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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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9 18:55 | 최종 수정 2020.12.09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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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남녀임금 격차 통계는 항상 남녀갈등의 오랜 떡밥(화제)이다. 한국은 현재에도 OECD 1위의 남녀임금 격차를 기록하고 있다. 여초커뮤니티에서는 이것을 한국사회의 오랜 ‘여성혐오’의 방증으로 즐겨 거론하는 반면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이 통계를 아예 부정하거나 임금 격차는 여성의 자발적인 선택의 결과라는 주장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가령 여성이 고임금을 지급하는 이공계를 기피하고 쉽고 편한 일만 선택하기 때문에 여성이 저임금을 받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는 주장을 주식갤러리 등의 남초 커뮤니티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현재 젊은 여성들이 이공계를 기피하는 현상은 분명한 사실이고 또 남성과 비교하면 3D 업종을 기피하는 것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2009년 OECD 보고서에 따르면 남녀 대학진학 비율이 다르지 않음에도 컴퓨터와 공학 분야 졸업생 중 5분의 1 미만이 여성이다.
일부 여성주의자들 역시 일자리 전반의 성 평등(여성들이 얼마나 남성만큼 힘들고 고된 일을 하는가)보다는 관리직과 전문직의 여성진출 여부(여성이 얼마나 극소수 남성만큼 고임금에 폼 나는 일을 하는가)를 성 평등의 척도로 삼는 ‘위선적인 반노동적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항들을 다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현재 한국의 압도적인 남녀임금 격차를 다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 2013년을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남녀임금 격차에 있어서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보면 정규직 기준으로, OECD 국가들의 남성이 여성보다 15.3% 더 임금을 받는다면 한국은 OECD 평균의 2배를 넘는 36.6%를 더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이전 세대보다 고등교육의 기회를 상대적으로 더 많이 가진 젊은 여성 일부가 이공계 등의 직종을 기피하는 현상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의 임금 격차가 아니다.
한국의 임금 격차는 여성의 자발적인 선택의 결과가 아니다
2015년 5월 한국 여성정책연구원의 발표(<성별 임금 격차와 시사점>)에 따르면 한국에서 남녀임금 격차는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요인보다는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요인이 더 큰 것으로 분석됐다. 가령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임금 격차란 근속연수의 차이와 사업체의 규모 차이 그리고 고등교육의 차이와 노조가입 여부 그리고 직업훈련 정도뿐만 아니라 남초커뮤니티에서 즐겨 거론되는 직종의 차이와 근로시간의 차이 등이 있다. 그러나 이것을 모두 합치고 봐도 이것들은 남녀 간 차이로 인한 임금 격차를 37.8%만 설명할 뿐이다. 남녀임금 격차를 초래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외에는 사회적·문화적 요인으로 인해 남녀임금 격차가 초래되었다는 것이다. 이 여성정책연구원의 발표가 상정한 모형을 이론적으로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지의 여부와 별개로, 한국의 남녀임금 격차가 남초커뮤니티에서 거론되는 여성의 직종별 진로선택이나 여성의 직업선택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가령 선진국에서도 여성은 이공계나 3D업종을 기피하고 자발적으로 짧은 시간과 저임금의 직종을 선택할 수 있다. 그에 따라 아무리 남녀가 평등한 선진국이라 해도 남녀 간 임금 격차는 엄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한국이 보이는 수준의 격차는 그런 종류의 선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앞으로도 한국 남녀임금 격차 통계가 발표될 때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거의 무의미하다. 이성적인 인간이라면 한국이 심각한 수준의 남녀임금 격차를 보인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남녀 임금 격차가 오랫동안 악화한 이유, 급속한 산업화와 대규모의 여성 재취업
한편 한국의 남녀임금 격차 통계를 인용하는 측에서도 남녀임금 격차에 관해 대부분 거론하지 않는 변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연령과 세대 그리고 IMF 외환위기라는 변수이다. OECD와 UN 그리고 EU 등 대부분의 국제기구 보고서에 따르면 어느 나라나 나이가 많아질수록 임금 격차가 늘어나는 것은 만국 공통의 현상이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는 그 정도가 유독 더 심하다.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변수는 앞서 말한 연령과 세대 그리고 IMF 외환위기인 것으로 보인다.
OECD의 2010년 기준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남녀임금 격차가 가장 높은 국가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연령별 남녀임금 격차가 가장 높은 나라이기도 했다. 25~29세의 연령을 기준으로 볼 때 조사대상이 된 19개국 중에서 한국의 남녀임금 격차는 OECD 9위로 중위권을 차지했다.
한편 40~44세 그리고 55~59세의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의 남녀임금 격차는 명실상부한 세계 1위였다. 결국, 한국의 남녀임금 격차를 설명하는 주요변수 중 하나는 바로 연령과 세대인 셈이다.
연령과 세대의 남녀임금 격차가 한국의 남녀임금 격차의 상당 부분을 설명한다는 사실은 아래와 같은 한국의 통계청 자료로도 확인되는 사항이다.
