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드리워진 ‘악의 평범성’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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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평범성’의 실체 2, 보편적 복지의 이름으로 사회 약자를 박대하는 한국인

몇 해 전 한국에는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를 둘러싼 논쟁이 들끓었다. 기이한 현상 중의 하나는 보편복지와 선별복지를 대립으로 여기는 논쟁의 틀이었다. 보편복지가 발달했다는 나라들에서 보편복지는 강력한 선별복지와 결합이 되어 있고, 보편과 선별을 칼로 무 자르듯 나눈다는 게 이상한 일이다.

복지를 보편적으로 실시하되 저소득층에게 각별히 더 많은 복지를 제공한다는 것은 보편복지가 성공적으로 정착한 나라들에서 그냥 당연한 일일 뿐이다. 그러나 한국의 보편복지 옹호자들은 저소득층과 비저소득층이 똑같은 복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실제 현실에서 성공을 거둔 보편복지와 전혀 다른 반서민적인 복지가 바로 보편적 복지이므로 올바르다고 강변했다.

분명히 해둔다. 한국의 수많은 보편복지 옹호자들은 획일적인 복지 제도를 보편적 복지라고 거짓 포장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정의와 상식의 수호자임을 자처할 때가 빈번한데,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이들이 정의와 상식의 수호자가 아니라 사회 약자들을 박대하려는 부도덕한 존재라고 반증한다.

한국의 복지 현황을 둘러보면 가장 시급한 것이 사회 약자를 지원하는 선별복지이다. 이에 대해 먼저 성명재 홍익대 교수(경제학)의 분석을 보고, 다음 OECD의 자료를 확인해 본다.

성명재 교수는 영국 통계청에서 추산하는 소득 10분위 복지 비중을 분석하고 그와 같은 방식으로 한국의 소득 10분위 복지 비중을 추산했다. 영국의 경우 현금복지와 현물복지를 총합해 보았을 때, 하위 10%에서 하위 40%의 구간에서는 소득계층이 한 단계씩 올라갈수록 복지 급여가 많아지고, 5분위 이상의 나머지 여섯 개 소득 구간에서는 소득계층이 한 단계씩 올라갈수록 복지 급여가 줄어든다.

영국의 하위 10%에서 하위 40% 구간에서 복지 급여가 역진적인 것은 고령층, 보육, 교육 등의 요인 때문이다. 이를테면 고령층은 보육복지도 교육복지도 필요가 없기에 복지혜택이 줄어든다.

한국의 사회복지교육수혜의 소득계층별 분포

한국의 경우, 위의 도표에 잘 나왔듯이, 해가 거듭됨에 따라 아주 착실하게 하위 10%에서 상위 10%로 한 계단씩 올라갈수록 복지 수혜가 커지는 양태가 나타난다. 현금복지만 보면 하위소득층에서 상위소득층으로 갈수록 완만하게 복지 급여가 감소하지만, 교육 등의 현물 복지까지 모두 고려하면 하위소득층에서 상위소득층으로 갈수록, 현금복지 때보다 더 급격하게, 복지 급여가 증가한다.

결국, 고소득층으로 가면 갈수록 오히려 복지를 더 많이 받는 것이 한국의 복지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편복지는 획일적 복지라며 거짓을 지어내어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복지 배분을 왜곡하고, 저소득층을 더 배려하는 선별복지를 매도하며 사회 약자들을 홀대하는 수많은 평범한 한국인은, 무지에 의해서건 특정 정치세력의 선동에 의해서건, ‘악의 평범성’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다음은 OECD의 소득 5분위 별 현금복지 비중 지표를 확인할 것이다. 참고로 성명재 교수의 자료는 시장소득에 따라 소득계층을 나눈 것이고, OECD의 자료는 균등화 가처분소득에 따라 소득계층을 구별한 것이다.

다음의 <도표 43>에서는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선별복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한국 국민이 사회 약자들을 얼마나 모질게 냉대하는지 더욱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도표 43> 하위 40%에게 가는 현금복지의 비중(2011, %)

먼저 하위 40%에 대한 현금복지의 비중이 매우 낮은 국가들에 대해 간략히 부연하면, 이것은 공적연금 및 고용 여건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컨대 실직자나 불안정 일자리 종사자들이 많은 나라에서 공적연금의 규모가 크거나 공무원 등 특정 직장의 종사자들만 후한 연금을 받아 간다면, 하위소득층보다 상위소득층이 더 많은 현금복지를 받는 불합리가 발생한다. 이렇게 현금복지의 배분이 역진적인 (잘)못된 나라들은, 오스트리아의 예외를 빼면, 한결같이 삶의 질 점수가 뒤처진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이런 유형의 나라에 이미 속해 있는데,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한 대선후보가 비합리적인 공무원 급여 및 연금 체계의 시정 없이 무턱대고 공무원을 대폭 늘리겠다고 공언하고 있어, 안 그래도 많이 망가진 나라가 더 급속도로 망가질 예정이다.

