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시점 최고 페미니즘 애니메이션 ‘모아나’와 불편한 시선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모아나’와 ‘너의 이름은’ 흥행 경쟁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이 지난 22일 총 관람객 300만명을 넘어섰다. 역대 일본영화 흥행 1위 기록을 세운 <너의 이름은>을 제치고 디즈니 애니메이션 <모아나>가 박스오피스 3위에 올라서며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2016년도 미국 여성영화비평가협회상 베스트 페미니즘 애니메이션 후보작에도 나란히 이름을 올린 <모아나>와 <너의 이름은>. 비록 <너의 이름은>이 대한민국에선 일부 여성들에게 반페미니즘 내지 여혐 영화로 비판받고 있지만, 대부분 관객들에게 두 영화 모두 사랑받고 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국내 개봉 포스터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너의 이름은 > 국내 개봉 포스터

‘모아나’와 ‘너의 이름은’의 내용 비교

대한민국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엄청난 수익을 기록하며 역대 일본영화 최고의 흥행을 계속하고 있는 ‘너의 이름은’은 꿈속에서 몸이 뒤바뀐 도시 소년 ‘타키’와 시골 소녀 ‘미츠하’의 사랑 이야기다.

두 소년·소녀는 시간과 공간, 성별을 뛰어넘어 사랑과 기적을 만들어 내고 동일본 지진을 연상케 하는 자연재해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는 것도 막아낸다.

다만 이 작품에 등장하는 성적 코드가 남성향 오타쿠 문화에 자주 등장하는 것들이며 도호쿠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참사의 피해자를 ‘모에화’했다는 등의 페미니즘 진영의 비판도 받았다. 이에 대해서는 리얼뉴스가 <편견에 빠진 이지혜의 ‘너의 이름은’ 페미니즘적 비평>이란 기사를 통해 반박한 바 있다.

이에 비해 지난 12일 기준 3준 연속 북미 박스오프스 1위 및 역대 디즈니 흥행 순위 3위에 오르며 전 세계적으로 <너의 이름은>을 능가하는 흥행을 하는 <모아나>의 내용은 <너의 이름은>과 매우 다르다.

풍요로운 모투누이 섬. 그 섬 족장의 아들 모아나는 족장이 돼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으나 반신반인의 영웅 마우이가 여신 테피티의 심장을 훔쳐가면서 어둠이 모든 것을 망치는 재앙이 시작되고 그 저주를 풀기 위해 마우이와 함께 여신의 심장을 제 자리에 돌려놓기 위한 모험을 떠난다.

중요한 것은 모아나가 기존 할리우드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여주인공과 달리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며 움직인다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 <모아나>

반신반인의 영웅인 마우이처럼 강력한 힘과 변신 능력 같은 신통력은 없지만 강한 의지와 빛나는 호기심, 여성 특유의 공감 능력과 세심함으로 마우이가 망칠 뻔한 세상을 구원하는 건 바로 ‘모투누이의 모아나’이다.

더욱이 기존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양념처럼 등장했던 러브라인조차 철저하게 배제됐다는 점에서 <모아나>는 현 시점상 가장 완벽함에 가까운 페미니즘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015년 걸크러쉬(여자가 유명 여자를 닮고 싶은 호감)를 불러일으켰던 ‘매드맥스-분노의 도로’의 애니메이션판이라고 할 만하다. 하긴 극 중 코코아 해적들이 모아나 일행을 추격하는 항해 장면은 <매드맥스-분노의 도로> 차량 추격신을 참조했다고 말할 정도니 두 작품의 유사상은 굳이 거론하지 않아도 될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일부에겐 불편한 페미니즘 애니메이션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완전한 페미니즘 영화라고 할 수는 없다. 일부 극단적인 페미니스트들이 보기엔 비판할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우선 모아나 자신은 부족장이 돼야 금수저였던 데다가 원인 제공자긴 하지만 강력한 능력을 갖춘 마우이가 없으면 당장 항해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능력과 경험이 부족하기도 하다.

또한, 마우이가 떠났을 땐 그 길을 계속 가야 하는지 심한 갈등에 시달리기도 한다. 강하고 주체적인 페미니스트 전사상과 어긋나는 모습이다.

무엇보다도 가오리로 환생한 할머니의 격려에 힘입어 다시금 테 피티의 심장을 심으러 갔다가 자신의 앞길을 계속 가로막는 악마 ‘테 카’가 사실은 ‘테 피티’의 다른 모습임을 깨닫는 장면은 가장 의미심장하면서도 불만을 가질 만하다.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결국 여성의 공감과 치유 능력이며 모성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본능임을 보여주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최근 모 대선 유력 후보의 부인이 ‘모성은 본능’이라고 말했다가 페미니스트들의 거센 반발에 시달린 바 있다. 결혼 후 일방적으로 육아를 강요당하는 여성들 입장에서 이 발언에 반발하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을 보면 과연 모성이 없었다면 인류가 존재하고, 문명이 지속할 수 있었을까?라는 원초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희곡 는 파우스트 박사, 악마 메피스토펠레스, 그 사이에 끼어 있는 그렌트헨을 통해 신과 인간, 사랑, 구원에 대한 철학적인 주제를 제시하고 있다.
희곡 <파우스트>는 파우스트 박사, 악마 메피스토펠레스, 그 사이에 끼어 있는 그렌트헨을 통해 신과 인간, 사랑, 구원에 대한 철학적인 주제를 제시하고 있다.

오죽하면 대문호 괴테가 명작 ‘파우스트’를 통해 ‘여성성이 인류를 구원하리라’라는 말을 남겼을까? 테 피티가 심장을 잃음으로써 악마 테 카가 된 저간의 상황의 꿰뚫어 본 것은 모아나의 여성성 덕분이었고, 심장을 되찾은 데 카가 다시금 여신 테 피티가 되어 오염된 온 세상을 회복시키는 것도 여성성, 그중에서도 모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일부 극단적인 페미니스트들 입장에서 이 애니메이션은 불완전한 페미니즘 애니메이션, 아니 불편한 애니메이션일 수 있다. 그들 입장에서 남성은 타도와 멸족의 대상일 뿐, 협력과 구원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극단적이고 파괴적으로 흘러갈 수 없는 법. 남녀는 함께 협력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그러한 현실을 아름다운 풍경과 사랑스러운 캐릭터들, 흥겨운 음악을 통해 실제로 보여주고 있다.

일부 프로불편러들이 뭐라 하든 이 같은 애니메이션은 남성 입장에서도 환영할 만하다. 앞으로도 <너의 이름은>과 <모아나>를 능가하는 애니메이션이 많이 나오길 희망한다. 대한민국에서 나온다면 더욱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