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아이유·설리 ‘로리타 마녀사냥’ 언제까지?

최근의 수지를 둘러싼 로리타 논란

최근 수지는 일명 ‘로리타 컨셉(미숙한 소녀성과 성적 매력을 어필하는 문화적 코드)’을 연상시키는 일련의 화보 사진으로 인해 해외연예인 갤러리와 다수의 여초 사이트에서 ‘로리타=소아성애 논란’에 휩싸였다.

소아성애 외에도 화보 중 일부가 퇴폐 이발소 및 성매매를 연상시킨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수지는 과거에도 일베 유저들로부터 지역 출신을 빌미 삼아 공격받은 일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또다시 인터넷상의 악플로 인해 홍역을 치른 것이다.

롤리타 논란의 수지 화보 'SUZY? SUZY.'
로리타 논란의 수지 화보 ‘SUZY? SUZY.’

이와 관련해서 수지의 화보를 찍은 작가가 악플러들에 대한 법적 대응을 천명한 바 있다.

인터넷상에서 로리타 코드는 곧 소아성애(페도필리아)와도 연결되므로 아동성범죄를 조장한다는 주장이 줄곧 제기되어왔다. 그리고 이런 논리로 일부 여성 연예인들이 마녀사냥의 표적이 된 바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수지뿐만 아니라 아이유와 설리이다. 아이유의 일부 화보가 롤리타를 연상시킨다는 논란에 휩싸였고 설리 역시 인스타그램에 올린 몇 개의 사진이 롤리타 컨셉을 연상시킨다는 시비에 휘말렸다.

그리고 이들 역시 소아성애와 아동성범죄를 조장하거나 정당화하는 행동을 저질렀다는 비난이 가해졌으며 심지어 일부 언론 역시 이러한 비난을 두둔했다. 그러나 이는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처구니가 없는 논란일 뿐이다. 왜냐하면, 로리타=소아성애라는 등식은 처음부터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류 #1. 로리타 코드는 소아성애와 다르다.

한국에서는 로리타 코드는 물론 소아성애라는 용어 및 개념이 대중적으로 정착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이 개념상의 혼란이 극심하다. 이러한 혼란에 대해 교정의 책임이 있는 일부 언론조차도 일부 네티즌들의 무지한 주장을 비판 없이 받아적는 현실이다. 우선 소아성애에 대한 위키피디아의 정의를 보자.

소아성애증(小兒性愛症, pedophilia, paedophilia)은 사춘기 이전의 아이에게 강렬한 성적 욕망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서 지난날 논란이 된 이른바 ‘실비 키우기’라는 일본의 미소녀연애시뮬레이션 게임은 이러한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적 묘사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아성애증의 발로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아동 대상의 성적 대상화는 당연히 사회적 규제를 받아야 한다. 어찌 되었든 결국 소아성애든 페도필리아든 사춘기 이전의 아동으로 분류되는 사람에게 이상성욕을 느끼는 증세이다.

나보코프의 소설 <롤리타>에서 남자주인공이 욕정을 품는 만 12세의 소녀에 대한 묘사도 소아성애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로리타 콤플렉스라는 용어를 파생시킨 원작 소설의 맥락을 넘어서, 대중문화에서 공유되는 광의의 로리타 코드라는 것은 이와 별개로 대개 사춘기와 성인의 경계에 결부된 여성적 에로티시즘을 어필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가령 대부분 최근 로리타 논란에 휘말린 작품이나 작가들이 묘사한 대상은 아동이 아니다. 논란에 휘말린 작품들은 영화 <은교>나 ‘로타’의 사진작품의 경우처럼 성인이 사춘기 이후의 미성년자 컨셉을 취하며 에로티시즘을 발산하는 작품이거나 아니면 아이유의 일부 <Chat-Shire> 관련 화보의 경우처럼 성인 여성의 성숙함과 미숙한 소녀성의 경계를 연출하는 작품들이다. 이것은 소아성애 혹은 페도필리아와 무관하다.

롤리타 논란 설리
로리타 논란 설리

오류 #2. 미끄러운 경사길의 오류

이러한 행태들이 어린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선호나 소녀성에 대한 남성 측의 성적 대상화를 부추기므로 역겹거나 비난받을 만한 것이며 이것에 동참하는 여성들도 비난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로리타 코드를 페도필리아나 소아성애로까지 연결짓는 것은 다음과 같은 가정 아래에서나 타당하다. 즉 ‘어린 여성에 대한 선호’는 곧 ‘아동에 대한 소아성애’로 이어지고 그것이 심지어 ‘아동성범죄’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논리이다.

이와 같은 논리적 비약을 흔히들 ‘미끄러운 경사길의 논증’ 혹은 ‘미끄러운 언덕의 논증’라고 부른다. 언덕에서 한번 미끄러지면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주장이지만 이는 대부분 논증을 가장한 논리의 비약일 뿐이다. 가령 실제로는 상대적으로 어린 여성을 선호한다고 해서 아동성애나 아동성범죄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회 전반과 문화에 대한 규제를 통해 예산을 타내고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검열 당국은 자신의 존재의의를 부각하기 위해 이러한 이런 식의 논증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으며 오늘날 이미 관료제와 의회 권력에도 진출한 상당수 여성주의자도 이러한 검열 당국의 논리에 종종 호소한다.