출처 jtbc <썰전>

행복도가 높기로 유명한 덴마크의 소득 5분위 별 현금복지의 비중은 하위 20%부터 차례 대로 34.2-32.1-16.6-10.5-6.7(%)이다. 하후상박으로 저소득층을 더 많이 배려하는 강력한 선별복지를 시행 중임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덴마크는 공보육, 노인 돌봄 등 사회서비스 현물 복지를 현금복지만큼 시행하는 나라이고 사회서비스 복지는 보통 보편주의와 선별 주의가 결합해 있다.

한국의 소득 5분위 별 현금복지의 비중은 하위 20%부터 차례 대로 24.2-16.8-16.5-17.9-24.6(%)이다. 덴마크와는 달리 상위 20%의 현금복지가 가장 많다. 이는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등의 과도하게 후한 공적연금과 고임금, 고소득층의 국민연금 최고액 수령에 기인한다.

삶에 대한 평가점수란 갤럽 월드 폴의 설문조사 결과를 말한다. 갤럽 월드 폴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삶의 질에 대한 주관적 지표를 조사한다.

“가능한 최악의 삶(the worst possible life)을 ‘0’으로 놓고 가능한 최상의 삶(the best possible life)을 ‘10’이라 할 때, 당신은 지금 어디에 서 있나요?”
-World Happiness Report 2016. Statistical Appendix.

각 나라별 점수들의 평균값을 구하였을 때 이 점수가 번번이 가장 높게 나오는 나라가 덴마크이다. 한국의 언론에는 UN의 자문기구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에서 발표하는 ‘세계행복보고서’에서 덴마크의 행복지수가 1등으로 나왔다는 기사로 소개되곤 한다.

표준편차는 평균값으로부터 멀어진 점수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를 나타내는 데, 표준편차가 클수록 평균값과 동떨어진 점수들이 많이 있는 것이다. ‘세계행복보고서’는 표준편차가 커질수록 행복감의 불평등한 정도가 크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도표 43>의 파란색 세로 선은 주관적인 삶의 질 지표에서 중장기 평균값이 가장 앞서 있는 열두 나라 가운데 그 값이 가장 낮은 이스라엘에 기준으로 한다. 아이슬란드를 기준으로 하는 가로 선은, 오스트리아를 제외했을 때, 삶의 질 선진국 중에서 하위 40%에 대한 현금복지의 비중이 가장 작은 경우를 말한다.

도표에 잘 나왔듯이 국민의 전반적으로 높은 삶의 질은 저소득층에게 확실하게 더 많은 복지를 해줄 때 가능한 일이다. 삶의 질과 행복도에서 세계 최고를 구가하는 덴마크의 경우, 하위 40% 소득층에 대한 현금복지 하나만으로도 한국의 전체 복지 규모에 다다른다. 덴마크의 유명한 행복지수는 허구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반대로 영국·미국·벨기에 같은 예외도 있으니 복지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허나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에게 복지가 많이 제공되지 못하는 나라들의 경우 거의 100%의 확률로 삶의 질이 떨어진다는 점을 보면, 선별적으로 저소득층에 충분한 복지를 제공하는 일은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중대사다.

특히 주관적인 삶의 질 지표의 표준편차에서 심각한 문제가 표출되는 나라들은 모두 선별복지를 잘못하고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한국·칠레·멕시코·터키는 지독히도 저소득층을 박대하는 복지 제도를 지켜내느라 고군분투 중인 불굴의 전우들이다. 이해가 쉽도록 금액으로 환산해보니, 이들 4총사는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복지의 액수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남사스러운 수준으로 작다.

특히 한국의 경우에는 멕시코·칠레·터키 같은 나라들보다 1인당 GDP가 1만 달러 이상 높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이것은 경제력을 고려했을 때 한국처럼 사회의 약자들을 매몰차게 냉대하는 곳은 세상에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실로 ‘악의 평범성’이란 게 무엇인지 한국인은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OECD Factbook 2014

한국을 비롯해 칠레·멕시코 등 저소득층 복지가 천박한 나라들의 위험성은 자살률 지표에서 명징하게 드러난다. 자살률 장기 통계가 없는 터키를 제외하고 한국과 칠레, 멕시코는 지난 20여년간 자살률이 상승하는 쪽으로 가장 크게 변동한 세 나라와 일치한다.

