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을 고민하다

실전을 과대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습니다. 따라서 어떤 것이 최고라고 하는 것은 아집에 불과합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태권도를 수련한 자부심으로 태권도가 제일 강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부친으로부터 하드 트레이닝을 받아왔기에, 나이가 들고 보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학창시절 싸움이 벌어지면 태권도 발차기로 셀 수 없을 정도의 카운터를 날렸고, 영화처럼 이단 옆차기로 상대를 제압하기도 했습니다.

유난히 거칠었던 고등학교 분위기도 일조를 했습니다. 쉬는 시간 화장실 건물 뒤는 좀 과장하면 늘 이종격투기 링이었습니다. 늘 도전과 응전의 반복이었습니다. 포크로 학우의 등을 찌르거나, 창문이나 반찬 통의 유리 조각으로 위협하는 경우도 목격했습니다.

유도하는 친구는 상대를 엎어 쳤는데 모두 “와!” 하고 탄성을 지를 정도의 멋진 장면이었습니다. 그런데 굳이 넘어진 상대에게 굳히기를 들어가는 바람에 반대편 친구들의 발에 밟혀서 정작 싸움에는 이겼지만, 병원 신세를 지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졌습니다.

나는 학창시절 태권도 3단으로 아버지 도장에서 사범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다니던 상문고등학교를 배경으로 <말죽거리 잔혹사>라는 영화가 상영할 때, 나를 모티브로 시나리오를 만든 게 아닌가 했었습니다.

학창시절 상문고등학교가 보이는 방배동 야산에서 필자와 친구
학창시절 상문고등학교가 보이는 방배동 야산에서 필자와 친구

둘째 아들 녀석이 학교 친구가 자꾸 괴롭힌다며 다음에는 두들겨 패주겠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나는 걱정이 되어서 화가 나면 싸우지 말고 피하라고 했습니다. 만약 피할 수 없다면 의자로 창문이라도 깨서 경고를 표현하는 것이 서로 주먹질하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진짜로 학교 창문을 깨버렸습니다. 학교에는 엄마가 사과해야 했지만, 아무튼 그 이후로는 괴롭히던 친구들이 다시는 괴롭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래전 매제 둘과 함께 일본에 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둘 다 무슨 자신감에서인지 내기를 제안하였습니다. 매제 둘이서 하나는 1.5ℓ 빈 페트병을 들고 그것을 칼이라고 하고 맞추면 자기가 이긴 것으로 하겠다고 하고, 또 다른 매제는 이전에 태권도를 배운 실력으로 나를 동시에 공격하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장난이 심하다며 만류했지만, 형님의 진짜 실력을 봐야겠다고 덤볐습니다.

페트병이 내려오는 순간 칼을 피하듯 옆으로 빠지면서 손바닥으로 턱을 밀어 넘어뜨렸습니다. 심하진 않았는데 보도블록 모서리에 엉덩이를 부딪치며 꼬리뼈가 부러졌습니다. 동시에 발차기했던 둘째 매제는 발이 땅에 닿자마자 허벅지를 가격당했고, 이후 두 사람은 걷지를 못하고 귀국하자마자 병원으로 직행했습니다. 내가 너무 진지하게 하지 않았냐고 하겠지만,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그 사건으로 두 여동생에게 많이 혼났습니다.

위에 소개한 일련의 에피소드들은 특정 종목의 우위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다만 어려서부터 남들보다 더 훈련한 결과, 상황을 압도하는 능력이 더 나은 것입니다. 배운 사람이 좀 낫다는 얘기가 이런 것이 아닌가 하겠지만, 사실은 무엇을 배워서 이긴 것이 아니라 평소 운동을 해 왔기 때문에 반응이 빨랐던 것입니다. 매제들과의 해프닝도 사실 검도 선수가 휘둘렀다면 못 피했을 수도 있습니다.

SBS 를 페러디한 작품 “아이키도는 신비한 그 무엇이 아닙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를 페러디한 작품 “아이키도는 신비한 그 무엇이 아닙니다”

UFC의 옥타곤에서 벌어지는 시합을 실전에 가장 가깝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유명 선수들의 베이스가 된 종목을 놓고 키보드 워리어들의 끝없는 논쟁이 벌어집니다. 무에타이가 유리하니, 주짓수가 유리하다는 등. 옥타곤의 승자들은 특정 종목을 베이스로 하는 선수들의 절대 우위는 없습니다. 정해진 룰에 따라 상대에 맞춰 준비를 철저히 한 선수들이 이기는 것입니다. 옥타곤의 피튀기는 현장도 룰에 의해서 돌아가는 것이지 엄밀한 의미의 실전이 아닙니다.

영화 속에서나 보는 그런 실전은 없습니다. 몇 해 전 해양경찰특공대원이 중국어선의 불법조업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중국 어부가 휘둔 흉기에 아까운 목숨을 잃어버린 뉴스를 보았습니다. 특공대원이 될 정도면 이미 검증된 실력일 것입니다. 그 대원이 결코 실력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할 수 없는 돌발상황이기 때문일 겁니다.

엘리트 종합격투기 선수가 동네 양아치의 각목 일격에 운명했다는 국제 뉴스를 접한 적도 있습니다. 룰에 따라 일대일로 겨루었다면 상대도 되지 않았을 겁니다.

평생 무술계에서 성장해왔지만, 자신도 이것이 실전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습니다. 늘 상황을 연구하고 그에 대처하는 능력을 키워나가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군더더기는 배제해 나가고, 가장 합리적인 움직임을 찾아가야 합니다. 어설프게 상대에게 위력을 가하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나보다 더 강한 사람은 어디든 있게 마련입니다.

평생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상대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보다는, 효율적인 힘의 사용과 탄력 있고 민첩한 움직임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몸의 개발과 함께 상생을 추구하는 철학이 있으면 더욱 좋습니다. 타인에 대한 분노와 증오의 표출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그릇을 키워가야 합니다.

오랜 입식타격기 위주의 수련을 해오면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일련의 고민은 앞서 많은 글에서 다뤘기 때문에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 아이키도(合氣道)를 수련하면서 과거 빛이 보이지 않는 동굴 속과 같은 고민에 대한 답을 찾았습니다.

진정한 사제의 인연이 무엇인지, 도장이란 어떤 곳인지, 수련이 추구해야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구체화 시킬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무술의 궁극적 목적이 피라미드의 최상위를 점하는 것이 아니고, 평화와 인류애를 찾을 수 있다는 역설을 배웠습니다. 이것이 평생 아이키도인으로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윤대현

국제합기도연맹(IAF:International Aikido Federation) 정회원 (사)대한합기도회 회장
국제합기도연맹 공인 6단
aikidokore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