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그 이후

역사적으로 이런 혁명은 없었다.

겨우내 광화문을 밝힌 촛불은 95% 국민의 응축된 의사표현방식이다.

그곳에 100만명이 참석했느냐, 200만명이 참석했느냐를 따지는 것은 그러므로 어느 순간부터 무의미해졌다. 95% 국민 중 그저 조금 더 가깝고, 조금 더 적극적인 사람들이 조금 더 열정적 의사 표현을 했을 뿐 국민 대부분은 그 함성에 동의했다.

사람들은 한결같이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그 방식이 하야냐, 탄핵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탄핵은 그저 퇴진을 시키는 구체적 행위가 법률로써 국회에서 발현되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그렇게 박근혜씨는 탄핵을 당하였고, 헌법재판소는 박근혜와 그 주변으로 쏟아졌던 비난과 증오를 모두 받아 안아야 할 이해관계가 없으므로 탄핵은 통과될 것이다.

그걸로 끝인가. 박근혜가 탄핵당하고, 최순실 이하 몇몇이 징역을 가고, 박근혜의 힘에 기대어 정치했던 친박이라는 이름의 집단이 재기불능상태로 정치적 힘을 상실하고 나면, 국민은 흔쾌히 제자리로 돌아가 다음 권력의 국가재건을 느긋하게 지켜볼 것인가.

이미 그렇지 않다.

새누리당을 해체하라. 검찰을 개혁하고, 선거법을 바꾸고, 재벌을 해체하라. 세월호 7시간을 철저하게 재조사하여 그 책임을 분명히 묻고, 국정교과서를 폐지하고, 일본과의 위안부 협상을 무효화하라. 이런 무수한 요구들이 쏟아진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차기 집권이 비교적 가까이 온 듯한 야권에 촛불은 뜻을 함께한 결정적 우군이기도 하지만, 엄청난 부채이기도 하다. 혁명의 뒤에는 반드시 논공행상이 따른다.

명심해야 할 것은 촛불 혁명이 진행되는 동안 국민 95%의 정치의식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서두에 역사적으로 이런 혁명이 없었다고 표현한 것은, 이 논공행상에 국민 95%가 참여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출처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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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명을 징역 보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새누리는 해체에 준하는 분당을 했다. 친박은 폐족이 되었다. 세월호는 재조사할 수 있고, 교과서는 폐기할 수 있다. 누가 집권을 하느냐에 따라 좀 달라지겠지만, 정경유착의 고리도 상당 부분 끊을 수 있다. 이렇게 대체로 동의할 수 있는 의제를 실천해가는 게 몹시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것이 남았다.

국민이 국가에 요구할 것은 크게 나누어보자면 결국 두 가지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라. 공공의 안전을 보장하라. 특히나 먹고사는 문제는 매일매일 내 앞에 닥치는 가장 심각한 불안전이다. 여기에 이르면 촛불의 요구는 일치되지 않는다.

1억원 가까운 연봉을 받는 대기업 노동자와 2000만원짜리 재하청 비정규직은 같이 광화문을 지켰다. 구조조정에 어깨 움츠린 아버지와 아직 취업을 하지 못한 취준생 아들도 함께했다.

최저생계비 만원을 염원하는 아르바이트생은 자신의 생계 시간을 줄여 현장으로 나갔고, 만원은커녕 6000원 주기도 버거운 구멍가게 사장은 TV를 통해 그 장면을 응원했다.

65세 이상의 노인은 자신의 연금이 40만원쯤으로 인상되길 원하지만, 취업을 못 하는 청년은 차라리 그 인상분이 청년복지를 위해 쓰이길 갈망한다.

이렇게 이해는 이제 곳곳에서 촛불과 촛불이 충돌한다.

돌이켜보라, 불과 얼마 전 온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구의역에서의 앳된 청년의 죽음은 재벌과 국민 혹은 1% 귀족과 다수 국민의 충돌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구조조정의 대상이 된 아버지와 비정규직으로 모진 노동에 시달려 온 아들의 충돌이 있다. 이게 현실이다.