특히 한국은 유일하게 세 자릿수 자살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는바, 200%를 넘는 압도적인 자살 증가율을 과시한다.

이것이 ‘헬조선’ 한국의 끔찍한 민낯이지만, 일터에서의 격차 축소는 물론 저소득층을 위한 혁신적인 복지 강화에 대해서도 한국은 주목할만한 논의조차 하지 못하고 있으니, 공포마저 느껴지는 한국의 세태다.

생활고 시달리던 세 모녀 동반자살

한국에는 정의와 도덕과 상식을 부르짖는 이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지만, 실제로는 부도덕하고 불의하며 몰상식한 이들이 위선의 가면을 쓴 채 정의와 도덕과 상식의 깃발을 흔들고 있다. ‘악의 평범성’이야말로 한국과 한국인을 규정하는 가장 정확한 표현 중의 하나다.

한국의 심각한 일터에서의 격차를 고려하면 웬만큼 저소득층에게 복지를 지원해서는 실효성이 나타날 수 없다. 한국보다 시장소득의 격차가 훨씬 작은 나라들마저 한국이 저소득층에 제공하는 현금복지의 몇 배를 넘는 액수를 저소득층에 지원하는 실정이다.

현실이 이러하지만, 한국의 정치권은 일터에서의 1차적인 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대책이 부실하고, 찔끔찔끔 복지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자랑스레 공언할 뿐이다. 그 재원마저 보편적 복지는 똑같이 주는 획일적 복지라면서 힘겨운 이들에게는 얼마 가지도 못할 터이니, 한국의 하위소득층은 마음을 비우는 것이 현명하다.

더도 말고 그저 평범하게만 살아보자는 무리한 과욕을 버리면 쥐꼬리만 한 소득과 복지에도 감지덕지하며 살 수 있다.

<도표 43>에서 아이슬란드의 현금복지 총액이 비교적 작다는 것이나 주관적인 삶의 질 지표가 우수한 나라들의 색깔 표시가 다르다는 것 등 부연할 내용이 더 있지만, 더 상세한 내용은 다음 기회로 미루어 둔다.

‘악의 평범성’의 실체 3, 다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나 많다.

한국에 드리워진 ‘악의 평범성’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와 사례들은 이외에도 너무나 많다. 예컨대, 한국의 공공의료 재원은 총의료비에 대비했을 때 다른 나라들과 큰 차이를 벌리며 OECD 최하위권에 머문다(OECD 2015년).

이러한 복지 결핍은 중병에 걸린 가난한 사람들이 얼마나 긴 시간 끔찍하게 고통스러웠는지를 대중 앞에 선보이고 나서야 가까스로 치료비를 모금하게 되는 ‘착한 야만’으로 이어진다. 그나마 이들은 행운을 잡은 것이고 대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돈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하고 하염없이 기다리며 병마에 시달리고 있는 것인지 알 수조차 없다.

OECD는 특수한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 부문을 별도로 집계한다. 선천적·후천적 장애, 산업재해, 질병 등으로 인해 일하기 어려운 사회 약자들을 위한 복지다. 이것은 공공의료재원과는 별도의 카테고리다. 한국은 당연히 이 부문의 복지가 OECD 꼴찌 수준이다. 한국의 바로 위에는 칠레가, 밑으로는 터키와 멕시코가 자리한다.

2015년 GDP를 대입해 금액으로 환산하면 OECD 평균이 30조원 조금 넘고, 한국은 8조원 가량이다. 북유럽의 4개국 덴마크·스웨덴·핀란드·노르웨이는 특수한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가 가장 담대해 OECD 평균의 두 배가량이고, 금액으로 보면 약 60조원에서 70조원 내외이다.

서민을 걱정한다는 많은 한국인이 소비세(간접세)의 인상을 반서민적이라고 힐난한다. 그러나 대부분 삶의 질 선진국들은 한국보다 훨씬 더 많은 간접세를 걷어 그것을 저소득층에 복지에 집중적으로 투입함으로써 고르게 삶의 질을 끌어올린다(OECD World Happiness Report 2016. Online Data on Chapter 2).

간접세 인상이 반서민적이라고 무턱대고 비난하는 행태야말로 그것이 무지에 따른 것이든, 정치적 선동에 의한 것이든 반서민적인 행태다.

