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의 대연정, 무엇이 문제인가?

야권의 두 가지 화두, 적폐청산 대 협치

유력 대선후보 주자인 안희정과 문재인 사이의 본격적인 대결 구도가 형성되고 있는 모양새다. 같은 야당 대선주자이지만 이들 사이에 정책적, 이념적 시각차이가 있다는 사실은 더는 비밀이 아니다.

한편 이 둘 사이의 가장 극명한 시각차가 드러나는 대목은 야권의 화두가 되는 적폐청산론이다.

문재인의 화두가 정치검찰, 국정원의 정치개입 등 국가 권력의 사유화에 대한 ‘적폐청산’이라면 최근 안희정 지사가 내놓았던 화두는 이른바 ‘대연정’과 ‘협치’에 방점이 찍혀 있다.

대연정이란 여소야대의 국면 아래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여당이 야당에 협조를 구하고 장관 및 총리 자리를 배분하는 방식이다.

또한, 안희정 지사의 대연정론 및 협치론은 압도적인 여대야소의 상황이었던 충남도의회(2014년 6.4 선거 당시 새누리당 28석 민주당 8석)와 일해야 했던 도지사로서의 경험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만일 더민주가 대선에서 정권을 잡는다 하더라도 의석수 과반을 넘지 못하므로, 연정은 고려해볼 만한 카드이다. 문제는 연정의 범위이다.

출처 YTN
출처 YTN

문재인 전 대표는 안 지사의 대연정 제안에 대해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전 당명)과 바른정당은 연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한 바 있다.

적폐청산의 당위성

그런데 대연정 지지자들이 놓치는 사실 한 가지가 있다. 우선 적폐청산이라는 말에서 죽창으로 사람을 찌르는 식의 무시무시한 피의 숙청을 떠올리곤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지금 야권 지지자들 사이에서 화두가 되는 적폐청산이란 아주 단순히 말해서 구 새누리당 세력이 과거 자신이 사유화했던 각종 ‘권력’에서 손을 떼라는 이야기일 뿐이며, 그 이상의 무언가를 말하는 사람은 현실 정치인 중에서는 없다.

그리고 현재의 적폐청산은 그 대상에게서 약간의 삶의 보람을 빼앗을 수는 있어도 생계거리나 일자리도 빼앗지 않는다. 해고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가처분을 때리는 식의 탄압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또한, 과거 이명박근혜 정부에서처럼 민간인을 사찰하고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민간인의 생계와 직업활동을 방해하는 것도 아니다.

적폐청산의 대상이 되는 세력과 인물은 기본적으로 정치를 그만두더라도 잘 먹고 잘사는 분들이다. 그 밑의 보좌관들이 자리를 잃더라도 그것은 ‘마찰적 실업’에 불과하므로 금방 제 자리를 찾을 것이다.

문제는 적폐청산의 당위성이다. 나는 새누리당-바른정당의 전신은 친일에 있다는 민족주의자들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지만, 적어도 그들의 근본이 바로 군사개발독재에 있다는 규정에 동의한다.

출처 JTBC 썰전
출처 JTBC 썰전

현재 수구세력의 기원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다. 개발독재는 경제시스템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사회시스템이 작동하는 기본원리(권위주의, 성과주의, 노동과 인권의 경시, 등등)를 정립했다.

이것이 한때는 효율적이고 빠른 성장을 보장했을지는 몰라도 87년 민주화 이후에는 청산되어아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러지 못한 채, 개발독재 시대의 마인드를 가진 이들이 정계와 재계를 장악하면서 금권과 정치권력 그리고 사법 권력을 사유화하며 국가의 근간과 사회시스템을 철저히 망가뜨려 왔다.

특히 수구세력이 저지른 정치시스템의 파행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자칭 보수는 안보를 내세우며 북한의 도발과 공격을 허용했고, 국민통합을 이야기하면서 철저히 국민과 비국민(종북·빨갱이)을 나누어 국민분열을 조장했고, 시장경제를 내세우면서 정작 시장경제의 독과점과 불공정경쟁을 유발했다.

또 의회정치와 법치주의를 내세우면서도 정당을 박근혜 개인에 대한 사병집단으로 전락시켰고 최근 각종 비선 실세들의 국정농단에서 보이듯 사법 권력과 정치권력을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사유화했다.

