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의 변태적 민족주의 ‘다큐’

지난 설 연휴는 역사학자와 고고학자들에게는 아주 끔찍한 연휴였을지도 모른다. 수신료와 정부 예산의 보조를 받는 한국방송공사(KBS)의 1TV에서 아주 형편없는 ‘다큐멘터리’ 한 편이 방영됐다.

설 특집으로 방영된 <멕시코 한류, 천년의 흔적을 찾아서>는 기존 역사학계에서는 사이비, 혹은 유사 역사학(pseudo history)으로 간주하는 <환단고기>와 유사하게 한민족 우월주의를 표방했기 때문이다.

KBS
KBS <멕시코 한류, 천년의 흔적을 찾아서>

우리의 역사교육은 ‘민족주의 사관’에 기인하고 있다. 사실 이것은 식민지 경험으로서 파생된 후유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유는 조선이라는 전 근대 국가에서 근대 문명을 받아들일 무렵, ‘민족(nation)’에 대한 특질을 규정하기 전에 식민지로 전락했는데, 국가 없는 국민, 주권 없는 구성원들에게 ‘민족’의 개념을 규정해야 했다.

그 수단으로 ‘조선시대’에 유행했던 ‘보학’에 기반을 둔 혈통 중심의 민족주의를 강조했고, 그러한 수단 아래 ‘독립운동’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당시 역사서는 ‘연개소문’이나 ‘을지문덕’, ‘강감찬’ 등과 같은 외세로부터 우리를 지켜낸 ‘영웅’들을 강조했고, 의도적으로 침략자인 타민족과 구별하는 서술을 강조했다.

당연히 식민지로 전락한 현실에 대한 이유로 사대주의를 꼽았고, 자주성과 사대성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역사 서술을 해왔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현대 한국에 들어와서도 유지되었고, 여전히 일선 교육에서 주요한 역사 해석 틀로 이용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혈통’ 중심의 민족주의 사관은 식민지 시절의 독립운동이나 전쟁, 경제개발 시기의 민족 자강과 단결 차원에서는 유용하지만 국제적 현실 감각에는 둔감해지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유사 역사학 가 주장하는 문명 발전
유사 역사학 <환단고기>가 주장하는 문명 발전

단적으로 대체로 <환단고기> 류의 유사 역사학이 광범위하게 호응을 이끄는 것은 바로 민족주의 사관 내부에 내재한 역사적 열등감이 있기 때문이다.

즉, 민족에 따른 피아와 그로 인한 역사 발전을 바라보게 되면 결과론적으로 ‘근대화’를 이룩한 문명과 ‘선진국’이 된 국가와 아닌 국가를 ‘민족 우월성’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때 현실과의 격차를 위로하는 것이 다름 아닌 과거로부터의 영광에 집착하는 것이다.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과거에는 화려했음으로 ‘내재적 우수성’을 증명하는 길이다. 그러나 기존의 학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사료와 합리적 가설로 역사를 해석한다. 뿌리는 민족주의에서 시작되었지만, 점점 다양한 역사관과 실증 사료를 토대로 더 정밀하게 해석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역사적 우월성’에 목마른 사람들은 유사 역사학에 매혹되게 된다. 바로 보고 싶은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른바 ‘확증편향’인데, <환단고기>는 이러한 갈증에 충분히 부합하는 내용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거의 모든 내용이 허구이며,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지만 말이다.

지난 설 연휴에 방영된 <멕시코 한류, 천년의 흔적을 찾아서>는 이러한 갈증을 해소해주는 좋은 소재이기도 했다. 부여에서 발해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이 알류산열도나 알래스카를 통해 미 대륙으로 건너갔다’라는 가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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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멕시코 한류, 천년의 흔적을 찾아서>

하지만 이러한 내용은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건너갔다’에서 ‘진출했다’라는 표현으로 둔갑할 수 있다. 열등감을 해소하려 허구에 의존한 우월주의적 역사를 창조하다 보면 결국은 ‘민족 우월주의’라는 변태적 현상으로 귀결된다는 뜻이다.

과거 일본은 서구에 대립하는 제국적 ‘경험’을 창안하고자 ‘임나일본부’라는 소설을 역사에 넣었다. 진구황후가 한반도로 넘어와 백제, 가야, 신라를 정복하고, 고구려로부터 ‘조공’을 받았다는 임나일본부설은 이후 한반도 정복의 정당성을 마련하고, 일본 국민의 우월성을 역사적으로 증명하는 기제로 활용되었다.

그리고 독일 또한 마찬가지였다.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 이후 독일 제국은 붕괴하였고, 열등감에 사로잡힌 바이마르 공화국의 젊은이들은 ‘아리안 민족’의 우월성을 강변하고, 독일의 영광을 위한 정치인에 환호했다. 그러한 이념을 담은 정당은 ‘민족 사회주의 노동자당’. 즉, 나치였고, 그 당수는 아돌프 히틀러였다.

아돌프 히틀러
아돌프 히틀러

히틀러의 총통 관저에는 정복 전을 완수한 후, 독일의 제3 제국의 의회와 수도 재설계 계획이 있었다. 크고 화려하며, 위대하게 보이는 그 설계들은 다름 아닌 모두 ‘민족 우월주의’에서 탄생했다. 그리고 그 우월주의를 탄생시킨 근원은 둘 다 허구에 의존한 ‘과거의 영광’과 ‘내재적 우월성’이었다.

독일과 일본은 나란히 패망했다. 그리고 그 시발점은 둘 다 ‘민족주의’에 있었다. 한때는 발전과 성장에 도움이 되었지만, 일정 궤도에 오르면 타민족을 멸시하고, 과거를 제대로 보지 못하며, 국제 현실에 둔감해지는 공통점이 있었다.

<멕시코 한류, 천년의 흔적을 찾아서>는 설 연휴에 공영방송에서 방영되었다. 놀이 문화와 일부 말과 무늬의 유사성에 의존하는 가설, 정말 웃기지도 않는 방송이었다. 사적인 채널에서 방영한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 표현의 자유니까. 그러나 공영방송이라면 조금 의미가 남다르다.

검증되지 않은 형편없는 콘텐츠에 수신료가 들어갔다는 생각을 해보자. 더군다나 나레이션과 진행을 맡은 교수는 과거에도 증산도나 <환단고기>에 집착한 방송에 출연해서 강연했다.역사학자들과 한국의 지식 사회에서는 아주 끔찍한 사건으로 기록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우리 지식 사회가 형편없다는 말이기도 하고 말이다.

임형찬

헬조선 개청년
'정치하지마라' 저자
bucurest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