재벌을 때려잡음으로써, 혹은 관료의 나쁜 시스템을 개선함으로써 국민의 빗발치는 요구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면 문제없다. 하지만 불가능하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일정수준 이상의 재벌 과세도, 그 넘친다는 사내유보금을 몽땅 뺏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출처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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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한 유착의 고리를 끊고, 가능한 최대 범위내에서 재벌을 통제해도 국민 모두의 요구를 수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하물며 야당의 정치는 누리과정 예산의 반에 해당하는 8000억원을 편성하기 위해, 법인세 3% 인상 7조원을 포기할 만큼 여전히 허약하다. 일부는 삼성 등 재벌가에 포박당해있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혹자는 모든 기득권을 광화문 네거리에서 올 단두대에 보내자고 중단없는 혁명에 목청을 높이지만 라그나로트만큼 공허한 외침도 없다. 차기 정권을 누가 잡건 정권은 국민을 향해 함께 살기 위하여 인내하고, 양보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솔직하게 호소하여야 한다.

연봉 6000만원 이상을 받는 15% 내의 노동자에게는 세금을 더 내야 할 것을, 만원의 최저임금이 절박한 알바생에게는 도저히 그렇게 해 줄 상황이 되지 않는 것을, 6000원도 버거운 치킨집 사장에게는 허리띠를 더 졸라매고 1~2000원을 더 써 줄 것을, 아버지에게는 일정 부분 구조조정이 필요한 것을, 아들에게는 비정규직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하는 것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인내해 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물론 그렇게 인내하더라도 최소한 가족이 해체되고,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 안전판은 최우선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조차도 재벌, 관료 등 기득권과는 거의 생사를 건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

수많은 요구가 빗발치는 모두에게 양보와 인내를 부탁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공고한 기득권과 전쟁을 치르는 일, 이것이 다음 정권이 해야 할 일이다.

출처 JTBC 썰전
출처 JTBC 썰전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권력은 흔치 않다. 대책 없는 포퓰리스트적 약속과 행위가 잠깐 사람들의 열광에 파묻힐 수는 있으나 궁극적으로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더욱 큰 파멸을 불러온다는 걸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웠다.

대중의 인내심은 길지 않다. 특히나 공통의 이해관계와 관련된 부정은 그래도 비교적 오래 참지만, 내 생존의 문제가 걸린 일에는 빠르게 한계에 도달한다.

어쩌면 국민 80% 이상의 절대적 신망을 받는 지도자라면 이 일을 차분히 해낼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예수나 붓다가 환생해 오더라도 이런 지도자가 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어쩌면 이것은 단지 정권뿐만 아니라 정치권 모두가 스스로 희생하는 진정성을 보이며, 발 벗고 일일이 대국민 접촉에 나서야 겨우 비슷하게 흉내나 낼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국민 정당지지율의 총합이 그나마 80%에 근접한다는 사실이다. 국민이 여전히 정치에 희망을 걸고 있다는 증거다.

여기서 적폐의 본산인 친박새누리를 제외하더라도 70%가 넘는 정당지지율을 보이며 이 총합은 조금씩 상승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전히 부역자니 초록이 동색이니, 정의놀음을 하는 과잉 정치소비자들의 인식은 한가하기 짝이 없다. 현실은 친박새누리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는 대연정이라도 해야 겨우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판국이다.

출처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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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것은 정치다.

혁명에 걸맞은 법과 제도를 마지막에 명문화시키는 일은 권한을 위임받은 정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시민사회가 있으나 촛불은 누구의 주도로 일어난 혁명이 아니다. 시민사회 역시 촛불의 대표성을 주장할 어떤 자격도 없다. 단지 그들이 가져온 역사적 정당성으로 국민 한 편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전달할 의무를 지고 있을 뿐이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정치의 몫이다. 정치가 고민하고 실천적 해답을 내야 한다. 명심할 것은 정치끼리의 이전투구가 아니라, 모두가 자신의 기득권을 던지고 함께 나서도, 빗발치는 국민의 이해와 요구를 수용하고 조정하기에 그 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만약 그 중 힘 쌘 누군가가 넘치는 공명심에, 혹은 당장 누릴 권력에 눈이 멀어 이 현실을 애써 외면한다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훨씬 더 큰 민심의 폭풍을 맞고 영영 정치의 희망조차 좌초시킬지도 모를 일이다.

김환근

김환근

열린우리당 조직기획국장
전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 전략기획실장
khg3315@naver.com
김환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