 어른들의 열정 페이

겨울은 나눔의 계절이라고 한다. 그래서 날씨가 추워지자 거리 곳곳에는 ‘구세군’을 비롯한 자선단체의 판촉행사가 열린다. 하지만 최근에는 매우 볼썽사나운 장면이 많이 보인다.

필자는 최근 지하철역에서 구세군 복장으로 갈아입는 청소년들을 목격했다.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매일 같이 청소년들이 돌아가면서 구세군 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이런 광경은 유독 구세군뿐만 아니었다. 유명한 각종 자선단체도 활동가 옆에 청소년들이 피켓을 드는 형태로 서 있었다. 분명 자원봉사활동이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대학입시와 취직에는 ‘자원봉사 경력’이 중요하게 됐다. 생활기록부를 위해 혹은 자기소개서의 스펙을 위해서 말이다. 그러다 보니 과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원봉사인지 아니면 강제적 봉사인지 헛갈릴 정도이다.

그래도 성인이 돼 취직을 위한 스펙은 ‘선택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즉, 자원봉사 활동을 보지 않는 기업을 선택하면 된다. 그러나 아이들은 어떠한가?

생활기록부에 기록한다고 한다. 수시 전형에 반영한다고 하면 그것은 이미 자원봉사가 아니라 마치 의무적인 ‘노역화’가 된다.

오늘도 필자는 지하철역에서 구세군이 된 청소년들을 바라보게 된다. 분명 그 아이들의 머릿속에는 ‘봉사활동’의 참뜻보다는 “‘대입 전형’에 필요하니까”라는 통과의례로 생각할 것이다.

구세군 자원봉사활동에 나온 고등학생(출처 경산교회)
구세군 자원봉사활동에 나온 고등학생(출처 경산교회)

물론 교육적으로 ‘자원봉사’의 경험은 중요하다. 타인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것을 가르칠 필요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교사의 지도로 자발적인 행동을 끌어내는 것에 핵심이 있다고 할 것이다.

단지 정량적으로 몇 시간을 채우면 인정해주는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니다. 게다가 내신으로 매일 같이 경쟁에 세워놓는 교육 당국이 이러한 자원봉사를 역설하는 것도 이율배반적이다.

모든 것을 인정하더라도 구세군의 활동가는 ‘성인’이어야 하며, 정식 활동가들의 몫이어야 한다. 어떻게 보더라도 그 활동은 모금이 아닌가? 어떤 단체의 핵심 활동을 ‘청소년’에게 맡기고 책상 앞에서 돈을 세는 어른들이 과연 타인을 얼마나 성실히 도와줄지 의문스럽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열정 페이’부터 가르치는 나라. 자원봉사를 핑계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어른들. 과연 그들을 위한 촛불은 어디에 있을까? 적폐를 척결하는 변화는 사실 이런 작은 곳에서 시작되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