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진보주의자는 버니 샌더스를 닮을 수 없을까?

도널드 트럼프의 폭주

다행히 법원의 행정명령 때문에 제동이 걸렸지만 도널드 트럼프의 ‘정신 나간’ 반이민법은 앞으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을 하는 미국의 미래에 대한 암울한 전망을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다.

반이민법은 이민으로 건국된 미국의 정체성과 반대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반인권적이며 특정 국적과 인종 그리고 종교에 대한 편견에 기울어진 조치이기도 하다.

이러한 반이민법에 제동이 걸린 것은 많은 시민과 사회단체들이 반대 목소리를 낸 덕분이지만 미국의 진보와 리버럴이 대중의 지지를 얻지 않는다면 앞으로 트럼프는 단념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 내에서는 여전히 반이민법에 대한 지지여론이 강하기 때문이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반이민법에 대한 지지율이 절반(55%)을 넘은 바 있다.

Republican presidential nominee Donald Trump gives a thumbs up during his walk through at the Republican National Convention in Cleveland, U.S., July 21, 2016. REUTERS/Rick Wilking
Republican presidential nominee Donald Trump gives a thumbs up during his walk through at the Republican National Convention in Cleveland, U.S., July 21, 2016. REUTERS/Rick Wilking

트럼프는 이러한 여론조사를 자신의 업적과 성과인 것인 양 자랑하고 있다.

버니 샌더스의 차별성

여기서 진보와 리버럴들이 놓치고 있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반이민법이 대변하는 편견과 증오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단순히 계몽을 통해서 해소될 수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즉 그것은 ‘관념’이 아닌 ‘물질’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버니 샌더스의 차별성이 드러난다. 그는 트럼프가 논란거리가 되는 말과 문제가 있는 행동을 했는데도 당선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트럼프는 그 자신이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가 어리석고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는 말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사람들이 오래된 정치적 올바름의 수사법에 지쳐있다고 생각합니다. 몇몇 사람들은 그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하고 모든 사람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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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는 다른 곳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은 단지 미국뿐만 아니라,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불어 닥치는 포퓰리즘적 극우 돌풍에 대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확실히 해 두겠습니다. 도널드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모든 사람이 인종차별주의자, 성차별주의자, 동성애 혐오자인 것은 아닙니다. 현재 서민들의 삶은 팍팍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트럼프를 한 줄기 빛으로 보았고 그것이 그에게 한 표를 던진 이유입니다.”

-‘진보너머’ 페이스북 페이지 재인용

 

버니 샌더스 "아무리 노력해도 생계를 꾸리기가 힘들어지는 것은 여러분만 겪고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버니 샌더스 “아무리 노력해도 생계를 꾸리기가 힘들어지는 것은 여러분만 겪고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도 트럼프를 위시해서 자국중심주의와 극우주의 돌풍이 유럽과 전 세계적으로 휘몰아치고 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일자리의 불안정화, 중산층의 붕괴, 미래 일자리와 소득에 대한 불안감에서 기인한다.

미국 역시 지표상(실업률)으로는 경기가 나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늘어난 일자리 대부분은 비정규직 일자리이다. 불안정한 일자리에 시달리는 이들 중 여성, 히스패닉, 흑인 심지어 무슬림 일부가 트럼프를 지지했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자신의 미래가 불안정할수록 ‘외부인’들이 자신의 일자리와 사회적 인프라를 잠식한다는 공포심이 증대한다. 트럼프나 푸틴, 아베, 르펜 그리고 두테르테 같은 극우 보수 선동가들은 이러한 공포심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다수의 진보와 리버럴은 이러한 사정을 외면한 채 유권자들이 보수·반동화 되었으므로 이들에게 더 많은 계몽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엉뚱한 진단에서 엉뚱한 대안이 도출되는 법이다.

샌더스가 지적한 것은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옛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중의 먹고사는 생활이 팍팍할수록 대중을 상대로 ‘나는 상차별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인종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이러한 샌더스의 지적은 지금 현재 많은 진보와 리버럴이 놓치고 있는 지점을 환기하게 시킨다.

한국의 진보는 어떨까

이와 달리 버니 샌더스와 같은 상황인식은 한국의 진보진영에서 희박하다. 오히려 한국의 진보는 버니 샌더스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첫째로 한국의 진보는 ‘관념적인 진보’이다. 한국의 진보는 물질이 아니라 모호한 관념적 가치에 집착한다. 즉 진보는 보수보다 더 관용적이고, 올바르고, 공정하며 원칙적이며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진보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처럼 관용적이지도 않고, 공정하지도 올바르지도 않으며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

이러한 진보의 실제 모습은 지난 통진당 분당 사태에서도 드러났다. 또한, 그것을 비판하고 나온 정의당조차 지난날 메갈리아 사태에서 불거져 나온 활동가들과 일반 평당원의 갈등에 잘못 대처했다.

