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드리워진 ‘악의 평범성’ 1

한나 아렌트는 잘못된 사회구조 속에서 악행을 저지르는 건 천하의 몹쓸 악당만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유명한 ‘악의 평범성’ 개념이다.

나는 한국에 ‘악의 평범성’이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통계로 확인하곤 한다. 한국인의 일상은 ‘한국형 사회구조’ 속에서 ‘평범한 악’으로 점철됐다.

국가 간 비교를 통해 한국인을 잠식한 ‘악의 평범성’을 주로 세금과 복지로 살펴보고, 일터에서의 차이를 간략히 짚어볼 것이다.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은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1963년 저작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출처 jtbc 썰전)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은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1963년 저작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출처 jtbc 썰전)

악의 평범성 vs. 선의 평범성

인간이 성취해 낸 ‘위대한 협력의 문명’ 중에는 세금과 복지라는 사회제도가 있다. 세금과 복지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도의 문명으로서, 모든 협력의 문명이 그러하듯 사람이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수많은 일을 가능케 한다.

예를 들어, 노후자금이 별로 없는 노인들에게 사회 구성원들은 세금을 적정한 수준으로 내어 기초연금 등의 공적연금을 준수한 수준으로 제공할 수 있다.

다치거나 병에 걸린 사람, 장애가 있는 사람, 빈곤 아동, 한부모 가정, 임신이나 육아 중인 가정, 회사가 문을 닫아 실직자가 된 사람 등등 사회에는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취약계층이 존재한다.

각 개개인은 이들에게 충분한 도움을 주기 어렵지만, 세금과 복지라는 사회적 연대의 수단을 활용한다면, 인간은 어려움에 처한 동료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리고 다른 동료들의 연대적 도움 속에 어려움을 벗어난 이들은 합당한 세금을 기여함으로써 다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복지를 제공하게 된다.

세금과 복지의 선진국이란 사회 구조적으로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서로 충분한 도움을 주고받는 연대적 관계로 맺어지는 사회를 말한다.

물론 이런 사회라고 해서 악한 행동과 인간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도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이 상호 적절한 도움을 주고받는 사회구조에 편입돼 있다. 바꿔 말하면, 세금과 복지를 잘 발달시킨 나라들에서는 ‘선의 평범성’이 사회구조에 따라 자동으로 실현된다.

반대로 세금과 복지의 후진국은, 선한 행동과 인간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악의 평범성’이 사회구조에 따라 자동으로 발현된다.

대부분 사회구성원이 서로 끈끈한 연대적 관계를 맺지 못한 채 도움이 필요한 동료들을 비정하게 내버려 두며 각개전투형 삶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한국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예컨대, 많은 한국인 ‘일베’를 비판하고 경멸한다. 그러나 ‘일베’와 ‘일베 아닌 자’들은 사회의 약자들을 매몰차게 냉대하고 돌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악의 평범성’을 공유한다.

비정규직은 목숨 내놓고 일해야 하는 헬조선 실태 (출처 페이스북)
비정규직은 목숨 내놓고 일해야 하는 헬조선 실태 (출처 페이스북)

‘악의 평범성’은 한국에서 공기와도 같다. 지금부터는 이것을 국가 간 비교를 통해 짚어 볼 것이다.

‘악의 평범성’의 실체 1, 사람보다 사보험을 더 믿는 한국인

한국에는 정이 많은 민족이라는 오랜 관용어가 있다. 그러나 정작 한국인은 혹시 자신에게 정말 큰 도움이 절실한 절체절명의 시련이 닥쳤을 때, 공동체의 구성원들이란 믿고 의지할 만한 인격체들이 절대 아니라고 분명하게 알고 있다.

자신들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간파하고 있는 한국인은 복지 강화를 위해 세금을 낼 수 있는 사람을 믿는 대신 사보험을 믿고 그에 의존하며 살아간다.

2010년도 보험업계 회계연도 기준, 2010년 4월부터 2011년 3월까지 한국인은 보험 회사들에 모두 합쳐 약 132조원을 냈다. 2010년 GDP 약 1173조원의 11.3%에 이르는 규모이고, 이와 같은 사보험 규모는 OECD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우월한 순위다.

2011년에는 146조원을 사보험료로 지출했고, 이는 2011년 GDP 대비 11.9% 수준이며, 2010년과 마찬가지로 세 손가락 안에 들었다.

2012년에는 약 181조원을 사보험에 들어부으며 OECD 선두(14.2%)로 도약했고, 이듬해에는 약 171조원을 민영보험업체들에 헌납하며 2위(12.3%)에 올랐다.

2014년에는 약 183조원의 사보험료를 내며 다시 OECD 1위(12.2%)를 되찾았다. 2015년과 2016년의 사보험 추이를 볼 때, 2015년에는 사보험료의 총액이 190조원에 육박하며, 최소한 OECD 2위는 지켜낼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인이 사보험료를 많이 지출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무슨 문제가 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각 나라의 특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금에 대한 자료와 같이 비교해보면 뚜렷한 이상 징후가 포착된다. 다음의 <도표 5>를 살펴보자.

OECD 국가별 세금과 민영보험료
OECD 국가별 세금과 민영보험료

한국은 세금보다 민영보험의 활용도가 극단적으로 높은 나라이다. 보통의 경우 (소득세+사회보험료)는 민영보험료의 총합보다 훨씬 더 크다.

어지간한 선진국들은 소득세와 사회보험료의 합이 민간보험료의 합보다 GDP 대비로 14% 이상 더 크다. 이 차이가 작은 나라들도 영국의 4.1%를 제외하면 모두 5% 이상 차이가 난다.

