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럽 극우화로 다시 보는 아돌프 히틀러 ‘나의 투쟁’

[서평] 아돌프 히틀러 <나의 투쟁>

극우파가 장악한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인종차별법인 반이민 정책으로 미국을,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게다가 트럼프는 자신이 게르만 혈통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발언까지도 했다.

극우 부활 열풍은 미국뿐만이 아니다. 유럽 극우파는 프랑스, 오스트리아, 독일,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호시탐탐 권력 쟁취를 시도 중이다.

트럼프의 영리함은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는 고매한 할리우드 배우와 연예인 그리고 부유한 진보주의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동시에 친서민과 친대중적인 이미지로 스스로를 포장하는 데 있다
트럼프의 영리함은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는 고매한 할리우드 배우와 연예인 그리고 부유한 진보주의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동시에 친서민과 친대중적인 이미지로 스스로를 포장하는 데 있다

이러한 세계적인 극우화는 히틀러가 쓴 <나의 투쟁>에 드러난 그의 정치사상과 세계관, 나치스가 집권한 시기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때마침 독일에서 히틀러 사후 70년 만에 <나의 투쟁> 비평 판이 재출판됐다.

2017년 1월 1일 출간된 이 책의 저작권은 히틀러의 정치적 고향이자 무대였던 바이에른 주(Bavaria)의 소유로, 저작권 만료 70년 만에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금기 아닌 금기 인물인 히틀러가 집필한 <나의 투쟁·원제 마인 캄프·MEIN KAMPF>은 금서이니 읽지도 알려고도 하지 말아야 할까?

히틀러의 세계관, 정치사상은 역사와 정치에 관심 있는 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 <나의 투쟁>이다.

히틀러 같은 극단적 민족주의자, 군국주의자, 인종주의자는 지금도 세력을 형성해 영향력을 과시하며 언제든 제2, 제3의 히틀러가 나올 수 있는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장본인 아돌프 히틀러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20세기, 아니 인류사 최대 비극인 약 5000만명에 달하는 희생자를 낸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쟁광이자 ‘위대한 도이칠란트’ 재현을 외친 미치광이 독재자, 유대인 학살자로 역사에 기록된 인물이다.

다큐멘터리로 접하는 히틀러의 생애와 집권 시기의 광기 어린 기록은 제2차 세계대전 참상 같은 영상물로만 알려져 있다.

히틀러는 왜 그토록 반유대인주의, 유색인종 차별과 게르만 민족 순수혈통으로만 만들어진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를 만들고자 했나.

아이러니하게 히틀러의 외모는 그가 강조했던 키는 크고 날씬한 육체,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게르만족의 외양과는 달리 신장과 체격으로 보면 게르만족과는 너무 다르다.

더구나 히틀러 집권 시기 선전장관이며 나치스 정권의 지휘자 격인 괴벨스도 게르만족의 신체적 특징과는 매우 다른 인물이었다.

나치 국민 계몽 선전부 장관 요제프 괴벨스(Joseph Goebbels)
나치 국민 계몽 선전부 장관 요제프 괴벨스(Joseph Goebbels)

후대 히틀러 연구에 따르면 히틀러는 게르만족으로 볼 수 없고, 심지어 30% 정도 유대인 혈통이 섞여 있다는 설도 존재한다.

히틀러는 1923년, 제1차 세계대전 참전 퇴역 군인과 반유대주의자들을 규합해 바이에른주 전복을 위한 쿠데타를 일으킨 주동자로 체포돼 수감 생활한다.

히틀러는 재판 과정에서 뛰어난 연설 솜씨로 재판정 장악은 물론 지지자들을 끌어 모아 가벼운 판결을 받고 1924년 모범수로 출소한다.

이때 출소를 앞두고 자신의 인생관 정치사상을 담은 자서전을 출판할 필요성을 느낀다. 히틀러는 당시 함께 수감 중이던 퇴역 장교이자 추종자였던 루돌프 헤스의 도움으로 나의 투쟁 1부를 완성한다.

히틀러가 구술하면 나치 집권 후 2인자 된 헤스가 타이핑을 하고, 당시 나치당의 기자들이 편집하는 과정을 거쳐 출판됐다.

<나의 투쟁> 2부는 출소 후 1925년에 출판됐는데, 1부와 2부는 당시 각 2만 부 정도밖에 팔리지 않았다. 하지만 나치스 집권 후 독일 국민의 필독서가 되면서 베스트셀러가 된다.

내가 읽은 <나의 투쟁>은 1·2부를 합친 완역본으로 범우사(1999년 출판·서석연 옮김)에서 펴낸 약 700페이지에 달한다.

오래전에 이 책의 서문만 읽다 포기하고 책장을 덮은 적이 있었다. 한 페이지도 채 안 되는 짧은 서문에서 히틀러의 인종주의와 광기, 과대망상이 함축돼 있어 질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다시 미국과 유럽 일대에 부는 민족주의의 부활, 극우의 바람과 히틀러 사후 70년 만에 재출판 된 <나의 투쟁>을 계기로 이 책을 완독하게 됐다.

지난 2016년 3월 미국 SNL에서 방영된 트럼프 비판 영상
지난 2016년 3월 미국 SNL에서 방영된 트럼프 비판 영상

서문에 이어 첫 장부터 히틀러는 모든 체제의 부정과 전복을 강력하게 드러낸다.