출처 연합뉴스TV
출처 연합뉴스TV

갈등의 와중에 평당원들이 제기한, 특정 활동가들이 당 기구를 동아리처럼 사유화했다는 의혹을 외면한 채 일부 당인사는 자신을 비판하는 평당원을 낙인찍고 조롱하는 모습마저 보였다.

이른바 자신들이 더 정의롭고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신념(?) 아래 대중을 가르치려 드는 모습이다. 이처럼 그들은 민주주의의 회복을 말하면서 당내 민주주의에는 의욕을 보이지 않는다.

메갈리아 사태에 관한 기본적인 사실관계에서부터 잘못된 인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를 상대로 ‘공부는 셀프’라고 한 <시사인> 장일호 기자의 발언은 진보진영 내부에 만연한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셀프로 페미니즘 공부하라는 장일호 기자(출처 시사인)
셀프로 페미니즘 공부하라는 장일호 기자(출처 시사인)

둘째로, 위의 모습에서 드러나듯이 한국의 진보는 대중을 상대로 인정투쟁을 벌인다. 인정투쟁이란 자신이 올바르고 정의로우며 똑똑한 사람이라는 인정을 타인으로부터 추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제로 대중은 진보진영의 인사와 활동가들이 도덕적이고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똑똑한지 아닌지에 대해 관심이 없으며, 심지어 그럴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진보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정치가 대중을 상대로 소통을 하며 그들로부터 표를 얻기 위해 ‘장사’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자신을 고매한 ‘선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제 대중은 과거와 달리 정치의 영역에서 지사(志士)적인 선비 유형의 인물을 원하지 않는다. 이처럼 정치를 할 생각이 없는 인물들이 정치하겠다고 모인 상태에서 지지율의 상승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셋째로, 한국의 진보는 대중의 먹고사는 문제와 미래의 먹거리 문제에 관심이 없다. 그런 문제에 관심 있는 진보성향의 인사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이제는 딱히 ‘진보진영’이라는 틀 아래 굳이 자신을 국한하려 하지 않는다.

진보정당은 물론이고 이념단체의 관심이 더욱 이념적이고 도덕적인 인정투쟁에 기울어져 있다는 것을 이제는 그들 자신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적 상식의 복원

트럼프의 영리함은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는 고매한 할리우드 배우와 연예인 그리고 부유한 진보주의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동시에 친서민과 친 대중적인 이미지로 자신을 포장하는 데 있다.

실제로 트럼프의 반이민법이 설정한 이민규제의 범위는 테러방지에 전혀 효과가 없는 바로 그만큼 미국의 국익에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미국과 교류가 상대적으로 적은 나라의 인구유입을 규제)을 선택했다.

즉 그것은 대내용의 상징적 제스처에 불과하다. 자신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에게 자신이 무언가 실질적이고 단호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는 상징에 지나지 않는다.

진보진영이 ‘위선’으로 자신의 진심을 말한다면 트럼프는 오히려 ‘위악’으로 자신의 진심을 내세운다.

이때 위선에 지친 사람들이 위악적인 행위가 마치 진심인 것인 양 지지를 보내는 것이다.

트럼프의 영리함은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는 고매한 할리우드 배우와 연예인 그리고 부유한 진보주의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동시에 친서민과 친대중적인 이미지로 스스로를 포장하는 데 있다
트럼프의 영리함은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는 고매한 할리우드 배우와 연예인 그리고 부유한 진보주의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동시에 친서민과 친대중적인 이미지로 스스로를 포장하는 데 있다

바로 그 이유로 트럼프의 반이민 조치에 대한 대항 캠페인이 이민과 자유로운 이동의 ‘가치’와 ‘도덕’을 설파하는 것에만 고착된다면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트럼프와 같은 극우 인사를 조롱하고 비아냥거리기는 쉽다. 그것은 자신이 무언가를 실질적으로 하고 있다는 마음의 작은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시급하게 돌아보아야 할 것은 ‘노동자와 서민’ 일자리의 불안과 먹거리의 불안이 위악적인 정치 캠페인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는 경향이다.

다시 한번,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는 진보적 상식의 복원이 시급하다.

박가분

경제학 석사. 프리랜서 작가. '혐오의 미러링'(2016),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2014), '일베의 사상'(2013) 단행본 출간. '2014년 변신하는 리바이어던과 감정의 정치'로 창작과 비평 사회인문평론상 수상과 2016년 일본 '겐론'지 번역.
paxwoni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