한국의 경우 통계청 자료를 볼 때 30~40세 구간에서부터 남녀임금 격차가 급속하게 증가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연령이 증가할수록 임금 격차가 증가하는 현상의 원인으로는 크게 직장 내 ① 유리천장과 ② 여성의 출산과 육아 등의 이유로 한 경력단절을 꼽을 수 있다. 실제로 2009년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의 경우 OECD 국가와 비교하면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M자형 곡선을 그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결혼·출산·육아에 따른 경력단절이 아직도 두드러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현재에도 사정이 이러한데 과거에는 여성의 결혼·출산·육아에 따른 경력단절의 문제가 더욱더 심각했으리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과거에는 아무리 커리어 여성이라 하더라도 자신보다 더 능력이 있는 남성과 결혼할 것을 권유받았고, 일단 한 번 결혼하면 대부분 여성은 자신의 직장과 커리어를 완전히 포기해야만 했다.
예컨대 70~80년대 당시 대기업에서도 희소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진로를 잡았던 (필자가 아는) 아무개씨도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 이후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해야만 했다. 그녀는 그런 것이 당연했던 시대를 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아무개씨는 프로그래머로서의 커리어를 추구하는 대신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 했을까? 그것을 설명하는 것이 바로 소위 말하는 ‘가족임금제도’이다. 가족임금제도란 성인남성이 자신의 처자식을 부양할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는 평균임금을 받는 제도를 의미한다. 이것을 섣불리 ‘불평등’이라고 말하기 이전에 이것은 여성도 남성에 대해 ‘당연히’ 기대했던 일종의 사회계약이었다는 점을 여성주의자도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이런 가족임금제도는 고도성장기에는 남성도 여성도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일종의 사회계약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사회계약이 깨진 본격적인 계기는 바로 IMF 외환위기였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고용 유연화가 시행되었고 기혼남성이 여성을 비롯한 처자식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가부장적 사회계약은 완전히 무의미해졌으며 이때 이후부터 노동시장으로부터 단절되었던 다수의 여성인구가 취업 시장에 다시 유입되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오랜 기간 노동시장으로부터 단절된 다수의 여성인구가 새로이 노동시장에 유입된 만큼 남녀 임금 격차 지표는 더욱더 악화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우리 대다수 성인남녀는 바로 이 IMF 이후 가족임금제도에 관한 사회적 계약이 깨진 이후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한국의 경우 오랫동안 남녀임금 격차에 관한 지수가 개선되지 못한 것도 바로 이 IMF 직후 가부장적 사회계약이 깬 이후 시대의 장기지속을 겪고 있는 데서 연유한다.
또한, 한국은 이미 1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산업화를 겪었던 OECD 상당수의 나라와 달리 60~70년대부터 본격적인 산업화를 경험했다. 애초에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자격으로 노동시장에 참가하게 된 역사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절대적으로 짧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그만큼 급속한 사회변화를 겪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경력단절과 유리천장의 대물림을 어떻게 끊을지가 관건
현재 한국의 젊은 남성들이 한국이 OECD 기준 최악의 남녀임금 격차에 대한 명약관화한 통계를 납득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그들 자신의 현재 경험을 ‘설명 ’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한국은 OECD 기준 최고의 남녀임금 격차를 기록하는 나라인 동시에 세대별 남녀 임금 격차가 가장 높은 나라이기도 하다. 반대로 말하자면 한국은 지금까지 누적된 남녀임금 격차에 비해 젊은 세대의 남녀임금 격차가 가장 적은 나라이기도 하다.
이처럼 지금까지 누적되어온 격차에 비해 젊은 남녀의 임금 격차는 상대적으로 적다. 이러한 상황에서 젊은 남성의 경우 자신들이 과거부터 누적되어왔던 남녀 임금 격차의 책임을 자신이 전가 받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젊은 남성의 경우 현재 수준의 남녀 임금 격차를 초래한 책임이 적으며 그들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비교 대상은 자신들의 어머니나 이모가 아닌 자신의 또래 여성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재 남녀임금 격차에 대한 젊은 남녀 간의 대립이 끊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현재 한국의 남녀임금 격차의 책임을 전 연령의 남성에게 무차별적으로 전가한다는 점에 있다. 확실히 한국의 남녀 임금 격차 문제는 국제적으로 심각한 수준이다. 그런데 이것을 젊은 남녀 간의 대결 구도로 해결할 수 없다.
오히려 남녀임금 격차를 해소하는 데 있어서 관건은 과거부터 누적되고 대물림됐던 경력단절과 유리천장의 관행을 어떻게 깨느냐는 데 있다. 이것은 이미 가족임금제도의 관행에서 단절된 남성들에게도 중요한 문제이다. 남성들은 이제 더는 자신이 배우자와 가족의 생계를 자신이 홀로 책임진다는 의식에서 탈피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한국의 언론과 여성주의자들은 남녀 임금 격차의 의제에 젊은 남녀를 동참시키는 대신 오랜 관행과 제도의 문제의 무게와 책임을 젊은 세대에게도 부당하게 짊어 지웠다는 점에서 잘못을 저질렀다. 오히려 이들이 같은 문제 인식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왜 남녀 임금 격차를 줄이는 것이 남성의 입장에서도 가계소득과 평생 소득을 늘릴 수 있는 지름길인지를 설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겠다.
경제학 박사. 프리랜서 작가. '그 페미니즘이 당신을 불행하게 하는 이유'(2019, 공저), '포비아 페미니즘'(2017), '혐오의 미러링'(2016),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2014), '일베의 사상'(2013) 출간. '2014년 변신하는 리바이어던과 감정의 정치'로 창작과 비평 사회인문평론상 수상과 2016년 일본 '겐론'지 번역.
박가분
paxwoni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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