이들은 실상 가짜 보수였으며 보수적 가치에 투표한 국민을 기만했다. 따라서 저들은 타협과 양보의 대상이 아니라 역사적 청산의 대상이다. 바로 새누리당과 바른정당 말이다. 이것은 상당수의 야권 성향 유권자들이 공유하는 생각일 것이다.

야권 대선주자들은 야권 지지자들의 여론을 정확히 읽어야

안희정은 대연정론을 제기한 이후 문재인의 적폐청산론을 겨냥하여 ‘지도자의 분노는 피바람을 일으킨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것은 야권성향 유권자들의 상황인식과 한창 동떨어져 있다.

출처 JTBC
출처 JTBC

국민의 입장은 죽창을 들어서 피바람을 일으키겠다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투표로 적폐를 심판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빼앗거나,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닌 한) 인신을 구속하거나, 생계를 박탈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므로 촛불을 들고 평화로운 시위를 전개했던 것이다.

이렇듯 야당 인사들이 굳이 나서서 적폐청산론에 불안해하는 수구세력을 안심시켜줄 이유를 지금 상황에서 찾기 힘들다. 적폐청산의 대상에게까지 국회의원 자리와 장관 자리를 보장해야 할 이유를 국민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대연정은 대개 압도적인 여소야대 국면에서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쓰는 카드이다. 국정운영도 채 시작하지 않은 지금 시점에서 대연정을 이야기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며 이는 또한 정치인으로서의 현실감각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게다가 대연정은 통치수단일 뿐이다. 안 지사는 통치수단으로 이루고 싶은 국정 방향과 정책이 무엇인지를 먼저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이 우선 아닐까?

야당 대선주자와 지지자 모두 현재의 목표에 집중해야

한편 안희정의 최근 ‘그분들(박근혜 정권의 인사)도 선한 의지로 없는 사람과 국민을 위해 좋은 정치를 하시려고 그랬는데 그게 뜻대로 안 된 것’이라는 발언이 논란이 되어, 특히 야권 지지자의 격렬한 공격을 받은 바 있다.

안희정 지사는 정권의 부정행위조차도 선의로 포장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인데, 이것이 박근혜와 국정농단 세력을 변호하는 것으로 비친 것이다.

출처
출처 MBN

사실 안희정 말대로 현실에서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당사자가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자각을 가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따라서 도덕주의적인 선악 이분법으로 정치 현실을 바라보는 것은 잘못이다.

결국, 사물과 사람을 도덕적 잣대로 나누기보다는 현실 정치 행위가 가져올 현실적인 효과와 목표에 집중하는 것이 맞다. 현실의 목표는 바로 적폐청산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안희정과 문재인 지지자들 사이에서 감정이 안 좋아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한국사회가 제대로 이념적으로 분화되지 않은 데 있다고 생각한다. 둘의 이념적 성향도 다른데 한 정당에 몸을 담고 있다.

사실 문재인과 안희정 그리고 이재명은 정상적인 나라였다면 다른 정당에서 다른 살림을 차리고 나갔어야 할 인물이다. 만일 새누리당이 역사 속에서 사라진다면, 진짜 보수와 진짜 진보가 제대로 나누어져서 정책을 두고 경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재명, 문재인, 안희정 등의 인사들이 결국 어색한 포즈로 한 배(더민주)에 타고 있는 상황 자체가, 이들이 이념과 정책을 떠나서 새누리당과 그것이 대표하는 수구세력, 가짜 보수의 ‘정치적’ 청산이라는 같은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적어도 박근혜 탄핵과 과거 정권 및 개발 독재의 잘못된 유산을 청산하자는 목표에 있어서만큼은 문재인이든 안희정이든 서로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탄핵인용 직후 대선국면까지는 대선주자와 지지자 모두가 이 목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박가분

경제학 석사. 프리랜서 작가. '혐오의 미러링'(2016),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2014), '일베의 사상'(2013) 단행본 출간. '2014년 변신하는 리바이어던과 감정의 정치'로 창작과 비평 사회인문평론상 수상과 2016년 일본 '겐론'지 번역.
paxwoni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