그러나 이들이 벌이는 반 아동성애 캠페인이 아동성범죄를 근절하는 지름길인 것만도 아니다. 왜냐하면, 현실에서 아동성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들이 모두 아동성애 경향을 가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동성범죄 사건 중에서 소아성애 성향이 없음에도 범죄자가 상대적으로 저항 가능성이 미미한 약자들에게 자신의 공격적인 성 충동을 발산하는 경우가 많다. 검열 당국이 흔히 그렇듯이 이들은 직접적인 문제 해결에는 관심이 없고 문제에 대한 공포심을 극대화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롤리타 논란 아이유
로리타 논란 아이유

오류 #3. 롤리타 코드는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

최근 반복되었던 여성 연예인 대상의 롤리타=소아성애(?) 논란 속에서 흔히 범하는 대표적인 오류는 소녀성을 어필하는 일부 작가들이나 연예인들이 ‘어린 여성을 선호하는 가부장적 시선에 종속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런 주장을 하는 측이야말로 여성의 자기표현 욕구와 결부된 여성 측의 주체성을 부정하고 있다. 아이유의 작품도, 설리의 인스타그램 사진도, 수지의 화보도 그것이 훌륭하든 구리든, 외설적이든 아니든 기본적으로 그들 자신의 자기표현 욕구에 기초한 것이다. 작품에 대해 비평할 수 있으나 그들의 자기표현 욕구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로리타=소아성애의 논리를 끌어들이며 전혀 범죄가 아닌 그들의 표현행위를 범죄시하는 측이야말로 여성에게 자기검열을 요구하고 있다.

로리타 코드가 하위문화의 영역에서 발현되는 또 다른 방식은 바로 ‘로리타 드레스 코드’이다. 대개 프릴과 레이스로 잔뜩 치장된 이러한 드레스 코드를 누리는 계층은 다름 아닌 일부 여성이다. 이들이 로리타 드레스를 누리는 이유는 그들이 어린 여성을 좋아하는 남성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한 것도 아니고 소아성애를 부추기기 위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보통의 남성들이 소녀성을 과장되게 부각하는 그들의 드레스코드를 마주칠 때 보이는 반응은 ‘당혹스러움’이다.

로리타 코드가 그 자체로 소아성애와 아동성범죄를 조장하는 것이라면 로리타 드레스를 입는 여성 역시 자발적으로 소아성애의 대상이 되고 싶어 하고 아동성범죄를 부추긴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로리타 드레스는 이른바 로리타 코드를 여성 측에서 재해석해서 표현하고 전시하는 것의 대표적인 사례일 뿐이다.

이처럼 어떤 문화적 코드도 그것을 누리고 재해석하는 측에 의해서 얼마든지 재전유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문화적 코드를 그 자체로 범죄시하는 측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경직적인 자기검열의 논리를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내면화해서 수용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직된 세계관이 넷상에서 이른바 ‘여성주의’의 이름으로 유포되고 있다는 것은 다양한 문화적 행위 주체성을 인정하던 여성주의의 원래 이론적·문화적 기반을 생각해 볼 때 매우 유감스럽고 또한 한심한 현상이다.

또한, 실제로 아래와 같이 로리타 드레스를 즐겨 입는 여성에 대해 트위터상의 넷페미니스트들이 집단으로 공격하고 조리돌림 하는 일이 있었다. 로리타 코드를 둘러싼 마녀사냥의 피해자는 연예인뿐만 아니라 평범한 일반인으로도 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트위터상의 롤리타 컨셉 코스프레 어에 대한 사이버테러 피해를 호소하는 글
트위터상의 로리타 컨셉 코스프레 어에 대한 사이버테러 피해를 호소하는 글

공익으로 포장된 마녀사냥에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

이번 수지에 대한 악플과 사이버테러에서 문제가 되는 지점은 수지의 일부 화보가 가진 외설성과 퇴폐성의 혐의를 제기하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아무런 근거 없이 상대를 범죄자로 몰아가는 집단적인 군중심리이다.

가령 과거 수지의 화보를 그 외설성의 문제 제기의 차원을 넘어서 ‘소아성애’나 ‘아동성범죄’로까지 연결해서 악플을 달았더라면 그것은 충분히 고소를 당할만한 사안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이버테러가 반복적으로 ‘공익’으로 포장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공익과 관련 없이 특정인에 대한 사소한 반감에서 출발한 집단적 위력과시와 마녀사냥을 공익으로 포장하는 것일 뿐이다.

더욱 큰 문제는 로리타 코드에 대한 공익적 비판을 가장한 이러한 테러가 그 취지와 달리 실제로는 반지성적이고 반여성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단체들은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앞으로도 언론과 공중은 날카로운 시선을 견지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박가분

경제학 석사. 프리랜서 작가. '혐오의 미러링'(2016),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2014), '일베의 사상'(2013) 단행본 출간. '2014년 변신하는 리바이어던과 감정의 정치'로 창작과 비평 사회인문평론상 수상과 2016년 일본 '겐론'지 번역.
paxwoni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