추악한 박근혜 정부에서 잘한 일 중 하나는 소득세를 줄이는 방식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꿈으로써 소득세 부과의 역진적 요소를 일부 제거한 것이다. 그러나 세금이 역진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평소 목소리를 높이던 많은 한국인이 격렬하게 이에 반대했다.

한국의 상위 10% 소득 점유율은 미국에 견줄 만큼 위험한 상황인데, 미국은 상위 1%가 엽기적인 수준으로 돈을 빨아들이는 와중에 상위 2~10%도 만만찮게 과도한 수입을 챙긴다면, 한국은 상위 1%도 문제지만 상위 2~10%가 가져가는 몫이 OECD 압도적 1등인 판국이다(World Top Incomes Database). 이것은 그저 소수 부유층에게 복지를 위한 증세를 떠넘기려는 세태가 극히 비논리적이며 비윤리적임을 시사한다.

한국 상위 10% 소득집중도 최고 수준(출처 jtbc)

이처럼 알면 알수록 “이게 나라냐”는 말이 참으로 잘 어울리는 한국의 현주소다. ‘악의 평범성’은 한국과 한국 국민을 관통한다. 서두에 언급한 바와 같이 ‘일베’와 ‘일베를 욕하는 자’들은 사회의 약자들을 매몰차게 냉대하고 돌보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악의 평범성’을 공유한다.

‘일베’가 특히 싫어하는 집단 중의 하나로 이른바 ‘귀족노조’가 있다. 이 상층 노동자들은 동료 노동자들이, 청년들이 저임금 일자리를 희망 없이 전전하고 있어도 그 책임은 오직 대기업에만, 정치인들에게만 있다고 강변한다.

저임금 노동자의 두세 달 치 월급을 사교육비로, 사보험료로 다달이 쓸 돈은 있어도 어려운 동료들을 위해 쓸 돈은 세금이건 임금 양보이건 한 푼도 없다고 핏대를 세운다. 그저 남 탓만 하며 동료 의식, 연대 의식 같은 건 내팽개치는 한국의 상층 노동자들, 자기 몫을 더 많이, 더 많이 챙기는 데만 혈안이 되어 동료들이 비명을 지르며 죽어 나가도 고개를 돌리며 외면하는 이들.

대체 이들이 약자들을 무시하고 깔보는 ‘일베’와 어디가 그리 다른 것일까?

나는 ‘일베’가 한국에 만연한 ‘악의 평범성’을 매우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을 더 과격하고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군상들이라 생각한다. 어차피 한국인이라면 가장 힘겹게 사는 사회 약자들을 매정하게 내치고 내버려 두며 살고 있다는 점에서 너나 내나 마찬가지인데, 왜 어떤 놈들은 자기들이 남들과 달리 정의롭고 도덕적이라고 동네방네 큰소리를 치고 다니는 것인지, 그 위선에 진절머리를 내다가 매우 부적절한 방식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것이 ‘일베’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와 한국 국민은 너무 지나치게 자기만 챙기며 산다. 어려운 동료들을 너무도 야박하게 홀대한다. 세상이 각박해져만 간다고 입버릇처럼 걱정하지만, 그것은 공허한 말에 그칠 뿐이다. 정작 한국인들은 한국의 삭막한 세태를 몸소 더욱 심화시키며 살아왔다.

한국인이 ‘악의 평범성’에 매몰되고 만 것은, 정치의 책임이 가장 크다. 한국을 이토록 차갑고 비정한 나라로 키운 건 팔 할이 정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정치는 여와 야를 막론하고 세금과 복지에 관하여 온갖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데 앞장섰고, 다양한 형태로 조세저항을 부추기는 데 진력했다.

상층 노동조합과 밀접한 정치세력은 뇌물에 세습까지 일삼는 상층 대노조들의 타락을 수수방관하거나 도리어 적극적으로 조장했다.

정치가 망가진 책임은 국민에게 있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외침이 주기적으로 천지를 울리는 한국이다. 주인이라면, 최종 권력자라면 그에 맞는 책임을 져야 온당하다.

한국인은, 정치가 나에게 그릇된 삶의 방식을 종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로지 소수의 부자만 손가락질하면서 마냥 이기적으로 살라고 정치가 나에게 윽박지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만히 되돌아봐야 한다. 비정하고 비인간적인 삶의 방식이 사회정의에 부합하는 거라고 착각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장제우

균형사회연구센터 CNSB 연구위원