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의 모순, 가장 ‘젊은 후보’의 가장 ‘고루한 지도자관’

언젠가 김부겸이 아니라면 안희정을 지지하겠다고 페북에 포스팅한 적이 있었다.

오래전은 아니고 불과 몇 달 전이었다.

다만 이제 담론을 넘어 무엇을 실천할지 각론 제시를 주문했다.

바뀐 패러다임에서는 거대담론으로 국민을 이끄는 지도자가 아니라, 현안에 분명한 해법을 가지고 잘 대응하는 일 잘하는 지도자가 훨씬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근래 들어 이런 내 생각이 많이 흔들린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문화저널21 박영주 기자)
안희정 충남도지사(문화저널21 박영주 기자)

단지 그가 ‘대연정 발언’이나 ‘공짜 밥’ 발언 혹은 이재용 관련 발언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

나랑 다르지만 다른 노선, 다른 비전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공짜 밥은 언어사용의 미숙으로 이해해 줄 수도 있다.

그가 박정희를 공(7)·과(3)로 평가하고, 내가 공(4)·과(6)로 달리 평가한다고 해서 그 (3)차이가 반론을 제기할지언정 비판을 할 건덕지는 아니다.

그 자체만 놓고 따지자면 안희정의 발언들은 문재인의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보다 훨씬 덜 위험하다.

출처 jtbc
출처 jtbc <썰전>

국가부도는 잘못된 철학과 노선이나 혹은 부정부패보다도 사실 이런 선한 의지의 디테일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일어날 확률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고 언론 노출이 늘어나면서 그를 신뢰하지 못하는 지점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지도자관’ 때문이다.

가장 젊은 후보에게서 내가 느낀 건 가장 고루한 지도자관을 가졌다는 것이다.

무엇인가 자꾸 구체적 정책이 아닌 어떤 방향을 가지고 국민에게 “이것이 옳아요. 우리는 그동안 옳지 않은 것에 너무 소인배들처럼 목메어 왔잖아요”라고 가르치려 든다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국민 모두를 아우르는 지도자가 되고자 자꾸 그걸 말로 표현한다.

어떤 지도자도 국민통합을 말하지만, 대개는 자신의 정파적 정체성을 놓지 않는다.

정책에서 그렇다. 그리고 정책으로 말하면 되는 것이다. 그게 옳은 거다.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국가정책은 다수지지 중심으로 집행되고, 이 과정에서 소수입장을 배려해야 한다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안다.

사람들이 다 아는 걸 왜 구구절절이 새로운 것처럼 설명하고, 훈계하려 하는지 나는 그의 전근대적인 그런 태도가 나라를 훈령 국가로 끌고 가는 건 아닌지 두려운 것이다.

월요일마다 추운 운동장에 애들 쭉 세워놓고 매일 똑같은 훈시를 하는 교장 선생님을 기억해보라.

틀린 말은 한마디도 없지만 옳지 않다. 심지어 애들도 그 정도는 다 안다.

보통 일주일에 한번 월요일에 온 학년이 모두다 운동장에 모여서 교장선생님의 훈시를 듣는 시간(출처 한겨레)
보통 일주일에 한번 월요일에 온 학년이 모두다 운동장에 모여서 교장선생님의 훈시를 듣는 시간(출처 한겨레)

자, 돌아가 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까지 내가 안희정에게 신뢰를 보냈던 지점이 있다.

어떤 분은 페북에서 안희정이 공천조차 너무 쉽게 받은 것 아니냐 반문하지만 그건 틀렸다.

참여정부가 끝난 후 정권 후의 비난과 격하를 오롯이 받아낸 사람은 참여정부 주요 인사 중 안희정밖에 없었다.

2008년 총선에서 안희정은 충남 논산에 공천신청 했지만,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았던 자 일괄배제로 탈락했다.

이즈음 그 유명한 안희정의 폐족 발언이 시선을 끈다.

폐족 발언 자체는 그 이전에 한 것으로 알지만, 그가 공천탈락을 순순히 승복하며 그래도 나는 민주당원임을 천명하고 공천탈락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린 것이다.

하고 나면 ‘용기 있다’ 칭찬받지만, 정말 잘 안되는 게 자기반성이다.

그 이후 전당대회에서 안희정은 4위로 5명 뽑는 지도부선거를 통과한다.

2009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나는 급격히 쪼그라든 우리 진영의 회복을 위해 미래세대들을 전진배치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은 박원순·유시민이 경기는 김부겸·천정배가 경선에 참여하고, 충남 안희정과 부산 문재인, 경남 김두관이 민주당 간판으로 나설 것을 촉구하는 문건을 만들어서 여기저기 돌리기도 했다.

사람이 보여야 세력이 지지를 받는다는 게 내 요지였다. 그중 내 희망대로 성사된 건 안희정 하나뿐이었다.

김두관은 무소속으로 경남지사에 나섰고, 유시민은 경기지사에 참여당 후보로, 김부겸은 2년 후 대구로 내려갔다.

어쨌건 그는 충남으로 내려갔고, 전인미답의 충남지사 자리를 당으로 가져왔다.

누가 뭐래도 이건 큰 성과다.

김부겸의 대구돌파나 안희정의 충남 승리를 좀 가볍게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 정치 상황을 고려하면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실마리를 이들이 해낸 것이다.

이 성과에 대해서 우리들의 평가는 너무 박하다.

세상 사람들의 생각은 내 가까이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를 보며 변한다. 이를테면 성의를 보여야 성의로 화답한다는 것이다.

김부겸이건, 안희정이건 나는 그래서 이들에게 큰 고마움이 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사진 왼쪽)와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활짝 웃고 있다(문화저널21 박영주 기자)
안희정 충남도지사(사진 왼쪽)와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활짝 웃고 있다(문화저널21 박영주 기자)

사실 안희정은 참여정부 때도, 그 이후 어려울 때도 혼자서 그 책임을 두들겨 맞은 측면이 있다.

정치자금 문제로 징역을 갔고, 친노의 대표선수지만 공천탈락도 하고, 스스로 폐족임을 자임하기도 했다.

젊은 나이에 이 시련을 흔들림 없이 감내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당을 지켰고, 충남을 돌파했다.

그래서 그의 10년은 나무랄 데가 없다.

다만 최근 그의 3개월이 그의 지난 10년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나로서는 그렇다.

조금만 더 지켜보려 한다.

김환근

열린우리당 조직기획국장
전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 전략기획실장
khg331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