오스트리아에 뿌리를 둔 유럽 최고의 왕가 합스부르크 왕조에 대한 증오, 독일의 제1당인 사회민주당은 바보 무리며, 기독교사회당에 대한 비난, 의회민주주의와 다수결 원리 비판과 마르크스주의를 가리켜 “순수한 사회사상이라는 망토 아래 악마적인 의도를 숨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게르만족의 우월성을 강조한다. 게르만족이야말로 인종적으로 순수하고 혼혈이 아닌, 히틀러의 표현을 옮기면 “피의 모독에 희생되지 않은” 민족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유대주의로 대변하는 인종주의는 <나의 투쟁> 서문부터 마지막 맺음말까지 끈질기게 일관된 어조로 이어지고 있다. 히틀러는 유대인을 기생충, 악성 페스트, 정신적인 페스트, 생존하기 위한 거짓말쟁이로까지 묘사했다.

그때 독일은 유대인 비율이 약 1%에 지나지 않았다는데, 히틀러는 왜 그토록 유대인을 혐오했을까?

당시 이미 유럽은 반유대주의가 뿌리 깊은 상태로 독일에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었다.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반유대주의로 전향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히틀러의 부친 역시 반유대주의자, 국가주의자로 “나는 열서너 살까지는 유대인에 대해 몰랐다. 나의 부친은 명백한 반유대주의였고, 국가주의자였다. 부친이 사망한 후 살아보니 유대인은 더럽고 냄새나는 악종 페스트균이며, 유대인은 게르만족 독일에서 없어져야 한다”는 인종주의적 편집증과 망상을 드러냈다.

히틀러의 인종차별주의는 일찌감치 정치가가 되려는 야심과 맞물려 가장 핵심적인 정치 전략의 일환이기도 했다.

히틀러는 양친 사망 후 오스트리아 수도 빈 방문 후, 빈의 다인종 사회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책에 쓰고 있다.

빈은 다양한 인종집단으로 구성된 도시로 폴란드인, 헝가리인, 세르비아인, 크로바티아인 그리고 유대인이 뒤섞인 다민족이 어울려 살았다. 히틀러는 빈의 모습에 혐오와 증오를 나타내며 뮌헨으로 이주한다.

<나의 투쟁> 중 특히 제11장 전체가 유대인 증오로 쓰여 있을 정도이다.

히틀러는 오스트리아에서 징집명령서가 나오자 즉시 뮌헨으로 도망치는데, 그는 <나의 투쟁>에서 이렇게 변명한다.

“나는 합스부르크 국가를 위해 싸우고 싶지 않다. 독일 제국을 위해서는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

히틀러에게 있어서 오스트리아와 독일은 하나의 국가이므로 두 개의 독일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히틀러는 뮌헨 이주 후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자원입대한다. 부상을 당한 히틀러는 병원에서 정치가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히틀러는 어떻게 독일 최고 지도자가 됐으며, 나치는 어떻게 독일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집권했을까?

히틀러는 곧바로 당시 뮌헨의 극우 단체 중 하나인 독일 노동자당에 입당한다. 독일 노동자당은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으로 당명을 개칭, 약칭은 <나치당>이다.

히틀러는 입당과 동시에 대중 집회를 직접 지휘하며 자신이 대중 연설에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된다.

“연설은 서적보다 영향이 크다”고 주장할 만큼 대중 집회에서의 히틀러의 연설은 선동적이며 뛰어났다. 물론 여기에는 효과적인 연설 기법에 대한 철저한 노력도 있었다.

아돌프 히틀러
아돌프 히틀러

히틀러는 탁월한 정치 조직가로 쿠데타 혐의로 출소한 지 약 5년 만에 독일 총선에서 107석이라는 대약진을 하였고, 3년 후 1933년 3월 총선거에서 무려 288석으로 수상에 취임한다.

독일의 상황은 제1차 세계대전 패전 후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가공할 실업률, 지나치게 가혹한 베르사유조약에 따른 전쟁 배상금으로 파탄 상태였다.

제1당이었던 사회민주당은 경제 문제 해결에 있어 갈팡질팡했으며, 부유한 독일 귀족들은 자신들의 안락한 삶에만 몰두했다.

히틀러는 집권하자 곧바로 사회민주당을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무력화시킨 후 반유대인 법을 통과시켰다. 유대인은 독일 국민이 될 수 없다는 법으로 탄압과 동시에 베르사유조약의 군사 조항을 폐기, 제2차 세계대전 준비에 돌입한다.

여기서 독일 국민을 통제하는 대중 선전술이 등장하는데 <나의 투쟁>에서 대부분 가장 인상적인 대목으로 꼽는다.

히틀러의 선전술은 현대 정치, 특히 독재정권일수록 이 기법을 차용한다는 점에 있어서 대중 선전술의 교본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의 투쟁>에 가장 섬뜩한 면은 히틀러가 이 책인 쓰인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는 데 있다.

<나의 투쟁>에서 히틀러는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의 패망 원인과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 걸쳐 장황하게 분석하고 있으나, 결론은 오직 게르만족의 국가라는 민족주의적 세계관을 일관되게 말한다.

이 책의 대미도 이렇게 끝난다.

“인종 타락의 시대에 자기 나라의 최선의 인종적 요소의 보호에 몰두한 국가는 언젠가 지상의 지배자가 될 것이 틀림없다.”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읽음으로써 극우적 세계관과 제2차 세계대전이 잉태되는 원인과 역사적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다만 유의할 부분은 역사와 정치사상에 대한 식견을 어느 정도 갖춘 다음 반드시 비판적 시각으로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책은 위험할 수 있다. 극우 바람이 드센 세계적 흐름에 비추어 본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