그런데 한국은 (소득세+사회보험료)보다 도리어 민영보험료의 규모가 더 큰 나라이다. 이러한 역전 현상은 OECD에서 오직 한국이 유일하다.

소득세와 소비세의 합계에서도 한국의 기형적인 세금 기피와 사보험 의존이 두드러진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소득세+소비세)가 민영보험료보다 10% 이상 더 많다. 허나 한국은 일본과 함께, 소득세와 소비세를 더한 것보다 민영보험료에 내는 금액이 더 많은 유일한 나라이다.

한국의 세금 총계에서 민영보험료 총계를 빼보면 여타 국가들보다 현저하게 세금이 적음을 볼 수 있다. 자력갱생을 위한 비용이 남부럽지 않게 풍부한 것에 비해, 더불어 살기 위한 복지의 종잣돈은 궁색하기만 하다.

획득한 소득을 어떻게 쓸지는 개인의 영역이다. 사보험에 가입함으로써 각 개개인이 유사시에 대비하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위한 세금 기여는 거부하면서 자신의 대비책을 마련하는 데만 돈을 쓴다면 이것은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것이다.

한국인의 삶의 방식은 너나 할 것 없이 비인간적이며 ‘악의 평범성’에 물들어 있다. 더욱이 한국은 일터에서의 소득 격차마저 유난스럽게 벌어져 있다. 도를 넘은 각자도생의 도가니에서, 한국인은 만성적인 불안과 불신에 찌들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2012년에서 2014년 사이, 한국 국민은 스웨덴 국민보다 연평균 78조5000억원에 달하는 사보험료를 더 지출했다. 이것이 세금이었다면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

복지강국 스웨덴 어린이들
복지강국 스웨덴 어린이들

축약해서 설명하면, 2015년 기준으로 70%의 고령자 474만명에게 80만원의 기초연금을 지급한다고 가정할 때, 약 36조원의 추가 재원이 필요했다(행정자치부 국회예산정책처).

한국의 총 의료비 규모가 OECD에서 하위권에 있고, 차후 의료비 총액이 더 늘어날 여지가 매우 크다는 점을 일단 고려하지 않으면, 약 30조원의 추가 재원이 있다고 할 때 한국도 OECD 상위권의 공공의료 재원을 마련해야 된다(전체 의료비 중에서 80.9%가 공공재원으로 결제되는 경우를 말함. OECD 2015년).

결국, 한국인이 무모하게 과소비하고 있는 사보험 일부를 세금으로 십시일반 내준다면 한국도 만만치 않은 규모의 복지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튼튼한 국민 사이의 연대가 구축되면 설사 최악의 상태로 노년에 접어든다고 해도 최소한의 품격은 지킬 수 있는 노후가 보장된다. 또한, 대부분의 의료 서비스 이용 시에 세금 외의 추가 비용은 아주 소액으로 묶어 두는 의료복지도 실현된다.

불확실한 노후나 큰 질병 등에 대한 경제적 근심을 해소하는 데 필요한 일은, 대책 없이 가입하는 사보험을 줄이고 그 대신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은 미래가 불안하다며 사보험에 그토록 많은 돈을 들이붓고 있지만, 앞날에 대한 불안은 도통 가시질 않는다.

여기에서 기업 세금의 증액에 대한 상세를 다루지는 않지만, 물론 한국의 기업들도 국민처럼 세금을 조금만 낸다. 한국 국민이 나름의 이유를 들며 강력한 조세저항을 표출하듯이, 한국 기업들도 역시 그들 나름의 이유를 대며 강력한 조세저항을 표출하고 세금 인상을 완강히 거부한다.

복지가 부실할 수밖에 없고, 일터에서 발생한 과도한 격차가 피폐한 삶의 질로 곧장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국인이 지혜를 모아 자해적인 조세저항을 이겨낸 끝에, 세금보다도 더 무겁게 부담하고 있는 민영보험료 일부를 세금으로 내어 사회적 연대의 밑천을 마련한다.

그리고 기업 또한 뜨겁게 변화를 열망하는 국민의 기대에 조력해, 억지로든 기꺼이든 손을 맞잡고 협력한다면, 어떠한 삶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인생이 파탄 나는 일은 방비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갖가지 다채로운 복지혜택이 촘촘하게 한국 국민 모두에게 주어지며 다 함께 생활 수준이 껑충 뛰어오른다.

복지강국 스웨덴의 어린이
복지강국 스웨덴의 어린이

이럴 때 사보험은 공보험을 보조하는 역할을 맡고 세금을 매개로 한 사람들 간의 연대가 든든한 공동체의 버팀목으로 우뚝 선다. 사보험이 아니라 사람을 먼저 믿을 수 있게 된다.

나부터 살고 보자는 사보험에 의지하는 게 아니라 다 같이 더불어 살자는 사람에게 의지할 수 있게 된다. 아무리 사보험을 가입해도 해소되지 않는 불안으로부터 비로소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스웨덴 국민이 기업에 대해 높은 신뢰도를 가지고 있듯(최연혁 2012), 한국에서도 반기업 정서가 완화되는 것은 소소한 덤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타인이 파멸해야지 나와 내 자식이 올라가기가 조금이나마 유리해진다는 걸 너무들 잘 알고 있기 때문일까?

한국인은 세금보다 훨씬 비싼 비용을 악착같이 사보험에 지급하면서, 누구도 몰락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회적 연대와 안전망을 허물어뜨리는데, 안간힘을 쓴다.

일찍이 한나 아렌트가 간파했던 ‘악의 평범성’은 한국의 비인간적인 사회구조와 한국인들의 비연대적인 삶의 방식을 통해 극적으로 구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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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우

균형사회연구센터 CNSB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